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너클 시대가 저물고 퀸즈베리 룰이 세상에 빛을 보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프로복싱에 1884년 미들급을 필두로 고유의 8체급이 차례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0년 6월 27일 영국 런던의 귀족들이 드나들던 뉴펠리칸클럽에서 캐나다의 <조지 딕슨>이 4온스의 글러브를 끼고 영국의 눈크 월리스를 18R의 격투 끝에 KO로 제압해 화려한 밴텀급의 서막을 올렸다.
초창기 밴텀급 세계챔피언의 역사는 딕슨 이전에도 영국, 미국, 유럽 등지에서 서로 다른 독자적인 세계챔피언을 인정하고 있었고, 체급 구분도 모호했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겠지만 과거 다수의 사가들은 딕슨을 초대 세계챔피언으로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다만, 1990년대 들어 딕슨과 월리스 간의 시합을 밴텀급으로 구분한 것이 착오임을 주장하는 사가들이 등장한 이래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임을 밝혀둔다.
최초의 혼혈 흑인복서로서 리틀 초콜레이트로 불렸던 딕슨은 매끄러운 푸트웍과 화려한 디펜스를 갖춘 하드펀처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플라이급 중량으로 20여년 간 8백회가 넘는 시합을 치렀는데 놀랍게도 어떤때는 1주일에 15번이나 시합을 벌일 정도로 경이적인 체력의 소유자였다.
이듬해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올라 이 체급의 타이틀은 공석이 되었지만 페더급에서 딕슨은 소위 파이오니아 시절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딕슨이 떠난 자리에는 <지미 배리>라는 작고 곱살한 미국인이 등장했는데 챔피언결정전에서 이탈리아의 카스퍼 레온을 28R에서 KO로 물리쳤다.
외모와 달리 올드타이머 중 최강자의 한사람으로 평가받을 만큼 대단한 화력을 지녔던 배리는 데뷔이래 9년여간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은퇴할 만큼 무적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배리의 하이라이트는 1897년 12월 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터 크루트와의 네 번째 방어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크루트는 20R에 KO되면서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며칠 뒤 사망함으로써 끊임없이 이어지는 링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다.
배리는 도합 여섯번의 방어에 성공한 뒤 은퇴했다.
3대 챔피언에는 테러블이라는 애칭의 원조인 미국의 <테리 맥거번>이 퀸즈베리 룰에 따라 거행된 첫 세계타이틀전에서 영국이 인정해 온 세계챔피언 페들라 팔머를 불과 75초만에 때려 눕히고 등극했다.
'브룩클린의 공포'로도 불리운 맥거번은 마치 회오리 바람을 연상케하는 엄청난 연타를 가지고 있어 한번 걸려든 상대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언제 어디서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였지만 체중조절이 쉽지 않자 곧바로 페더급으로 전향해 조지 딕슨을 8R TKO로 무찌르고 2체급을 석권했다.
맥거번의 뒤를 이은 미국의 <해리 해리스> 역시 페들라 팔머를 15R판정으로 무너뜨리고 네 번째 세계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렸다.
비교적 장신이었던 해리스는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큰 키 때문에 더 이상 체중을 맞추지 못해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없이 1년만에 타이틀을 공석으로 남겼다.
다음으로 미국의 <해리 포브스>가 동국의 대니 도거티를 2R KO로 잡아내고 새 챔피언이 되었다.
빠르고 공격적인 복싱을 선호했던 포브스는 다섯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며 모처럼 이 체급에 활력을 불어 넣었으나 한번 싸워 이긴적이 있는 미국의 <프랭키 닐>에게 복수를 당하며 2R에서 세 번 다운을 당한 끝에 카운트아웃되었다.
초창기 이 체급 최고의 하드펀처로 알려진 닐은 포브스와의 1차전에서 억울한 레퍼리스톱패를 극복하고 챔피언에 올랐지만 두 번째 방어전에서 영국의 <조 보우커>에게 20R판정패를 당해 단명하고 말았다.
런던의 유명한 내셔널 스포팅 클럽에서 자주 경기에 나서며 자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보우커는 영연방 챔피언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첫 방어에 성공한 후 체중조절이 불가능함을 느끼고 페더급으로 옮겨 갔다.
그 뒤 이 체급의 세계타이틀이 영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80년이 넘는 긴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1905년 10월 20일 단신인 미국의 <지미 월쉬>가 영국의 디거 스탠리를 15R판정으로 물리치고 보우커의 뒤를 이었으나 월쉬 또한 밴텀급에는 관심이 없었고 페더급 정복을 위해 미련없이 월장해 버렸다.
그러나 페더급의 맹주 에이브 아텔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밴텀급으로 돌아와 무주공산의 세계챔피언을 자처했고, 월쉬를 꺽은 지미 리건도 스스로 세계챔피언임을 주장했지만 영국에서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디거 스탠리만을 세계챔피언으로 인정해 모두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이 모두 인정하는 세계챔피언 계보는 1909년 6월 19일 전임 프랭키 닐을 18RKO로 물리친 미국의 <몬테 아텔>로 이어졌는데 당시 페더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에이브 아텔과 최초의 형제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겼다.
동국의 <프랭키 콘리>와 벌인 사실상의 첫 방어전에서 무려 42R를 싸운 뒤 레퍼리 스톱을 당해 형인 에이브가 21차방어에 성공하며 장수한 데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탄탄한 체구를 지녀 체력전에 강했던 콘리 역시 첫 방어전에서 <조니 쿨론>의 빠른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해 1년만에 왕좌에서 내려왔다.
152cm의 단신인 쿨론은 캐나다 출신으로 지능적이다 못해 교활한 복싱을 구사했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빠른 핸드스피드를 자랑했다.
이 사이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샤를르 르두를 세계챔피언으로 내세웠고 유럽의 IBU에서는 영국의 에디 캄피를 세계챔피언으로 인정해 극도로 혼란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덴마크출신의 강타자 <키드 윌리엄스>가 샤를르 르두와 에디 캄피를 모조리 때려 잡으면서 이 체급은 통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어그레시브한 공격형 파이터였던 윌리엄스는 세 번째 방어전에 나선 쿨론을 3R만에 박살내고 마침내 이 체급의 세계타이틀을 통일시키는 대업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윌리엄스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윌리엄스에 의해 근 8년여만에 통일된 밴텀급은 초창기 혼란스러웠던 과거를 뒤로 한 채 비로소 제대로 된 계보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챔피언에 오른 뒤 방어전마다 연거푸 무승부를 기록하며 약세를 보이더니 미국의 <피트 허먼>과의 재전에서 두 번이나 다운을 당하는 졸전속에 20R판정패를 당해 3년여의 치세를 마감하고 말았다.
펀치의 정확도면에서 손꼽히는 강타자였던 허먼은 체급을 넘나들며 장기전에도 능했지만 너무 많은 경기를 치른 탓에 두 번째 방어전에서 동국의 <조 린치>에게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던 린치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레프트잽으로부터 시작되는 컴비네이션에 일가견을 갖고 있어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7개월만에 <피트 허먼>에게 설욕을 당해 나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집념의 승부사답게 투타임 챔피언에 오른 허먼은 급격히 시력이 나빠지면서 불과 두달만에 미국의 <조니 버프>에게 타이틀을 넘겼고 1년 뒤 완전히 실명해 은퇴하고 말았다.
그의 시력상실은 스스로 자랑했던 거친 경기운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 이민 2세로서 플라이급에서 활약했던 버프는 활화산같은 파이팅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두 번째 방어전에서 전임 <조 린치>에게 14R만에 무릎을 꿇어 단명했다.
재임에 성공한 린치는 1921년 출범한 <NBA>의 지시에 따라 미지트 스미스를 꺽고 초대챔피언으로 인정받았지만 이로인해 <NYSAC>로부터는 오히려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NYSAC는 린치에게 승리한 바 있는 미국의 조 버먼에게 일단 타이틀을 수여했으나 버먼이 다음날 뉴욕출신의 숨은 실력자 <에이브 골드스타인>에게 패배하자 이를 부인해버려 골드스타인이 초대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체급의 복수 챔피언시대는 1924년 3월 21일 골드스타인이 린치를 손쉽게 따돌리면서 타이틀이 단일화되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유태인계로서 액티브하면서도 정교한 모습을 보여준 골드스타인은 두차례의 방어전을 통해 안정된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브룩클린 출신의 난폭자 <에디 마틴>의 거친 대쉬를 견디지 못하고 타이틀을 양도하고 말았다.
마틴은 챔피언에 오른 뒤 논타이틀전에서 연패를 거듭하더니 첫 방어전에서 <찰리 필 로센버그>에게 15R판정으로 패해 단명했다.
데뷔 초기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경기력이 쌓이면서 의외의 수훈을 세운 로센버그는 날카로운 잽과 위력적인 어퍼컷을 장전하고 있었고 은퇴할 때까지 단 한차례의 다운도 허용한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턱을 소유했다.
두 번째 방어전에서 부시 그레이엄에게 판정으로 이겼으나 감량실패로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왕좌가 공석이 되자 <NBA>는 <찰스 버드 테일러>와 나중에 트리플크라운이 되는 토니 칸조네리와의 챔피언결정전을 갖게 해 1차전 무승부에 이어 2차전에서 승리한 테일러를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링 위에서 2명의 목숨을 빼앗아갈 만큼 난폭한 금발의 파이터 테일러는 강력한 오른손훅과 타고난 스태미나를 자랑했지만 체중문제로 곧바로 타이틀을 반납해 아쉬움을 주었다.
<NYSAC>는 챔피언결정전 출전자로 플라이급 챔피언 이지 슈워츠와 <부시 그레이엄>을 지명했고, 테일러의 반납으로 다시 공석이 된 <NBA>도 그대로 챔피언결정전으로 인정해 둘 간의 대결은 왕좌 통일전으로 치러졌다.
초반에는 슈워츠가 경쾌하게 출발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력에서 앞선 그레이엄이 후반에 녹초가 된 슈워츠에게 다운까지 빼앗아 내면서 무난하게 승리했다.
그러나 그레이엄도 페더급으로 체급을 올려 타이틀을 다시 공석으로 만들었다.
초창기 밴텀급은 영국과 미국이 독자적인 세계챔피언을 인정하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데다가 지미 배리와 테리 맥거번 이후로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것처럼 서로 타이틀을 주고 받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챔피언으로 인정받더라도 인기 체급인 페더급으로 전향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려 후발주자인 플라이급보다 못한 대접을 감수해야만 했다.
1929년 6월 18일 이 체급은 복싱의 기본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굴지의 세계챔피언을 배출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중남미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파나마의 <알 브라운>이다.
밴텀급에서는 이례적인 장신으로서 키가 180cm에 가까웠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뛰어난 기교와 탄력있는 푸트웍, 수준높은 디펜스를 선보여 상당히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심지어는 브라운의 영향을 받아 유럽 복싱이 지금의 골격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였다.
