서울 사대문 안에 오래 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궁궐이 있으니,바로 이름도 예쁜 경희궁입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신 문로를 따라 서대문으로 가다가 경향신 문사 맞은편에 있는 이 궁은 처참하게,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지금은 궁궐이 라는 이름조차도 민망하지만 옛날엔 인 조 이후 법궁에 버금가는 이궁, 서궐이 었지요.
왜란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면 서 궁궐 중건을 서둘렀고 1616년 봄에 새 궁궐을 지었으니 인경궁이라고 합니다.
인경궁 공사가 한창이던 때에 술사 가 새문동에 왕기가 있다는 말로 또 다 른 궁궐을 지어야한다는 논쟁이 거세게 벌어졌습니다.
그 새문동에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원군의 저택이 있었지요.
정원군의 셋 째 아들이 능창군이었는데, 사람들의 인망을 모아 광해군의 미움을 사서 결국 광해7년에 죽임을 당하고 집 은 몰수되고 맙니다.
광해군은 집을 뭉개버리고 새 궁궐을 지으니 바로 오늘 소개하는 경희궁입니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으나 영조 연간에 경희궁으 로 바뀌었습니다.
이궁으로 짓는 것이기에 규모를 작게 잡 기는 했으나 계속되는 궁궐 공사는 무리 가 있어 경덕궁은 1623년에야 겨우 완공 단계에 이르릅니다.
그러나 정작 광해군은 경덕궁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 해 3월 12일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말지요.
인조는 창덕궁을 사용했고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 거의 전소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경덕궁으로 이어하게 됩니다.
그때문에 경덕궁은 실제적인 이궁이 되었습니다.
경덕궁의 이름이 경희궁으로 바뀐 것은 1760년 영조 36년에,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음이 같다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인조 이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 부르고 경희궁은 서궐 이라 불리었지요.
그 후의 임금들은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고종초에 경복궁을 중건하고 완전히 옮겨가자 경희궁은 초라한 빈 궁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 초기까지는 궁궐의 외양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경희궁은 급속도 로 파괴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왜놈 들의 거류민단의 진출 때문이었지요.
통감부가 생기면서 일본인들은 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났고, 거주지역이 확장되면서 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 문제가 대두 되었습니다.
1909년에 일진회장인, 천하의 매국노 이용구와 송병준의 주도로 총독부 중학교가 만들어 졌고 그 터가 바로 경희궁이었습니다.
총독부 체제가 시작되는 시점에 경복궁 과 경희궁은 총독부의 소유가 되었고 중학교를 세우면서 거의 대부분을 아예 헐어버린 것입니다.
숭전전,흥정당,홍화문을 비롯한 회랑들,황학정,회상전의 전각들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왜놈들의 경희궁 파괴는 1920년까지도 계속되어 1922년 6월, 궁의 동쪽에 전매국 공사를 하면서 그 부지로 25000여평을 잘라내 버렸습니다.
또 도로를 내어 궁터를 없애 버렸고 이제 경희궁터는 원래의 반도 남지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왜놈들은 경희궁과 무슨 철천지 원한이라도 있는지, 그나마 남아 있던 전각들을 모두 외부에 매각, 경희궁의 정전이었던 숭정전은 1926년 3월 조개사에 팔렸습니다.
참고로 조개사는 일본 종파인 조동종입니다.
내전인 회상전은 1925년까지 중학교 기숙사로 이용되다가 조개사로 팔려 주지의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편전이었던 흥정당은 1921년까지 소학교 교실로 쓰이다가 1928년 광운사로 팔렸습니다.
흥화문은 1932년 남산 자락인 춘무산에 짓던,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신사 박문사에 팔려 그 정문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궁궐을 완벽하게 망가뜨려 그것도 모자라 절에 팔아먹은 왜놈들의 저의를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아문의 규모만 200간이었고 120여채의 이름있는 전각들과 그 부설 시설까지 합쳐 수 백 간이나 되는 경희궁은 그렇게 나라의 몰락과 함께 처절하게 파괴 되었습니다.
처절함이란 단어를 아무리 써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습니까?
현대건설에 팔린 경희궁터를, 1984년 서울시가 공원 조성 목적으로 사들였다가 여러 반대에 부딪혀 1985년 8월부터 정전인 승정원을 중심으로 발굴,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여러 전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경희궁은 동쪽으로 나있는 궁성문으로 바로 연결되는 홍화문을 선두로, 같은 동편에 둘, 서남북에 하나씩 모두 다섯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흥화문을 들어 가면 바로 금천교를 건너 중문으로 들어 가게 되고 그 북쪽으로 경현당과 동궁이 연결됩니다.
동궁에서 서쪽 방향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꺽어지는 곳에 숭정문 이 있고 그 안에 숭정전이 있었습니다.
숭정전은 임금이 정사를 보던 법전이었지요.
그 뒤편으로 자정전과 태령전이 있었습니다.
태령전은 어진 을 봉안하고 신성시 여기던 곳입니다.
그 주변으로 이문원,홍문관,시강원, 예 문관,내의원,내반원,사옹원,빈청 등의 궐내각사가 모여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경연을 여는 흥정당, 대내정침으로 쓰였던 융복전, 대내정전인 회상전, 수연을 벌이는 광명전, 대비의 거처인 장락전 그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고 내원에는 수많은 정자들도 있었습니다.
있었다로 끝나는 이 서글픈 이야기는 옛 자료 속에나 나오는 경희 궁의 모습을 서술하기 때문입니다.
경희궁은 말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간신히 남아있는 흥화문만 해도 수없는 곡절을 거쳐 지금은 원래의 자리로 가지 도 못하고 경희궁의 서남쪽 모퉁이에, 경향신문사 등의 고층 건물의 그늘에 초연히 서 있습니다.
박문사의 문으로 팔렸다가 그 터가 영빈관이 되고 다시 신라 호텔이 될 때까지 정문으로 남아 있다가 1988년 경희궁으로 돌아왔지요.
지금 경희궁에 있는 숭정전도 원래의 것이 아닙니다.
1926년 절에 팔려 갔던 숭정전은 해방 후에 그 자리에 동국대학 교가 들어서고 정각원이라는 법당이 되어 있습니다.
경희궁터에 있는 숭전전은 옛 문헌에 따라 완전 복원한 신숭정전입니다.
경희궁도 이젠 이름도 간 곳 없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울창한 수림 뿐입니다.
그 자리에 시립박물관 의 건물이 4층의 위용으로 서 있지요.
오궁 중에 경희궁은 이렇게 철저하게 사라졌습니다.
예산 문제로 중단되었던 복원 사업은 2013년,서울시청과 종로구청이 재복원 계획을 문화재청에 제출해서 다시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적 271호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습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습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습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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