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체급으로서는 사생아와도 같았던 주니어체급은 1920년 뉴욕주에서 주니어체급을 채택하기전부터 유럽에서 성행하고 있었지만 국제적으로는 1921년 1월 주니어체급을 인정하는 NBA가 설립되면서 공인되기 시작했다.
주니어체급의 첫 세계타이틀전은 당대 최고의 흥행사였던 텍스 리카드의 프로모팅을 통해 바로 이 체급에서 이루어졌는데 후일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이탈리아 출신의 <조니 던디>가 같은 해 11월 18일 미국의 조지 차니와 싸워 상대의 로우블로우에 의한 5R 실격승을 거두고 초대챔피언에 등극했다.
리카드로부터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챔피언벨트를 선사받은 던디는 이듬해 NYSAC 페더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에도 리카드의 바램대로 이 체급의 타이틀방어에 전념해 거칠고 힘있는 복싱을 펼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4차방어전에서 미국의 <잭 번스타인>에게 3R에 큰 다운을 빼앗고도 석연치 않은 15R판정패를 당해 어이없게 벨트를 잃었다.
번스타인은 비록 찝찝하게 왕좌에 오르긴 했어도 안정된 수비와 빠르고 정확한 레프트펀치를 앞세워 높은 승률을 자랑했던 수준급의 복서였다.
첫 방어전에서 <조니 던디>와 다시 맞서 7개월전과 달리 압도적으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이번에는 던디가 엉터리 판정으로 승리를 낚아채는 바람에 왕좌에서 물러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번스타인에게 패한 뒤 외젠 크리퀴를 꺽고 이미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올라 있었던 던디는 중량에 부담이 적은 이 체급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잦은 출전으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속에 미국의 복병 <스티브 키드 설리반>에게 판정패한 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승패와 관계없이 언제나 격렬한 난타전을 즐겨했던 설리반은 그만큼 승률도 낮았지만 첫 방어전에서 오랜 숙적이었던 빈센트 마틴을 제압한 데 이어 마이크 발레리노마저 5RKO로 리벤지해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6개월 뒤 갖은 <마이크 발레리노>와의 재전에서는 1R에 당한 다운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채 완패해 급락하고 말았다.
세련된 기량이나 강한 펀치력은 없었어도 불같은 투지와 집념으로 정상정복을 이뤄냈던 발레리노는 2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동국의 <토드 모건>에게는 기술적 차이를 드러내며 10RTKO로 패퇴했다.
초창기 이 체급을 인기절정으로 끌어 올린 모건은 지능적이고 빠른 템포의 복싱을 구사했는데 파워는 약했지만 상대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재주가 있어서 4년동안 이 체급 최다인 12차방어에 성공하며 장수했다.
특히 모건이 전성기를 누렸던 이 시기에는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새미 만델이 2년 가까이 방어전을 치루지 못해 라이트급의 인기는 온전히 그의 차지가 되었다.
첫 방어전에서 전임 설리반을 6R에 무너뜨린 그는 완벽한 경기 조율과 화려한 컴비네이션을 통해 이 체급의 투타임 챔피언 조니 던디마저 원사이드하게 제압하는 진가를 발휘했고 매년 서너차례의 방어에 나서며 철옹성같은 왕좌를 구축했다.
하지만 강자라고해서 항상 강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페더급 세계타이틀을 상실하고 월장한 러시아계의 <베니 바스>에게 시합전부터 언더독으로 평가되며 바스가 2RKO로 이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더니 거짓말처럼 2R에서 바스의 레프트 롱훅을 턱에 맞고 쓰러져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시합은 조작된 시합으로 의심받았고 열흘 뒤 NYSAC가 주니어체급을 폐지해버린 데 이어 1930년 1월 NBA 역시 NYSAC의 결정을 따랐다.
단신이지만 상대에 따른 움직임이 뛰어나고 타격감이 좋았던 바스는 1년 뒤 펜실바니아주 체육위원회의 인가 속에 첫 방어전에 나서 류 매세이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NBA가 인가했던 2차방어전에서는 <키드 초콜레이트>가 쏘아대는 롱펀치에 왼쪽눈자위가 커트되며 고전을 펼치다가 7R에서 치명적인 눈부상을 당해 레퍼리스톱을 당하고 말았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NYSAC 페더급 타이틀을 획득해 두체급의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던 초콜레이트는 탁월한 기교를 앞세워 세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성공했으나 1933년 12월 미국의 <프랭키 클릭>에게 초반부터 열세를 보이더니 7R에서 강력한 라이트펀치를 턱에 맞고 넉다운돼 타이틀을 잃었다.
스피드가 좋고 유난히 보디공격에 강했던 클릭은 한계체중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느끼자 미련없이 타이틀을 버리고 2체급을 월장해 주니어웰터급 세계챔피언 바니 로스에게 도전해 무승부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클릭이 타이틀을 버린 뒤 이 체급은 모건 Vs. 바스전의 승부조작설에 따른 여러 기구의 강경한 조치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세계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한 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체급은 1949년 12월 6일 클리블랜드 출신의 모험적인 프로모터 래리 앳킨스가 전 페더급 세계챔피언 <샌디 새들러>와 쿠바의 올란도 술루에타간의 타이틀전을 주선하면서 NBA의 인가 속에 오래간만에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새들러는 술루에타와 예상외의 접전을 벌인끝에 2-1의 판정승을 거두고 2관왕에 올랐지만 1950년 9월 라이벌 윌리 펩을 꺽고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복귀하면서 이 체급의 타이틀은 또 다시 소멸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의 붐이 한창 일어나던 1959년 들어 NBA가 변화된 시류를 타고 주니어체급을 재건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이 체급은 주니어웰터급과 함께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먼저 6월에 푸에르토리코의 카를로스 오르티스가 복싱의 메카인 뉴욕의 MSG에서 케니 레인을 상대로 주니어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했고, 다음달에는 미국의 <해롤드 고메스>가 자신의 고향인 로드아일랜드에서 폴 요르겐센에게 15R판정승을 거두며 역시 이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복싱을 구사했던 고메스는 허약한 맷집때문에 첫 방어전에서 필리핀의 <가브리엘 플래쉬 엘로르데>에게 여섯차례나 다운을 당하는 수모속에 7RKO로 패해 어렵사리 되살아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그러나 사우스포에서 날리는 전광석화같은 레프트펀치가 빛을 발했던 엘로르데의 등장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이 체급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파워가 그다지 돋보이는 편은 아니었지만 움직임이나 펀칭스피드가 워낙 빨랐던 엘로르데는 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페더급의 명장 새들러를 꺽고 이미 국제적인 관심을 받아 왔던 요주의 인물이었다.
첫 방어전부터 적지에 뛰어들어 전임 고메스를 80초만에 요절낸 뒤 미국에서 날아온 도전자들을 차례대로 무찌르며 용맹스런 전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NBA의 후신인 WBA에 이어 WBC로부터도 공인된 세계챔피언이면서도 동양 라이트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 번갈아 방어전을 치렀던 그는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오르티스의 아성을 넘보기도 했으나 실패한 뒤 숙적 고사카 데루오에 이어 우리나라의 서강일마저 물리치며 10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미 서강일에게 텃세판정으로 승리를 챙길만큼 몰락의 전조를 보였던 엘로르데는 오르티스에게 재차 무너진 뒤 일본의 기교파 <누마다 요시아키>에게 동양타이틀에 이어 세계챔피언 벨트까지 풀어주면서 어느덧 저무는 해가 되었다.
7년간 왕좌를 지키며 당시 자국민들로부터 대통령보다 높은 인기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국민적 영웅으로서 118전중 3분의 1이상을 일본에서 경기를 갖으며 일본의 프로복싱 발전에도 크나큰 공적을 남겼다.
일본에서 텔레비전 복싱이 활황세를 타던 1960년대 초반 TBS방송에 의해 엘리트복서로 키워져 온 누마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컴비네이션을 구사해 정밀기계라고 불렸는데 힘과 체력에서는 약점을 보여 일본 최초의 동국인 간의 세계타이틀전으로 거행된 첫 방어전에서 <고바야시 히로시>에게 12R에서 무너져 단명에 그쳤다.
일본에서 크로스카운터의 창시자로 알려진 고바야시는 연패를 딛고 왕좌에 오른 전향적인 잡초로서 펀치력이 약하고 업라이트스타일을 가졌지만 부지런한 공격으로 상대의 진을 빼는 전형적인 터프가이였다.
항상 끈기와 투혼의 복싱을 펼쳐보였던 그는 강렬한 좌우스트레이트 외에도 중남미 원정 시 테크니션이었던 조 메델과 함께 전수받은 라이트크로스카운터가 일품이었다.
그의 크로스카운터는 당시 복싱만화 ‘내일의 죠’의 모티브가 될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첫 방어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던 레네 바리엔토스와의 리매치에 응하지 않아 WBC 타이틀을 박탈당한 뒤 <WBA>챔피언으로서 안토니오 아마야와 리카르도 아레돈도같은 중남미 강호를 상대로 당시 자국 최다인 6차방어에 성공했으나 7차방어전에서 베네수엘라의 강타자 <알프레도 마르카노>에게 침몰당한 뒤 사실상 링과 작별했다.
