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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프로복싱 Jr플라이급 챔피언 역사

by Ajan Master_Choi 2004. 5. 30.

1920년 프로복싱이 활발했던 뉴욕주가 주니어체급을 처음 채택했을 때 J.플라이급의 한계 체중은 -109lbs 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현 WBA의 전신인 NBA는 세인의 관심은 물론, 선수도 거의 없다시피한 J.플라이급, J.밴텀급과 J.페더급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해 단 한번의 세계타이틀전도 없이 소멸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1974년말 WBC는 텔레비전의 전세계적인 보급을 통해 프로복싱이 인기스포츠로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자 새 챔피언에 의한 새로운 타이틀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J.미들급에 이어 -108lbs(-48.980kg)를 한계체중으로 하는 J.플라이급을 신설하고 나섰다.

​<WBC>는 즉시 랭킹을 급조하여 1975년 1월부터 발표했고, 4월 4일 이탈리아의 산시로에서 홈링의 <프랑코 우델라>와 멕시코의 발렌틴 마르티네스로 하여금 초대챔피언 결정전을 벌이게 했다.
아마추어에서 두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는 우델라는 플라이급으로 활동하면서 1년전 WBC 챔피언 베툴리오 곤살레스에게 도전했다가 10R TKO로 물러난 뒤였고, 마르티네스는 자국에서 2연패 중인 상태라 신설 체급으로서 빈약한 선수층을 드러냈다.
경기는 어느 일방의 매끄러운 우세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 12R에 마르티네스가 우델라의 등을 지나치게 가격하자 우델라의 실격승이 선언돼 첫 판부터 행운의 챔피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체중고에 부담을 느낀 우델라가 질병을 핑계로 자꾸만 지명방어전을 회피하자 WBC는 넉달만에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베네수엘라의 <루이스 에스타바>와 파라과이의 라파엘 로베라 간의 결정전을 지시해 4R KO승을 거둔 에스타바가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워낙 자주 방어전을 갖어 싸우는 챔피언으로 유명했던 에스타바는 당시 37살로 복서로서는 이미 환갑을 훨씬 지난 나이였고, 그 흔한 로컬타이틀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8년여의 링캐리어 중 7번이나 패배를 기록할만큼 지극히 평범한 중남미 복서였지만 왕좌에 오른 뒤부터 전혀 다른 미스테리한 괴력을 선보이며 롱런챔피언으로서의 족적을 남겼다.

공수의 밸런스가 안정된 올라운드 복서로서 긴 리치를 활용한 잽과 스트레이트를 앞세워 부지런히 움직이며 타이밍을 포착하는 능력은 동시대의 미구엘 칸토를 방불케 할만큼 예술적인 구석이 있었다.
콩고(현 자이르)의 초대수상 파트리스 루뭄바를 닮은 듯한 독특한 외모때문에 ‘루뭄바’라는 애칭으로 불리운 에스타바는 체급 신설 초기여서 선수층이 미미했지만 전임 우델라를 비롯해 로돌포 로드리게스, 발렌틴 마르티네스, 라파엘 페드로사, 네트르노이 보라싱 등 제법 실력을 갖춘 도전자를 여러명 해치운 바 있어 2년6개월간 쌓은 통산 11차례 방어전의 순도를 결코 낮게 평가할 수만은 없다.

WBC가 이 체급의 랭킹을 발표한 지 석달만에 WBA도 같은 한계체중의 J.플라이급을 신설하며 랭킹을 발표했는데 WBC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실적있는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고, 플라이급에서 대성하지 못한 선수들도 자리를 꿰찼다.
초대챔피언 결정전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형식을 빌어 하이메 리오스(파나마) Vs. 덴류 가즈노리(일본), 리고베르토 마르카노(베네수엘라) Vs. 존 카히나(니카라과)의 승자가 결승전을 벌이도록 했고, 4강전의 승자인 <하이메 리오스>와 리고베르토 마르카노가 1975년 8월 23일 대결하여 리오스가 홈링에서 한수 위의 기량을 뽐내며 무난하게 초대 왕좌에 올랐다.

플라이급 시절 내셔널 타이틀전에 나섰다가 석패한 적이 있지만 단신으로서 날다람쥐같이 빠른 공수전환능력을 갖추었고, 위빙과 더킹은 물론 롤링에도 능한 편이었다.
후일 도전자로서 구시켄 요코와 두차례 대결하여 비록 패하긴 했어도 구시켄에게 다운을 안겨주고 얼굴을 뭉개버린 전과를 올릴 만큼 경량급치고는 펀치의 파워도 대단했다.
그러나 도미니카 출신의 또 다른 강타자 <후안 안토니오 구스만>을 만나 오히려 파워에서 밀리는 바람에 단명에 그쳤다.

​유달리 조지 포먼을 닮은 외모와 일발 파워 때문에 ‘리틀 포먼’이란 별명을 갖게 된 구스만은 세계타이틀 도전 당시 24승(20KO)1패를 기록할 만큼 높은 KO율을 보유한 하드펀처였지만 첫 방어전에서 사우스포인 일본의 <구시켄 요코>를 상대해 초반부터 안면을 내주며 수세에 빠지더니 아이러니컬하게도 7R만에 KO로 무너져 왕좌에 오른지 석달만에 무관으로 내려 앉았다.

불과 9전째에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며 화끈한 KO승으로 새로운 왕자가 된 구시켄은 남방의 오키나와 출신으로 아마추어경력을 통해 쌓은 충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안정된 밸런스 속에 리드미컬한 몸놀림과 스텝, 다양한 각도에서 터져 나오는 컴비블로우를 구사하며 방어횟수를 거듭할수록 링위에서 패배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인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챌린저 리스트 역시 대체로 동양권과 중남미권의 내로라할만한 강자들로서 이들을 상대로 13차방어 성공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남겼고, 그 중 8번을 KO승으로 장식할만큼 경기 내용도 비교적 수준급이어서 당시로서는 이 체급 최고의 복서라고 칭할만 했다.

다만, 그의 방어전이 모두 홈링에서 이루어진 사실은 후대에 저평가의 원인이 되었고, 무관이 된 후 폭로된 소위 ‘가네히라 약물 스캔들’에 휘말려 과거의 훌륭한 업적을 부정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J.플라이급은 체급 신설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WBC챔피언 루이스 에스타바와 WBA챔피언 구시켄 요코의 등장과 그들의 롱런을 인해 예상보다 빠르게 자리잡아 갔고, 동양권과 중남미권의 활발한 매치메이킹은 이 체급에 많은 선수들을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에스타바 이후 <WBC> 타이틀은 상대적으로 잦은 왕자 교대극으로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노익장의 화신인 에스타바를 적지에서 누르고 새챔피언에 등극한 멕시코의 <프레디 카스티요>는 동향의 선배인 미구엘 칸토나 구티 에스파다스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선배들과 달리 데뷔초에는 싸움꾼스타일의 인파이터로서 지저분한 레코드를 기록했지만 점차 기교와 파워가 향상되면서 세계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첫 방어전에서 태국의 무에타이 출신 <네트르노이 보라싱>을 상대로 판정패하면서 재임기간은 석달이 못 되었다.

불과 19살에 세계정상에 오른 보라싱은 단신에 체구도 작았지만 터프니스와 스태미너를 앞세운 와일드한 좌우훅이 주무기였는데 적지에서 벌인 첫 방어전에서 노인취급을 받던 에스타바를 5R만에 쓰러뜨리고 통렬히 보복해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지만 2차방어전에서 헝그리정신의 대명사인 우리나라의 <김성준>을 만나 3R만에 명치를 찍혀 역전KO패 당하고 역시 넉달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운 덕분에 전적은 깔끔하지 않았지만 자국챔피언과 동양챔피언을 거치면서 한층 물오른 기량과 근성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챔피언 김성준의 방어전은 의외로 지리멸렬하여 2류인 엑토로 멜렌데스는 물론 3류인 시오니 카루포에게 마저 속시원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더니 결국, 4차방어전에서 일본의 <나카지마 시게오>의 더티 플레이에 시종일관 머리로 받히고 공매만 잔뜩 허용한 채 벨트를 풀었다.

