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는 흔히 자신이 지닌 도덕적인 권위에 힘입어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사람으로 통한다.
역사가들은 비폭력 저항을 내세운 간디가
영국이라는 거대한 식민지 권력의 무릎을 꿇게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 해방에서 간디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영국이 인도로부터 철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간디의 단식투쟁이라기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영국의 경제력 약화와
이미 193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시작된
행정권력의 자발적인 철수 때문이었다.
인도는 이미 간디가 살아 있을 때부터 비폭력주의를 버렸다.
오늘날 간디가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디를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모범”
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간디는 청소년 시기에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고 급기야는 그 섹스 탓에 1년을 유급까지 당했다.
한번은 자신의 추종자였던 독일 여성의 뺨을 때린 적도 있었다.
‘마하트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타고르도 간디를 비판했다.
인도 귀족 신분으로 태어난 간디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변호사자격을 취득했지만
추종자들이 기부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간디를 지원하는 부자들은
간디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슈람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유지비를 댔다.
“ 간디에게 청빈한 삶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나라 전체로 볼 때 어마어마한 재산이 들었다.”
간디의 후계자로서
인도국민회의를 이끈 여류 시인 나이두가 한 말이다.
간디의 제자이자 후에 인도의 첫 수상이 된 네루는
간디가 결코 열린정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고 증언한다.
오히려 간디를 마주 대하면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언제나 자신의 견해에 사로잡혀 다른 의견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인도 출신의 작가 살만로슈다는
“ 간디는 더할 나위 없이 무미건조한 사람이었고 교훈적인 설교만 일삼던 사람이었다. 이런 간디를 우상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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