보기보다 유연한 허리와 리드미컬한 스텝을 소유한 마르카노는 힘이 실린 좌우훅과 어퍼컷이 위력적이었지만 엷은 가드 때문에 2차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벤 빌라플로>에게 무수한 공매를 얻어맞고 벨트를 풀어야 했다.
들짐승같은 야성의 사나이 빌라플로는 하와이에서 자란 사우스포의 인파이터로 푸트웍은 없으나 박력이 넘치는 좌우훅의 파워가 엄청났다.
특히 바람소리가 일만큼 강력한 레프트훅은 일발필도의 위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타격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정면에서 치고 받는 상대에게는 무척 강했던 반면 푸트웍을 쓰는 상대에게는 약점을 보여 2차방어전에서 발이 빠른 <시바다 구니아키>의 스피드 복싱에 2관왕을 허용했다.
1년여만에 왕좌에 복귀한 시바다는 빌라플로를 괴롭혔던 빅토르 에체가라이를 군말없이 돌려세운 뒤 <벤 빌라플로>와 다시 만났으나 불과 116초만에 가공할 위력의 레프트훅을 얼굴에 맞고 떡실신을 당해 이번에도 충격적인 모습으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고바야시로부터 떨어져 나온 <WBC>타이틀은 예상대로 필리핀의 <레네 바리엔토스>가 미국의 루벤 나바로에게 판정승을 거두고 새챔피언에 올랐다.
충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푸트웍을 살린 아웃복싱에 일가견이 있었던 사우스포의 바리엔토스는 좀처럼 방어전을 갖지 못하다가 14개월만에 열린 첫 방어전에서 전임 <누마다 요시아키>에게 적지에서 근소한 차의 패배를 당해 왕좌를 넘겨 주었다.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만도 라모스에게 도전했다가 KO당해 끝난 줄 알았던 누마다는 두 번째 왕좌에서 심기일전하여 호쾌한 강타를 자랑하는 전 WBA 페더급 챔피언 라울 로하스에게 그림같은 라이트어퍼컷으로 역전 KO승을 거두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4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리카르도 아레돈도>에게 한계를 드러내고 10R만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16살에 프로데뷔해 수많은 경기를 통해 젊은 패기에다 노련미까지 겸비했던 아레돈도는 복싱의 기본인 레프트잽과 푸트웍이 좋은데다가 힘이 실린 원투스트레이트의 위력이 남달랐고 접근전에서 쇼트블로우에도 능했지만 주먹을 날릴 때 레인지가 큰 것은 약점이었다.
2차방어에 성공한 후 내리 세차례나 일본 원정에 나서 이 체급의 저패니스킬러를 자임했으나 결국 6차방어전에서 <시바다 구니아키>의 발을 따라 잡지 못한 채 완패해 일본에 벨트를 돌려주고 말았다.
체급 신설 초기 이 체급은 조니 던디와 토드 모건을 필두로 주니어체급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니어체급과 마찬가지로 얇은 선수층과 英・美의 무관심을 극복하지 못해 신설된지 12년만에 소멸되었고, 그 후 16년이 지나서 샌디 새들러에 의해 잠시 부활하는 듯 했지만 페더급 세계챔피언 복귀와 함께 또 다시 잊혀진 체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통한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다른 주니어체급과 함께 복원된 이래 동양과 중남미를 중심으로 활발한 매치메이킹이 이루어지면서 빠르게 정착했고 특히 필리핀의 영웅 가브리엘 플래쉬 엘로르데는 장수챔피언으로 롱런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가 이 체급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자랑이라고 할만한 <WBC>챔피언 <시바다 구니아키>는 이 체급에서 양대기구를 석권한 뒤 과거에 비해 한층 배가된 파이팅력을 선보이며 난적 안토니오 아마야에 이어 지명도전자 라미로 볼라노스를 최종회에 쓰러뜨려 모처럼 안정된 왕좌를 구가했다.
그러나 4차방어전에서 여전히 부실한 내구력으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의 <알프레도 에스칼레라>가 마음먹고 날린 라이트스트레이트를 허용한 뒤 사력을 다한 난타전을 벌이다가 또 다시 2R만에 큰 대자로 누워버려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켰다.
라이트스트레이트와 어퍼컷을 주무기로 한 빠른 연타와 살사춤을 방불케하는 어지러운 푸트웍을 소유한 에스칼레라는 세계챔피언이 되기전까지는 평범했으나 왕좌에 오른 뒤부터 관록을 앞세운 능수능란한 경기운영과 링중앙에서 치고받는 타격전에 능력을 발휘하여 뜻밖에도 가브리엘 플래쉬 엘로르데의 10차방어 기록에 타이틀 이루는 장수챔피언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의 타이틀 방어전은 파란의 연속이어서 첫 방어전에서 복병 레오넬 에르난데스에게 혼쭐이 났고 4차방어전인 버즈소 야마베전에서는 레퍼리가 일찍 시합을 스톱시키는 바람에 큰 소동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타이론 에버레트와의 7차방어전은 유혈이 낭자한 채 고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억지 판정으로 승리를 가로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만만한 상대를 골라 방어횟수를 늘려나갔지만 결국, 11차방어전에서 페더급에서 올라온 니카라과의 귀공자 <알렉시스 아르게요>와 바야몬의 하늘아래 빗속의 혈전을 벌인 끝에 뚜렷한 기량 차이를 드러낸 채 13RTKO로 물러났다.
감량고에서 해방된 아르게요는 정확하고 위력적인 스트레이트와 레프트훅을 앞세운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처럼 이 체급에서 승승장구했는데 전임 에스칼레라를 비롯해 후일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라파엘 리몬과 보비 차콘 등의 중견복서들을 모조리 KO로 쓰러뜨렸다.
8차방어에 성공한 뒤 더 이상 상대를 찾지 못하자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영국의 짐 와트를 가볍게 꺽고 사상 6번째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WBA>챔피언 <벤 빌라플로>는 여전히 박력있는 인파이팅으로 강인한 면모를 과시하며 김현치와 우에하라 야쓰스네같은 동양권의 도전자를 상대로 순조로운 방어행진을 펼쳤다.
하지만 5차방어전에서 만난 푸에르토리코의 복병 <사무엘 세라노>에게 간신히 무승부로 타이틀을 지켜내더니 6개월 뒤에는 그의 빠른 발과 스피드에 뒤져 대차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177cm의 장신을 살려 아웃복싱을 구사했던 세라노는 무엇보다 스피드가 좋고 발이 빠른 마라톤맨이었다.
펀치력은 약하나 피스톤같은 레프트잽과 교묘하고도 기술적인 좌우컴비블로우는 상대를 쓰러뜨릴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유리턱으로 인해 자주 다운을 당했지만 방어전이 거듭될수록 노련하고 지능적인 복싱으로 난공불락의 아성을 구축했다.
재임 중 WBC 챔피언이었던 에스칼레라와 아르게요에 비해 도전자의 네임밸류가 떨어지고 화끈한 복싱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때문에 소박한 챔피언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동양과 중남미출신의 도전자를 상대로 꾸준하게 방어횟수를 늘려 에스칼레라에 이어 나란히 10차방어에 성공하며 롱런가도를 달렸다.
왕좌 후기에 지나친 자신감으로 공격일변도의 복싱으로 전향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일본의 <우에하라 야쓰스네>에게 일방적인 시합을 펼치다가 6R에서 턱이 돌아갈 정도로 강력한 라이트카운터블로우 일격을 맞고 실신에 가까운 KO패를 당했다.
미국의 링지로부터 1980년 최고의 이변에 선정되며 수훈을 세운 우에하라는 라이트훅을 주무기로 하는 호전적인 단신의 강타자로 프로데뷔 1년만에 당시 WBC 챔피언이었던 리카르도 아레돈도를 꺽은 여세를 몰아 빌라플로에게 도전했지만 2RKO패로 주저 앉아 인고의 세월을 보낸 끝에 정상에 오른 케이스였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볼품이 없어서 첫 방어전에서 신승을 거둔 뒤 <사무엘 세라노>를 홈링으로 불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쭉쭉뻗는 레프트스트레이트에 강타를 봉쇄당한 채 완패했다.
8개월만에 왕좌에 복귀한 세라노는 여전히 링의 기술자다운 세련된 복싱을 구사하며 명불허전다운 면모를 과시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베네딕토 빌라블란카에게 당한 버팅으로 TKO패 처리됐다가 20여일만에 챔피언벨트를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은 뒤 미국의 영보이 <로저 메이웨더>에게 체력적으로 역부족을 드러낸 채 8R에서 통렬한 라이트훅을 맞고 KO로 무너져 신구교대극의 희생양이 되었다.
비록 강렬하고 화끈한 주먹은 없었지만 발군의 스피드와 세련된 테크닉의 아웃복싱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세라노는 두 번의 왕좌를 통해 통산 13차방어에 성공하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르게요가 떠나간 <WBC>왕좌는 바야흐르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는데 그동안 아르게요에게 눌려 기도 펴지 못했던 2류들이 돌아가며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먼저 이델폰소 베텔미를 최종회에 KO시키고 새 챔피언에 오른 멕시코의 <라파엘 리몬>은 바주카포라는 별명답게 와일드하고 궤적이 큰 좌우훅과 어퍼컷을 앞세운 사우스포의 하드펀처였는데 더티한데다가 기량은 물론 스피드마저 떨어져 롱런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첫 방어전에서 우간다의 복병 <코르넬리우스 보자 에드워즈>의 선제공격에 주무기를 봉쇄당한 채 한차례 다운을 허용하며 완패했다.
