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대해 그 동안 시중에 나온 책을 통해 인식되어 온 점은 매우 이성적이고, 인지적 접근이며 다소 차갑게 느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아들러는 벡의 인지행동이론이나 프랭클의 실존주의와 의미치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들러 이론에서 감정을 다루는 것은 드물었다는 부분이 다소 아쉬웠는데 이번에 감정을 다루는 책<아들러의 감정수업> (Gary D. Mckay외 1저, 김유광 역) 이 나왔네요.
알프레드 아들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세계 3대 심리학자로 1870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으로 1895년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됩니다.
1902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을 서평한 것이 계기로 프로이트의 초기 동료(프로이트 측에서는 제자라고 표현하지만 아들러와 그의 제자들은 동료라고 주장하고 있음) 중 한 사람이 되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구루병을 앓고 사고를 당해서 신체장해를 경험하고, 그 일을 계기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성 본능을 중시하는 프로이트와의 견해 차이로 1912년 빈 정신분석학회에서 탈퇴, 자유정신분석협회를 설립했는데, 아들러는 신체기관의 열등성에 흥미를 가져, 인간에게는 반드시 형태적이나 기능적으로 열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열등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관 열등성의 연구>중에서 과거의 것을 보상하려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중시했습니다.
12년 『신경질 성격에 대해서』를 발표해서 그 중에서 자신의 학설을 〈개인심리학(Individualpsychologie)〉이라고 이름짓고, 14년에는 『국제개인심리학잡지』를 창간했다.
그후, 아동상담소의 개설, 각국에서의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는데, 29년 콜롬비아대학 객원교수가 된 후, 미국에 정주해서 호나이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프로이트가 신경증의 원인으로서 성충동을 중시한 것에 대해서 성적이 아닌 요소, 즉 자아의 욕구나 성격경향이 신경증을 낳는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또한 프로이트가 과거에서 원인을 구한 것에 대해서, 인간행동의 목적성을 중시하고, 인간은 거의 실현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해서 신경증적으로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프로이트가 착수할 자아의 무의식적 작용의 연구에 빨리 착안한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신경증의 원인으로서 문화적 요인에 최초로 언급하고, 여성의 열등감이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한 점도 잊기 어렵다.
빈에서 22개의 아동 정신병원을 세웠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폐쇄 당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와 롱아일랜드대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아들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빅터 프랭클을 직접 지도했으며 미국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와 칼 로저스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개인의 위기는 개체의 결함이 아닌,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보는 아들러의 이론은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데일 카네기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 등에도 영향을 주어, 아들러는 ‘자기계발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1937년 스코틀랜드의 한 도시에서 강연을 하러 가던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저서로 <아들러의 인간이해> <삶의 과학><개인심리학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습니다.
'Jewang Muaythai GYM > 제왕회관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략과 전술 (0) | 2018.10.04 |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0) | 2018.10.03 |
주관주의 역사 & 객관주의 (0) | 2018.09.30 |
참으로 화나는 사실들 (0) | 2018.09.29 |
이승만과 이종찬 (0) | 2018.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