WBA챔피언 구시켄과 함께 일본에 양대기구 석권의 쾌거를 안긴 나카지마는 아마추어에서 80여전을 경험한 뒤 프로에 전향하여 자국챔피언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신통치 않은 실력이었지만 스피드가 좋고 훅과 어퍼컷은 비교적 예리한 편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세계정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역시나 첫 방어전에서 톱랭커인 <일라리오 사파타>의 완벽한 아웃복싱 앞에 쉽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170cm에 육박하는 장신의 사우스포로서 발놀림이 빠르고 허리가 유연한데다가 순발력마저 뛰어나 상대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사파타는 피스톤같은 잽과 스트레이트까지 장착해 가히 중남미 복싱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후임 세계챔피언 네명을 해치우면서 놀라운 하이 스피드로 방어횟수를 늘려나간 사파타의 출현으로 1980년대로 접어든 WBC 타이틀도 구시켄의 WBA 타이틀 못지 않은 철옹성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로써 J.플라이급은 길지 않은 역사속에 에스타바와 구시켄, 사파타 같은 롱런 챔피언을 연달아 배출하면서 빠르게 정착되었고, 적어도 동양권과 중남미권에서는 적지 않은 팬들의 관심과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WBA> 챔피언 구시켄은 오랜 방어기록을 통해 국민영예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본내에서 각광받는 스포츠 스타로 군림했지만 4년차에 접어 들면서 조금씩 그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체급 최다방어기록과 타이를 이룬 11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김용현을 맞아 그로기에 빠지는 모습을 연출한데 이어 13차방어전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상대였던 멕시코의 <페드로 플로레스>에게 초반부터 다운을 내주고 간신히 홈디시전으로 승리하는 수모를 겪었다.

WBA는 플로레스측의 제소를 받아들여 즉각 재경기를 지시했고 5개월뒤 미모의 신부와 결혼을 불과 13일 앞둔 1981년 3월 8일 홈링중의 홈링인 오키나와에서 벌인 14차방어전에서 두차례의 다운을 허용한 뒤 12R에 무차별 난타를 당한 끝에 세컨의 타올투입으로 TKO패를 당했다.
일본의 복싱영웅이 고향 팬들 앞에서 참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구시켄은 경기후 눈에 이상을 느껴 그대로 은퇴했고, 이후 WBA타이틀은 초특급 챔피언 유명우 시대가 개막될 때까지 5년여간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구시켄의 신화를 붕괴시킨 플로레스는 당시 링경력 8년에 15승(4KO)6패의 보잘 것 없는 전적의 소유자였으나 서른살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쉴새없이 내뻗는 스트레이트가 돋보였고, 어떤 자세에서도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유연한 허리를 가졌으며 접근전에서 곧잘 구사하는 쇼트블로우와 어퍼컷이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만년에 찾아온 영광은 넉달 뒤 적지에서 열린 지명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김환진>이 펼친 지능적인 버팅과 변칙스타일의 복싱에 13회 TKO패를 당해 일찍 사라졌다.
그동안 수차례의 세계도전 무산 끝에 왕좌에 오른 준비된 챔피언 김환진은 151cm의 단신으로 인-아웃복싱에 능한 부지런한 움직임과 변칙적인 요소가 가미된 두뇌플레이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러나 롱훅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패턴과 약한 펀치력 때문에 롱런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예상대로 적지에서 벌인 2차 방어전에서 풋내기에 불과한 일본의 <도카시키 가쓰오>에게 무수히 많은 잽과 스트레이트를 허용해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선배 구시켄이 잃어버린 챔피언 벨트를 9달만에 일본으로 되찾아 온 도카시키는 구시켄과 동향이자 그의 스파링 파트너로서 일찍이 거물 가네히라 마사키가 구시켄의 후계자로 키우고 있었던 신출내기였다.
탁월한 스피드를 바탕으로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에 능했던 도까시끼 역시 솜방망이 같은 주먹과 체력이 문제였다.
첫 방어전을 루페 마데라에게 석연챦은 판정승으로 시작한 이후 3차례의 방어전에서는 홈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은 채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승리했지만 5차 방어전에서 재회한 천적 마데라에게는 또 다시 억지스러운 무승부 판정으로 타이틀을 지켜내 자국 언론이나 전문가들에게도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 3달뒤 벌인 3번째 대결에서는 초반부터 핀치에 몰리더니 4R들어 고의로 버팅을 감행해 무승부 판정을 유도해냈으나 마데라측의 격렬한 항의를 받은 3심이 합의를 통해 <루페 마데라>의 승리를 선언함으로써 새챔피언이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WBA룰은 3회 이내에 우연한 사고로 경기를 속행할 수 없을 경우 무승부로 챔피언이 타이틀을 방어하게 되고 4회 이후부터는 그 때까지의 채점결과에 따라 승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도카시키측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 점을 악용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지나 라운드수의 착오가 있었다.

​한편, 이 체급에서 안정된 방어전을 펼치며 롱런가도를 달리던 <WBC>챔피언 사파타는 뜻밖의 암초에 걸려 권좌에 오른지 2년만에 무관으로 떨어졌다.
멕시코의 <아마도 우르수와>를 맞아 홈팬들을 의식해서인지 초반부터 너무 공세에 나선 것이 화근이 되어 2R에 불의의 일격을 턱에 맞고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났지만 재차 카운터블로우를 허용해 그대로 KO패 했다.
평소와 같은 페이스였다면 쉽게 이길수 있었던 상대였기에 사파타입장에서는 통한의 패배가 아닐 수 없었다.

중남미의 두터운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하다가 자국의 하드펀처 헤르만 토레스를 잡은 여세를 몰아 이 체급 최고의 업셋을 일으킨 우르수와는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에 고루 능한 선수로 강렬한 주먹도 갖고 있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일본 원정길에서 <도모리 다다시>에게 정직한 플레이로 맞선 결과 홈텃세를 당해 불과 60여일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구시켄, 도카시키와 동향인 도모리는 공격시 훅과 어퍼의 연결은 좋은 편이었지만 전체적인 기량이 떨어져 자국의 라이벌들에게 조차도 연패를 당해 세계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 나카지마와 같은 치사한 복싱을 펼쳐 사실상 어거지로 챔피언에 올랐다.

첫 방어 상대로 맞이한 전임 <일라리오 사파타>와는 생애 최고의 선전을 펼쳐 눈길을 모았으나 결국 아쉽게 패했고, 리매치에서는 실력차를 그대로 드러내며 유혈이 낭자한 채로 매트에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타이틀을 탈환해 2차 집권기를 맞이한 사파타는 도모리와의 1차전에서 나타난 노쇠현상 때문에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었으나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무섭게 치고 올라온 우리나라의 장정구를 1차방어전에서 맞이하여 원숙한 테크닉과 노련하고 지능적인 경기운영능력을 과시하며 무난하게 타이틀을 방어해 잡음을 일축했다.

하지만 장신으로서 5년 넘게 최경량급에서 활동해온 사파타에게 감량고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고, 6개월뒤 장정구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는 결국 체중조절에 실패하여 트레이드 마크인 자연스런 몸놀림과 빠른 스피드를 잃어 버린 채 젊은 도전자의 융단포격 앞에 신구교대극의 희생양이 되며 3R TKO로 패퇴했다.

​미국의 링지로부터 ‘Korean Hawk’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세계적인 톱복서였던 우리나라의 자랑 <장정구>의 전매 특허는 상대의 움직임과 위치에 맞춰 자유자재로 스위치하는 변칙적인 파이팅력이었다.
눈이 좋고 페인트 모션에 능해 상대의 펀치를 많이 맞지 않았고, 찬스때 스피디한 연타 능력과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은 발군이었다.
그러나 그가 구시켄의 아성을 뛰어넘어 5년여간 15차 방어 성공의 대기록을 수립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깡다구 기질에서 나오는 악착같은 승부 근성이었다.

후반기 들어 나이에 따른 컨디션 저하때문에 다소 수비가 허술해져 불안감을 주기도 했지만 한층 강화된 화력과 투쟁심은 KO승을 양산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에게 희생당한 선수로는 헤르만 토레스를 비롯해 소트 치탈라다, 프란시스코 몬티엘, 도카시키 가쓰오, 오하시 히데유키 등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다.
이처럼 많은 강자들을 상대로 이룬 위대한 업적 때문에 장정구는 WBC로부터 20세기를 빛낸 25인의 복서로 선정된 데 이어 후대의 움베르토 곤살레스, 마이클 카바할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됨으로써 이 체급의 존재가치를 더욱 더 빛나게 했다.

