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이 있듯,
이집트의 3대 미인(네페르티티, 클레오파트라, 아낙수나문)이 있다.
이집트 3대미녀 중 ' 네페르티티 ➡ 클레오파트라 ➡ 아낙수나문 ' 순으로 미인이였다고 한다.
아낙수나문.
아낙수나문은 실존인물.
아낙수나문의 실제 인물은 안 케스엔이라 한다.
안케스엔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이자 불운의 왕 투탕카멘의 후궁이였다.
왕궁의 이집트인들이 투탕카멘이 죽고 정권을 차지하자 위험을 느낀 아낙수나문이 적국인 히타이트의 왕비로 간다.
그러나 이 혼담은 깨지게 되고 안케스엔은 궁정관료와 결혼.
물론 안케스엔은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라고 하는 설도 있다.
역사속의 실존인물에서 이름을 따온것으로 유명한 투탕카멘의 왕비 이름이 아낙수나문 또는 앙케스나멘이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이름표기에 좀 문제가 있는게, 일단 나오는 알파벳은 Anck-Su-Namum.
이걸 읽으면 앙크-수-나문이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발음은 아낙수나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비디오 자막에는 아낙수나문이지만 영화관에서 개봉했을때나 TV 방영시에는 앙크 수나문이라고 나왔다.
동명이인인 투탄카멘의 왕비는 책에 따라선 안케세나문, 안케센아멘 등의 이름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같은 이름이다.
고대 이집트 문자에는 글 첫머리의 '아(A)' 등 일부를 제외하면 모음을 표시하는 기호가 없었다.
따라서 모음을 어떻게 넣어서 읽었는지는 전혀 알수 없으며,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서 집어넣는 모음이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모음은 순전히 상상할 수밖에 없으며, 같은 신의 이름이라도 사람에 따라 아몬, 아문, 아멘 등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읽어온 방법들이 전부 다 틀렸을수도 있다.).
앙크/안케/아낙/.. + 순/센 + 아몬/
아문/아멘 정도까지 오면 가능한 표기법의 숫자는 세어 보기도 귀찮을 정도로 많아진다.
※ 다른 자료.
기원전 3100년 메네스왕을 (Mnj) 시작으로 이집트 고대왕조 시작,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Alex-ander Ⅲ) 점령이 있을 때 까지 약 2,800년 동안 30개의 왕조, 약 150명의 파라오가 이집트 문명을 지배했다.
약 150여명의 파라오 중 가장 많이 아는 파라오는 아마 투탕카멘(Tutankhamun)이 아닐까 싶다.
투탕카멘 왕의 이름은 나라와 언어마다 발음과 철자가 다르기에 영어권ㅡ투탕카문 이라고 발음한다.
조금 더 아시는 분들은 람세스2세.
좀 더 아시는 분들은 쿠푸, 세티, 아멘호텝, 아크나튼 핫셉수트, 네페르티티 등등.
투탕카멘은 그 명성에 비해 사실 별로 한것도 없고 내새울 것도 없는 왕이다.
재위기간도 10년 밖에 안되게 짧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이유는 파라오 중에 유일하게 피라미드가 도둑에게 안 털린채 원형 그대로 발견이 되어 온갖 미술품과 파라오의 보물 그리고 미이라 등 왕에 대한 자료가 가장 많이 남은 파라오이다.
투탕카멘의 원래 이름은 투탕카튼 (Tutankhaten). 투탕카는 '살아있는 이' 란 뜻.
아튼은 (Aten) '태양의 동그란 모양.' 의미한다.
통합적으로 '살아있는 태양'이라는 뜻이다.
투탕카멘은 뭔가?
영어나 이집트어로는 투탕카문이라 한다.
그리스어로 투탕카멘.
이는 고대 이집트의 신 중에 아문(Amun)이 있다.
나중에 이집트의 테베와 힉소스가 합쳐지면서 태양신 라(Ra)와 합쳐져 '위대한 신 아문라(AmunRa)'가 된다.
투탕카멘(투탕카문)은 '살아있는 신 아문' 이 뜻이 됐다.
투탕카멘의 생애
투탕카멘은 이집트 18왕조의 아멘호텝 4세인 파라오 아크나튼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1333년, 그가 9살이되서 파라오 자리에 오르게 되고 투탕카멘의 엄마가 이집트의 위대한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 라는 말이 있는데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계모인 것이다.
투탕카멘의 형제
투탕카멘은 형제 자매 중 네페르티티의 딸인 앙케센파 아텐이라는 이복누나와 결혼.
이 당시에는 가족끼리 결혼 가능했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누나이자 마누라인 앙케센파아텐이 바로 아낙수나문이다.
투탕카멘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낙수나문의 기록 또한 많이 남아있다.
아낙수나문 생애
파라오 아멘호텝과 네페르티티 사이 6 자매 중 세번째로 태어났다.
