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로 알려져있는데, 사실 임진왜란 때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것 같거든요.
국력이란게 너무 추상적이라..
국제관계에서의 권력이라고 친다면 일본이 한국을 앞지르는건 임진왜란과 강화도 조약 사이쯤일 것 같네요.
물론 당시 국제관계는 중화질서였다는 점을 감안해야합니다.
이 경우 보통 국력이라 하고 보통 인구수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양능력=국가생산성=인구수 =국력 이런식으로 도출해서 비교한 걸겁니다.
빠르면 후기 신라 말기 즈음 늦어도 고려말 조선 초기 즈음에 일본이 앞서는 걸로 이야기 합니다.
인구 추산의 통론입니다. 여말 인구가 적게는 400에서 많게는 550만으로 추정되지만, 비슷한 시기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일본 인구는 600~700만명 이상으로 잡습니다. 전근대 일본은 중화사상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의 깡촌이지 진짜 깡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열도가 반도보다 넓고 벼농사짓기 좋으니까요.
선진 후진과 관계없이 일본이 더 크니까 인구도 많아지는 거죠.
일본이 인구 600만에 다다른 시기 - 900년(社会工学研究所), 800년(Biraben), 730년(Farris)
한국이 인구 600만에 다다른 시기 - 1412년 (인구대사전)
한국이 15세기에 가서야 만들 수 있었던 인구를 일본은 늦어도 10세기에 이미 달성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일본을 깡촌이라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대 일본도 헤이안쿄를 중심으로 신라나 백제 못지 않은 화려한 문화가 발달했고, 무엇보다 열도의 크기는 반도 의 두 배가 넘습니다;; (홋카이도까지 포함한 현대에는 3배)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6세기 말쯤 되면 쇼토쿠 태자에 의해 헌법 17조가 반포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호류지도 건립되었습니다.
적어도 6세기에서 7세기쯤 되면 일본 의 문화적 번영이 당대 한반도의 국가들보다 못하다 말하기 힘들텐데요.
왜란 끝나고 조선의 선진문화와 기술들이 일본에 전파된거 보면 뻔하죠.
문화와 예법은 그 나라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바뀌니깐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죠.
유럽에서 웃어른이 주는 물건을 양손으로 받지 않는다 고 해서 유럽이 예법 없는 지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서양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우키요에 같은거 보면 문화적으로도 깡촌...이라는 표현을 쓰긴 좀 그런 뎁쇼.
윗분들이 지적했듯이 도기 하나 가지고 그래도 한반도가 기술적으로는 더 우월했다! 하는 건 삼성이 휴대폰 하나 잘만든다고 한국이 미국보다 기술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식의 비약이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전근대 동아시아면 한중일 가릴 것 없이 농업이 국가의 중심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인구 많고 비옥한 땅 많은 지역이 장땡입니다.
지금처럼 기술력의 압도적인 격차로 자원 없는 나라가 자원 많은 나라를 따라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요.
일본 열도는 농경지도 한반도보다 넓고 화산지형이라 토지도 비옥하고 한반도보다는 열대에 조금 더 가까운 기후라 벼 키우기에 더 유리합니다.
애초에 전근대에 국력 키우기 좋은 조건을 일본이 우리보다 더 많이 갖추고 있기에 단순히 외침으로 인해 한반도 < 일본 이렇게 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서 국력 열세의 시작을 통일신라 시기까지 올라가기도 하는거죠. 원 댓글 작성자분의 주장이 아주 설득력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적어도 일본은 동서로 길게 뻗은 열도지 한반도보다 작은 나라는 아닙니다.
그 당시 국력을 비교할만한 구체적인 지표나 수치가 문명 게임처럼 나오지 않아 당장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선시대부터는 농업중심 정책으로 갔던 조선과, 전국시대로 인해 자체 영지들이 새로운 무역 상품을 개발해 무역을 하려고 했던 전국시대 일본을 보면, 한일간의 단위 생산고가 크게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건 맞는거 같습니다.