제2의 조국인 영국에서 미키 더프의 손에 의해 유망주로 길러졌던 에드워즈는 이미 알렉시스 아르게요와의 논타이틀전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펼치며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는데 왼손잡이로서 라이트리드펀치와 발놀림이 좋고 상대를 가둬놓은 상태에서 퍼붓는 빠른 훅과 어퍼컷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톱랭커인 보비 차콘에게 압승을 거두었지만 2차방어전에서 리몬의 대타로 나선 필리핀의 <롤란도 나바레테>에게 허점을 보여 불과 5R만에 KO패를 당해 기대에 못미쳤다.
복싱의 의외성을 보여주며 정상정복에 성공한 나바레테 역시 사우스포로서 훅과 오른손스트레이트가 강했고 유연한 허리에 스텝까지 살아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최충일에게 드라마틱한 11R 역전KO승을 거두었지만 돌아온 <라파엘 리몬>과의 난타전에서 파워 차이를 실감하며 12RTKO로 물러나 잡초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재집권에 성공한 리몬은 타고난 맷집과 슬러거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최충일을 상대로 가볍게 몸을 푼 뒤 오랜 숙적인 <보비 차콘>과 2차방어전에서 맞섰으나 다운을 주고받는 혈투 끝에 근소한 차의 판정패를 당해 6개월만에 다시 무관으로 전락했다.
이들의 시합은 링지로부터 1982년 최고의 경기에 선정될 만큼 뜨거운 승부로 평가받았다.
아홉달전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이 체급에서 세 번째 도전만에 2관왕을 이룬 차콘은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폭풍같은 파이팅과 끈질긴 집념을 보여주며 투혼을 불살랐다.
첫 방어전에서 2년전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에드워즈를 맞아 역시나 다운을 주고받으며 유혈이 낭자한 명승부를 펼쳐 2년연속 링지 최고의 경기에 주인공이 되었지만 라이징스타 엑토르 카마초와의 지명방어전을 기피해 곧바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에스칼레라와 아르게요, 세라노같은 롱런챔피언을 배출한 이 체급은 당시 로베르토 두란이 장악하고 있었던 라이트급에 못지 않은 높은 관심을 받으며 인기체급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서강일, 김현치, 김태호, 오영호, 최충일 등이 잇달아 정상정복에 실패하면서 마의 체급으로 인식되었다.
1980년대 초반 세라노 왕조를 무너뜨리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WBA>챔피언 <로저 메이웨더>는 긴 리치에 피스톤같이 빠른 잽과 스트레이트를 장착한 아웃복서로 안정된 밸런스에 화려한 스피드와 테크닉을 보유했다.
라이트펀치가 위력적이어서 타격전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던 그는 무패의 호르헤 알바라도와 베네딕토 빌라블란카를 일방적인 KO로 눕혀 WBC 챔피언 엑토르 카마초와 함께 초특급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록의 <로키 로크리지>와의 3차방어전에서 만천하에 유리턱을 드러낸 채 90여초만에 충격적으로 침몰해 예상밖의 단명챔피언에 머무르고 말았다. 3년 후 유리턱을 극복하고 WBC 슈퍼라이트급 챔피언으로 부활해 저력을 과시했다.
강렬한 라이트훅 한방으로 염원하던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감은 로크리지는 페더급 시절 에우세비오 페드로사에게 번번히 좌절해 다소 평가절하되기는 했지만 단신의 저돌적인 러싱파이터로 스피드와 파워는 물론 풍부한 스태미나를 보유하고 있어서 항상 강호로 분류되었었다.
다이나믹하면서도 날카로운 컴비블로우가 뛰어났고 접근전에서 터지는 좌우훅이 특히 매서워 한때 전설의 3관왕인 헨리 암스트롱에 비견될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KO로 장식한 뒤 3체급 석권을 노리던 푸에르토리코의 <윌프레도 고메스>의 도전을 받아 적지에서 잘 싸웠으나 홈어드밴티지를 안은 고메스에게 챔피언벨트를 강탈당했다.
이미 쇠퇴의 기미가 확연했던 이 무렵의 고메스는 무소불위의 바주카포를 휘두르던 과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노웅에 불과해서 1년만에 어렵게 나선 첫 방어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파나마의 <알프레도 레인>에게 9R에서 참담한 TKO패를 당해 링과 작별했다.
적지에서 대어를 낚은 레인은 비교적 출중한 펀치력을 가졌으나 수비가 불안하고 체력적으로도 부실했던 탓에 넉달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브라이언 미첼>에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10RTKO로 패해 그저 고메스를 쓰러뜨린 쇼킹한 사나이로 만족해야 했다.
보비 차콘의 타이틀 박탈로 비어 있던 <WBC>왕좌에는 차세대 슈퍼스타로 급부상한 푸에르토리코의 <엑토르 카마초>가 예상대로 전임 라파엘 리몬을 5R만에 가볍게 제압하고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뉴욕 할렘가에서 자라난 그는 천부적인 소질과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진 사우스포의 강타자로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컴비블로우를 앞세워 현란하면서도 격정적인 파이팅을 선보였다.
특히 주무기인 레프트스트레이트는 물론 스냅이 들어간 섬광같은 카운터펀치는 늘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타고난 복싱실력 외에 잘생긴 외모와 미끈한 몸매, 화려한 쇼맨십으로 마치 할리우드 배우를 연상케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고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라파엘 솔리스를 맞아 전광석화같은 라이트훅으로 KO승을 거둔 뒤 흥행성이 좋은 라이트급 진출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해버려 이 체급의 재임기간은 1년이 채 않될 정도로 짧았다.
카마초의 뒤를 이어 등장한 멕시코의 복싱영웅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는 당시 22살로 43연승 무패를 기록중이던 강타자였는데 이미 수많은 경기를 통해 터득한 공수능력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하고 끊임없는 대쉬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다.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교묘한 페인트와 더킹 실력이 수준급이었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가둔 뒤 폭발적인 연타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차베스 복싱의 진수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마리오 마르티네스를 8RTKO로 잠재운 뒤 2차방어전에서 전 WBA 챔피언 로저 메이웨더를 2R만에 격추시켰고 톱클래스였던 로키 로크리지와 후안 라포르테의 도전을 연이어 물리쳐 더 이상 상대를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통산 9차방어에 성공한 그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했는데 재임기간 중 보여준 다양한 테크닉과 공격력은 동국의 선배 비센테 살디바르나 살바도르 산체스의 계보를 잇는데 손색이 없을만큼 훌륭했다.
이즈음 새로운 복싱기구로 출범한 <IBF>에서는 1984년 4월 우리나라의 <유환길>을 초대챔피언으로 배출했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필리핀의 로드 세퀴난과 악전고투 끝에 판정승을 거두며 우리나라 복서에게는 마의 체급이었던 이 체급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사우스포로서 뚝심있는 파이터였던 유환길은 비록 일발필도의 파워나 다양한 세기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지칠줄 모르는 대쉬와 엄청난 승부근성을 갖추고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의 파이터였다.
첫 방어전에서 태국의 삭 갤럭시를 가볍게 젖힌 뒤 적지에서 호주의 신예 <레스터 엘리스>를 상대해 투지를 앞세워 거칠게 몰아붙여 봤지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호주에서 제2의 라이오넬 로즈로 키워졌던 엘리스는 날렵한 아웃복싱을 구사하면서도 찬스시 연타능력이 좋아 비교적 높은 KO율을 보유했으나 정직한 복싱으로는 대성하기 어려워 2차방어전에서 자국의 베테랑 <배리 마이클>의 지능적인 보디공격에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했다.
비교적 늦게 개화한 케이스였던 마이클은 몸놀림이 빠르고 레프트보디블로우가 주무기인 아웃복서로 풍부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노련한 공수를 펼치며 2차방어전까지 모두 KO로 장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4차방어전에서 전 WBA 챔피언인 <로키 로크리지>에게 첫 회부터 코뼈가 부러지는 수난속에 8R 종료 후 시합을 포기하고 말았다.
기구를 갈아타며 부활에 성공한 로크리지는 여전히 왕성한 전투력으로 두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히 성공한 뒤 3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동국의 <토니 로페즈>와 백병전에 가까운 난타전을 펼친 끝에 8R에서 한차례 다운을 빼앗고도 판정으로 패해 내리막을 향하고 말았다.
이들의 시합은 수준높은 시합은 아니었지만 미국의 링지로부터 1988년 최고의 시합으로 선정될만큼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로 기록됐다.
조용한 실력자였던 <WBA>챔피언 <브라이언 미첼>은 당시 조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국가라는 오명속에 세계타이틀전 개최를 금지당하자 집시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방어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반사신경과 밸런스가 좋고 가드가 높아 상대의 펀치를 거의 맞지 않았던 그는 비록 펀치력이 없는 소프트터치에 불과했지만 적절한 스태미나 분배를 통해 지속적으로 스트레이트와 훅을 가미한 공격을 펼치며 찬스가 왔을 때는 연타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장기인 라이트크로스카운터는 다운을 곧잘 빼앗아 냈고 상대선수를 사망에 이르게 할만큼 위력적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호세 리베라에게 간신히 무승부로 위기를 넘겨 단명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만만한 상대와 방어전을 거듭하며 안정감을 찾은 뒤 제3국에서 재회한 리베라에게도 대차의 판정승을 거두고 5차방어전에 성공해 롱런가도에 접어 들었다.
