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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와 현실의 차이

by Ajan Master_Choi 2017. 9. 4.

한 때 어려서 항상 북한이나 소련을 말할 때는 "소위" 사회주의라고 꼭 붙였던 적이 있었다.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라 가짜 "so called" 사회주의라는 의미를 깔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나는 "현실" 사회주의라고 표현한다.

항상.

그 차이가 상당하다.

 

현실세계의 사회주의가 줄줄이 몰락해 나가던 시기, 남한의 사회주의는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그 많던 사회주의 선배들의 상당수는 북한이 왜 사회주의가 아닌지, 사회주의가 왜 몰락했는지 설명해주지 않고 무책임하게 떠나갔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에 북한의 실패는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주체교에 빠져들었다.

이제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 된다.

 

그렇게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로 가거나 (뉴라이트의 예)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무비판적 태도로 빠져들었다.

이제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읽어볼만도 하다.

 

Q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때, 어떻게 접근하는 게 필요할까요?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조선시대와 같은 왕국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북한을 이해하게 돼요. 그런 프레임으로 보면 3대 세습이나 연좌제, 모순적인 신분제, 시장화를 이해할 수 있어요. 공산주의 프레임으로 보면 너무 많은 게 모순적이라 바로 내일이라도 붕괴할 것 같지만, 봉건시대 왕국을 생각하면 지금 북한 체제가 가능한 거죠. (다니엘 튜더)

 

북한을 이해하려면 이제 "봉건"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봉건적 신분제도, 왕위의 세습 (그것도 직계 남성만 왕위 세습권이 인정되는 동양적인 세습이다), 정치체제는 중세 귀족-왕정이지만 경제체제는 오히려 고대 노예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이 전부일까?

 

그들 중의 일부는 계급이 없어졌다는 사회에서 ´지배계급´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렸으며, 국가가 없어진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힘으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들을 유린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체제´와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철학체계를 만들어왔으며(주체사상 포함), 그것들로 국가기관을 통해 ´국민´들을 길들이고 자신들의 지배를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당화시켜 왔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발적인 ´성품´을 길들이고, 통제하기 위해 계몽하며, ´비판의식´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동원하여 ´체제유지적´ 이데올로기들을 생산하고 인간을 ´계몽´하고 ´의식화´, ´조직화´ 하여 왔습니다.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했던 고결한 이념이 왜 처참한 독재로 추락했을까?

인간 해방의 꿈으로 뭉친 ‘동지들’이 왜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게 되었을까?

이념이 문제였을까?

역사적 상황이 문제였을까?

지도자의 사악함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현실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피하지 말고 파헤쳐야 할 질문이 아닐까 한다.

머리를 싸메고 한 20-30년 정도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올까?

 

물론 현대의 어떤 공산주의 옹호자들은 ‘역사상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국가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식으로 이러한 지적을 회피하기도 한다.

레닌이나 스탈린과 같은 독단적 인물의 문제로, 혹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파상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로 현실 사회주의가 보여준 전체주의적 모습을 애써 평가절하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한 한 논객의 말을 잠시 비틀어 인용하자면,

하나의 사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현실 속에서 만들어 놓은 사태이지 그 사상의 내심이 아니다.

하나의 사상이나 이념은 그 자체의 내적 정합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실과의 적합성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한 사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해 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간단히 무시하고 외면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저자는 결론에서 한 가지 딜레마를 지적한다.


“공산주의 정부들은 레닌과 스탈린이 개발한 소련식 모델을 시행할수록 점점 강력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소련식 모델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복제할 수 없었거나 복제하려 하지 않았던 국가들은 내부의 해체나 외부의 개입에 취약했다. 

 

어떤 사회도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급증을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랬을 때 더 많은 의견들이 서로 조율을 이루면서 하나의 안정된 지향점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로.

나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했던 말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성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止揚)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