최후의 방어전이 된 오하시와의 15차방어전은 홈이 아닌 어웨이로 치러 마지막까지 인터내셔널 파이터로서의 진면목을 과시하며 명예롭게 타이틀을 반납했다.

​도까시키와의 더러운 악연을 끊고 WBA의 7번째 챔피언에 등극한 마데라는 멕시코 경량급 스타의 산실인 유카탄반도 출신으로 데뷔초부터 미구엘 칸토나 구티 에스파다스의 스파링 파트너로 복무했는데 저니맨으로서 선수층이 두터운 중남미권 월드클래스 선수들과의 격전을 통해 성장한 터라 비교적 승률은 나빴지만 다부진 체격에 묵직한 주먹으로 타격전을 마다하지 않는 호전적 스타일의 베테랑이었다.

도카시키와 한번 더 싸워 군말없는 판정승을 거두고 2차방어전에서 당초 상대였던 호세 데 헤수스의 부상 때문에 대타로 출전한 승률 5할의 도미니카 출신인 <프란시스코 퀴로스>의 긴 리치에 의외로 고전하더니 9R에 통렬한 원투스트레이트를 턱에 맞고 KO당해 단명했다.

이 체급에서 구스만에 이어 도미니카 출신으로 두 번째 챔피언에 오른 럭키가이 퀴로스는 170cm가 넘는 장신으로 잽과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하나 낮은 기량 탓에 한때 9연패를 기록할 정도로 가망이 없었지만 그 뒤 세계랭커를 잇달아 격추시키며 잡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발전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명도전자인 미국의 <조이 올리보>와 벌인 2차방어전에서 선전했으나 근소한 차이로 판정패해 그 역시 10개월의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전임 챔피언 못지 않은 장신의 올리보는 이 체급이 워낙 자국에서 인기가 없는데다가 그의 스타일 자체가 재미없는 아웃복싱스타일이라 매치메이킹이 쉽지 않았는데 당시 이 체급의 유망주가 많았던 우리나라의 연이은 콜에 거액의 대전료를 탐내며 드나들다가 나중에 이 체급의 최다방어기록을 수립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유명우>의 끈질긴 공세에 근소한 차의 판정패를 당해 2차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잃었다.

WBC가 사파타에 이어 장정구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며 프로복싱의 본고장인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권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던 시기에 WBA쪽은 플로레스부터 올리보까지 이어지는 챔피언 릴레이를 펼치며 이 체급에 대한 인상을 어둡게 만들었다.

제3의 기구 <IBF>는 1983년말 이 체급의 초대챔피언으로 일본의 싱가키 사토시를 12RTKO로 제압한 필리핀의 <도디 보이 페날로사>를 인정했다.
당초 우리나라의 정비원이 결정전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신설기구 타이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싱가키측이 재빨리 기회를 낚아챘고 당시 IBF에 가입하지 않았던 JBC(일본권투위원회)가 불인정한 가운데 IBF에 동조하는 일부 커미셔너에 의해 그대로 강행되었다.
페날로사는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한 입지전적 복서로서 1960년대 자국에서 라이트급챔피언을 지냈던 부친 칼 페날로사의 영향으로 고교시절 어린형제들과 함께 복싱에 입문했다.
사우스포로서 섬세한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를 갖고 있으며, 라이트잽과 더블펀치가 좋고 훅과 어퍼를 이용한 받아치기의 명수였다.
당시 우리나라를 찾았던 수많은 필리핀의 맹물과는 거리가 멀었고, 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유망주 김재홍과 최점환에게 연이은 압승을 거두면서 한때 WBC챔피언 장정구와의 통합전이 거론될만큼 비교적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3차방어에 성공한 뒤 플라이급으로 월장하면서 타이틀을 반납했다.

최점환 Vs. 마쓰다 도시히코

페날로사가 반납한 타이틀은 장정구와 유명우의 빛에 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우리나라의 <최점환>이 차지했다.
결정전에서 동국의 박조운을 상대로 한차례 다운을 당하긴 했지만 100전이 넘는 화려한 아마추어 전적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기량과 스태미너를 마음껏 발휘해 무난하게 승리했다.

우리나라는 WBC챔피언 장정구가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방어전 횟수를 늘려가던 80년대 중반 WBA챔피언 유명우와 IBF챔피언 최점환의 등장으로 2년 이상이나 3대 기구를 모두 호령해 적어도 이 체급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다.
최점환은 비록 도전자의 격은 낮았지만 원정 방어를 포함해 4차례 수성했고, 우리나라의 IBF 타이틀에 대한 냉대로 실의에 빠진 채 14개월만에 또 다시 적지로 날아가 필리핀의 <타시 마칼로스>에게 헌납하다시피 하며 챔피언벨트를 내주었다.

IBF타이틀을 다시 필리핀으로 가져 온 마칼로스는 끈질긴 대쉬로 상대를 괴롭히는 강점을 갖고 있었는데 적지에서 벌인 첫 방어전에서 태국의 신예 <무앙차이 키티카셈>에게 잘 싸우고도 판정에 희생당했다.
7전만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키티카셈은 10대 시절 무에타이 챔피언으로 맹활약한 뒤 복싱으로 전향해 낙무아이 출신 복서들 대부분이 그랬듯 데뷔전부터 세계랭커 바하르 우딘을 상대할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5연속 KO승을 거두며 장래를 촉망 받았다.

무에타이 출신답게 기본적으로 밸런스가 뛰어나고 경량급치곤 라이트펀치의 위력이 대단했다.
마칼로스와의 재전에서 7R TKO승으로 승리해 논란을 잠재운 뒤 2번의 방어전 횟수를 더했다.

유명우 세계타이틀전 화보

<WBA>챔피언 <유명우>는 이 체급에서 무려 17차례나 연속해서 방어전에 성공한 최다방어기록 보유자로서 데뷔초에는 그저 부지런하고 성실한 복서로 만족했지만 세계챔피언에 올라 방어전을 거듭할수록 강철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디펜스와 부드러운 공수전환을 통해 당시 이 클래스에서 제법 한다하는 중남미의 호세 데 헤수스, 마리오 데 마르코, 베네딕토 무리요, 로돌포 블랑코, 레오 가메스 등을 소나기펀치를 앞세워 차례로 무너뜨리고 초특급챔피언으로 발돋움했다.

9차 방어전 이후 쉬어가는 경기가 많아 후기 방어전의 순도는 낮아졌지만 한층 원숙해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장기집권 체제를 굳건히 지켰다.
재임시절 동국의 라이벌이자 숙명적 관계인 WBC챔피언 장정구와의 ‘꿈의 대결’은 개런티 문제 외에도 프로모터권과 중계권 문제 등으로 끝내 성사되지 않았지만 유명우는 장정구와 함께 이 체급 역대 넘버원을 다투는 우리나라의 보물이었다.

챔피언 초기시절에는 뛰어난 스태미너를 바탕에 둔 적극적인 파이팅으로 경기를 주도했고 점차 경험과 관록이 쌓이면서 상대에 따라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을 적절히 구사했으며 후기에는 완성된 기술을 바탕으로 노련미에 의존하는 복싱을 펼쳐
장기집권 챔피언으로서의 싸이클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39전을 치루는 동안 다운은 커녕 그로기에 몰린 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던 그의 복싱실력은 안정된 체력과 완성된 기술로 만들어진 달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헤르만 토레스 Vs. 이열우

장정구가 <WBC>타이틀을 반납하자 그동안 사파타와 장정구의 벽을 넘지 못해 한계를 느껴야만 했던 멕시코의 <헤르만 토레스>가 세계도전 다섯번째만에 눈물의 챔피언벨트를 거머쥐었다.

일찍이 자국의 실력자 쿠요 에르난데스의 수하에서 실력을 키워 온 토레스는 강력한 펀치력의 하드히터로서 이미 70년대말부터 WBA챔피언 구시켄의 왕좌를 위협할만큼 강호로 부각됐었다.
그러나 첫 세계 도전에서 사파타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대차의 판정패를 당한 뒤 일본의 가네히라에게 이적해 장정구를 겨냥했지만 번번히 변칙 복싱에 말려 들어 3차례나 패퇴했다.