이후 완숙미를 더한 미첼은 무패의 짐 맥도넬은 물론 본고장의 재키 비어드와 어빙 미첼을 연파하며 파죽지세로 방어횟수를 늘려갔다.
이 체급 최다방어인 11차방어에 성공한 후 투타임 IBF 챔피언 토니 로페즈와 적지에서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초반 로페즈의 거칠고 힘있는 공격을 블록한 뒤 후반에 맹공을 퍼부으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으나 무승부 판정으로 인해 왕좌통일에는 실패했다.
이후 판정결과에 불복한 미첼은 미국은 KO가 아니면 이길수 없는 나라라고 비난하며 타이틀을 반납해버려 프로복싱계에 충격을 주었다. 미첼이 내팽개친 챔피언벨트는 미국의 신예 <조이 가마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리 은고베니를 10RTKO로 꺽고 차지했다.
가끔 지나친 승부욕으로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던 가마체는 제2의 맨시니라는 별명답게 악바리같은 러싱파이터로 파워는 떨어지나 힘과 체력을 앞세운 전진스텝과 기민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체중고를 이기지 못해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다행히 2관왕에 올랐다.
멕시코계인 미국의 <게나로 헤르난데스>는 적지에서 다니엘 론다스를 침몰시키고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큰 키에서 뻗어나오는 빠른 잽과 뛰어난 푸트웍을 소유한 헤르난데스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상대를 노리다가 스피드를 동반한 카운터펀치로 승부를 거는 스타일로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위력적이었나 턱이 약해 가끔 다운을 당하며 불안한 경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연이어 일본으로 날아와 동양의 유망주들을 제거한 뒤 3관왕을 노리는 라울 페레스를 요절내고 역시 장수챔피언 대열에 합류했다.
8차방어에 성공한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1995년 당시 한창 줏가를 올리기 시작했던 오스카 델 라 호야의 WBO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생애 첫 패배를 당하며 골든보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편, 1987년말부터 <WBC>는 기구를 대표하는 중(中)량급 챔피언들을 한체급씩 월장시켜 스타성을 키워주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했는데 체중조절에 큰 무리가 없었던 <아주마 넬슨>으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가 반납한 이 체급의 챔피언결정전에 나서게 되었다.
4년전 차베스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렀던 마리오 마르티네스를 맞이한 넬슨은 상대의 강펀치에 예상외의 고전을 펼쳐 한차례 다운까지 허용하는 창피한 모습을 보이며 억지에 가까운 판정승을 거두고 간신히 왕좌를 승계받았다.
이 경기를 통해 체급 차이를 실감한 넬슨은 체급을 올리면서 파워가 줄어든 탓에 왕년의 호쾌한 복싱 대신 후반에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연타로 승부를 내는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스타일을 바꾸었다.
네 차례의 거듭된 방어전에서 역시나 후반 KO승을 거두며 이 체급에서도 자신감을 갖게된 넬슨은 내친김에 타이틀을 반납하고 WBC IBF 라이트급 통합 챔피언이었던 퍼넬 위태커에게 도전해 3관왕을 노렸지만 위태커의 영악한 아웃복싱에 희롱당한 채 완패하고 말았다.
WBC의 호의(?)로 챔피언벨트를 돌려 받은 넬슨은 6차방어전에서 4관왕을 노리는 제프 페네크의 접근전에 밀리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냈지만 리매치에서는 언더독에도 불구하고 페더급 시절의 러싱파이팅을 보여주며 페네크를 쓰러뜨리는 이변을 연출해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10차방어전에서 이미 한차례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제시 제임스 레이하>의 젊음과 패기 앞에 무릎을 끓고 페더급 시절을 포함해 무려 10여년간 지켜왔던 권좌에서 내려왔다.
비교적 단신으로 아기자기한 복싱을 구사했던 레이하는 결정타가 부족한 것이 흠이었지만 항상 침착하고 냉정하게 경기를 이끌었고 라이트어퍼컷이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첫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가브리엘 루엘라스>와 다운을 주고받는 격렬한 파이팅을 펼친 끝에 판정으로 패해 불과 넉달만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로키 로크리지와의 난타전을 통해 <IBF>타이틀을 획득한 <토니 로페즈>는 뚜렷한 주무기도 없었고 일발필도의 강펀치를 소유한 것도 아니었지만 터프니스를 발휘해 끈질기게 밀고 들어가는 투지와 근성으로 정상정복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특히, 저돌적으로 사납게 러싱하는 어그레시브한 로페즈의 복싱은 팬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게 했는데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강한 응집력은 상대의 방심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2차방어전에서 전임 로크리지에게 확실한 승리를 거둔 뒤 안정감을 보이는 듯 했으나 4차방어전에서 다시 만난 숙적 푸에르토리코의 <존 존 몰리나>에게는 뜻밖의 졸전 끝에 10RTKO패를 당해 내일을 기약해야 했다.
이 체급의 WBO 초대챔피언이기도 했던 몰리나는 아마추어시절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깨끗하고 민첩한 복싱을 펼쳤는데 손을 내뻗는 횟수가 많았고 잽과 스트레이트에 이은 다양하고 정확한 컴비블로우가 특기였다.
2차방어전에서 <토니 로페즈>와 재회하여 중반 이후 우세한 경기를 이끌었으나 11R에 한차례 다운을 당하며 역전을 허용해 7개월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재임에 성공한 로페즈는 2관왕을 노리던 호르헤 파에스를 완파한 뒤 WBA 챔피언 <브라이언 미첼>을 상대로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고 6개월 뒤 왕관을 벗어던진 미첼과 진검승부에 나섰으나 노련한 미첼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해 또 다시 4차방어에 실패했다.
로페즈와의 재전에서 승리한 미첼은 더 이상 링에 오를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해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다. 미첼이 반납한 타이틀은 다시 <존 존 몰리나>의 품에 안겼는데 몰리나는 적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재키 겅거루자를 4RTKO로 제압했다.
재임에 성공한 몰리나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방어횟수를 늘려 나가면서 페더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마누엘 메디나와 그레고리오 바르가스를 잇달아 잡아내 순도 높은 롱런챔피언으로 거듭났다.
7차방어에 성공한 뒤 2관왕을 위해 라이트급으로 월장했지만 오스카 델 라 호야나 쉐인 모슬리같은 미래의 슈퍼스타에게 제물이 될뿐이었다.
제4의 기구 <WBO>는 1989년 4월 이 체급의 초대챔피언으로 전 WBC 페더급 챔피언 후안 라포르테를 옹립하고자 했으나 예상과 달리 푸에르토리코의 <존 존 몰리나>가 노웅을 완벽하게 셧아웃시키고 왕좌에 올랐다.
1년전 IBF 챔피언 토니 로페즈에게 석패한 바 있었던 몰리나는 IBF 타이틀 재도전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해 왕좌는 6개월만에 도로 공석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로 인해 빈 자리에는 튀니지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카멜 보우 알리>가 전 IBF 페더급 챔피언이었던 안토니오 리베라를 8RKO로 물리치고 등극했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높지 않으나 레프트의 활용이 뛰어나고 체격조건이 좋아 한때 페더급 넘버원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알리는 찬스시 연타를 잘쳐서 KO승이 적지 않았지만 밸런스나 내구력이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었다.
3차방어전에서 프랑스의 노장 <다니엘 론다스>와 접전 끝에 간발의 차로 패해 석양이 드리워졌다.
아마추어에서 오래 활약하다 뒤늦게 프로데뷔한 론다스는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과 스텝으로 한몫할뿐 선이 가는 복싱을 구사하는데다가 맷집이 약하고 마흔살을 바라보는 고령(?)으로 인해 세계정상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덴마크의 신예 <지미 브레달>의 빠르고 간결한 복싱에 농락당한 채 6개월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전 WBA 밴텀급 챔피언이었던 조니의 친형이었던 브레달은 왼손잡이로서 북유럽출신답게 기민한 움직임에 각도 좋은 예리한 좌우펀치를 장전하고 있었지만 첫 세계정상을 노리던 골든보이 <오스카 델 라 호야>의 좋은 먹잇감이 되면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2차방어전에 실패했다.
1970년대 알프레도 에스칼레라와 알렉시스 아르게요, 사무엘 세라노 트로이카에 이어 1980년대 들어서도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와 아주마 넬슨, 브라이언 미첼 트로이카의 활약에 힘입어 이 체급은 전 세계 많은 복싱팬들의 꾸준한 관심을 이어갔다.
후발주자인 IBF 역시 토니 로페즈와 존 존 몰리나가 타이틀을 주고 받으며 적지 않은 수훈을 세웠고 WBO는 오스카 델 라 호야 덕분에 기구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공석이 된 <WBA>타이틀은 우리나라의 <최용수>가 아르헨티나의 톱랭커 빅토르 우고 파스에게 적지에서 통쾌한 10RTKO승을 거두고 차지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알려온 그의 값진 승리는 우리나라 프로복싱이 어려웠던 시기에게 전해진 모처럼만의 낭보였다.