13살에 이복동생 투탕카멘과 결혼.
또 다른 이야기중 투탕카멘과 결혼하기전 아빠인 아멘호탭과 먼저 결혼을 했었다라고.
아낙수나문과 투탕카멘은 어린 나이에 결혼 했고, 이후 10년동안 이집트를 지배했다.
아낙수나문 자매
위로 언니가 둘이 있는데 메리타텐과, 메케타텐(Meketaten) 그리고 아낙수나문.
공주 대접받으며 이집트의 정치와 종교의식에도 관여.
이 당시 이집트의 종교상태가 상당히 불안했다.
아낙수나문과 정치
투탕카멘의 공식 고문 아이 (Ay) 라는 바로 아낙수나문의 외할아버지.
아이라는 사람이 정치와 종교의식 등 어린 왕 투탕카멘을 등에 업고 이집트를 좌지우지 했다.
실직적인 왕인 듯.
그후 이집트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고, 투탕카멘과 아낙수나문은 아이를 두번이나 갖지만 유산 됐다.
기록에 따르면 투탕카멘이 19살 어느날, 갑자기 아낙수나문 혼자 두고 죽고 만다.
투탕카멘의 죽음에 암살을 당했느니 하마에게 물려 죽었느니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서 아이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아낙수나문의 기록 또한 이집트의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낙수나문 흔적
이집트의 룩소르(Luxor) 지역 외곽 왕가의 계곡에서 아낙수나문과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금반지와 팔지 목걸이가 발견이 됐다.
(추측일 뿐, 아직 연구 중)
왕가의 계곡
이집트 룩소르 지역 서쪽.
18대 왕조의 무덤이 몰려있는 계곡.
가설
투탕카멘이 죽은 후 아이와 아낙수나문이 결혼해 도망을 가지 않았나 하는 가설도 있지만 아이의 무덤이 발견됐고 거기에서 아낙수나문의 이름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투탕카멘이 죽은 후 아낙수나문도 바로 죽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고 있다.
아직 아낙수나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아낙수나문 무덤
투탕카멘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온갖 미술작품들은 이집트의 어느 파라오보다 더,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쿠푸왕 보다 더 많은 자료와 정보를 남겨줬고 그로써 화려하고 위대했던 이집트 문명을 공부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선물해 줬다.
투탕카멘의 저주 덕에 서양문명의 근원지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수 있게된 것이다.
Bonus!
투탕카멘과 함께 묻혀있던 아기 미이라 2구가 있었다.
2010년 2월에 이 아기 미라의 DNA를 검사, 투탕카멘의 자식으로 판명이 됐다.
하지만 아낙수나문에게서 얻은 자식인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아낙수나문의 미이라가 발견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 만약에 이 아이들이 아낙수나문의 DNA와 일치를 한다면 아낙수나문은 아크나튼의 딸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게 된다.
아기들의 DNA가 아크나튼고 일치하지 않다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것 아크나튼의 미이라라고 알고 있던 미이라는 아크나튼이 아닐 수 있게 되고 그럼 이집트의 역사를 다시 써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마 이 아기들은 투탕카멘의 다른 마누라의 아이들이 아닐까라고 짐작을 하고들 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투탕카멘은 마누라가 한명 뿐.
투탕카멘과 아낙수나문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내려주면서 심각하게 어려운 문제도 같이 줬다.
이집트의 3대 미인중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알아보자.
시대별로 미인이라 나열된 듯 하나 여자의 몸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거 자체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모를 이겨내가며 버텨왔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발명가 및 작가.
흔히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철학과 신학에 투자.
주요저서⇒ 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그녀의 대한 질문..!!
1. 그녀가 사회를 어떻게 바뀌었나?
2. 그녀가 이집트인들을 어떻게 도왔고 보살폈는가?
3. 그녀가 한 중요한 일들은?
4. 위의 일로인해 이집트의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나?
5. 그녀의 죽음의 이유?
6. 그녀가 죽은 후의 이집트는?
7. 당시 이집트의 문화가 지금의 사회에 어떤 영향은?
8. 그녀가 이집트의 문화에 끼친 좋은점들은?
9. 위와 동일하며 나쁜점들은?
7세 필로파토르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이다.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딸)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의 여성 인명.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네우스의 첫번째 아내나 칼리돈의 영웅 멜레아그로스의 아내로서의 인명이 첫 시작이며, 신화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클레오파트라들이 있었으며, 마케도니아 왕조들, 그 가운데서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7세)일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이다.
제정 로마의 창세 신화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 7세.
요부의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그녀지만 여러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지성과 뛰어난 외교 수완, 그리고 정열을 가진 여인이었다.
생애
기원전 69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부왕이 죽은 뒤(기원전 51년) 18살에 15세가 된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재위: 기원전 51~47년)와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 기반인 그리스계의 외면으로 자리에서 일시 물러났다.