32살의 노장으로 여전히 녹슬지 않은 파워를 자랑했지만 겨우 첫 방어전에서 10살 연하의 도전자인 <이열우>의 힘과 패기에 밀리면서 9R에 레퍼리스톱을 당해 단명했다.

전 챔피언 아마도 우르수와를 KO시키고 우리나라에서 포스트 장정구로 각광받으며 성장한 이열우는 물러서지 않는 부지런한 공격력이 장점인 반면 뚜렷한 컬러가 없어 선배만큼 강한 이미지를 쌓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첫 방어전에서 만난 멕시코의 하드펀처 <움베르토 곤살레스>의 강타 앞에 홈링에서 간신히 KO패를 면한채 백일천하에 그쳤다.

23연승(20KO) 가도를 달리며 이미 양대기구 톱콘텐더에 올라 당시 최강의 도전자로 손꼽혔던 곤살레스는 양대기구 모두 지명도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WBA의 롱런챔피언 유명우를 피해 이제 막 챔피언에 오른 WBC의 이열우를 택하는 실리를 택했다.

움베르토 곤살레스 Vs. 롤랜도 파스쿠아

딱 벌어진 체구에 흔들림 없는 냉정한 경기운영으로 신인답지 않았던 곤살레스는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뛰어나고 주먹의 파괴력이 수준급인데다가 매섭게 파고드는 인파이팅과 찬스시 터져나오는 묵직한 연타가 매우 위력적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고토회복을 선언한 이 체급의 올타임 넘버원 장정구를 특유의 어퍼컷공격으로 그로기에 빠뜨리며 대차의 판정승으로 제압한 뒤 한달 간격으로 링에 올라 4연속 KO방어를 기록해 1990년대를 이끌어 갈 뉴페이스로서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6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 도밍고 소사의 핀치히터로 출전한 필리핀의 사우스포 <롤란도 파스쿠아>에게 4R에 버팅으로 눈위를 찟기면서 유혈이 낭자한 채 뜻밖의 고전을 펼치더니 충격적인 6R KO패를 당해 첫번째 검은별을 달며 1차집권기를 마감했다.
베일에 싸인 도전자였던 장신의 파스쿠아는 특출나게 뛰어난 기술은 없지만 기본기가 충실하고 발동이 걸리면 쉴새없이 퍼붓는 소나기펀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챔피언에 오르기전까지 뚜렷한 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잘 잡은 행운의 복서였고, 역시나 행운은 오래갈 수 없었다.
국제 경기경험이 많지 않아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멕시코의 <멜초 콥 카스트로>에게 명치를 강타당해 생애 첫 KO패를 기록한 채 70여일만에 사라졌다.

자국 선수들을 상대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전적을 쌓으며, WBC지역타이틀을 차지했던 카스트로는 153cm의 단신이지만 예리한 펀치력으로 보디공격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첫 방어전에서 돌아온 강타자 <움베르토 곤살레스>와 좋은 시합을 펼쳤지만 상대의 체력을 앞세운 강타에 열세를 보이는 바람에 재임기간이 짧았다.
이로써 WBC타이틀은 원주인이었던 곤살레스의 실수로 1년새 4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8년 등장한 제4의 기구 <WBO>도 WBA챔피언 유명우의 벽을 넘지 못해 무관으로 남아 있던 푸에르토리코의 <호세 데 헤수스>를 초대챔피언으로 인정하며 염원하던 세계챔피언 벨트를 선사했다.
결정전에서 멕시코의 무명인 페르난도 마르티네스를 상대해 손쉽게 왕좌에 오른 헤수스는 해머같은 펀치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완벽한 디펜스를 통해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이 침착하게 상대를 부수어가는 선천적인 파이터였지만 유명우에게 분패한 뒤로는 경기의 기복이 심해졌고 파괴력도 떨어져 갔다.

장정구를 다운시켰던 멕시코의 강타자 이시드로 페레스를 맞아 퍼펙트한 판정승을 거둔 뒤 적지에서 벌인 2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해 챔피언으로서 안정감을 주었지만 IBF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양대기구 세계챔피언에 비해 격이 낮을 수 밖에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유명우와 움베르토 곤살레스의 투톱체제가 건재한 가운데 <IBF>타이틀은 미국발 슈퍼스타 <마이클 카바할>이 챔피언 무앙차이 키티카셈을 제물삼아 왕좌에 오르면서 모처럼 본고장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아마추어 시절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하여 라이트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카바할은 이듬해 세계 최초의 4체급 석권을 호언하며 봅 애럼과 계약해 미국의 경량급복서로는 이례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속에 프로무대로 전향했다.

이후 스타메이킹을 통해 위험부담이 큰 양대기구 투톱을 피해 제3의 세계타이틀 홀더로 등장했고, 동시에 이 체급은 흥행메이커 카바할을 중심으로 통합전에 대한 열기가 후끈 달아 올랐다.
처음에는 WBO챔피언 호세 데 헤수스와의 통합전이 고개를 들었지만 당시로서는 마이너기구 챔피언에 불과했던 헤수스와의 매치가 흥행면에서 취약하다고 보아 몇차례 연기 끝에 무산됐고, 서로 간에 의사를 타진했던 유명우와의 통합전도 대전료문제로 결국 불발되어 복싱팬들의 애간장만 태웠다.

이 사이 헤수스는 1년반 동안 방어전도 갖지 않고 오매불망 카바할전만을 기다리다가 WBO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해프닝을 겪었고, WBA챔피언 유명우도 안방챔피언의 불명예를 씻고자 원정길에 나선 18차방어전에서 홈링의 어드밴티지를 안고 싸운 이오카 히로키에게 허를 찔려 타이틀을 상실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바할과 곤살레스간의 통합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움베르토 곤살레스 Vs. 마이클 카바할(제1전)

어느덧 6차방어에 성공하며 세계타이틀전을 충분히 경험한 카바할은 <WBC>챔피언 곤살레스와의 통합전을 추진했고, 1993년 3월 13일 이 체급 사상 최초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WBC IBF 통합타이틀전이 개최되었다.
‘경량급 세기의 대결’로 불리워진 이 경기는 통산 9차 방어에 성공하며 노련미까지 겸비한 곤살레스가 초반부터 수많은 강펀치를 휘두르며 카바할을 두 번이나 다운시켜 일방통행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카바할은 역시 잠재력이 풍부한 스타였다.
일방적으로 몰리던 7R 종반에 일대 난타전을 벌이던 순간 가공할 위력의 레프트훅이 곤살레스의 턱에 불을 뿜자 곤살레스가 앞으로 쓰러졌고 경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로써 미국의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경기에 선정될 만큼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을 연출해 낸 <마이클 카바할>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정한 세계챔피언으로 공인받게 되었다.
카바할의 복싱은 공수의 균형이 확실히 잡혀 있어 스타일이 안정적이며, 눈이 좋고 펀치에 스피드가 있어 적중률은 물론 파괴력이 높다.
또한 좌우펀치를 순발력있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므로 특별한 주무기는 없으나 비교적 라이트스트레이트가 빠르고 정확하다.
다만 스텝이 거의 없는 무에타이 스타일의 스탠딩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하고, 공격패턴이 뻣뻣한 편이라 경기 복싱 경험이 많은 노련한 상대에게는 고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단점이었다.

유명우 Vs 이오카 히로키(제1전)

유명우의 6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WBC 스트로급 챔피언에 이어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라 2체급을 석권한 <이오카 히로키>는 절대로 유명우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챔피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치밀한 작전으로 맞서 연타가 주무기인 유명우를 끊임없는 선제 잽으로 견제하고 접근시 클린치 작전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뒤 장기인 원투스트레이트를 지속적으로 안면에 던져 포인트면에서 유리한 경기를 이끌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가볍게 뛰어넘은 이오카는 11개월만에 같은 장소에서 유명우와 다시 한번 조우했다.