데뷔 초기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국의 하드펀처 이은식을 꺽고 동양챔피언에 오른 뒤부터 빠른템포로 약진했던 최용수는 가드가 굳고 단단한 반면 상체의 움직임이 빠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좋아 정확한 타이밍에 펀치를 꽂아 넣는 능력이 탁월했다.
비록 단조로운 공격패턴에 스피드마저 떨어졌으나 근성으로 똘똘뭉친 지칠줄 모르는 스태미나와 자신만의 거리에서 끊임없이 내뻗는 터프한 좌우펀치는 슬로우스타터로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첫 방어전부터 일본원정에 나서 안방장군의 이미지를 일찌감치 떨쳐버린 그는 2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 올랜도 소토에게 아찔한 역전 KO승을 거둔 뒤 라크바 심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며 판정승을 거두어 롱런가도에 진입했다.
이후 일본의 유망주 <하다케야마 다카노리>에게 적지에서 천신만고 끝에 무승부로 왕좌를 수성했지만 8차방어전에서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얍삽한 잔꾀로 홈링의 잇점을 끝까지 살린 하다케야마에게 챔피언벨트를 풀어 주었다.
우리나라에게는 마의 체급으로 인식되었던 이 체급의 첫 번째 메이저기구 챔피언으로서 적지에서 세계타이틀전을 가장 많이 치렀고 그가 싸운 상대 중 3명이 후일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사실은 그가 얼마나 버거운 상대와 위험부담을 안고 싸웠는지를 증명하고도 남았다.
우리나라의 유화룡 트레이너가 일본에서 키워낸 하다케야마는 깨끗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스피드가 좋고 두뇌회전이 빠른 인파이터로서 변칙적이고 재치있는 경기운영능력이 돋보였다.
첫 방어전에서 사울 두란에게 혼쭐이 난 뒤 불과 2차방어전에서 <라크바 심>의 정확한 원투스트레이트를 맞고 5R만에 격추당해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몽골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라크바는 1995년 서울컵 국제복싱대회에서 MVP에 선정되면서 우리나라의 심양섭 PABA회장의 주선으로 국내에 스카웃되었는데 160전이 넘는 풍부한 아마추어 캐리어를 바탕으로 프로데뷔 후 거칠고 강력한 러싱파이팅을 구사했다.
이미 6전만에 최용수에게 도전해 톱클래스였음을 입증한 바 있었던 그는 펀치력이 제법 강했고, 변칙적인 접근전에 아주 능했다.
특히, 기습적으로 상대의 안쪽을 파고들어 보디를 노리는 훅과 어퍼컷은 상당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그러나 4개월만에 갖은 첫 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백종권>을 맞아 10R에서 왼손훅으로 다운을 빼앗는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타이틀을 강탈당해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원래 라이트급에서 뛰어난 정신력과 상대를 밀어 붙이는 힘을 앞세워 화끈한 복싱을 구사했던 백종권은 위력적인 스트레이트 연타를 장착한 하드히터였지만 감량의 고통속에 찝찝한 대관식을 갖은데다가 첫 방어전마저 동국의 최규철과 범전을 펼친 끝에 무승부로 장식해 오명의 챔피언이라는 멍에를 지고 말았다.
2차방어전에서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쿠바의 <호엘 카사마요르>에게 5R만에 레퍼리스톱이 걸려 챔피언다운 대접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무관으로 전락해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미국에 망명했던 카사마요르는 기본기가 완벽하고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사우스포로 강력한 원펀치를 소유하진 못했으나 그의 정확한 잽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는 상대의 안면을 붉게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다소 신중한 스타일로 교묘한 반칙도 서슴지 않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챔피언답게 밸런스가 안정적이고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한 깔끔한 아웃복싱으로 체력안배에도 탁월했다.
2차방어전에서 전 IBF 챔피언 로베르토 가르시아에게 초반을 내주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후반에 러싱하여 역전KO승을 거둔 뒤 말랑말랑 상대와 방어횟수를 쌓아가며 4차방어에 성공했으나 브라질 출신의 WBO 챔피언 <아셀리노 프레이타스>를 상대로 통합전시리즈에 나섰다가 백중세의 난타전 끝에 3R에 당한 억울한 다운과 래빗펀치로 인한 감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판정으로 물러났다.
IBF 라이트급 챔피언인 동생 라파엘에 이어 <WBC>챔피언에 등극한 <가브리엘 루엘라스>는 힘이 좋은 일발필도의 강타자로 디펜스는 허술했지만 상체의 움직임이 좋고 좌우훅과 어퍼컷위주의 화려한 컴비네이션을 자랑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통쾌한 KO승으로 장식해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3차방어전에서 노익장을 과시한 가나의 <아주마 넬슨>의 강타앞에 초반부터 다운을 빼앗기며 5RTKO로 패퇴해 예상보다 일찍 사그라들었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왕좌에 복귀하며 썩어도 준치임을 입증한 넬슨은 나이를 잊은 과감하고 집중력있는 공격으로 첫 방어전에서 구적인 제시 제임스 레이하의 눈자위를 자르고 6RTKO승을 거두었지만 2차방어전에서 맞이한 전 WBA챔피언 <게나로 헤르난데스>의 빠른 움직임에 말려들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시대가 아님을 절감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이 체급에서 10년간 활약하며 두차례에 걸쳐 통산 11차방어에 성공해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던 넬슨은 은퇴 후 고향인 아크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사회복지사업에 전념하며 여전히 국민적 영웅으로 사랑받고 있다.
재임에 성공한 헤르난데스는 여전히 감각적인 몸놀림과 위력적인 카운터블로우를 앞세워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나 카를로스 에르난데스같은 후일의 세계챔피언들을 상대로 세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나 4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미래의 슈퍼스타인 동국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에게는 거의 매라운드 압도적인 열세를 보이다가 8R 종료 후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WBC 챔피언 세바르 바산과의 시합을 앞두고 있었지만 혈병과 연골 파열 등의 진단을 받아 은퇴할 수 밖에 없었고 얼마 후 머리와 목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서 수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11년 6월에 45살의 나이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복싱가문 출신답게 기가 막힌 복싱센스를 지녔던 메이웨더는 아마추어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골든글러브를 세차례나 휩쓴데 이어 애틀란타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했던 전형적인 엘리트복서였다.
프로전향 후 더욱 경쾌하고 화려해진 무브먼트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아웃복싱으로 파죽지세의 연승가도를 달렸는데 늘 상대를 훤히 들여다보며 치밀하게 계산된 작전으로 농락했다.
감각적인 디펜스능력을 바탕으로 중심을 낮게 유지하며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빠르고 정확한 스트레이트가 일품이었고 찬스시 기관단총처럼 폭발하는 강렬한 좌우컴비네이션은 사나운 인파이터를 방불케 했다.
페인팅과 스위칭은 물론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에도 능해 상대의 방심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매 방어전마다 실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도전자를 완벽히 제압하며 거침없는 방어행진을 펼쳤고 2001년 1월 이 체급의 통합전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렸던 IBF 챔피언 디에고 코랄레스와의 6차방어전에서는 놀랍게도 5차례나 다운을 빼앗는 압승을 거두어 이 체급의 종결자로 우뚝 서기 시작했다.
강호 카를로스 에르난데스에게 6R에서 때리다가 왼주먹에 부상을 입어 생애 첫 다운을 기록했지만 한손으로 여유있게 제압했고 후일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헤수스 차베스 역시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통합전 시리즈의 최종전인 WBA WBO 통합챔피언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와의 대전을 고심하다가 8차방어전을 끝으로 당시 유행처럼 퍼진 다체급 석권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비교적 롱런에 성공했던 존 존 몰리나의 월장으로 공석이 되었던 <IBF> 왕좌는 미국의 <에디 홉슨>이 콜롬비아의 강타자 모이세스 페드로사를 7RKO로 꺽고 차지했다.
아마추어시절 골든글러브 우승에도 불구하고 막상 서울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는 켈시 뱅크스에게 고배를 들어 프로에 전향한 홉슨은 단신의 아웃복서로 레프트의 활용이 좋고 감각적인 움직임이 돋보였으나 불과 첫 방어전에서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출신인 <트레이시 패터슨>의 오른손카운터블로우를 맞고 2R만에 나가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관왕에 오른 패터슨은 아직도 왕성한 스태미나와 인상적인 좌우컴비블로우를 앞세워 좀 더 실적을 쌓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역시 첫 방어전에서 캐나다의 신예 <아투로 가티>의 활발한 공세에 밀려 2R에서 한차례 다운을 허용한 끝에 판정으로 패해 더 이상 세계정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탈리아계인 가티는 친형인 조와 형제복서로 활약했는데 스피드가 떨어져 일류챔피언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교과서적인 복싱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상대에게 들락거리며 좌우훅과 어퍼컷을 꽂아 넣는 난타전의 귀재였다.
2차방어전에서 전임 패터슨의 도전을 가볍게 젖힌 뒤 3차방어전에서 전 WBC 챔피언 가브리엘 루엘라스와 어퍼컷배틀 끝에 KO패의 위기를 극복하고 5R에 역전 KO승을 거두어 링지로부터 1997년 최고의 KO와 최고의 경기에 동시 선정되는 수훈을 세웠다.
하지만 이듬해 앙헬 맨프레디로부터 불의의 TKO패를 당한 뒤 타이틀을 반납한 채 라이트급으로 전향했고 후일 미키 워드와의 투혼을 불사른 트릴로지로 유명세를 타며 최고의 흥행복서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자신의 시합이 링지로부터 통산 네차례나 최고의 경기에 선정될만큼 언제나 뜨거운 명승부를 펼쳤다.