파나마를 떠나 복싱의 메카인 뉴욕에서 실력을 키워 왔고 긴 리치의 레프트를 이용해 상대를 견제하고 유연한 허리를 앞서운 섬세하고도 매력적인 강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NYSAC> 챔피언결정전에서 스페인의 그레고리오 비달을 완벽하게 제압해 왕좌에 오른 다음 이듬해 조니 에릭슨을 잡고 <NBA>타이틀을 따낸 뒤 외젠 화트를 꺽고 <IBU>타이틀 마저 흡수해버려 난세를 통일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싸움식 복싱과는 거리가 먼 세련된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했던 브라운은 인종차별이 적은 프랑스 파리를 주전장으로 5년간 10차례나 타이틀을 지켜냈다. 그러나 NBA와 NYSAC는 1934년 5월 브라운이 미국의 링에 오르길 기피하며 지명전 상대인 로돌포 베이비 카사노바와의 대전계약을 끝내 거부하자 타이틀 박탈을 선언했고, 어느덧 파리의 밤문화에 취해버린 브라운은 IBU 타이틀마저 스페인의 발타사 상칠리에게 잃고 말았다.
3년 뒤 세계적인 시인 장 콕토의 권유로 재기해 상칠리로부터 타이틀을 탈환했지만 미국 중심의 프로복싱계는 더 이상 그를 세계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1년간 통산 123승(55KO)18패10무의 전적을 기록하고 은퇴한 뒤로는 화려한 챔피언시절과 달리 마약과 알콜중독에 빠져 뉴욕의 할렘가를 전전하다가 1951년 페결핵으로 쓸쓸히 사망했다.
브라운 이후 비로소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이 체급은 비야흐르 물고 물리는 혈투속에 페더급이나 라이트급 못지 않은 챔피언쟁탈전을 벌여 더욱 더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는데 그 중심에는 푸에르토리코 복싱의 선구자인 <식스토 에스코바>가 있었다.
1934년 6월 26일 열린 로돌포 베이비 카사노바와의 <NBA>타이틀 챔피언결정전에서 에스코바는 투지를 앞세운 카사노바를 데리고 놀다 9R에서 그림같은 라이트어퍼컷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고 새 챔피언에 올랐다.
링위에서 언제나 사납고 터프했지만 이 체급이 낳은 명 테크니션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 당분간 에스코바의 천하가 지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3차방어전에서 미국의 복병인 <루 살리카>의 약은 복싱에 무너지며 실족해버려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다.
이 경기는 <NYSAC> 타이틀 챔피언결정전으로도 인정받아 살리카는 양대기구를 석권하게 됐다.
아마추어시절 골든글로브를 석권하고 1932년 LA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살리카는 우리나라의 독침주먹 서정권과도 싸워 이긴 적이 있는데 펀칭파워는 없었지만 잽의 활용이 많은 안정된 푸트웍으로 영리한 복싱을 구사했고 접근전에서도 비교적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 <식스토 에스코바>와의 리턴매치에서는 파워차이를 실감하며 타이틀을 되돌려줄 수 밖에 없었다.
왕좌 복귀에 성공한 에스코바는 곧바로 IBU 타이틀 홀더인 미국의 토니 마리노를 맞아 다섯 번이나 다운을 빼앗는 일방적인 경기 끝에 13RTKO로 꺽고 명실상부한 통일챔피언에 오르는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4차방어전에서 논타이틀전으로 싸워 두 번이나 패했던 미국의 젊은 도전자 <해리 제프라>와 배수의 진을 치고 타이틀까지 걸었으나 제프라의 힘찬 러싱을 막아내지 못해 또 다시 무관이 되었다.
날카로운 잽을 동반한 빠른 움직임을 통해 공격력을 극대화했던 제프라는 에스코바에게 유독 강한 면모를 과시했지만 5개월 뒤 저력을 발휘한 에스코바의 도전에 11R와 14R에 다운을 빼앗기며 <식스토 에스코바>의 재집권을 허용했다.
제프라는 나중에 페더급으로 전향한 뒤 NYSAC 타이틀을 차지해 2관왕이 되었다.
통산 3차례나 이 체급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한 에스코바는 점차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논타이틀전에서 연패를 당하기 일쑤였고 1차방어를 마친 뒤로는 체중조절마저 쉽지 않아 결국 1939년 10월 타이틀을 반납하고 1년뒤 영원히 링에서 멀어졌다.
에스코바가 링을 떠나자 <NBA>는 미국의 <조지 페이스>를 즉시 새로운 챔피언으로 내정했고, <NYSAC>는 페이스와 전임 챔피언 <루 살리카> 간의 챔피언결정전을 갖게 했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두 번째 대결에서는 살리카가 페이스를 크게 앞질러 왕좌를 통일시켰다.
재임에 성공한 살리카는 에스코바가 떠난 이 체급에서 한결 안정적인 모습으로 방어횟수를 늘려 갔으나 세월의 무게를 느낀 탓인지 5차방어전에서 멕시코혈통의 <마누엘 오르티스>에게 완패를 당해 왕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1940년대 밴텀급을 풍미한 오르티스는 아마추어시절부터 골든글러브 플라이급 우승자로서 그 명성이 높았고, 경량급으로서 최고의 테크닉과 스피드, 파워의 3박자를 겸비해 그야말로 기본기가 탄탄한 챔피언이었다.
5년간 15차례나 타이틀을 방어하면서 그 중 10번은 KO승을 거두어 무풍지대를 달렸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의 신예 <해롤드 데이드>에게 허를 찔려 뜻밖의 판정패를 당하는 실수를 범했다.
시카고 출신의 흑인복서인 데이드는 아마추어를 거치긴 했어도 스피드외에는 신통치 않은 실력이었으나 두달 뒤 열린 리턴매치에서도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선전을 펼쳤는데 관록의 <마누엘 오르티스> 앞에 근소한 차로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었다. 왕좌에 복귀한 오르티스는 여전히 왕성한 전투력을 자랑하며 4차례의 방어전을 더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정경기로 펼쳐진 5차방어전에서 물이 오른 <빅 토윌>에게 완패해 재위를 마감했다.
통산 19차방어의 위대한 업적과 함께 향후 멕시코 복싱이 세계정상에 올라서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불과 14전만에 거물 오르티스의 아성을 무너뜨려 신데렐라가 된 토윌은 5형제가 프로복서인 복싱가문 출신으로 아마추어시절 188승 2패의 믿어지지 않는 기록을 남겨 프로에서도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과격한 성품에 지칠줄 모르는 스피드와 싸이클론같은 연타를 앞세워 3명의 도전자를 가볍게 요리하며 링지의 표지모델에 등장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홈링에서 무패의 강타자 <지미 카루더스>의 전율적인 레프트훅을 맞고 139초만에 나가 떨어져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체급 최단시간 KO기록을 보유하게 된 카루더스는 사실상 호주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서 수준급의 펀치력과 테크닉을 갖춘 1급챔피언이었다.
토윌과의 리매치에서 10RKO승을 거둔 뒤 파피 골트와 참로엔 송키트라트를 차례로 연파해 안정된 왕좌를 유지했지만 돌연 은퇴를 발표해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카루더스의 빈자리에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복서 <로베르 코엔>이 태국 원정경기에서 송키트라트를 2-1의 판정으로 제압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유대계인 코엔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실속있는 경기운영으로 승리를 챙기는 스타일이었는데 유럽중심의 EBU와 밀착하며 <NBA>의 지명전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그 뒤 <NYSAC> 타이틀 2차방어전에서 이탈리아의 <마리오 다가타>에게 6RTKO패를 당해 이래저래 민망한 처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체급의 타이틀은 10여년만에 다시 둘로 쪼개지며 복수의 챔피언을 갖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학창시절 놀림을 받으며 성장했던 다가타는 아마추어복싱을 시작하면서 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복서였지만 불과 첫 방어전에서 프랑스의 <알퐁스 알리미>에게 판정으로 패해 단명하고 말았다.
알리미는 코엔과 마찬가지로 알제리 출신의 유대인이었는데 비록 다가타와의 경기에서는 그의 장애에 편승해 억지로 타이틀을 빼앗았지만 리틀 테러로 불리울만큼 일발필도의 강타를 소유했다.
한편, 코엔의 타이틀을 박탈한 <NBA>는 지명도전자격을 갖추었던 멕시코의 강타자 <라울 라톤 마시아스>에게 기회를 주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송키트라트를 11RKO로 때려 잡자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아마추어때 올림픽대표로 출전했고 다부진 체격에 매경기 화끈한 공격을 펼쳐 자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마시아스는 타이틀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레오 에스피노사와 도미 우르수와를 연이어 KO로 잡아내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양대 프로복싱의 중심인 유럽과 북중미를 대표하는 두명의 챔피언이 탄생하자 자연스럽게 왕좌통일전이 추진되었고 마침내 1957년 11월 6일 LA에서 알리미와 마시아스가 <NBA>와 <NYSAC>타이틀을 걸고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강타자 간의 대결이어서 일반적으로 타격전을 예상했으나 스피드가 좋은 알리미가 관중들의 야유를 받을만큼 지능적인 아웃복싱으로 마시아스를 압도해 <알퐁스 알리미>가 2-1의 판정으로 천하통일을 이루었다.
하지만 20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알리미는 마시아스의 복수를 벼르던 멕시코의 강타자 <조 베세라>의 양훅을 맞고 8R만에 고꾸라지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근력있는 힘의 복싱으로 살인적인 주먹을 휘둘러온 베세라는 왕좌에 오른 직후 가진 논타이틀전에서도 왈트 잉그램을 숨지게 할 만큼 공포스러운 존재였는데 알리미와의 재전에서 역전 9RKO승을 거둔 뒤 일본의 신성 요네쿠라 겐지를 물리치며 2차방어에 성공해 롱런이 점쳐졌다.
하지만 별볼일없던 동국의 엘로이 산체스에게 논타이틀전에서 8RKO패를 당하자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베세라는 24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글러브를 벗어 팬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다.
싸움닭의 이름을 빌어 만든 이 체급은 알 브라운 이후 30여년간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명챔피언을 배출하며 마치 투계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치열한 경기를 펼쳐 점차 복싱팬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특히, 파나마 출신인 알 브라운과 멕시코출신인 식스토 에스코바, 마누엘 오르티스같은 명인들의 등장은 향후 중남미복싱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골든 밴텀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했다.
전임 조 베세라를 은퇴로 몰고간 엘로이 산체스를 6R에 넉아웃시키고 새로운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한 브라질의 <에델 조프레>는 철벽수비를 자랑하는 강타자로서 공수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명품중의 명품이었다.