기원전 48년 10월 클레오파트라 7세는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협상하였다.
다시 파라오 자리에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물리친 후 정치에 몰두하였다.
기원전 47년 3월 27일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는 이후 2주일 동안 클레오파트라와 지낸 뒤 이집트를 떠났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카이사리온이 실제로 카이사르의 아들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에는 기원전 42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협동하였으며 3년 후 결혼하였다.
결혼 후 그녀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권력투쟁을 경제적으로 도운 대가로 페니키아, 유다등의 쓸모 있는 영토를 할양받아 확장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와의 삼두정치가 깨지자 클레오파트라 7세는 BC 31년 9월 2일 명분상 자신에게 선전 포고한 옥타비아누스에 대항하여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결행했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 이집트 여인으로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했다.
뱀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놓고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발표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뱀에 의한 자살, 독가스에 의한 자살, 타살, 에이즈(AIDS) 감염에 의한 병사(病死) 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배경(클레오파트라 7세 시대의 이집트)
기원전 3천년부터 이집트의 왕은 신으로 여졌다.
기원전 4세기초반 이집트는 신정체제에서 그리스인에 의한 왕정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집트를 통치하게 된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도 또한 아몬 신의 제사에 의해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계승자로서 이집트 왕이 된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도 이집트국민들의 신이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된 후 1세기 동안 이집트는 모든면에서 일류국가로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 이집트 쇠퇴기에 접어들어 프톨레마이오스 11세 아우레테스의 실정으로 회복은 불가능.
지중해 아시아 전역 제패하려는 로마에 대항할 힘도 없었고, 형식적-독립국, 실질적-속국. 이집트는 일관되게 친 로마적 태도를 취했으므로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처럼 적대하는 일은 없었다.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와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 밑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가 시조이며, 시리아는 기원전 63년 로마에 의해 왕조가 없어지고 속주화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는 독립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로마의 동맹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기예와 교양(어린시절)
클레오파트라는 마케도니아의 왕가 많은 여자이름으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에 선 특히 애호.
클레오파트라 7세의 다른 이름(별명)은 필로파토르(Philopator)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신'이란 뜻.
필로파토르는 둘째딸, 클레오파트라 트류파이나란 언니가 있었다.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5세는 필로파토르를 낳은 기원전 69년 사망.
필로파토르란 이름으로 보아 어머니를 모르고 자란 그녀는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피리 부는 왕'이라는 별명처럼 플루트 불기를 좋아해 필로파토르는 노래, 춤 등의 기예에 어릴 때부터 익숙.
어린시절부터 높은 교양을 쌓고 있었던 셈이다.
또 마케도니아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집트의 문자와 말을 배운 영리한 여인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무했고 국민의 원성에 못이겨 쫓겨나듯이 로마로 망명.
언니 트류파이나는 알렉산드리아에 남아 왕위에 잠깐 올랐으나 필로파토르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평가
클레오파트라는 지식인인 블레즈 파스칼 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에도 옥타비아 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이집트 여인 취급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강대국 로마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녀의 진짜 모습은 미모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요녀가 아니라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리고자 한 여걸이었다는 관점이 있다.
가계
아버지 :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어머니 : 클레오파트라 5세,
2001에 의하면, 어머니가 클레오파트라 5세 트뤼파이나가 아닌 맴피스의 귀족 여성이라고 한다.
남동생 : 프톨레마이오스 13세 {남편이기도 함}
남동생 : 프톨레마이오스 14세
언니 : 베레니케 4세
여동생 : 아르시노에 4세
율리우스카이사르 { 정식 배우자는 아님 }
아들 :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들 :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
아들 :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딸 :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
아르시노에(Αρσινοη) : “남자의 마음을 가진 ”이라는 뜻.
아르카디아 지방 프소피스의 공주. 알페시보이아라고도 한다.
프소피스의 임금 페게우스의 딸.
아게노르, 프로노오스의 누이. 알크마이온의 아내.
알크마이온이 칼리로에와 결혼하자 분노한 그의 아버지가 알크마이온을 쫓아가 죽여버렸다.
오레스테스의 유모이다.
레우키포스의 딸.
아폴론과 관계하여 아스클레피오스를 낳았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미니아데스 가운데 한명.
아르시노에 1세.
BC 3세기초에 활동한 이집트의 왕비이다.
트라키아의 왕인 리시마코스의 딸로서 프톨 레마이오스 2세의 첫번째 왕비.
아르시노에 2세.
생전에 여신으로 섬겨졌던 최초의 여왕이었고, 베레니체 2세 는 나일강의 나라를 홀로 다스렸던 최초의 여왕이었으며, 아르시노에 3세 (Arsinoe III.) 역시 아르시노에 2세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남자형제와 결혼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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