가티의 뒤를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 해롤드 워렌을 꺽고 새챔피언에 등극한 <로베르토 가르시아>는 기본기를 잘 갖춘 정통파로 안정된 밸런스에 좌우훅과 스트레이트를 잘 쳤으나 너무나 신중하고 정직한 복싱을 구사해 3차방어전에서 동국의 <디에고 코랄레스>에게 집중타를 허용하며 7RTKO로 패퇴했다.
하지만 은퇴 직후부터 트레이너로 활약하면서 켈리 파블릭과 노니토 도나이레, 브랜든 리오스, 마르코스 마이다나같은 스타급 복서를 지도해 목하 선수시절보다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
장신이나 긴 허리의 기형적인 신체조건을 소유한 코랄레스는 스트레이트를 앞세운 강력한 직선공격에 능했고 일단 타격전으로 돌입하면 각도 좋은 좌우훅을 휘두르며 어느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다만, 공격위주의 솔직한 복싱 스타일로 인해 스태미나 안배가 서툴고 안면이 쉽게 노출되는 것은 큰 단점이었다.
만만치 않았던 도전자들을 잇달아 격추시키며 3차방어에 성공한 뒤 무패의 WBC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충돌했으나 예상밖의 수준 차이를 드러내며 10RTKO로 무너져 좌초하고 말았다.
첫 패배에 대한 충격이 컸던 코랄레스는 늘 고심하던 체중문제로 타이틀을 반납한 채 긴 겨울잠에 들어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상처투성이의 존 브라운을 물리치고 왕좌에 오른 <스티브 포브스>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감각적인 움직임과 속사포같은 연타를 보유해 장래가 기대되었으나 2차방어전을 앞두고 한계체중을 초과하는 바람에 타이틀을 박탈당한 후 정상권에서 멀어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선수 중 유일한 금메달리스트였던 <WBO>챔피언 <오스카 델 라 호야>는 준수한 마스크에 뛰어난 신체조건과 풍부한 잠재력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는데 스피드를 동반한 섬광같은 컴비네이션이 트레이드마크로 기대했던대로 프로전향 후 연전 연승을 거두며 골든보이로 각광받았다.
힘과 기교를 통해 상대를 몰아붙인 뒤 군더더기없는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급소를 정확하게 찌르는 능력이 탁월했다. 레프트잽에 이은 원투스트레이트로 상대를 몰다가 찬스가 왔을 때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좌우훅과 어퍼컷의 위력이 대단했고 접근전시 상대의 안쪽을 파고들어 기습적으로 날리는 컴비블로우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첫 방어전에 성공한 뒤 프로데뷔 전부터 호언했던 6체급 석권을 위한 대업을 이루기 위해 잇달아 체급을 올려가며 승승장구해 스타부재에 시달렸던 1990년대 프로복싱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의 유망주 유진 스피드를 꺽고 호야의 뒤를 이은 수리남의 <레질리오 튜어>는 뉴욕에서 데뷔한 이래 미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했는데 안정된 밸런스에 높은 가드와 현란할 정도로 빠른 발놀림을 소유했다.
상대의 히트앤클린치에 약점을 갖고 있었지만 외곽을 돌면서 던지는 잽과 스트레이트가 날카롭고 힘이 넘치는 좌우훅은 상당히 위력적이어서 흡사 전성기시절의 도널드 커리를 연상케 했다.
챌린저리스트가 화려하진 않았지만 6차례의 방어전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매번 완승에 가까운 승리를 거둔 뒤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연 은퇴해버려 아쉬움을 주었다.
새로운 챔피언 결정을 위해 무패의 양강이었던 프랑스의 줄리앙 로시와 멕시코의 아르눌포 카스티요가 맞붙었으나 두차례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영국의 <배리 존스>가 기회를 잡아 윌슨 파라시오스를 꺽고 왕좌에 올랐다.
아마추어를 거쳐 기본기를 잘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같은 주먹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했던 존스는 프랭크 워렌을 만나면서 급성장하는 듯 했으나 별안간 뇌기형이 발견돼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또 다시 공석이 된 왕좌에는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유럽정상에 올랐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가 본토의 줄리앙 로시를 판정으로 꺽고 등극했다.
그다지 인상적인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레프트의 활용이 뛰어나고 경기운영도 노련했던 그는 밸런스가 부실하고 가드마저 늘 열려 있어 인파이터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다.
첫 방어전에서 아르눌포 카스티요를 8RTKO로 물리쳐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받았으나 브라질의 하드펀처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에게 초반부터 약점을 드러내며 불과 100여초만에 실신 KO패를 당해 산소마스크를 쓰고 응급실로 직행했다.
무려 24년만에 조국 브라질의 품에 세계타이틀을 안겼던 프레이타스는 탄탄한 근육질의 체형으로서 끊임없이 상대를 향해 쇄도하는 모습이 마치 피피노 쿠에바스가 재림한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고질적인 안면수비 불안과 풀스윙으로 인해 균형감이 부족한데다가 펀치력만큼 다양한 세기가 따라주지 못해 일급복서로서는 미흡했지만 왼손으로 상대를 몰아세운 뒤 강력하게 터뜨리는 오른손의 파괴력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자랑했다.
KO왕답게 찬스 포착에 능하고 스탠스가 안정적이어서 전후진 스텝이 뛰어나며 허리가 동반되어 체중이 완전하게 실린 펀치는 불안정한 수비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또한, 상대에 대한 집중력이 좋은데다가 장점인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흘린 뒤 곧바로 반격에 나서는 동작이 매우 빨랐고 상대의 위, 아래로 좌우훅과 어퍼컷을 쑤셔박는 공격력은 발군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물펀치였던 전임 배리 존스에게 한차례 다운을 당해 내구력에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매방어전마다 엄청난 화력을 내뿜으며 여섯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승으로 장식하자 WBA챔피언 호엘 카사마요르와의 통합전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힘과 기의 대결이었던 이들의 경기는 초반 행운의 선제다운을 빼앗은 뒤 카사마요르의 눈자위까지 커트시킨 프레이타스가 후반에 맹추격을 당하긴 했지만 무난하게 판정승을 거두고 통합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디에고 코랄레스를 제압한 WBA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통합전 시리즈 최종전을 기대했지만 메이웨더의 월장으로 헛물만 켜다가 통산 10차방어에 성공한 뒤 체중감량에 무리를 느끼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2관왕에 올랐다.
1990년대를 게나로 헤르난데스와 최용수가 양분했던 WBA쪽을 제외하고 각 기구별로 다소 혼전 양상을 거쳤던 이 체급은 세기말 등장한 무패의 세계챔피언들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호엘 카사마요르, 디에고 코랄레스, 아셀리노 프레이타스가 용호상박의 기세를 떨치며 전 세계 복싱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메이웨더의 월장으로 통합전 시리즈의 최종전이 무산돼버려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오스카 델 라 호야와 아투로 가티 등을 포함한 스타성이 풍부했던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이 체급은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쌍두마차로 군림해 왔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아셀리노 프레이타스가 차례대로 라이트급으로 월장하자 이 체급은 다시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먼저 <WBC>쪽은 밴텀급에서 무려 3체급이나 월장해 온 태국의 <시리몽콜 싱마나삭>이 일본의 나가시마 겐고를 2RKO로 누르고 2관왕에 올랐다.
과거에 비해 슬러거의 이미지가 한층 뚜렸해진 싱마나삭은 접근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카운터공격에도 능했는데 첫 방어전에서 전 WBA 챔피언 최용수의 도전을 뿌리친 뒤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헤수스 차베스>와 난타전 끝에 판정으로 패해 더 이상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무지막지한 공격력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차베스는 단신임에도 끊임없이 손을 내며 제법 묵직한 좌우훅을 자랑했지만 기술적으로 낮은 수준인데다가 발이 느리고 스피드마저 떨어지는 편이어서 6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에릭 모랄레스>에게 3관왕을 헌납하고 라이트급으로 떠났다.
당시 페더급 4인방 중 가장 먼저 이 체급을 정벌했던 모랄레스는 전보다 날카로움은 무뎌졌어도 아직 건재한 테크닉과 스피드는 물론 노련미를 더한 컨트롤플레이로 한층 더 완벽한 복싱을 구사했다.
특히, 어중간하게 밀고 들어오는 상대에게는 절대적으로 강한 모습이었고 접근전에서 쇼트펀치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첫 방어전에서 IBF 챔피언 카를로스 에르난데스를 맞아 월등한 실력차이로 양대기구를 평정해 일급챔피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2차방어전에서 동국의 라이벌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 격돌해 초반 바레라의 적극 공세에 밀린 탓에 후반의 맹추격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근소한 차의 패배를 당해 무관으로 전락했다.
모랄레스와 바레라 간의 3체급에 걸친 3번의 격돌은 매번 박진감 넘치는 타격전을 전개해 팬들의 환호를 받았고 빠르고 격렬하게 전개됐던 이들의 3번째 대결 역시 링지로부터 2004년 최고의 경기에 선정될만큼 명승부로 기록됐다.