손이 많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펀치 자체가 무거운데다가 한발 한발 높은 타점을 자랑했고 허리아래를 축으로 체중을 실어 날리는 어퍼컷은 매우 위력적이었다.
선제공격보다는 단단한 가드를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확인한 다음에 빠르고 날카로운 좌우컴비네이션으로 허점을 정확히 찌름으로써 KO의 돌파구를 열었다.
특히, 좁은 거리에서 날리는 숏펀치와 레프트펀치의 다양한 활용은 이 체급의 스타일을 새롭게 정립시켜 후배 챔피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KO를 만들기보다는 기회가 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찬스가 오면 가차없이 맹공을 퍼붓는 스타일로서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복싱의 완성도면에서 후대의 멕시칸시리즈보다 뛰어났다.
홈과 적지를 오가며 하나같이 강력했던 도전자 8명을 모조리 KO로 누이는 걸작을 만들었고, 5차방어전에서는 로프가의 마술사로 알려진 무관의 제왕 조 메델을 6RKO로 제압하면서 ‘황금의 밴텀’이라는 최초의 칭호를 받았다.
비록 9차방어전에서 맹렬한 파이팅을 앞세운 일본의 <파이팅 하라다>에게 적지에서 2-1의 판정으로 패해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지만 이 체급의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파이터였다.
2관왕에 오르며 조프레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하라다는 일본의 올타임 넘버원으로 평가받을만큼 일본복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지저분한 스타일이었지만 끊임없는 러싱파이팅으로 언제나 링위에서 당당한 전투를 펼쳤다.
조프레와의 리매치를 포함해 4차례의 방어전 상대가 모두 톱클래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성을 무시하는 초근접전으로 무력화시켜 간단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교묘한 테크닉을 소유한 호주출신의 <라이오넬 로즈>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무관이 되었다.
호주의 원주민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챔피언에 오른 로즈는 선이 가는 복싱을 구사하면서도 타격전을 마다하지 않았고 웬만해선 그의 퇴로를 차단할 수 없을 정도로 인-아웃이 빨랐다.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추초 카스티요에게 다운을 당하며 억지로 타이틀을 방어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급기야 4차방어전에서 연전 연KO승을 구가하던 희대의 괴물 멕시코의 <루벤 올리바레스>에게 경쾌한 발놀림을 차단당한 채 필살의 레프트훅을 얻어 맞고 5R만에 혼절했다.
세계도전 당시 52승(51KO)1무를 기록하며 미스터 넉아웃으로 불리웠던 올리바레스는 파괴적인 멕시칸시리즈의 시발점으로서 이미 살바토레 브루니나 조 메델같은 당대의 일류들을 제압하며 미래의 세계챔피언으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촌뜨기같은 외모에 선천적인 싸움꾼이었지만 일단 링위로 올라가면 정교하고 강력한 펀치로 상대를 철저히 부숴버리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165cm의 다부진 체구에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 내내 숨쉴 틈 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저돌적인 인파이팅이 압권이었고,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엄청난 하드펀치의 소유자였다.
신이 내린 펀치력을 앞세워 아래 위로 이어지는 레프트더블펀치와 상대의 혼을 빼놓는 호쾌한 좌우훅 그리고 정확히 후려치는 가공할 보디샷까지 장착하고 있었던 전성기시절의 올리바레스는 '괴물'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챔피언에 오른 올리바레스는 게으름과 오만에 빠지며 일순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차방어전에서 동국의 <추초 카스티요>에게 2R에 다운을 당하며 어렵게 판정으로 타이틀을 지켜낸 뒤 리매치에서 1R부터 버팅으로 피를 흘리며 고전을 면치 못해 결국 14R에 레퍼리스톱을 당하고 말았다.
경기 후 올리바레스는 분노했지만 눈부상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판정은 카스티요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당대에 올리바레스의 좋은 라이벌이 되었던 카스티요는 타점높은 스트레이트를 보유한 깨끗한 스타일의 아웃복서였지만 상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수의 면모도 갖고 있었다.
반년 뒤 올리바레스와의 세 번째 대결에서 6R에 선제다운을 빼앗아 천적임을 과시했으나 올리바레스의 거칠고 사나운 반격에 대차의 판정으로 패해 타이틀을 돌려 주었다.
재집권에 성공한 <루벤 올리바레스>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강타를 앞세워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했지만 또 다시 만심하여 3차방어전에서 친구인 동국의 <라파엘 에레라>에게 연습부족과 전술부재로 고전하다가 8R에 통렬한 오른손훅을 맞고 캔버스에 쓰러져 생애 첫 텐카운트를 듣고 말았다.
이 때부터 KO왕은 KO로 무너진다는 복싱계의 속설이 통용되기 시작했고, 후대의 경량급 KO왕 카를로스 사라테나 윌프레도 고메스도 비켜갈 수 없었다.
이후 페더급으로 내몰린 올리바레스는 WBA와 WBC를 번갈아 가며 두차례 세계챔피언에 오르지만 이미 예전의 괴물성을 잃어 버린 탓에 모두 단명으로 물러 났다.
루벤 올리바레스를 KO시킨 사나이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에레라는 잡초의 사나이로도 불릴만큼 가시밭길을 걸어 왔지만 절차탁마해서 실력을 키운 뒤 레프트훅을 주무기로 다이나믹한 파이팅을 선보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서스펜스를 느끼게 했다.
적지 파나마에서 발빠른 주자 <엔리케 핀더>에게 실수를 범해 겨우 1차방어에 실패했으나 올리바레스를 상대로 재기에 성공한 뒤 후일 한번 더 기회를 잡게 된다.
전형적인 아웃복서였던 핀더는 스피드가 빠르고 펀치의 정확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었지만 취약한 내구력때문에 불안한 왕좌를 지켜야 했다.
WBC로부터 톱랭커인 로돌포 마르티네스와의 대전 지시를 어겨 타이틀을 박탈당한 뒤 <WBA>만 인정한 가운데 첫 방어전을 가졌으나 멕시코의 또 다른 강타자 <로메오 아나야>의 전율적인 레프트훅을 맞고 3R만에 실신해 홈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로 인해 이 체급의 타이틀은 또 다시 WBA와 WBC로 갈라지며 여태까지 복수의 세계챔피언을 받들어야 했다.
라카돈족 원주민출신인 아나야도 일발파워를 장전한 슬러거였지만 비교적 공격루트가 단조롭고 상체의 움직임이 뻣뻣해 상대에게 타점을 허용하는 일이 잦았다.
WBA의 왕좌통일전에 대한 권고를 뿌리치고 적지에서 펼친 3차방어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놀드 테일러>를 맞아 8R에 세 번 다운을 빼앗아 낙승할 줄 알았으나 롱카운트에 살아난 테일러에게 14R에서 라이트펀치를 정통으로 얻어 맞아 역전패하고 말았다.
럭키가이 테일러는 장신의 유럽계 백인으로서 자국에서는 밴텀급과 페더급, 라이트급을 오르내리며 내셔널챔피언을 지내 괴물로 통했는데 장기인 라이트스트레이트 외에 그다지 눈에 띄는 실력은 아니었다.
8개월만에 나선 첫 방어전에서 어렵게 따낸 챔피언벨트를 지키기 위해 만만하게 보고 골랐던 우리나라의 <홍수환>을 맞아 1R부터 캔버스를 허우적대더니 도합 4번의 다운을 빼앗긴 채 완패해 과분한 왕좌에서 물러났다.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1974년에 풍부한 잠재력을 인정받아 링지로부터 ‘최고의 발전’ 부문에 선정되기도 한 홍수환은 우리나라 프로복싱의 대명사로 유연한 위빙과 더킹, 기본기가 완벽하게 구비된 3박자의 공격루트, 경기를 주도하는 승부근성과 쇼맨쉽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기질까지 갖고 있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다만, 빼어난 복싱실력에 비해 기복이 심한 약점도 가지고 있어 롱런과는 거리가 멀었다.
2차방어전에서 루벤 올리바레스의 재래로 불리우며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치던 약관의 멕시칸 <알폰소 사모라>에게 힘한번 못쓰고 4RKO로 패퇴했다.
단신에 귀여운 용모를 지닌 사모라는 아마추어때부터 파워가 실린 스피디한 좌우훅으로 거침없는 KO가도를 달렸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직후 프로에 데뷔해 KO율 100%의 슬러거로서 자국의 복싱팬들을 들끓게 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다이나믹한 러싱파이팅을 펼치며 무시무시한 KO펀치를 휘둘러 순풍에 돛단 듯 도전자를 연달아 침몰시켰는데 허리가 받쳐주며 날리는 레프트훅은 마치 쇠망치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1년반뒤 전임 홍수환과 적지에서 맞서 다소 고전했지만 폭풍같은 좌우연타로 후반에 레퍼리스톱승을 거두고 5차방어에 성공했다.
<WBC>는 1973년 4월 14일 이 체급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챔피언을 배출하게 됐는데 기회를 잡은 것은 지명도전자격을 갖고 있었던 멕시코의 로돌포 마르티네스와 전임 <라파엘 에레라>였다.
2년전 한차례 싸워 이긴 바 있던 에레라가 이번에도 노련한 공수전개로 마르티네스와 다운을 주고 받는 접전 끝에 12RTKO로 누르고 세계챔피언으로 되살아났다.
위험한 도전자였던 베니세 보코솔을 어렵게 넘어선 뒤 전 WBA챔피언 로메오 아나야의 도전을 가볍게 일축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와신상담 재기한 <로돌포 마르티네스>에게 경기시작부터 열세에 빠지더니 4R에 강력한 오른손펀치를 맞고 쓰러져 쓴잔을 들었다.
동문인 루벤 올리바레스에게 가려 있었던 마르티네스는 성실한 연습벌레로서 기교에 능한 강타자였고, 에레라를 만나기전까지는 KO가도를 달렸지만 너무 늦게 왕좌에 오른 탓에 이미 전성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관록에 의존하여 방어횟수를 늘려 갔으나 과거와 달리 얻어맞기도 잘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더니 4차방어전에서 동국의 KO아티스트 <카를로스 사라테>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희생되었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좀 더 나은 실적을 쌓을 수도 있었는데 동시대에 너무 많은 권웅들과 함께 링에 올랐던 것이 불운이었다.
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WBA챔피언 알폰소 사모라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면서 양자의 머리글자를 딴 ‘Z-보이스’의 하나로 불리웠던 사라테는 루벤 올리바레스를 비롯해 로돌포 마르티네스와 알폰소 사모라를 세계챔피언으로 길러낸 쿠요 에르난데스의 문하에서 실력을 키웠다.
빈민가에서 교도소를 드나들며 스트리트파이터로 자라나 싸움의 기본을 익힌 사라테는 프로복싱에 입문한 뒤 매경기 거짓말같은 KO퍼레이드를 기록해 일찌감치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172cm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잽과 스트레이트는 선제공격에 충분한 무기가 되었고, 탁월한 기본기와 견고한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컴비블로우와 강약을 조절하며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기계적인 연타는 가히 예술에 가까웠다.