나중에 그걸 인정하게 된 건,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 시대에 조선통신사들이 직접 보고 기록한 내용에서 발전된 일본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부러워하면서 경각심을 갖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조선시대에도 단위생산고가 한일간에 큰 차이가 있었군요.
혹시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의 문화나 국력같은 것을 낮게 평가한 경우도 있을까요?
웃픈 이야기지만 그게 실제로 증명된 게 임진왜란 때죠.
그때 조선에서 성이나 도시를 하나 침략하고 점령을 하면, 자신들이 일본에서 전쟁했을 때를 기준으로 상당량의 재화나 식량들을 확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 했는데, 그 당시 조선의 도시라는게 무역 및 상업 중심지 의 도시 그런게 아니라, 농업중심 사회에서 그저 집들이 많이 모여진 형태였다는게 함정이었습니다.
결국 조선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들어와서 초창기 쾌속 진군으로 빤짝하다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조선에서 생각보다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보급 부족에 시달렸다 는게 큰 요인중 하나입니다.
더욱이 명나라 군대도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해, 초창기 식량 대신 은전을 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사 먹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에서 돈은 무용지물이라 한동안 식량보급 때문에 큰 고초를 겪게 됩니다.
명군도 어떻게 보면 자기 본국 에서 상식적으로 하던 일이 조선에서도 통용되겠지라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가 일어난 참극이기도 하지요.
반면에 문화적인 면에서는 각종 도서와 특히 도자기 도공들을 납치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일본은 당대 조선시대 수준의 도자기를 굽지 못했던 나라였습니다.
(백자 말입니다)
그래서 정유재란 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에서 쓸만한 학문적 도서나 학자, 문화적 유산이나 장인들을 많이 데려갔는데, 특히 도자기의 경우, 조선인 이삼평이 들어와 일본에 백자 만드는 기술을 도입하고, 그걸 자신들이 개척한 대외시장에서 내놓으면서 대외무역 에서 중국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게 서양에 들어가서 일본의 우키요에(풍속화 -판화)문화가 서양미술사(인상주의)에 영향을 주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조선은 자신들이 높은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무역을 잘 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내수 중심으로 도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서양과 교역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런 한편으로 동시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추구하는 미의 가치가 상당히 달랐다는 점도 중요하죠.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조선은 건국 이후 200여년간 평화롭게 유교를 근간으로 농업중심의 사회를 안정적 으로 유지해왔던 반면, 일본은 갖은 혼란기와 전국시대 를 거치면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를 고민했던 거 같습니다.
실제로 당대 서민들의 삶을 놓고 보면, 조선에서는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농민들에게 세금도 많이 걷지 않았기에 조선 농민들의 삶은 동시대 일본 농민들보다 상당히 나은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등으로 전쟁에 동원 되기도 하고 약탈을 당해 죽기도 하고 그리고 영주들은 혼란기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역을 하고 장사 를 하면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는 동시에 최대한 농민 들로부터 많은 것 - 연공(세금) 및 전쟁동원 등 - 으로 뽑아내게 됩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일본의 오사카성과 같은 화려한 건축물 및 문화를 자랑한 그 시대의 뒷편에서, 일본 서민의 삶 자체는 상당히 빡빡했습니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 상업이 발달하려면 잉여생산물이 많아야 하는데 한반도의 생산량이 동시대의 상업이 발전된 나라의 그것에 많이 못 미쳤다는 점이 참 아쉽죠.
사실 이런 경제 전체적인 문제는 정부의 정책의 방향성 만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라...쩝.
오히려 기근대비용으로 비축해둔 환곡때문에 일본군의 식량확보가 훨씬 더 확보하기 쉬웠는데요?
그리고 저 당시 일본의 상업도시라고할만한 도시는 오사카였고 그 외에는 조선과 별차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일본의 상업 발전상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의 일본을 말하시는것 같은데요?
우열 논란과 별개로 제도 문제가 있긴 했네요.
고려~조선 전기 한국과 일본 경우 똑같이 100만대군이 있다고 해도 중앙에서 동원가능한 병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인구수만으로 우열을 정하기 도 힘든게 당장에 한국사 내에서 고려와 조선 동원 병력 차이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제대로 파고 들고 조건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판정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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