1년전 매니 파퀴아오에게 충격적인 TKO패를 당했던 상흔에서 벗어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화려하게 왕좌에 복귀한 바레라는 오랜 링캐리어로 인해 특유의 박력은 다소 떨어진 듯 했으나 2차방어전에서 호주의 로비 페덴을 착실하게 공략해 IBF 타이틀을을 흡수하고 난적으로 여겨졌던 록키 후아레스의 도전도 일축해버려 흔들림 없는 견고한 왕좌를 구축했다.
하지만 나이에 따른 노쇠의 기미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어서 5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동국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판정으로 물러난 뒤 매니 파퀴아오와의 재대결마저 졸전속에 패퇴해 어느덧 퇴장을 준비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말았다.
WBO 페더급 타이틀을 버리고 전격적으로 이 체급에 뛰어든 마르케스는 일발파워는 부족해도 늘 투지넘치는 파이팅을 선보였는데 2차방어전에서 다시 만난 필리핀의 <매니 파퀴아오>와 3R에서 당한 선제다운에도 굴하지 않고 혈투를 펼친 끝에 아쉽게 판정패를 당해 와신상담해야 했다.
이미 권좌에서 물러난 모랄레스와 바레라를 연거푸 쓰러뜨려 멕시칸 킬러로 불리웠던 무관의 제왕 파퀴아오는 무려 5년만에 대관식을 치루며 일약 흥행파워의 주역으로 떠올랐는데 또 다시 체급을 올리면서도 여전히 빠른 스피드와 놀라운 파괴력을 앞세워 석달 뒤 WBC 라이트급 챔피언 데이비드 디아스를 9RTKO로 물리치고 4체급 석권에 성공하자 이 체급의 타이틀을 반납했다.
이후 파퀴아오는 주지하다시피 P4P 넘버원의 새로운 슈퍼스타로 추앙받으며 웰터급과 슈퍼웰터급 타이틀까지 6체급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 아시아 스포츠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타임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WBA> 타이틀은 태국의 <요드사난 난타차이>가 WBC 챔피언 싱마나삭보다 넉달 앞서 전챔피언 라크바 심을 꺽고 차지해 태국출신으로는 이 체급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하며 더블챔피언 시대를 이끌었다.
상체가 우람한 사우스포의 터프가이였던 난타차이는 태국판 타이슨으로 불리울 정도로 나무랄데 없는 전적과 파워를 자랑했는데 허리를 동반한 각도 좋은 좌우훅이 위력적이었고 보디에서 안면으로 훓고 올라가는 컴비블로우가 돋보였다.
3차방어전에서 전 IBF 챔피언 스티브 포브스를 따돌리며 안정권에 접어드는 줄 알았으나 파나마의 <비센테 모스퀘라>에게 안면수비의 부실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세차례나 다운을 허용한 끝에 판정으로 무너져 기대만큼 롱런하지는 못했다. 흑인 특유의 유연함과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강한 파워를 지녔던 모스퀘라는 언뜻 밸런스가 불안정해 보이기도 했지만 가드 사이를 뚫고 날아드는 정교한 펀치와 타이밍을 잡는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베네수엘라의 괴물 <에드윈 발레로>를 맞아 다운을 주고 받으며 선전을 펼쳤지만 10R에서 레퍼리스톱이 걸려 단명했다.
왕좌에서 물러난 직후 살인사건에 연루돼 복역하게 되면서 링에서 멀어졌고 4년 6개월만에 링복귀에 나선 이래 아직까지 링에 오르고 있다.
18연속 1RKO승의 경이적인 대기록의 소유자였던 발레로는 사우스포의 하드펀처로 투박하다못해 무식해 보이기까지 한 타격자세에도 불구하고 메가톤급 파워를 자랑하는 강펀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꽂아 넣으며 언제나 속전속결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지나친 공격위주의 복싱으로 가드가 낮고 연타시 턱이 들리는 버릇은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엄청난 내구력과 생각보다 강한 스태미나를 갖고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돈을 벌기 위해 미국 진출을 꾀했으나 프로데뷔전 오토바이사고로 인해 뇌수술을 했던 기록과 자국의 반미정권인 우고 차베스를 옹호하며 미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전과 때문에 결국 일본의 테이켄 프로모션에 몸을 맡겼다.
첫 방어전에서 마이클 로사다를 72초만에 초살시킨 뒤 적지에서 맞이한 세명의 도전자들을 모조리 KO로 쓰러뜨려 주가를 드높였다. 빅매치를 위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2관왕에 올랐다.
아셀리노 프레이타스의 활약으로 인해 지명도가 높아진 <WBO>왕좌에는 <디에고 코랄레스>가 5개월전 호엘 카사마요르에게 당했던 TKO패를 설욕하며 복귀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에게 참패 후 2년여의 공백을 거쳤던 코랄레스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솜씨를 자랑했지만 고질적인 안면수비의 허점과 부실한 내구력으로 자주 다운을 허용해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2체급 석권에 나서기 위해 곧바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코랄레스의 후임에는 미국의 신예 <마이크 앤촌도>가 챔피언결정전에서 훌리오 파블로 차콘에게 압승을 거두고 등극했다.
파워풀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로 강력한 펀치력을 소유해 한때 유망주대열에 합류했으나 경험부족으로 인해 첫 방어전에서 체중조절에 실패한 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로드리고 바리오스>에게 초반부터 얻어터지며 4RTKO로 주저 앉아 실망을 주었다.
2년전 프레이타스에게 도전해 두차례나 다운을 빼앗으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바리오스는 이렇다할 주무기가 없음에도 터프하고 끈질긴 공격력만으로도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줄 정도로 놀라운 근성을 소유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눈이 좋아 타이밍을 잘 잡고 일발파워까지 갖추고 있어 높은 KO율을 기록했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초반KO로 쓸어 담아 강한 챔피언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3차방어전에서 도미니카의 <호안 구스만>을 맞아 체중을 맞추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한 가운데 접전 끝에 석패했다.
2체급을 석권한 구스만은 과거와 달리 발군의 스피드와 탁월한 기량을 앞세운 아웃복싱으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강력한 프레싱을 구사하며 2차방어전에서 강호 움베르토 소토를 대차의 판정으로 눌러 일약 이 체급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뜻밖에도 잦은 체중조절 실패로 인해 잇달아 시합을 취소하는 등 문제아로 낙인찍히면서 결국 라이트급으로 쫓겨나다시피해 타고난 실력을 썩혔다.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다가 왕좌를 승계받은 스코틀랜드출신의 <알렉스 아더>는 한때 어메이징으로 불리울 정도로 출중한 기량과 강력한 파워를 앞세워 한껏 기대를 모았으나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복병 <니키 쿡>의 아웃복싱에 유린당해 근소한 차의 판정패로 울고 말았다.
팬들의 관심이 덜했던 <IBF>쪽은 엘살바도르 출신의 <카를로스 에르난데스>가 세계도전 삼세번만에 데이비드 산토스를 누르고 자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접근전을 선호하는 인파이터로 힘이 좋은 편이나 디펜스가 부실하고 기술적으로도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전챔피언인 스티브 포브스를 꺽은 뒤 2차방어전에서 WBC챔피언 <에릭 모랄레스>에게 흡수통일 당했다.
통합챔피언에 오른 모랄레스는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의 일전을 앞둔 상태에서 톱랭커와의 지명방어전을 이행하지 않아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톱랭커였던 호주의 <로비 페덴>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후일 라이트급 3대기구 통합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네이트 캠벨을 소나기펀치로 제압해 새 챔피언에 등극했다.
풍부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체력전에 능했던 페덴은 늘 가드를 내린 채 상대를 유인한 뒤 폭발력있는 좌우연타로 경기를 끝냈지만 안면노출 부담이 상존했던 위험한 복싱을 구사했다. 모랄레스에 이어 WBC챔피언에 오른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의 통합전 유혹에 넘어가 손한번 제대로 못써본 채 원사이드한 판정패를 당해 왕좌를 넘겨 줬다.
바레라 역시 모랄레스와 마찬가지로 IBF의 지명방어전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타이틀을 박탈당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시어스 발로이>가 백전노장 마누엘 메디나를 11R에 침몰시키고 공석중인 왕좌를 차지했다.
1980년대 이 체급의 명인이었던 브라이언 미첼의 지도를 통해 실력이 급상승했던 발로이는 비교적 장신으로 긴 팔의 레프트잽이 위력적이고 상대를 가둔 채 연타를 퍼붓는 능력이 탁월했지만 지나치게 신중하고 정직한 복싱을 구사해 첫 방어전에서 상대적으로 과감하게 파고들었던 가이아나 출신의 <게리 세인트 클레어>에게 실족하고 말았다.
단신의 인파이터로 파괴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순간적인 연타와 공수전환이 빨랐던 클레어는 미국 진출에 실패한 뒤 호주에서 성공한 케이스였는데 역시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복병 <말콤 클라센>에게 벨트를 풀었다.
왕좌에 오르기 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클라센은 저돌적인 공격수로 다양한 컴비블로우가 눈에 띄었고 특히 힘이 실린 좌우훅이 위력적이었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아 5개월 뒤 스피드가 좋은 동국의 <음존케 파나>를 따라잡지 해 타이틀을 넘겼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복싱을 구사했던 파나는 레프트의 활용이 좋은 아웃복서였지만 2년전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에게 2R에 실신당할만큼 내구력에 큰 약점을 갖고 있었다. IBF 챔피언으로서는 모처럼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두 번째 방어전에서 전임 <캐시어스 발로이>에게 석패해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 체급은 모랄레스-바레라-마르케스-파퀴아오로 이어지는 뜨거운 빅매치 릴레이로 많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고, KO펀처 발레로의 등장은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다만, 잇달아 WBC에 흡수당했던 IBF쪽은 이후 회전의자를 방불케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며 유달리 조명을 받지 못했다.