거기에 올리바레스가 갖지 못했던 냉정한 경기운영능력까지 겸비한 사라테의 기량은 올리바레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폴 펠라리를 비롯한 3명이 도전장을 냈지만 모두 사라테의 강타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인기면에서는 아마추어출신으로서 화끈한 복싱을 구사했던 사모라가 우위에 있었지만 전문가의 평가는 사라테쪽이 높았다.
동문인 사모라가 1년전 에르난데스와의 불화 때문에 이미 마누엘 카리요의 밑으로 이적해 있었기 때문에 이제 Z-보이스간의 라이벌전은 시간문제처럼 여겨졌다.
‘Battle of Z-Boys'로 명명됐던 WBA챔피언 알폰소 사모라와 WBC챔피언 카를로스 사라테 간의 대결은 팬들이 열망하는 불패 챔피언간의 대결로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LA의 매치메이커 돈 프레이저가 전면에 나서 양자에게 12만5천불씩 주기로 하고 대전을 성사시켰으나 아쉽게도 통합타이틀전이 아닌 논타이틀전으로 치러졌다.
하늘아래 진정한 영웅은 단 한사람만 존재하는 법이어서 1977년 4월 23일 미국 잉글우드포럼의 1만4천여 관중앞에 마주 선 양웅의 모습은 비장했다.
28연승(28KO)의 사모라와 47연승(46KO)의 사라테의 대결은 예상대로 초반부터 처절한 타격전이 되었다.
사모라는 언제나처럼 살기등등한 양훅을 휘두르며 저돌적으로 대쉬했고, 냉정한 모습의 사라테는 가드를 철저히 하면서 사모라의 빈틈을 노려 연타를 날렸다.
3R종반 좌우연타에 이은 레프트훅을 보디에 박아 넣어 첫 다운을 빼앗은 사라테가 4R에서 사모라를 로프쪽으로 밀어 놓고 복부에서 안면으로 이어지는 레프트더블의 미학을 보여주며 완전히 침몰시켰다.
경량급 최고의 KO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공격일변도의 사모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고한 중심을 잃지 않았던 사라테에게 애초부터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로써 밴텀급에서 출발한 소위 경량급의 먹이사슬은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초까지 찐한 명승부를 펼쳐내며 경량급 복싱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에델 조프레의 등장과 함께 황금의 밴텀으로 불리우며 전세계 복싱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체급은 1960년대 후반 루벤 올리바레스가 철권통치를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격전장이 되었다.
특히 멕시칸 트로이카의 물고 물리는 대접전은 황금의 밴텀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숨막히는 레이스였고, 1970년대 중반에 출현한 Z-보이스는 이 체급에 대한 기대를 한껏 배가시키며 절정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는 밴텀급의 보고로서 끊임없이 명복서를 배출해 그야말로 화수분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체급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Z-보이스 간의 라이벌전에서 패자가 된 <WBA>챔피언 <알폰소 사모라>에게는 또 다시 불행이 찾아 왔다.
7개월만에 컴백한 6차방어전에서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해 왔던 챔피언벨트를 파나마의 복병 <호르헤 루한>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전반에는 특유의 파이팅으로 순조롭게 리드했으나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상대의 집요한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10R에 다운을 당한 채 코너쪽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흔드는 모습에서 예전의 씩씩함은 오간데 없고 측은함만이 느껴졌다.
경기전 10-1의 예상을 비웃으며 수훈을 세운 루한은 경쾌한 푸트웍과 민첩한 무브먼트가 장점으로서 장신에서 내뻗는 레프트스트레이트가 일품이고 지능적이고 디펜스에 강한 복싱스타일인 만큼 장기전에 강했다.
다섯차례의 방어전 모두 후반에 인상적인 모습으로 승부를 가르며 선배 엔리케 핀더와 달리 굳건하게 왕좌를 지켜냈으나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무패의 <훌리안 솔리스>에게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긴 리치에 날카로운 잽을 지닌 솔리스는 히트앤드런에 능한 전형적인 아웃복서였는데 불과 3개월만에 미국의 신진 기예 <제프 챈들러>에게 발을 붙잡히며 14RTKO로 패해 왕좌를 넘겨 주었다.
30년만에 이 체급의 타이틀을 미국에 안겨준 챈들러는 공・수・주의 3박자를 완벽하게 겸비한 테크니션으로 타고난 싸움꾼 기질에 오랜 밑바닥 생활을 통해 터득한 정확한 타이밍의 공격력과 감각적인 수비력을 갖춘 매력적인 복서였다.
2차방어전에서 무라다 에이지로에게 곤욕을 치룬 뒤 3차방어전부터 무라다와의 재전을 포함해 내리 4연속KO방어를 기록하며 황금의 밴텀다운 높은 아성을 구축했다.
논타이틀전에서 오스카 무니스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해 체면을 구겼지만 타이틀을 걸고 싸운 9차방어전에서 7RTKO로 깨끗이 설욕하고 월장을 계획하던 중 컨디션 난조속에 맞이한 미국의 <리차드 산도발>에게 최종회에 레퍼리스톱이 걸려 왕좌를 함락당했다.
곧바로 리매치를 노렸지만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의 위험을 경고한 의사의 권고에 따라 무관이 된지 5개월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챈들러의 은퇴 이후 WBA밴텀급은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 한 채 향후 20여년간 열강들의 치열한 타이틀 쟁탈전이 이어졌다.
형인 알베르토 산도발의 영향으로 일찍 복싱에 입문한 산도발은 모스크바올림픽 플라이급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미국이 올림픽을 보이코트하자 곧바로 프로에 뛰어 들어 파죽지세의 연속KO승으로 단번에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비록 상하반신의 밸런스가 맞지 않고 수비도 나쁜 공격일변도의 단조로운 전법을 갖고 있었지만 천부적인 파이터 기질과 왕성한 투지를 바탕으로 초전부터 과감한 대쉬를 통해 시합을 끝장내는 스타일이었다.
스피디한 더블잽과 뛰어난 연타능력을 보여주며 두 번의 방어전을 깨끗하게 막아내 이 체급의 미래가 될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체중문제가 일찍 찾아와 페더급으로 활동하더니 WBA의 타이틀 박탈 위협에 15개월만에 나선 3차방어전에서 무리한 감량때문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가비 카니잘레스>를 맞아 모두 다섯 번의 다운을 허용한 끝에 7RTKO패를 당했다.
경기 직후 의식을 잃어 뇌수술을 받고 소생했지만 더 이상 링에 오를 수는 없어서 영원히 링과 작별했다.
선이 굵은 파워복싱을 구사하는 카니잘레스는 파괴력과 터프니스는 갖추고 있으나 가드가 낮고 스텝이 무뎌서 아무래도 아웃복서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석달 뒤 베네수엘라의 <베르나르도 피냥고>에게 예상외의 졸전을 펼쳐 타이틀을 잃었다.
모스크바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서 장신에 체격이 큰 편이었던 피냥고는 펀치가 무겁고 적당히 발도 쓰는 복서파이터형이나 스피드가 처지는데다가 안면수비도 취약해 방어전마다 위험한 모습을 보이며 살얼음판을 걸었다.
감량고를 겪어 3차방어에 성공한 뒤 한 체급 위로 월장해 2관왕에 올랐다.
비어 있는 왕좌에는 당시 랭킹 6위에 불과했던 일본의 <무구루마 다쿠야>가 새치기로 결정전에 나서 파나마의 아사엘 모란을 5RKO로 잡고 새로운 챔피언에 올랐다.
파이팅 하라다 이래 거의 20여년만에 골든체급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하자 일본열도는 크게 환호했다.
한 주먹하는 하드펀처로서 상당한 파괴력을 자랑했지만 전체적으로 기량이 떨어지고 스피드가 느린 것이 단점이었다.
이로인해 불과 56일만에 지명도전자인 <박찬영>의 기총소사같은 연타 앞에 무릎을 꿇고 무관으로 전락했다.
파워보다는 기술에 의존하는 테크니션이었던 박찬영은 푸트웍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빠르게 공수를 연결시키는 패턴이 탁월했다.
적지에서 치룬 화려한 대관식과 달리 첫 방어전에서 무리한 감량과 작전실패로 이번에는 홈링에서 푸에르토리코의 강타자 <윌프레도 바스케스>에게 10RTKO패로 무너져 이 체급의 두터운 벽을 실감했다.
후일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게 되는 바스케스는 엄청난 위력의 하드펀치와 터프니스를 보유했지만 이 때만해도 스피드가 떨어지고 세기도 부족한 편이어서 롱런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무구루마와의 무승부 방어에 이어 2차방어전에서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에게 타이틀을 날려 이 체급에서는 별다른 실적을 쌓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일 감량의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Jr.페더급에 이어 페더급마저 정복해 3관왕에 오르는 전과를 올렸다.
동생 카오사이 갤럭시와 동시대에 세계챔피언을 지낸 쌍둥이 챔피언이었던 카오코 갤럭시는 무에타이출신의 사우스포 강타자로서로서 다소 경직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파워는 물론 수비도 제법 괜챦았다.
첫 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돌주먹 <문성길>과 난타전을 벌이던 중 우연한 버팅으로 경기가 중단돼 7R에 다소 억울한 부상판정패를 당했다.
한편, 알폰소 사모라를 제압하고 경량급 최고의 KO왕으로 입지를 굳힌 <WBC>챔피언 <카를로스 사라테>는 1977년 링지로부터 연간 최우수 복서로 인정받으며 거침없이 자신의 시대를 쌓아 나갔다.
8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한 뒤 감량고 때문에 상위클래스로 전향을 노렸지만 독감에 걸려 최악의 컨디션으로 만난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윌프레도 고메스에게 5RTKO로 패퇴하면서 빛을 잃기 시작했다.
10차방어전에서 동문의 스파링파트너였던 <루페 핀토르>를 맞아 4R에 다운을 빼앗으며 우세한 경기를 이끌었지만 2-1의 판정으로 타이틀을 강탈당하자 아예 링을 떠나 버렸다.
고메스전을 앞두고 불거진 매니저 쿠요 에르난데스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7년이나 지난 뒤 돌연 컴백해 두 번이나 WBC 슈퍼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끝내 2관왕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서히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핀토르는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헝그리파이터로서 푸트웍은 빠르지 않으나 레프트훅 일발 강타가 위력적이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터프했다.
암블록을 잘해 슬로우스타터로서 전반의 열세를 견딜 수 있었고 스태미나 안분을 통해 후반에 찬스가 오면 인정사정없이 몰아 붙였다.