이번에는 이오카의 작전을 간파한 관록의 <유명우>가 1R부터 끊임없이 이오카를 밀어 붙여 발을 묶고 중반 이후 불꽃같은 연타를 폭발시키며 완승을 거두어 타이틀 탈환에 성공했다.
유명우의 왕좌 복귀에 따라 WBC IBF 통합챔피언 카바할과의 3대기구 통합전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1패를 안은 유명우의 몸값이 떨어진 가운데 양자가 모두 서로에게 부담을 느껴 끝내 성사되지 못했고, 경량급에서 전인미답의 최다방어기록을 세운 유명우는 1차방어 후 가족들의 권유에 따라 명예롭게 타이틀을 반납하며 글러브를 벗었다.

유명우의 후계자리는 3년전 그의 높은 벽에 두차례나 울어야 했던 전 WBA 미니멈급 챔피언 <레오 가메스>가 한수 아래의 야히로 시로를 9R에 KO시키며 차지했고, 이후 WBA 타이틀은 동양과 중남미, 그리고 유럽까지 돌고 돌아 많은 챔피언을 양산한 채 뚜렷한 강자를 내세우지 못했다.

마이클 카바할 Vs. 움베르토 곤살레스(제2전)

한편, <WBC> <IBF> 통합챔피언인 카바할은 이미 곤살레스에게 패전을 기록한 바 있는 김광선과 도밍고 소사를 제물로 통산 9차방어에 성공한 뒤 11개월만에 곤살레스와의 리매치에 나섰다.
이 체급 역사상 초유의 밀리언달러 챔피언의 반열에 오른 카바할은 권토중래를 다짐한 <움베르토 곤살레스>에게 전체적으로 열세를 보이며 2-1의 판정패를 당해 생애 첫 검은별을 달게 되었고, 곤살레스는 이 체급에서는 처음으로 3번이나 챔피언에 등극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초대챔피언 헤수스를 몰아낸 <WBO>는 대다수 랭커들의 외면속에 전혀 알려진 바 없는 푸에르토리코 내셔널챔피언 <호수에 카마초>와 멕시코의 로컬복서 에디 발레요 간의 결정전을 갖게 해 6R KO승을 거둔 카마초를 두번째 챔피언으로 올려 놓았다.

카마초는 첫 방어전에서 WBO 미니멈급 타이틀을 버리고 월장한 폴 웨어를 적지에서 가볍게 제압해 녹록치 않은 솜씨를 보였지만 5개월 뒤 곤살레스와의 러버매치를 앞둔 <마이클 카바할>을 대적해 월드클래스의 기량만 감상한 채 타이틀을 내주었다.

카바할과 곤살레스 간의 러버매치는 곤살레스의 홈링인 멕시코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는 WBO가 지명방어전 지시를 무시한 카바할의 타이틀을 박탈해 버리는 바람에 WBC와 IBF만 인정해 아쉬움을 주었다.
경기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양선수가 시종일관 몸을 사리며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한수 위의 곤살레스가 홈어드밴티지를 안고 무난하게 판정승을 거두어 1990년대 전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둘 간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레오 가메스 Vs 최희용

WBC와 IBF가 곤살레스와 카바할의 전쟁으로 팬들의 이목을 모은 동안 2관왕에 오른 <WBA>챔피언 가메스는 지명도전자인 후안 토레스와 나중에 챔피언에 오르는 피치트 초 시리와트를 모두 KO로 잠재우고 여전히 하드펀처로써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의 악연을 끊지 못해 4차방어전에서 2체급 석권에 나선 홈링의 <최희용>에게 힘 한번 못쓰고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채 심판전원일치의 판정패를 당했다.

가메스와 마찬가지로 미니멈급에 이어 주니어플라이급에서 투타임 세계챔피언에 오른 최희용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포인트 위주의 시합을 펼쳤던 미니멈급 시절과 달리 이 체급에서는 탄탄한 기본기에 스피드와 파워가 결합된 완성된 복싱을 보여 주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게이지를 상대해 홈텃세에도 불구하고 월등한 기량차이를 보여주며 완벽히 승리했지만 미국에서 파나마의 강타자 <카를로스 무리요>를 만나 무리요측의 농간으로 시차적응에 실패하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중반이후 추월당해 벨트를 풀었다.
미니멈급 시절 WBA챔피언 차나 포파오인의 벽에 막힌 바 있는 무리요는 파괴력이 높은 펀치력을 갖고 있지만 상대에 따라 아웃복싱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았다.

적지에서 벌인 <야마구치 게이지>와의 2차방어전에서 의외로 상대의 인-아웃복싱에 흔들리며 판정패했다.
나심 하메드를 숭배했던 사우스포의 야마구치는 요란한 몸동작과 더불어 엉성한 자세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장신으로 아웃복서로서 스태미너가 좋은 편이라 장기전에 능했다.
홈링에서 숙적 무리요를 한번 더 제압한 뒤 태국의 <피치트 초 시리와트>를 불러들여 쉬어가려 했으나 오히려 2R 시작하자마자 상대의 돌발적인 좌우훅에 안면을 강타당해 그대로 넉아웃됐다.
이렇게 WBA 타이틀은 3년새 5번이나 주인이 바뀌며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제이콥 마틀라라 Vs. 루이스 도리아

카바할의 타이틀 박탈로 더욱 더 변방으로 치부된 <WBO>쪽은 전임 카마초에게 완패했던 영국의 <폴 웨어>가 1994년 11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폴 올덴을 꺽고 WBO에서만 미니멈급에 이어 2체급 석권의 호사를 누리며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일찍부터 아마추어에 입문해 1989년부터 3년간 자국을 대표해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한 바 있으나 잔잔한 복싱스타일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두 번째 방어전에서 WBO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내고 아랫체급으로 내려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장 <제이콥 마틀라라>를 만나 5R에 버팅을 당해 그때까지의 채점결과에 따라 부상판정패해 1년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1995년 어느새 프로경력 10년을 넘긴 <WBC> <IBF> 통합챔피언 <움베르토 곤살레스>는 여전히 데뷔초와 같은 힘차고 강력한 싸움닭기질을 발휘해 통산 12차방어에 성공하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 체급 최강의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화끈한 복싱컬러는 나이가 들수록 단점으로 변해 공격시 과욕때문에 밸런스가 무너지거나 가드가 허술해지는 일이 잦았고 결국 태국에서 날아온 자객 <사만 소르자투롱>의 예리한 칼끝에 유혈이 낭자한 채 역전TKO패를 당했다.

2R에 선제다운을 빼앗기고도 5R와 6R에 소르자투롱에게 일방적인 뭇매를 가해 두차례나 다운시킨 곤살레스였지만 7R들어 사력을 다한 일대 난타전을 전개하던 중 소르자투롱의 강력한 오른손 휘어치기를 턱에 허용해 크게 엉덩방아를 찧은 뒤 다시 일어나 상대의 폭풍같은 연타세례속에 비참하게 허물어져 갈뿐이었다.

 

이날의 경기는 카바할과의 1차전에 이어 또 다시 미국의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경기에 선정되었는데 두 경기 모두 곤살레스가 훌륭한 조연을 맡았다.

적지나 다름없는 미국에서 장쾌한 승리를 일구어낸 소르자루롱은 이 체급의 1990년대 후반기를 확실하게 장악한 명복서로서 초년병시절 WBC 스트로급 챔피언 리카르도 로페스에게 2RTKO패를 당해 주춤거렸지만 기본적으로 레프트 리드펀치가 좋고 신비로운 라이트훅의 위력은 상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접근전에 능하고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변화무쌍한 연타는 그 위력을 배가시켰다.

 

첫 번째 통합타이틀 방어 후 거추장스러운 IBF 타이틀을 내던지고 WBC 타이틀을 9차례 방어해 통산 10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주로 안방에서 2, 3류의 도전자를 상대했기 때문에 방어전의 순도는 낮았지만 8번을 KO승으로 장식해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소르자투롱의 4년 독주에 제동을 걸고 나선 도전자는 다름아닌 우리나라의 <최요삼>이었다.

뉴밀레니엄을 2달여 앞둔 1999년 10월 17일 소르자투롱을 서울로 불러들인 최요삼은 챔피언의 큰 펀치를 피해 잽과 스트레이트로 기선을 잡고, 빠른 발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상대를 몰아붙여 홈링에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렀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버팅과 클린치도 한 몫했지만 과거의 위용이 사라진 소르자투롱이 한창 물이 오른 최요삼을 상대하기에는 아무래도 버거워 보였다.

