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제목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헌등사란 절에 부처나 신령들을 위해 등을 달아주러 떠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책의 어느 부분에서 이 헌등사란 말이 나왔지 좀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참으로 멍청한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 뿐ㅠㅠ
책 제목의 단어가 어디서 언급됐는지조차 기억못할 정도로 이 책은 可讀性에서 만만치 않습니다.
저자 다와다 요코는 1960년생으로,
학생시절 일본을 떠나 독일에서만 산 지가 일본 거주기간을 훌쩍 뛰어넘는 일본인같은 독일인입니다.
그녀는 일본어와 독일어, 두 개의 언어로 지금까지 20여권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양국의 문학상을 휩쓸고 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쓸데없는 의심부터 드는 작가입니다.
이 책에는 헌등사란 제목의 장편소설과
끝도 없는 달리는,
불사의 섬,
피안,
동물들의 바벨
을 포함한 4편의 단편소설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각각의 소설들은 전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것들이고
맨 앞에 실린 헌등사를 읽어 갈 때도 중간까지 도대체 무슨 줄거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100세 노인인 話者, 요시로가 10살 남짓의 증손자인 무시메를 보살피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데 무시메의 신체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좀 그로테스크하다는 인상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손자가 왜 헌등사로 선택되었는지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줄거리ㅠㅠ
이렇게 나의 독서력을 자책하면서 힘들게 책을 덮었지만 옮긴이의 후기가 다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번역자 남상욱이 처음 이 책을 번역하겠다고 할 때, 일본인 지인이 곧바로
"그게 가능하냐?"
고 했다는 말.
그만큼 다와다 요코의 작품세계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겠죠.
게다가 그녀는 일본어를 破字해가며 묘한 중의적인 의미와 복선을 스토리로 이어가니 일본어나 일본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녀의 작품은 정말 힘들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책이 온갖 작품상을 휩쓰는 이유는 뭘까요?
내 생각엔 그녀가 두개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현실참여적 세계관을 날카롭게 드러내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헌등사와 그외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원자력 발전 문제에 가슴이 뜨거워졌거든요.
어쨌든 어려운 책 한 권을 힘겹게 소화했습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쓰는 언어에 대한 깊은 상념들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익숙한 사물과 현상을, 언어가 가진 기발함으로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재미였습니다.
'신생아'를 '갓 삶아낸' 것으로 표현하는 다와다 요코로부터 우리는 소설을 통해 언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뇌를 말랑말랑한 호두처럼 반죽시킬 수 있음을 확인해줍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전에는 원전 지지자였는데 어느새 원전 반대론자가 되어 있습니다.
독서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겠죠.
"책들 읽으세요~~"
※ 책에서 얻은 문장
- 뇌와 장腸은 마치 일본의 참의원과 중의원 같다.
- 책이 책꽂이를 점령해가자 벽이 중압감을 갖기
시작했다.
- 신생아는 태어났다기 보다 "막 삶아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 호밀빵은 향기가 좋지만 씹는 게 힘들다. 말린 곡물의
뾰족한 악의가 입 속의 점막을 일제이 찌른다.
- 온갖 풍습이 뒤집히기를 반복해 어른이 "이렇게 하면
옳다"고 확신을 가지고 가르칠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 눈물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안좋은 기억도 많지만
시간의 체로 걸러보면 즐거웠던 추억도 수없이 기억으로
남는다.
-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은 주제를 사람은 "자연"이라고
부른다.
- 인간들이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는 행위는 전염병과
같다. 앞 세대로 부터 계승해야 할 유산은 언어뿐이다.
- 양파는 극장이다. 극장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양파까듯이 벗겨져 이야기의 속내가 드러난다.
- 인간이 남긴 것중 가장 안전한 것은 묘비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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