기복이 심한 경기력때문에 첫 방어전을 앞둔 논타이틀전에서 느닷없이 KO패를 당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악평을 들었지만 냉혹한 전진공격으로 8차방어에 성공해 1980년대 초반 WBA의 제프 챈들러와 함께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3차방어전에서 영국의 조니 오웬을 사망케 해 살인펀처대열에 합류했고 저조한 컨디션으로도 승리를 일구어내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교통사고를 당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재수 끝에 WBC 슈퍼밴텀급을 석권해 2관왕에 올랐다.
사실상 멕시칸시리즈의 마지막 주자였던 핀토르마저 사라지자 그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미국의 <알베르토 다빌라>가 멕시코의 키코 베히네스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4번째 세계도전만에 염원하던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다.
단신에 푸트웍도 느렸지만 자신의 거리를 잘 알고 있어 함부로 인파이트하지 않는 대신 레프트가 걸리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컴비네이션을 폭발시켰다.
가드가 견고하고 겨드랑이를 꼭 붙이고 인사이드부터 연타하기 때문에 위력이 배가됐다.
빗속의 첫 방어전에서 엔리케 산체스를 11RTKO로 제압한 뒤 미구엘 로라와의 2차방어전을 앞두고 다친 등부상이 악화되어 1년 가까이 방어전에 나서지 못하자 WBC로부터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공석이 된 왕좌는 멕시코의 <다니엘 사라고사>가 차지했는데 프레디 잭슨의 강타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고의성 짙은 버팅을 당해 행운의 실격승을 거두었다.
그동안 멕시코가 배출했던 유수의 세계챔피언들에 비해 품격이 떨어졌지만 아마추어에서 다져진 빠른 발과 정확한 펀치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이때만 해도 아직은 덜 영글어서 석달 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콜롬비아의 기교파 <미구엘 로라>에게 세차례 다운을 당하며 대차의 판정으로 패했다.
곧바로 슈퍼밴텀급으로 월장해서 왕성한 전투력과 프로다운 근성을 보여주며 쓰리타임 챔피언으로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웰터급의 윌프레드 베니테스를 연상시킬만큼 현란한 개인기와 푸트웍을 앞세운 로라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탄탄한 수비를 자랑했고 예측불허의 송곳 주먹과 변화무쌍한 좌우컴비블로우는 롱런의 기반이 되었다.
첫 방어전에서 윌프레도 바스케스와 다운을 주고 받는 열전을 펼쳤고 2차방어전에서 알베르토 다빌라를 희롱한 뒤 3차방어전에서 2체급을 노리던 안토니오 아벨라마저 4R만에 격추시켜 안정된 챔피언으로 대접받았다.
3년간 통산 7차방어에 성공하며 자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으나 멕시코의 강타자 <라울 페레스>의 강력한 프레스를 견디지 못해 생애 첫 패배를 당하며 왕위를 넘겼다.
제3의 기구 <IBF>도 1984년 4월 15일 이 체급에 초대챔피언을 배출했는데 불과 넉달전에 Jr.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낙마했던 일본의 <싱가키 사토시>가 3체급을 뛰어 넘어 필리핀의 엘머 마갈라노를 꺽고 챔피언이 되었다.
꾸준히 손을 내는 스타일로서 일발파워도 갖추고 있지만 미덥지 못한 기량탓에 1년 뒤 2차방어전에서 호주의 <제프 페네크>에게 뭇매를 맞고 왕좌에서 내려 왔다.
당시 IBF타이틀의 신인도가 크게 낮기는 했지만 7전째인 페네크가 프로데뷔 6개월만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페네크는 야수성 짙은 쾌남아로서 지칠줄 모르는 연타가 전매특허였다.
실력파였던 제롬 커피와 다니엘 사라고사를 연달아 제압하고 3차방어전에서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스티브 맥그로리를 14RTKO로 물리쳐 올림픽의 한을 풀어낸 뒤 다체급 석권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했다.
후일 슈퍼밴텀급과 페더급을 정복하며 3관왕에 올라 호주복싱의 히어로가 되었다.
페네크가 떠나간 자리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콜롬비아의 미구엘 마투라나를 가볍게 제압한 미국의 <캘빈 시브룩스>가 들어 앉았다.
흑인 특유의 유연함이 묻어났던 시브룩스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유했지만 체급을 오르내리며 싸운 탓에 전적은 볼품이 없었다.
전임 페네크의 스파링파트너로 호주에 머물다가 프레디 잭슨을 2RKO로 물리치면서 일거에 운이 트였고 챔피언에 오른 뒤 저력을 발휘해 프랑스의 유망주 티에리 야곱을 10R 역전TKO로 잡아내는 등 세명의 도전자를 모조리 KO로 쓰러뜨렸다. 비록 가비 카니잘레스의 동생인 미제 전차 <올란도 카니잘레스>의 힘찬 돌진에 타이틀을 잃었지만 당시에는 싸우는 챔피언으로서 호평을 받았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어져 왔던 멕시칸시리즈의 퇴조 이후 파워보다 테크닉을 앞세운 중남미와 미국이 득세하면서 이 체급은 서서히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WBA타이틀은 한동안 아시아에서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 평가절하되는 수모를 겪었다.(杓)
프로데뷔 7전만에 황금체급을 정복한 <WBA>챔피언 <문성길>은 이미 아마추어때부터 세계최강으로 군림했던 돌주먹으로서 프로에 들어와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아직은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투박한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어도 지명도전자인 에드가 몬세라트를 세차례나 링바닥에 내팽개치며 7RTKO승을 거두었고, 고바야시 지아키의 도전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5R만에 가볍게 뿌리쳤다.
그러나 적진으로 들어가 싸운 3차방어전에서는 무더위때문에 경기전부터 지쳐버린 탓에 전임 <카오코 갤럭시>에게 다운까지 내주며 완패해 이 채급에서의 짧은 치세를 마감했다.
이후 한 체급을 내려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해 만개한 경량급 파워복싱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재임에 성공한 갤럭시는 공격일변도의 스타일에서 탈피해 문성길에게 치고 빠지는 약은 복싱을 구사할 정도로 노회한 모습을 보여줘 더 나은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석달 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루이시토 에스피노사>에게 1R 중반 귀를 얻어맞은 뒤 별다른 충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뒤로 쓰러지는 황당한 변을 당해 전혀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맞았다.
병원검진 결과 세반고리관이 손상을 입어 순간적으로 평형감각을 잃어 버렸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뇌진탕 증세까지 보이면서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행운의 왕좌에 오른 에스피노사는 비교적 장신에 스피드가 빠른데다가 가벼운 푸트웍과 긴리치에서 터지는 컴비네이션이 위력적이었고 가끔 변칙적인 복싱까지 구사해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두차례의 원정방어전을 가볍게 넘어선 뒤 모처럼 홈링에서 3차방어전에 나섰다가 WBO 초대챔피언 출신인 베네수엘라의 <이스라엘 콘트레라스>에게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5R에서 카운터블로우를 맞고 그대로 나가 떨어져 실망을 주었다.
페더급으로 월장한 뒤부터 체중고에서 벗어나면서 제 실력을 발휘해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터내셔널 파이터로서 빛을 발해 2관왕이 결코 행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메가톤급의 양훅을 소유한 콘트레라스는 Jr.밴텀급 시절 멋모르고 카오사이 갤럭시와 맞짱을 뜨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드펀처이면서도 레프트잽의 활용이 뛰어나고 반사신경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신예 <에디 쿠크>와 또 다시 정면대결을 펼친 끝에 5R에서 강렬한 레프트훅을 턱에 맞고 쓰러져 만년에 오른 왕좌에서 쉽게 물러났다.
사우스포로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파이팅을 구사했던 쿠크는 상대를 읽는 눈이 빨랐고 쇼트블로우가 주무기이면서도 자신의 거리에서 날리는 위력적인 레프트훅과 접근전시 터지는 어퍼컷을 통해 녹록치 않은 파워를 과시했다.
하지만 쿠크 역시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지 못해서 지명도전자였던 콜롬비아의 강타자 <호르헤 엘리세 훌리오>와 사투끝에 심판전원일치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마추어에서 서울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뒤 프로에 넘어와 파죽지세의 19연속KO승을 기록해 하드히터로 분류됐던 훌리오는 한때 복싱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중남미스타일의 진수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두 번의 방어전은 깔끔하게 처리했으나 3차방어전에서 경량급의 히트맨으로 정평이 나있었던 무패의 지명도전자 미국의 <주니어 존스>와 다운을 주고 받는 난타전속에 타이틀을 넘겼다.
나중에 WBO챔피언에도 등극해 투타임 챔피언이 되었지만 그 치세는 길지 못했다.
신체조건이나 복싱스타일이 웰터급의 토머스 헌스를 연상시켰던 존스는 아마추어에서 익힌 스피디한 레프트잽과 강렬한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괴롭히다가 라이트로 경기를 마무리짓는 스타일로 순발력이 뛰어난 챔피언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엘비스 알바레스를 셧아웃시켰으나 2차방어전에서 동국의 강타자 <존 마이클 존슨>에게 초반 카운터블로우를 허용해 다운을 당한 뒤 스피드가 떨어져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 체급 올려 롱런 중이던 WBO Jr.페더급 챔피언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에게 일격을 가하며 2관왕에 오르는 수훈을 세웠다.
무패 챔피언 미구엘 로라를 꺽고 멕시코의 자존심을 살린 <WBC>챔피언 <라울 페레스>는 180cm에 육박하는 장신의 젊은 기교파로서 경기운영이 교묘하고 승부욕이 강했다.
세계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가비 카니잘레스와 윌프레도 바스케스같은 전임 챔피언을 차례로 격파해 이미 세계챔피언 후보 0순위로 손꼽혔는데 옆구리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피디한 잽과 원투스트레이트의 위력이 상당했고 접근전에서 쇼트펀치에도 능했지만 멕시칸 특유의 타도본능이 결여돼 선배들의 영광을 잇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감량의 고통으로 한두차례를 빼고 매방어전마다 시원스러움이 없이 답답했으나 일곱차례의 방어에 성공해 왕좌교대극이 잦았던 WBA쪽과 달리 비교적 롱런했다.
8차방어전에서 벼룩같은 미국의 <그렉 리차드슨>의 발을 쫓지 못해 왕좌를 내준 뒤 루이스 멘도사를 꺽고 WBA Jr.페더급 챔피언에 올라 2관왕이 되었다.
아마추어 경험이 풍부한 리차드슨은 Jr.밴텀급부터 Jr.페더급까지 오르내리며 싸워 고무줄 체중으로 유명했는데 빠른 푸트웍과 날카로운 원투스트레이트로 지독한 파워부재를 커버했다.
전형적인 장신의 아웃복서로서 동물적인 감각과 직관적 본능에 충실했다.