 

프로데뷔후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레프트의 활용이 뛰어난 복서파이터스타일로 적지에서 OPBF챔피언에 오른 뒤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톱콘텐더의 자리를 꿰찼다.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뒤부터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져 소르자투롱과의 리매치에서 마음껏 상대를 유린한 끝에 7RKO승을 거두는 등 인파이팅을 즐겼지만 상대적으로 디펜스가 부실해져 롱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4차방어전에서 곤살레스의 뒤를 이어 등장한 멕시코의 하드히터 <호르헤 아르세>의 강타에 일찍 주저 앉고 말았다.

<WBA>왕좌에 <피치트 초 시리와트>가 등극하면서 WBC의 소르자투롱과 함께 3년 이상 이 체급의 양대기구를 석권하게 되는 태국은 대략 이때부터 신흥 복싱강국을 넘어 아사아복싱 최강국으로 떠오르며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는다.

 

준수한 마스크에 사우스포이면서도 매서운 펀치를 갖고 있어 무에타이 선수시절부터 여성팬들이 많았던 시리와트는 IBF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피치트 시트방프라찬과 형제복서로서 너무 일찍 세계도전에 나섰다가 경험부족으로 레오 가메스에게 6RKO패했으나 이후 PABA챔피언에 올라 경험을 쌓은 뒤 재수 끝에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5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면서 나름대로 왕자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나 2000년 들어 톱랭커인 로센도 알바레스와의 지명방어전을 자꾸만 회피하자 WBA가 가차없이 타이틀을 박탈해 버렸다.

나중에 입장이 바뀌어 챔피언에 오른 알바레스에게 도전했지만 전성기를 지나치며 무너져 내려 다시는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잊혀졌다.

 

시리와트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됐던 알바레스는 결정전에서 콜롬비아의 강타자 <베이비스 멘도사>를 만나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지나친 로우블로우 반칙을 범하는 바람에 7R에 실격패를 당해 잠시 돌아가야만 했다.

스피드와 연타가 뛰어난데다가 일발파워도 겸비해 경량급선수치고는 초반KO승이 많았던 멘도사였지만 7개월 뒤 감정을 다스리고 돌아온 <로센도 알바레스>의 묵직한 공세에 밀려 타이틀을 내주었다.

미니멈급 시절 미스터 퍼펙트 리카르도 로페스의 연승가도에 제동을 걸 만큼 수준높은 강타자였던 알바레스도 이로써 2관왕에 오르며 이 체급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소르자투롱이 내던진 <IBF>타이틀은 <마이클 카바할>의 차지가 되었는데 결정전에서 전 WBC 챔피언 멜초 콥 카스트로를 누르고 투타임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이미 해는 기울어 펀치력외에 남은 것이 없었던 카바할은 3차방어전에서 무브먼트가 좋은 콜롬비아의 신예 <마우리시오 파스트라나>에게 석패해 단명했다.

 

165cm에 다부진 체격을 소유한 파스트라나는 몸놀림이 좋고 타격전에도 능한 전천후 파이터로서 장래가 기대되었는데 6개월 뒤 양대 메이저기구 타이틀에 눈길을 보내며 돌연 타이틀을 반납해버려 의구심을 샀다.

이에 따라 IBF는 태국과 함께 아시아의 최대협력국이었던 인도네시아의 풋내기 아니스 로가의 대관식을 위해 이미 두차례나 세계도전에 실패한 퇴물 마누엘 에레라를 자카르타로 불러 들여 결정전을 치루게 했다.

하지만 9R에 뜻하지 않은 로가의 부상으로 경기를 중단하고 그때까지의 채점결과를 확인했는데 공교롭게도 3심이 모두 동점을 채점하는 바람에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이후 로가의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IBF는 <마우리시오 파스트라나>를 계속 챔피언으로 인정하는 촌극을 벌였고, 파스트라나는 결정전에 나섰던 에레라와 로가를 상대로 모두 초반 KO승을 거두고 방어에 성공해 챔피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전 WBA챔피언 카를로스 무리요와의 세 번째 방어전을 앞두고 한계체중 초과로 타이틀을 박탈당해 이 체급에서의 인연은 그리 좋지 못했다.

 

5년여간 IBF 미니플라이급을 통치했던 라타나폴 소 보라핀을 제압하고 새 챔피언에 오른 미국의 <윌 그릭스비>는 카바할의 프로데뷔전 상대로서 강철같은 체구에 밸런스가 좋고 비교적 펀치력도 있는 편이었지만 2차방어전에서 당대의 스트로급 최고의 복서 <리카르도 로페스>에게 2관왕을 헌사하며 물러났다.

 

양대 메이저기구를 피해 IBF에서 거둔 2관왕이라 다소 빛은 바랬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화력을 선보이며 2차방어에 성공한 뒤 2002년 11월경 무패인 채로 링을 떠났다.

한편, <WBO>의 5번째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린 <제이콥 마틀라라>는 15년간 50전이 넘는 캐리어를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 150cm도 안되는 단신이었지만 펀치력도 있고 집요한 접근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줄 아는 선수였다.

 

전챔피언 웨어와의 재전에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공략해 10RTKO승을 거두었고, 2차방어를 마친 뒤 네임밸류가 높은 카바할과의 대전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해버려 과잉공급된 세계챔피언벨트의 가치하락을 부채질했다.

마틀라라가 반납한 타이틀은 이 체급에서 NABF타이틀을 주고 받던 <헤수스 총>과 에릭 그리핀이 맞붙어 총이 2R만에 그리핀을 요절내고 새 챔피언에 올랐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워 전적은 볼품이 없었지만 파괴력 높은 펀치를 보유한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부족한 세기탓에 아쉽게도 첫 방어전에서 노련한 전 WBC 챔피언 <멜초 콥 카스트로>에게 타이틀을 넘겼고, 카스트로 역시 적지에서 벌인 첫 방어전에서 아르헨티나의 <후안 도밍고 코르도바>에게 타이틀을 넘겼다.

 

곤살레스가 두 번째 챔피언시절을 향유하던 1994년 9월 도전하여 선전을 펼치다가 한방에 날아갔던 코르도바는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올려 WBC 타이틀에도 도전했지만 망신만 당한 채 원래 체급으로 돌아와서야 챔피언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었다.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신예 <호르헤 아르세>를 만나 소중한 챔피언벨트를 풀어야 했다.

동생 프란시스코와 형제복서인 아르세는 아마추어출신으로 1996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자 프로에 전향해 초창기에 엄청난 파워히터로서의 자질을 보이며 승승장구했으나 빠른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덜 여문 탓에 2차방어전에서 이미 전성기를 지난 <마이클 카바할>에게 역전KO패를 당해 일찌감치 쓴잔을 경험했다.

 

IBF타이틀을 잃은 뒤 정체불명의 신설기구인 IBA를 떠돌다가 마틀라라에게 마저 9RTKO로 무릎을 끓어 황혼녁에 접어든 줄 알았으나 은퇴를 앞둔 호세 데 헤수스를 꺽고 18개월만에 복귀해 아르세와 경기를 통해 미국의 링지로부터 1999년 최고의 컴백복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해 챔피언에 오른지 한달만에 은퇴를 선언하고 링을 떠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WBA와 WBC가 두명의 타이(Thai)전사를 통해 안정감을 준 반면 IBF와 WBO는 양대 메이저기구에서 밀려난 과거의 1류와 현재의 2류가 혼전 양상을 보이며 활발한 챔피언 교대극을 펼쳐 보였다.

 

잠정챔피언으로서 적지에서 정규챔피언인 최요삼을 꺽고 <WBC>챔피언에 등극한 <호르헤 아르세>는 WBO챔피언 시절과 달리 비교적 롱런하며 2000년대 들어 최강의 포스를 갖춘 챔피언으로 각인되었다.

비록 도전자의 수준은 낮았지만 캐리어가 쌓이면서 경기를 장악하는 힘과 함께 여전히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며 7차례의 방어전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체중고에 따라 다체급 석권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타이틀 반납 후 플라이급으로 무대를 옮겼다.

공석이 된 왕좌는 오랫동안 WBC 지역타이틀을 지켜온 멕시코의 <에릭 오르티스>가 전 WBC 스트로급 챔피언인 동국의 호세 안토니오 아기레에게 예상밖의 선전을 펼치며 7RTKO로 승리해 등극했다.