매니 파퀴아오의 월장으로 공석이 된 <WBC>왕좌는 이미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멕시코의 <움베르토 소토>가 프란시스코 로렌소로부터 압승을 거두고 차지했다.
대기만성의 전형이었던 소토는 풍부한 링경험과 강철체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복싱을 구사했는데 폭발적인 라이트스트레이트와 다채로운 컴비블로우가 위력적이었고 좌우를 가리지 않는 어퍼컷은 검증된 주무기로서 일정거리에서 절대적으로 강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세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하고 당시 WBC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에드윈 발레로를 겨냥했으나 발레로의 가정사(?)로 인해 무산되자 아예 타이틀을 반납하고 월장해 버렸다.
소토의 후임은 잠정챔피언인 카자흐스탄의 <비탈리 타히버트>가 별도의 결정전없이 그대로 승계하는 행운을 누렸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독일에서 프로데뷔한 타히버트는 순발력이 좋고 접근전시 짜임새있는 좌우컴비블로우를 자랑했지만 형편없는 펀치력으로 오래 살아남기는 어려워서 2차방어전에서 페더급에서 올라온 일본의 <아오 다카히로>에게 생애 첫 다운을 허용하며 타이틀을 상실했다.
같은 날 동국의 하세가와 호즈미와 함께 2관왕의 쾌거를 이룬 아오는 전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방어횟수를 쌓아 나갔으나 4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멕시코의 <가마리엘 디아스>에게 버팅을 당해 악조건에서 혈투를 벌인 끝에 판정으로 물러났다.
다양한 각도에서 날아드는 펀치가 제법 묵직했던 디아스는 터프하게 상대를 모는 능력도 탁월했지만 불안정한 밸런스와 허술한 수비가 약점이 되어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미우라 다카시>의 강타 앞에 무려 네차례나 캔버스를 허우적거리다 9RTKO패를 당했다.
동국의 WBA챔피언 우치야마 다카시에게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던 미우라는 사우스포임에도 끊임없는 접근전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부지런한 스타일로 공수전환이 빠르고 다양한 컴비블로우는 물론 위력적인 레프트펀치를 소유하고 있다. 첫 방어전부터 멕시코 원정에 나서 톱랭커인 강타자 세르히오 톰슨을 봉쇄해 프로페셔널한 기질을 과시했고 정직한 전진스텝과 안면수비만 보완한다면 앞으로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
에드윈 발레로의 월장으로 비어 있던 <WBA>왕좌는 WBC 페더급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베네수엘라의 <호르헤 리나레스>가 기다렸다는듯이 가로챘는데 챔피언결정전에서 파나마의 위버 가르시아를 5R만에 요절냈다.
체중고에서 벗어난 리나레스 속사포같은 좌우연타가 더욱 더 빛을 발하는 듯 했지만 골든보이프로모션과의 계약으로 미국진출을 앞두고 갖은 일본 고별전에서 멕시코의 <후앙 카를로스 살가도>에게 50여초만에 레프트훅을 맞고 추락해 충격적인 첫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무패의 살가도 역시 안정된 스탠스에 강력한 좌우훅을 소유한 하드펀처로 기대를 모았지만 석달 뒤 일본의 강타자 <우치야마 다카시>에게 12RTKO로 무너져 실망을 안겨 주었다.
아마추어시절 100전이 넘는 풍부한 캐리어를 쌓았던 우치야마는 충실한 기본기와 무한체력을 갖춘 전형적인 슬러거로서 강력한 프레싱과 화려한 컴비네이션은 약점인 스피드를 커버하고도 남았다.
맷집은 물론 순발력이 좋아 상대의 공격을 무시한 채 파워넘치는 좌우훅을 휘두르며 돌격하는 우직한 스타일은 발빠른 주자도 꼼짝못할 만큼 공포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호적수를 상대로 한 8차례의 방어전 중 6번을 KO승으로 장식해 자국 최초로 WBA의 연간 KO상을 수상할 정도로 놀라운 업적을 세웠다.
단 한차례도 홈링을 벗어난 적이 없어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아셀리노 프레이타스 이래 롱런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이 체급에서 8차방어에 성공한 우치야마의 빛나는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34살의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기는 하나 뚜렷한 강자가 없는 이 체급에서 우치야마가 몇차례 더 방어횟수를 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IBF> 타이틀을 탈환한 <캐시어스 발로이>는 전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첫 방어전에서 통쾌한 KO승을 거두었으나 동국의 전챔피언 <말콤 클라센>의 카운터블로우에 걸려들어 속절없이 연타를 허용한 끝에 7RTKO로 무너져 한계를 드러냈다.
재임에 성공한 클라센은 과거 공격일변도의 복싱에서 벗어나 한결 세련된 모습으로 치고 빠지는 영리한 복싱을 구사했는데 2관왕을 노리던 미국의 <로버트 게레로>의 제물이 되면서 또 다시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페더급시절에도 암투병 중인 부인의 간호를 위해 1년여간 공백을 가졌던 게레로는 큰 무대로 나서기 위해 골든보이프로모션에 합류하며 전의를 불태웠으나 병이 재발한 부인 때문에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타이틀을 반납했다.
동국의 전챔피언 간의 대결로 펼쳐진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음존케 파나>가 숙적 발로이에게 완벽한 복수극을 펼치며 발로이와 클라센에 이어 역시 재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트레이너 교체 문제로 제때 지명방어전에 나서지 못하면서 9달만에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이후로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말았다.
또 다시 공석이 된 왕좌는 WBA 타이틀을 상실한 뒤 절치부심해온 <후앙 카를로스 살가도>가 톱랭커였던 도미니카의 아르게니스 멘데스에게 역전KO패의 위기를 딛고 힘겹게 투타임챔피언에 등극했다. 저질 체력이었던 살가도는 초중반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늘 후반에 추격을 당하며 매방어전마다 고전을 펼쳐 불안감을 주더니 4차방어전에서 다시 만난 <아르게니스 멘데스>에게 4R에서 실신KO패를 당해 무관이 되었다.
환상적인 레프트훅으로 왕좌에 등극한 멘데스는 풍부한 아마추어경력을 소유한 테크니션으로 날카로운 레프트잽과 다양한 컴비네이션을 자랑했다.
첫 방어전부터 무승부를 기록하며 삐끗하더니 2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란세스 바텔레미에게 2R에서 충격적인 KO패를 당해 일찌감치 추락하는 듯 했으나 바텔레미가 종료 공이 울린 후 가격한 것이 확인되어 구사일생으로 챔피언벨트를 되찾았다.
페더급 시절 스티븐 루에바노에게 당했던 참담한 패배를 극복하고 <WBO>챔피언에 오른 영국의 <니키 쿡>은 파이팅이 좋고 펀치력도 제법이었으나 여전히 부실한 내구력 때문에 첫 방어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로만 마르티네스>에게 4R만에 넉아웃돼 세계챔피언에 이름을 올린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잘 갖춰진 기본기에 날카로운 원투스트레이트를 장착한 기교파로서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듯 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영국의 <리키 번스>를 맞아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후반 체력안배에 실패하면서 무관으로 전락했다.
장신에 빠른 발을 활용한 아웃복싱에 능했던 번스는 일발 파워가 약한 것이 흠일뿐 공수전환이 빠르고 정확한 타이밍의 컴비블로우를 자랑했다. 3차방어전에서 전임 쿡을 1RTKO로 제압한 뒤 체중고를 고려해 라이트급으로 월장하더니 2관왕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공석이 된 타이틀은 제2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로 불리웠던 미국의 <에드리언 브로너>가 비센테 로드리게스를 3R만에 요절내고 등극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컴비블로우와 빠른 스피드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던 무패의 브로너는 메이웨더를 연상시키는 숄더블록과 높은 가드로 난공불락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일약 차세대 선두주자로 떠올랐는데 불과 2차방어전에서 체중오버로 타이틀을 박탈당한 뒤 라이트급으로 월장해 이 체급에서 활약한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브로너가 떠난 자리에는 전임 <로만 마르티네스>가 미구엘 벨트란 주니어를 간발의 차이로 물리치고 등극했다.
재임에 성공한 마르티네스는 여전히 후반체력 부실로 인해 두 번의 방어전을 힘겹게 버텨내더니 3차방어전에서 페더급에서 월장해 온 <마이키 가르시아>에게 8R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냉정하고 침착한 경기운영이 돋보이는 가르시아는 뛰어난 복싱감각과 강력한 펀치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생각보다 부실해보이는 내구력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주니어체급 중 가장 먼저 세계타이틀전의 문을 열었던 이 체급은 한때의 승부조작설로 인해 불과 13년만에 소멸되는 비운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1959년 변화된 시류를 타고 재건된 이래 인기체급인 페더급과 라이트급의 가교역할을 하며 수많은 명복서를 배출해 전세계 복싱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다체급 석권이 유행하면서 그저 지나가는 체급 정도로 인식되어 더 이상 슈퍼스타나 롱런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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