2차방어전에서 굶주린 맹수처럼 거칠게 몰아붙인 일본의 신예 <다쓰요시 조이치로>에게 무수한 연타를 허용해 10R종료 후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8전만에 세계정상에 올라 자국의 최단전적 세계챔피언 기록을 갈아치우며 노챔피언국 일본에 세계챔피언벨트를 선사했던 다쓰요시는 비록 기술적인 완성도는 낮았지만 저돌적인 인파이팅과 화려한 쇼맨쉽을 통해 구름관중을 몰고 다녀 스타급 대우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파이팅이 좋고 핸드스피드가 빠르며 쭉쭉뻗는 스트레이트와 비장의 어퍼컷은 다쓰요시의 최대무기로 자신의 사정거리에 상대를 가둬 넣고 날리는 좌우연타는 매우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리차드슨과의 경기에서 입은 눈부상이 악화되어 장기간 링에 오르지 못하면서 상승세가 꺽여 버렸다.
이즈음 WBC는 잠정챔피언 제도를 신설해 챔피언이 부상 때문에 장기간 방어전이 불가능한 경우에 일종의 임시챔피언을 인정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펼쳐 냈는데 멕시코의 <빅토르 라바날레스>가 우리나라의 이용훈을 9R부상판정으로 물리치고 첫 수혜를 입었다.
이후 라바날레스는 두달 간격으로 방어전에 나서 WBC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1년만에 돌아온 진짜 챔피언 다쓰요시의 보디를 집중공략해 기어코 정상에 올랐다. 초기에는 볼품없는 전적을 기록했지만 경기경험이 많고 터프니스와 스태미나가 좋은데다가 궤적이 큰 양훅의 위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스피드가 떨어지고 공수분리가 뚜렷해 발이 빠른 상대에게 약점이 있었는데 2차방어전에서 스피드가 좋은 사우스포였던 우리나라의 <변정일>에게 그대로 약점을 잡히며 무릎을 꿇었다.
아마추어시절 서울올림픽에 출전해 최장시간 링점거 항의소동으로 불명예를 안았던 변정일은 프로전향 후 9전만에 세계정상에 올라 아마추어의 한을 깨끗이 풀어 버렸다.
기본기가 잘 갖춰진 테크니션으로서 박력있는 복싱은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연타가 좋았고 접근전에서 폭발하는 쇼트펀치와 예리한 카운터블로우가 강점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일본의 <야쿠시지 야쓰에이>를 맞아 적지에서 잘싸우고도 타이틀을 도둑맞는 바람에 평가가 절하된 챔피언 중 하나였다.
<IBF>쪽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제 전차 <올란도 카니잘레스>가 무려 6년씩이나 독주체제를 구축하면서 동시대의 WBA나 WBC 챔피언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탱크같이 단단한 몸집의 소유자로서 원펀치의 파괴력은 물론, 둔탁하고 힘이 넘치는 연타가 돋보였고 매력이 철철넘치는 러싱파이팅은 16차방어에 성공하는 대기록을 수립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3차방어전에서 영국의 빌리 하디에게 실족할 뻔 했으나 자신에게 1패를 안겨준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폴 곤살레스를 2R만에 요절낸 뒤 부쩍 힘을 내서 원정방어전을 마다않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그의 롱런에 대해 IBF의 부실함과 상대의 질이 낮아 가능했다는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꾸준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프로페셔널 파이터로 업그레이드되어 이 체급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챔피언으로 손색이 없었다.
타이틀을 반납하고 한 체급을 올려 WBA Jr.페더급 챔피언 윌프레도 바스케스에게 도전했으나 어느덧 황혼녁에 접어든 탓에 간발의 차로 물러서 2체급 석권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988년에 설립된 <WBO>는 베네수엘라의 <이스라엘 콘트레라스>를 초대챔피언으로 옹립하며 이 체급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갔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루피노를 1R에 작살내고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메이저기구 타이틀 도전을 위해 1차방어 후 미련없이 챔피언벨트를 반납해 버렸다.
전술한 바와 같이 1년 반만에 WBA챔피언 루이시토 에스피노사에게 도전해 소원하던 메이저기구 챔피언에 등극했다.
두 번째 챔피언결정전은 5년전에 WBA WBC 양대기구 챔피언이었던 <가비 카니잘레스>와 미구엘 로라가 맞붙어 관심을 모았는데 2R에서 선제다운을 빼앗긴 카니잘레스가 종반에 통렬한 레프트 카운터블로우로 로라를 침몰시키며 투타임챔피언에 올랐다.
이로써 카니잘레스는 IBF챔피언인 동생 올란도와 함께 형제가 동시에 같은 체급의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해 고향인 텍사스주 라레도의 자랑이 되었다. 하지만 플라이급에서 올라 온 영국의 검은독수리 <듀크 맥켄지>에게 불과 석달만에 완봉을 당해 이번에도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감량고에서 벗어난 맥켄지는 한결 가벼워진 움직임을 바탕으로 타점높은 고감도 펀치를 휘두르며 이 체급에서 정착하는 듯 했으나 3차방어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신예 <라파엘 델 바예>의 폭발적인 좌우훅을 맞고 116초만에 추락했다.
후일 한번 더 체급을 올려 기구의 난립 덕분에 WBO Jr.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해 3체급을 제패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빠른 발과 높은 가드로 수비가 안정적이었던 바예는 눈이 좋고 펀칭타이밍이 정확해 비교적 높은 KO율을 기록했는데 2차방어전에서 전 WBC챔피언 미구엘 로라를 은퇴시켜 버릴 정도로 장래가 촉망됐다.
그러나 한달만에 가나의 복병 <알프레드 코티>를 만나 초반에 입은 대미지를 극복하지 못해 타이틀을 잃었고, 4년 뒤 WBA Jr.페더급 도전실패 후 링을 떠나 기대보다 일찍 사라졌다.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체급은 스타 부재로 침체기를 맞이하며 과거의 명성에는 미치지는 못했지만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세계챔피언을 잇달아 배출해 전통의 체급답게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했다.
다만, 그동안 강세를 보여 왔던 멕시칸 파이터의 퇴조 속에 미국과 중남미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도 <WBA>타이틀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해 골든밴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기량이 좋은 주니어 존스를 격추시켜 신데렐라가 된 미국의 <존 마이클 존슨>은 푸트웍이 없고 유연성은 떨어져도 후려치는 라이트펀치의 위력이 뛰어나 ‘밤밤’으로 불리며 강타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과감하게 원정을 택한 첫 방어전에서 태국의 <다오룽 추바타나>에게 1R에 버팅으로 눈자위가 크게 찢어져 테크니컬 무승부가 선언되어야 했지만 레퍼리가 가격에 의한 부상으로 오판하는 바람에 TKO패 처리가 돼 어처구니 없게 타이틀을 날렸다.
데뷔초부터 우리나라 선수와 글러브를 자주 섞어 낯익은 복서였던 추바타나는 플라이급으로 출발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는데 라이트잽에 이은 레프트스트레이트가 주무기로 접근전은 물론 아웃복싱에도 능한 백전노장이었다.
가드를 높이 세운 웅크린 자세로 단단한 머리부터 밀고 들어오는 스타일때문에 상대선수는 늘 버팅을 조심해야 했다.
이 때문에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찝찝하게 승리한 뒤 3차방어전에서 자국의 <베라폴 사하프롬>에게 접전 끝에 판정으로 져서 타이틀을 넘겼다.
불과 4전만에 세계타이틀을 따낸 베라폴은 이미 무에타이 선수시절 라자담넌 스타디움에서 세 번 챔피언에 올랐던 사나이로 27살의 늦은 나이에 프로복싱으로 전향했지만 기술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직은 프로복싱 경험이 부족했는지 첫 방어전에서 가나의 <나나 코나두>를 맞아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2R에 코나두의 섬광같은 원펀치에 무너져 4개월만에 좌초해 버렸다.
하지만 절치부심해 온 베라폴은 3년반 뒤 WBC 챔피언으로 돌아와 이 체급의 롱런챔피언으로 거듭나게 된다.
문성길에게 밴텀급으로 쫓겨난 뒤 무려 5년만에 왕관을 다시 쓴 코나두는 감량고를 벗어난데다가 기본적으로 테크닉이 좋고 편치력도 한몫해서 놀기 좋아진 이 체급에서 충분히 통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상대의 펀치를 자주 허용하는 것이 흠이어서 전임 <다오룽 추바타나>의 레프트훅에 휘청거리다 첫 방어전에서 왕관을 빼앗겼다.
재임에 성공한 추바타나는 펠릭스 마차도에게 어려운 승부를 펼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전임 <나나 코나두>와 재회했다가 이번에는 무기력한 7RTKO패를 당해 투타임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통산 세 번째 챔피언에 오른 코나두 역시 2차방어전에서 Jr.밴텀급을 평정하고 올라온 <조니 타피아>의 힘찬 진군앞에 고배를 마셔 롱런과는 거리가 멀었다.
타피아는 체격조건이 좋고 힘이 넘치는 파이팅으로 이 체급에서도 기대를 모았지만 첫 방어전에서 뜻밖에도 동국의 <폴리 아얄라>와 시종일관 불꽃튀는 타격전을 벌인 끝에 근소한 차의 판정패를 당해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다.
이들의 경기는 링지로부터 1999년 최고의 경기로 뽑힐만큼 격렬했는데 양선수가 모두 공격적인 복싱을 선호해서 모처럼 전통의 밴텀급다운 스릴러를 선사했다.
기술이 단조롭고 펀치력은 떨어지나 왼손잡이로서 왕성한 전투력을 자랑했던 아얄라는 끊임없는 압박과 보디공격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스타일이었다.
후일 챔피언에 오르는 조니 브레달을 포함해 세명의 도전자를 물리친 뒤 WBA의 허락없이 마이너기구인 IBO 슈퍼밴텀급 타이틀전에 나섰다가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후임에는 회장국의 지원을 받아 잠정챔피언이 된 베네수엘라의 <에이디 모야>가 풍부한 아마추어 경험과 예리한 원투스트레이트를 앞세워 멕시코의 아단 바르가스를 11R에 KO시키고 새챔피언에 되었다.
하지만 적지로 뛰어든 덴마크 원정방어전에서 <조니 브레달>의 한박자 빠른 움직임에 맥을 못추고 9RKO패를 당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WBO Jr.밴텀급 타이틀을 버리고 월장했다가 그동안 이 체급의 높은 벽을 실감했던 브레달은 빠른 잽과 번개같은 원투스트레이트를 자랑하며 홈링에서 세차례의 방어전에 성공한 뒤 잦은 부상때문에 명예롭게 은퇴를 선택해 아쉬움을 주었다.