그러나 6개월 뒤 벌인 첫 방어전에서 하와이태생인 <브라이언 빌로리아>의 전광석화같은 라이트크로스카운터에 1R만에 나가 떨어졌다.

 

필리핀 국적도 갖고 있는 빌로리아는 아마추어시절부터 미국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할만큼 유명세를 탔고, 프로전향 후 탄탄한 체구에 기민한 움직임과 정교한 타격으로 연승가도를 질주해 일찍이 내일의 챔피언으로 지목돼 왔다.

롱런의 예상을 깨고 2차방어전에서 당시 국제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오마르 니노 로메로>의 부지런한 공격에 시달리며 완패해 왕좌 재위는 짧았다.

 

이변의 주인공이 된 멕시코의 로메로는 데뷔 초 아르세를 넉아웃시킨 적도 있었지만 고비가 된 경기마다 패전을 당해 로컬복서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전WBA 미니멈급 투타임챔피언 노엘 아람블렛을 꺽으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세계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석달 뒤 갖은 빌로리아와의 리매치에서 다운을 당하고도 무승부를 기록해 세이브하는 듯 했지만 경기 후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미니멈급에 이어 2관왕에 올라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WBA>챔피언 <로센도 알바레스>는 왕성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입장이 바뀐 전 챔피언 시리와트를 곤죽으로 만들고 베이비스 멘도사와의 세 번째 대결에서는 부상을 딛고 여전히 한수 위임을 입증해 미국의 링지로부터 이 체급의 리니얼챔피언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통합전에 나서 먼저 IBF 챔피언인 호세 빅토르 부르고스와 양 기구의 타이틀을 걸고 일합을 겨뤘지만 부르고스의 선전으로 무승부를 기록해 WBC 챔피언 아르세와의 통합전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열달 후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숙적 멘도사와 네 번째 대결에 나섰다가 체중을 맞추지 못해 경기전 타이틀을 박탈당한 채 간신히 판정승을 거두어 상처뿐인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알바레스의 후임은 파나마의 레전드 에우세비오 페드로사가 지도한 신성 <로베르토 바스케스>가 홈링에서 베테랑인 멘도사를 10RKO로 때려 눕히고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혈기왕성한 스물둘의 나이였던 바스케스는 거미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한번 걸려든 상대는 쉽게 놓아주는 법이 없었으며 강렬한 펀치력과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우스포로서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래체급에서 챔피언을 지냈던 도전자들을 상대로 세차례 방어에 성공한 뒤 플라이급 타이틀을 노리며 월장했다.

이로 인해 비어 버린 왕좌에는 11전의 약관 <가메다 고키>가 자국민의 엄청난 관심속에 10년만에 조국 일본에 챔피언벨트를 선사하며 등극했다.

 

미니멈급 톱랭커 후안 란다에타와 벌인 결정전에서는 다운까지 빼앗기며 졸전을 벌인 끝에 홈텃세로 승리를 따내 빛이 바랬고, 넉달 뒤 벌인 리매치에서는 란다에타의 강펀치를 효과적으로 제어한 뒤 러싱파이팅을 펼쳐 비로소 챔피언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 최고의 인기복서인 가메다 3형제 중 장남인 고키는 장신의 사우스포로서 승부욕이 강하고 머리까지 들이대는 접근전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는데 공수가 단조로운 편이고 거친 매너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다.

 

다체급 석권을 위해 역시 플라이급으로 월장해버려 이 체급에서의 재임기간은 5개월에 불과했다.

마이클 카바할의 은퇴로 역시 왕좌가 비어 버린 <WBO>는 카바할을 꺽고 정체불명의 IBA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전 챔피언 제이콥 마틀라라에게 복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결정전에서 마틀라라가 뜻밖에도 동국의 후배 <마시블레레 마케풀라>에게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머쓱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추어시절 아프리카챔피언으로서 애틀란타올림픽에도 출전했던 마케풀라는 프로에 전향해서도 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아래체급의 전 챔피언을 둘이나 해치우면서 미래를 담보했던 슬러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난립했던 마이너기구중 하나인 WBU챔피언으로서의 인연을 끊지 못해 WBO타이틀은 5개월만에 박탈당했고, 체급을 올린 뒤에도 IBO라는 기구를 배회하다가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마케풀라의 후임은 푸에르토리코의 넬슨 디에파에게 판정승을 거둔 전 IBF챔피언 윌 그릭스비로 결정되었으나 경기 후 그릭스비에게 코카인 양성반응이 나타남에 따라 경기결과는 무판정으로 바뀌었고 결정전도 다시 치를 수밖에 없었다.

 

랭킹에서 그릭스비가 추방되고 디에파가 하락하면서 결정전은 모처럼 아시아선수들끼리 치렀는데 필리핀의 앤디 타바나스와 화란 루크밍콴이 공교롭게도 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WBO 타이틀은 1년 가까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결국, 세 번째 결정전을 통해 <넬슨 디에파>가 타바나스를 11RKO로 제압하여 새 챔피언에 올랐다.

아마추어에서 오래 활동하다가 다소 늦게 프로에 진출한 디에파는 스피드는 떨어지나 접근전에 강한 편이었는데 챔피언에 오른 뒤 잦은 부상과 트레이너였던 펠릭스 트리니다드 시니어와의 불화로 3년간 2번밖에 방어전을 갖지 못해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온 2004년부터 실력을 발휘해 울리세스 솔리스와 알렉스 산체스 등을 연파하며 WBO챔피언으로서는 처음으로 5차방어에 성공해 늦게나마 롱런의 기틀을 마련하는 듯 했으나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탓에 젊음을 앞세운 멕시코의 톱콘텐더 <우고 카사레스>에게 10R부상판정패를 당해 야인으로 전락했다.

 

사우스포로서 펀치력이 일정수준 이상이고 롱과 쇼트를 구분해서 사용할 줄 아는 꽤나 영리한 선수였던 카사레스는 챔피언에 올라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5명의 도전자를 모조리 KO로 끝내버려 돋보이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미니플라이급에서 12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하고 올라온 <이반 칼데론>의 탁월한 무브먼트와 테크닉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한 차례 다운을 탈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부족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리카르도 로페스의 은퇴로 1년이 넘게 공석으로 있던 <IBF>왕좌는 WBO 미니플라이급 챔피언 출신의 톱콘텐더 알렉스 산체스의 등극이 유력했지만 잡초같은 근성을 가진 멕시코의 <호세 빅토르 부르고스>가 예상을 뒤엎고 산체스를 12RTKO로 무너뜨려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1993년 프로데뷔 후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으나 내셔널챔피언에 오른 뒤부터 강자들과 글러브를 섞어 승패를 주고 받으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단신이지만 인-아웃 스텝전환이 빠르고 위빙이나 더킹에도 능한 편이어서 상대에게 타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동시대의 이 체급 최강이었던 알바레스의 타이틀 흡수 야욕을 무승부로 저지하고, 아래체급에서 챔피언을 지낸 화란 루크밍콴에게 멋진 역전KO승을 끌어내 대기만성으로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1년의 공백 끝에 갑자기 성사된 전 챔피언 <윌 그릭스비>와의 세 번째 방어전에서는 컨디션 난조탓에 완패하고 말았다.

무려 5년7개월만에 왕좌에 복귀한 그릭스비는 당시 35살로 17년째 링에 오른 베테랑이었지만 경기출전횟수는 터무니없이 적어 부르고스와의 일전이 22전째에 불과했다.

 

초기와 달리 흑인 특유의 유연함과 빈곳을 찌르는 리드 잽으로 지키는 복싱에 의존해 첫 방어전에서 다혈질의 멕시칸 <울리세스 솔리스>에게 타이틀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2000년대 들어서면서 4대기구 챔피언 중 WBC챔피언 호르헤 아르세 외에 확고부동한 강자를 찾기 어려웠던 이 체급은 당시의 다른 체급에 비해 유독 판도 변화가 심해 점점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수많은 챔피언결정전이 양산되면서 벨트의 가치도 당연히 동반 하락할 수 밖에 없었다.