전임 변정일의 타이틀을 강탈한 <WBC>챔피언 <야쿠시지 아쓰에이>는 챔피언에 오른 뒤 부쩍 실력이 늘어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이 수준급에 이르렀고 스트레이트에 가까운 잽으로부터 시작되는 좌우컴비블로우와 어퍼컷이 위력을 발휘했다.
군입대로 훈련이 부족했던 변정일과의 리매치에서 5차례나 다운을 빼앗아 11RTKO승을 거둔 뒤 잠정챔피언 다쓰요시 조이치로마저 판정으로 제압해 왕좌를 공고히 했다.
5차방어전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인 북아일랜드의 <웨인 맥컬로우>에게 완패한 뒤 링을 떠났다.
올림픽에서 명트레이너 에디 퍼치를 만나 미국에서 프로데뷔한 맥컬로우는 리드미컬하지는 않으나 공수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언뜻보면 맹공만 펼치는 강타자처럼 보이지만 평균 이상의 디펜스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직선적인 움직임이 많고 접근전에서 밸런스가 흔들리는 것은 단점이었다.
조니 브레달과 호세 루이스 부에노의 도전을 뿌리친 뒤 체중고를 견디지 못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밴텀급으로 월장했다.
공석이 된 왕좌는 이미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태국의 <시리몽콜 싱마나삭>이 곧바로 승계해 행운을 누렸다.
어려서부터 무에타이선수로 뛰다가 17살때 프로복싱으로 전향해 3년만에 세계챔피언이 된 시리몽콜은 스태미나가 출중하고 거칠긴 하지만 제법 펀치력도 있어서 일찍이 대성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3차방어전에서 전임 빅토르 라바날레스를 원사이드한 판정으로 잡아내 국제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불굴의 파이터 <다쓰요시 조이치로>에게 집중적인 보디공격을 받고 7R에 무너져 아직은 설익었음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5년만에 타이틀을 탈환한 다쓰요시는 예전에 비해 안면수비가 엷어져 정타를 자주 허용했는데 2차방어전에서 강적 폴리 아얄라의 도전은 6R부상판정으로 운좋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3년반만에 돌아온 라자담난의 전사 <베라폴 사하프롬>에게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넉아웃돼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인고의 세월속에 16연승을 거두면서 한층 진지하고 강해져 있었던 베라폴은 경험이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늘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이끌며 자신의 복싱세계를 마음껏 펼쳐 나갔다.
예리한 레프트 리드펀치로 거리를 잡고 좌우스트레이트와 어퍼컷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으로서 매우 안정된 밸런스와 부드러운 어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눈이 좋고 뛰어난 반사신경을 갖추어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했고 상대를 사정거리 안에 가두는 솜씨도 탁월했다.
불교적인 계율에 의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완전히 장악하여 지독하리만큼 엄격했던 링안팎의 생활이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홈과 적지를 오가며 6차방어까지는 무소불위의 힘을 보여줬고 7차방어전에서 한번 상대했던 왼손잡이 복서 니시오카 도시아키에게 오른쪽눈자위가 커트되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쳐 무승부로 타이틀을 방어하는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니시오카와는 11차방어전에서도 무승부를 기록해 상대성이 좋지 않은 듯 했지만 5개월 뒤 4번째 조우해서는 과거보다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적지에서 완승을 거두어 48R만에 악연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베라폴은 3차례 더 타이틀 방어에 성공해 도합 14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했는데 니시오카를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눈에 띄는 도전자가 없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복서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절제와 인내를 통해 7년 가까이 왕좌를 지켜낸 명챔피언이었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어서 37살에 맞이한 15차방어전에서 띠동갑인 일본의 <하세가와 호즈미>에게 판정으로 패해 왕관을 내려 놓았다.
WBC 타이틀은 베라폴의 장기집권 덕분에 다른 기구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계보를 이어 갈 수 있었고, 후임인 하세가와 역시 10차방어에 성공하며 5년간 집권해 이 체급의 명성을 잃지 않았다.
올란도 카니잘레스가 떠나간 <IBF>타이틀은 콜롬비아의 <해롤드 메스트레>가 후베날 베리오를 8RKO로 꺽고 차지했다.
전형적인 슬러거로서 레프트어퍼컷과 양훅의 위력이 뛰어난 반면 스피드가 떨어져 실력이 반감되었다.
첫 방어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날아가 <음부렐로 보틸레>에게 2R에서 템플을 얻어맞고 KO로 쓰러져 별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링경력에 비해 전적이 적었던 보틸레는 안정된 스탠스에 상체의 움직임이 좋고 레프트잽에 이은 좌우펀치에 힘이 실려 있어 3연속KO방어를 기록할 정도로 제법 쓸만한 재목이었다.
5번의 방어전을 순탄하게 치러냈으나 6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였던 미국의 강타자 <팀 오스틴>에게 기습적인 라이트훅을 맞고 8RKO로 패해 왕좌에서 물러났다.
보틸레는 후일 페더급으로 체급을 올려 3년뒤 IBF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2관왕을 이루어 간단치 않은 실력임을 입증했다.
아마추어시절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할만큼 탁월한 스피드와 테크닉을 겸비한 오스틴은 긴리치의 왼손잡이복서로서 다이너마이트 펀치를 자랑했는데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에 고루 능해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방어전 간격이 멀었지만 칼 킹의 비호아래 6년 가까이 타이틀을 지켜내며 9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해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2관왕이었던 마크 존슨을 쳐부수고 지명도전한 멕시코의 <라파엘 마르케스>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8R에 로프밖으로 내몰리며 TKO패를 당해 챔피언벨트를 풀었다.
오스틴은 생애 첫 패배의 충격때문인지 넉달 뒤 16세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체포돼 링을 떠나게 되었다.
전 WBC챔피언 빅토르 라바날레스의 재기전상대로 프로에 뛰어들어 패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마르케스는 백스텝을 모르는 파이팅머신으로서 각도 좋은 좌우펀치의 위력은 동국의 선배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잽과 스트레이트도 잘 치지만 도끼를 휘두르는 듯한 양훅과 밑에서 긁어 올리는 어퍼컷의 위력이 대단했고 찬스시 터지는 폭발적인 컴비블로우는 마르케스 복싱의 진수였다.
7차례의 방어전 중 5번을 인상적인 KO승으로 장식해 당대에 이 체급 최강으로 손꼽혔다.
한동안 2살 연상의 형인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와 함께 멕시코 복싱의 대표주자를 자임한 후 슈퍼밴텀급으로 월장하여 동국의 강타자 이스라엘 바스케스와 치열한 3연전을 벌이며 WBC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38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퇴전의 의지를 갖고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으나 지금은 서산에 지는 해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추어때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던 <WBO>챔피언 <알프레드 코티>는 발이 빠르고 무브먼트가 좋을뿐만아니라 강렬한 원펀치를 소유해 장래가 기대되었으나 푸에르토리코의 <다니엘 히메네스>에게 3R에서 한차례 다운을 빼앗고도 후반에 힘이 딸려 판정으로 물러나 이후 저니맨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슈퍼밴텀급시절 적지에서 3관왕인 듀크 맥켄지를 끌어내리고 WBO챔피언에 올라 4차례나 수성한 바 있던 히메네스는 기술적으로는 별볼일이 없었지만 일발파워를 장전하고 끈덕지게 달라 붙는 맛이 있었다.
2차방어전에서 IBF 플라이급 타이틀을 팽개치고 두체급을 건너 뛴 영국의 <로비 리건>에게 다운을 빼앗기며 완패한 뒤 급격히 몰락했다.
새챔피언 리건은 림프선질환이 악화되자 단 한차례의 방어전도 갖지 못한 채 20개월만에 타이틀을 반납할 수 밖에 없었다.
6개월전에 미리 잠정챔피언으로 있다가 왕좌를 승계받은 전 WBA챔피언 <호르헤 엘리세 훌리오>는 예전과 달리 발을 써서 방어횟수를 늘려나갔는데 WBC 타이틀을 날리고 돌아온 <조니 타피아>에게는 팔꿈치까지 동원해봤지만 역부족이어서 4차방어전에서 하차했다.
1차방어를 마친 타피아는 여전히 생애 첫 패배를 안긴 아얄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있었는데 감량고때문에 페더급 체중으로 아얄라와 맞붙어 또 다시 패하자 타이틀을 버리고 아예 페더급으로 월장해 IBF 페더급 타이틀을 따내며 3관왕으로 위안을 삼았다.
타피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파나마의 <마우리시오 마르티네스>가 니카라과의 레스터 푸엔테스에게 세 번의 다운을 극복하고 5R에 역전KO승을 거두는 짜릿한 승부를 펼쳤다.
스피디한 사우스포 하드히터였지만 약한 맷집으로 대성할 수 없어서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크루스 카바할>에게 혼쭐이 나며 9R에 무릎을 꿇었다.
L.플라이급 통합챔피언이었던 마이클 카바할의 막내동생으로 알려져 있는 카바할은 데뷔초만해도 주먹 꽤나 쓰는 강펀처였으나 실력자들을 만나면서 반타작복서로 전락했다가 기회를 잡은 케이스로 첫 방어전에서 썩어도 준치인 대니 로메로를 4RTKO로 잡아내면서 이목을 끌어 모았다.
3차방어전에서 태국의 노장 <라타나차이 소 보라핀>에게 후반 역전KO승을 노렸지만 초중반에 잃은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면서 과분한 왕좌를 물려 주었다.
제프 챈들러가 물러난 이래 20년 넘게 혼란을 겪은 <WBA>타이틀은 2005년 2월 우크라이나의 <블라디미르 시도렌코>에 이르러 다소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출신으로 아마추어전적 290승 20패의 풍부한 캐리어를 갖고 있는 시도렌코는 동유럽 특유의 곧고 딱딱한 스타일이었으나 장기전에 능하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올림픽 직후 독일로 스카웃되어 승승장구하다가 후일 투타임 IBF 챔피언이 되는 조셉 아그베코와 경량급 4관왕 레오 가메스를 연파한 뒤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잠정챔피언 훌리오 사라테를 잡고 왕좌에 올랐다.
3년간 왕좌를 지켜내면서도 살인펀처 리카르도 코르도바와 두 번의 무승부를 기록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당대의 WBC 챔피언 하세가와 호즈미와 함께 이 체급의 왕좌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점은 평가받을만 했다.
홈링에서 파나마의 <안셀로 모레노>에게 기술적 차이를 드러내며 7차방어전에서 왕좌를 물려 주었다.
17살에 일찌감치 프로데뷔한 모레노는 최상급의 디펜스 스킬을 보유한 전형적인 슬릭 무버로서 펀치력은 솜방망이에 불과했으나 항상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클린히트를 잘도 꽂아 넣었다.
푸트웍 자체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으나 거리감각이 탁월했고, 긴리치를 이용해 힘차게 뻗는 원투스트레이트와 좌우훅은 적중률이 높았다.