 

호르헤 아르세의 월장 이후 다소 혼란에 빠진 듯한 <WBC> 타이틀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멕시코의 <에드가 소사>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던 브라이언 빌로리아에게 좋은 승부를 펼쳐 2-0의 판정승을 거두고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데뷔초 미니멈급시절에는 미래의 톱클래스에게 연패를 당해 실망스러웠지만 한체급 올린 뒤부터 두둑한 배짱과 강인한 체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 연승가도를 달렸다.

일발파워보다는 잘 갖춰진 공・수・주의 3박자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스타일로 체력이 좋은 편이어서 장기전에도 능했다.

 

2~3개월만에 한번씩 방어전에 나서 10차례의 방어전 중 7번을 KO로 장식했고, 도전자의 수준도 결코 낮지 않았지만 홈링을 벗어난 적이 없어 재임중 다소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플라이급 전향을 앞두고 벌인 마지막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로델 마욜>에게 2R 버팅으로 관자놀이에 큰 충격을 받고 쓰러졌지만 레퍼리가 경기를 속행시켜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마욜의 노도와 같은 공격을 견디지 못해 논란이 많은 KO패를 당했다.

 

빠른 핸드스피드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KO율이 높았던 마욜은 미니멈급시절을 포함해 4차례의 세계도전에서 모두 실패했지만 행운을 동반한 승리로 기어코 세계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 챔피언 로메로의 홈링에서 벌인 첫 방어전에서 3R에 로우블로우를 맞아 레퍼리가 상대를 제지하려는 순간 무방비상태에서 로메로의 레프트훅을 턱에 맞고 의식을 잃을 정도로 실신했으나 역시 논란끝에 부상무승부로 타이틀을 방어해 행운을 이어갔다.

하지만 넉달 뒤 벌인 리매치에서 <오마르 니노 로메로>의 힘에 밀리면서 머리까지 들이대 봤지만 역부족을 실감한 채 판정패했다.

 

로메로의 두 번째 왕좌도 그리 길지 못해서 5개월만에 2차방어전에서 동국의 백전노장 <힐베르토 켑 바스>에게 초반부터 흔들리더니 두차례나 매트를 허우적거리다 물러났다.

프로데뷔 15년만에 세계왕좌에 오른 바스도 2차방어전에서 동국의 젊은 도전자 <아드리안 에르난데스>를 만나 11R부상판정패를 당해 역시 5개월만에 바톤을 넘기며 일찍 퇴장했다.

에르난데스는 비교적 장신으로 탁월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녹록치 않은 실력을 가졌지만 2차방어전에서 힘을 앞세운 태국의 낙무아이 출신 복병 <콤파약 포프라묵>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10R KO패해 WBC 왕좌는 그야말로 회전의자를 방불케할 정도로 잦은 교체를 경험했다.

 

<WBA>쪽은 연이은 챔피언결정전 퍼레이드속에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레베코>가 태국의 네스라 사시프라파를 8R KO로 눕히고 이 체급에서는 처음으로 조국에 챔피언 벨트를 바쳤다.

리드잽이 좋고 고강도의 좌우훅을 장착해 복부공격에 일가견이 있었던 레베코는 상당히 감각적인 복싱을 구사했지만 난생 처음 원정경기에 나선 2차방어전에서 프랑스의 <브라힘 아슬롬>에게 유효타에서 뒤져 판정패했다.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해 무려 64년만에 조국에 금메달을 안긴 뒤 프로로 전향한 장신의 사우스포로서 접근전을 마다않는 전투력을 통해 자국내 인기복서로서 자리매김하며 플라이급에서 유럽챔피언에 올라 승승장구하다가 두차례 세계도전에 실패한 뒤 아래체급으로 내려와 염원하던 세계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프로모팅 방송사와 대전료문제로 송사에 휘말리더니 급기야 은퇴를 선언해버려 한차례의 방어전도 갖지 않고 타이틀을 반납했다. 아슬롬의 후임은 잠정챔피언이었던 멕시코의 <지오바니 세구라>에게 그대로 승계되었다.

 

전형적인 슬러거였던 아스텍의 전사 세구라는 기본적으로 일발파워를 갖고 있는데다가 유난히 긴 리치와 스피드를 활용한 연타능력도 탁월했다.

3명의 도전자를 해치운 뒤 2010년 8월 28일 무패의 WBO챔피언 이반 칼데론과 WBA WBO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사이드스텝에 의존하는 칼데론을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8R KO로 요절내고 미국의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경기에 선정됨과 동시에 리니얼챔피언으로 인정받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플라이급 월장을 앞두고 WBA타이틀을 반납한 상태에서 WBO만 인정한 가운데 칼데론과의 리매치에 나서 이번에는 불과 3R만에 가볍게 제압해 최강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2개기구 이상 통합챔피언이 되면 슈퍼챔피언으로 승격하는 제도에 따라 잠정챔피언이었던 <후안 카를로스 레베코>가 잠시 정규챔피언으로 인정받았지만 곧 타이틀을 반납하고 플라이급으로 월장하는 바람에 레베코에 이어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니카라과의 강타자 <로만 곤살레스>가 정규챔피언을 승계하며 2체급을 석권하게 됐다. 경량급으로서는 놀라운 파괴력을 소유한 곤살레스는 미니멈급시절보다 더 인상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KO씬을 찍어내며 4차방어에 성공하고 있어 그의 괴물성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그동안 걸출한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했던 <IBF>쪽은 새 챔피언에 오른 <울리세스 솔리스>가 비교적 롱런하며 8차방어에 성공해 체면을 세웠다.

발이 빠르지는 않지만 상체의 움직임이 좋와 타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레프트잽으로 시작하는 컴비네이션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때로는 더티플레이를 서슴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전후임 챔피언들을 넷이나 불러들여 압승을 거두는 실적을 쌓았다. 3년만에 왕좌 복귀를 노리던 전 WBC챔피언 <브라이언 빌로리아>에게 적지에서 통렬한 11R KO패를 당해 벨트를 풀었다.

 

또 하나의 조국인 필리핀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빌로리아는 이번에도 두 번째 방어전에서 콜롬비아의 복병 <카를로스 타마라>의 지칠줄 모르는 공세에 접전을 펼치다가 최종회에 무수한 펀치 세례를 받고 레퍼리스톱패를 당해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펀치의 빈도가 높아 KO승을 곧잘 끌어냈던 타마라는 경량급다운 무브먼트와는 거리가 멀어 적지에서 벌인 첫 방어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라사르테>에게 첫회부터 버팅을 당해 고전을 하더니 후반을 완전히 내주며 판정패해 역시나 단명했다.

 

25살에 프로에 뛰어든 라사르테는 미니플라이급부터 플라이급을 오르내리며 여섯 번째 도전 끝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38살의 노장으로서 힘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복서였다.

2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이자 전임챔피언인 <울리세스 솔리스>에게 후반에 추격전을 벌여 무승부로 방어했으나 넉달 뒤 리매치에서는 확실한 나이차를 드러내며 타이틀을 내주었다.

 

이로써 솔리스는 투타임챔피언에 오르며 2차왕조를 활짝 열어 젖혔다. 칼데론의 타이틀을 흡수한 세구라가 플라이급으로 월장하면서 공석이 된 <WBO>타이틀은 잠정챔피언으로 있었던 콜롬비아의 <헤수스 겔레스>의 차지가 되었지만 승격한지 한달도 못돼 설욕에 나선 멕시코의 <라몬 가르시아>에게 4R KO패를 당해 챔피언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았다.

 

또한, 제법 탄탄한 체력에 파워까지 겸비해 기대를 모았던 가르시아 역시 아랫체급 타이틀을 버리고 올라온 <도니 니에테스>의 교묘한 아웃복싱에 휘말려 6개월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 체급은 1975년 신설 초기부터 루이스 에스타바, 구시켄 요코, 일라리오 사파타, 장정구와 유명우 등 릴레이처럼 이어진 명장의 배출과 존재의 가치를 한단계 올려 놓은 움베르토 곤살레스 Vs. 마이클 카바할의 통합전 등으로 인해 숱한 화제를 불러 모으며 최경량급으로서 빠르게 정착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니멈급의 지속과 세계복싱기구의 난립 등으로 선수층이 갈라지면서 복잡한 타이틀리스트만 양산할 뿐 더 이상은 명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해 이 체급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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