10번의 방어전 중 절반 이상을 어웨이로 치룰만큼 배짱이 두둑해 전임 시도렌코와 전WBA 슈퍼밴텀급 챔피언 마야르 몬시포어를 모두 그들의 홈링에서 돌려 세웠고 잠정챔피언 네오마르 세르메뇨 역시 적지에서 상대해 주었다.
7차방어에 성공한 업적으로 WBA로부터 슈퍼챔피언벨트를 수여받은 뒤 3관왕을 노리던 빅 다치니안의 도전을 완벽히 틀어막어 국제적 인지도를 높였다.
재위 4년만에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밴텀급 정상을 겨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모레노의 슈퍼챔피언 격상으로 기회를 잡은 일본의 <가메다 고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투타임 WBA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알렉산더 무뇨스에게 한차례 다운을 빼앗고 판정승을 거두어 자국 최초로 트리플크라운의 영예를 안았다.
두체급을 뛰어 넘은 가메다는 과거와 같은 러싱파이팅으로는 승산이 없어 포인트위주의 아웃복싱으로 재미를 보아 왔는데
그의 방어전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어서 데이비드 데 라 모라에게 간신히 승리하더니 잠정챔피언 우고 루이스를 홈어드밴티지로 물리친 뒤 최근에 갖은 6차방어전에서는 파놈룽글렉 카이양하다오짐의 승리를 사실상 갈취해 팬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금체급의 세계타이틀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어서 지저분한 승리를 이어가거나 가까운 장래에 왕좌에서 물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베라폴 사하프롬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WBC>챔피언 <하세가와 호즈미>는 첫 방어전을 가볍게 넘어선 뒤 리매치를 요구한 베라폴을 9R에 라이트카운터블로우로 잠재워 속된말로 날탕이 아님을 증명했다.
사우스포로서 일본복서 특유의 안정된 기본기와 스피드를 동반한 직선공격은 그동안 선이 가늘다는 편견을 불식시켰고, 방어전이 거듭될수록 자신감마저 더해져 몰라볼 정도로 성장한 느낌을 주었다.
5년간 통산 10차방어에 성공하며 7차례나 KO방어를 기록해 베라폴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타고난 하드펀처는 아니었지만 6차방어전부터는 초반승부를 즐겨해 5연속KO방어를 질주하며 역대 일본 최고의 복서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러나 11차방어전에서 3관왕을 향유 중이던 멕시코의 WBO챔피언 <페르난도 몬티엘>과 사실상의 통합타이틀전에 나섰다가 4R에서 몬티엘의 강력한 레프트훅에 이은 좌우훅을 맞고 턱이 부서지는 충격적인 TKO패를 당해 참담한 종말을 고했다.
이로인해 하세가와의 업적은 수준낮은 도전자를 상대로 안방에서 쌓아 온 모래성으로 의심받으며 저평가의 원인이 되었다.
WBC의 배려덕분에 5개월 후 페더급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2관왕에 오르기는 했지만 KO패의 상흔을 벗어나지 못해 오래갈 수 없었다.
WBO의 비호속에 이미 3관왕을 달성한 몬티엘의 위력적인 양훅은 이 체급에서도 한몫 단단히 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통합타이틀 2차방어전에서 필리핀의 <노니토 도나이레>가 휘두른 레프트카운터블로우를 맞고 2R만에 누워버려 새로운 스타탄생의 희생양이 되었다.
IBF 플라이급 타이틀을 반납한 뒤 슈퍼플라이급에서 잠정챔피언으로 배회하다가 밴텀급에서 다시 권좌에 오른 도나이레는 최고의 펀칭파워와 스피드를 바탕으로 귀신같은 카운터펀치를 꽂아 넣으며 그야말로 살인적인 카운터펀처로 명성을 날렸다.
WBO의 경량급 얼굴마담인 무패의 오마르 나르바에스를 여유있게 완봉시킨 뒤 또 다시 슈퍼밴텀급으로 체급을 올려 가볍게 3관왕을 달성했다.
도나이레의 갑작스러운 월장때문에 잠정챔피언 결정전으로 예정됐던 <야마나카 신스케>와 크리스티안 에스퀴벨 간의 경기는 졸지에 챔피언결정전으로 격상되어 야마나카가 11RTKO승을 거두고 새챔피언에 올랐다.
자국의 영웅 다쓰요시 조이치로를 동경해 야구선수의 꿈을 접고 복싱에 입문한 야마나카는 비교적 큰 키를 가진 사우스포로서 정확한 잽과 스트레이트가 돋보이는 일본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첫 방어전에서 최대의 난적인 빅 다치니안을 완파한 뒤 토마스 로하스마저 인상적인 레프트훅으로 피니쉬하며 목하 일본 최고의 인기복서로 자리잡고 있다.
<IBF>쪽은 2007년 라파엘 마르케스의 월장으로 팬들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졌는데 Jr.밴텀급 챔피언 출신인 니카라과의 <루이스 알베르토 페레스>가 챔피언결정전에서 게나로 가르시아를 한수위의 파괴력을 앞세워 7R에 격침시키고 2관왕에 올랐다.
하지만 두달만에 가나의 킹콩으로 불리운 <조셉 아그베코>의 송곳같은 펀치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무관으로 떨어졌다.
눈이 좋은 변칙 복서인 아그베코는 끊임없이 손을 내는 집요한 스타일로 접근전을 선호해서 난타전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두 번째 방어전에서 과욕을 부리며 도전해 온 빅 다치니안과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판정으로 승리해 복싱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나 콜롬비아에서 날아온 자객 <욘니 페레스>에게 한차례 다운을 내주며 난조를 보여 실족했다.
아마추어 경험이 풍부한 페레스는 26살의 늦은 나이에 미국 아리조나에서 프로데뷔했지만 착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감각적인 복싱을 구사해 장래를 보장받았다.
첫 방어전에서 강적인 멕시코의 아브너 마레스를 무승부로 세이브했으나 단단히 벼르고 돌아온 <조셉 아그베코>에게 완패해 단명에 그쳤다.
이 경기는 쇼타임사가 기획한 월드 밴텀급 토너먼트의 일환으로 개최된 경기로 재임에 성공한 아그베코는 빅 다치니안을 누르고 올라온 <아브너 마레스>와 결승전에서 조우해야 했다.
경기는 역시나 타격전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마레스가 수차례의 로우블로우를 범하는 더티플레이속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우승트로피와 함께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비교적 단신으로 아마추어시절부터 지칠줄 모르는 파이팅으로 유명했던 마레스는 다소 거친듯하면서도 저돌적인 좌우컴비블로우의 타점이 높아 상대방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자동소총같은 원투스트레이트와 레프트훅에 이은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가끔 위험한 모습을 보이는 부실한 디펜스는 앞으로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아그베코와의 재전에서 압승을 거둔 뒤 WBC 슈퍼밴텀급 타이틀에 이어 최근 WBC 페더급 타이틀까지 집어삼킨 마레스의 기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공석이 된 타이틀은 멕시코의 어스퀘이크 <레오 산타 크루스>가 부시 말링가를 완봉시키고 차지했다.
날이 갈수록 파워가 붙어 순도높은 KO승을 이끌어 내고 있는 크루스는 모모명장 로버트 가르시아를 만난 후 레프트어퍼에 이은 라이트훅의 위력이 한층 배가되고 있다.
놀라운 하이스피드를 발휘하며 6개월만에 세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더니 최근 슈퍼밴텀급으로 월장하여 WBA 슈퍼플라이급 투타임챔피언 알렉산더 무뇨스를 5R만에 작살내고 메이저급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전 멕시코의 나이 어린 하드펀처 훌리오 세하를 홈링에서 돌려 세우며 새챔피언에 오른 <제이미 맥도넬>은 이 체급에서는 보기 드문 영국출신 챔피언으로 가드가 견고한 아웃복서지만 세하에게 물러서지 않는 타격전을 선보인 바 있다.
<WBO>챔피언에 오른 <라타나차이 소 보라핀>은 전형적인 타이복서로 푸트웍이 거의 없이 잔뜩 벼르고 있다가 오로지 한방을 노리는 싸움꾼이었다.
챔피언에 올라서도 논타이틀전만 거듭하다가 15개월만에 홈링에서 전임 마우리시오 마르티네스의 도전을 물리친 뒤 2차방어전에서 <조니 곤살레스>의 파워를 감당하지 못해 만년에 오른 왕좌에서 물러났다.
체형에 걸맞지 않게 항상 먼저 프레스를 거는 씩씩한 하드펀처 곤살레스는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으나 어퍼와 훅은 물론 스트레이트에도 무게가 실려 있어 한번 걸려든 상대는 그로기에 빠지기 일쑤였다.
슈퍼플라이급에서 올라온 월드클래스의 도전자 마크 존슨과 페르난도 몬티엘, 이레네 파체코를 모조리 제압해 적잖은 기대를 모았지만 필리핀의 노장 <제리 페날로사>에게 보디블로우를 맞고 침몰해 앞날에 찬물을 끼얹었다.
4년이 지나서 두체급 위인 WBC 페더급 챔피언으로 나타나 잠재력이 풍부한 대기만성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경량급에서 서른이 훌쩍 넘은 페날로사의 재집권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 아직은 쓸만한 테크닉과 인화성 강한 컴비네이션을 바탕으로 전임 보라핀을 눕힌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3관왕을 노렸지만 불혹을 앞둔 퇴물의 노욕이었음을 드러냈다.
잠정챔피언으로 있다가 정규챔피언으로 격상되며 3관왕에 올라 WBO 간판스타로 활약한 <페르난도 몬티엘>은 WBC 타이틀 마저 흡수해 이 체급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으나 통산 4차방어전에서 <노니토 도나이레>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도나이레가 1차방어 후 월장하면서 비게 된 자리는 멕시코의 <호르헤 아르세>가 2년여전 Jr.밴텀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상대한 적이 있는 앙키 앙코타를 호되게 몰아붙여 4관왕의 욕구를 채우는 데 이용되었다.
15년 링캐리어의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느낀 아르세에게 타이틀 방어는 안중에도 없어서 이 타이틀은 1년만에 또 다시 챔피언결정전을 갖어야 했다.
국제적으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태국의 <풍루앙 소 싱유>가 필리핀의 알렉스 존 바날에게 예상외의 선전을 펼치며 9RTKO승을 거두고 새챔피언에 올랐다.
여느 태국선수와 달리 잽과 스트레이트를 많이 활용해 남다른 모습을 보였던 풍루앙도 푸트웍의 한계때문에 발을 쓰는 상대에게 약점을 보여 첫 원정방어전에서 나미비아 출신의 <파울루스 암분다>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이 체급은 초창기만해도 그다지 인기있는 체급이 아니었으나 1930년대 이후 알 브라운-식스토 에스코바-마누엘 오르티스로 이어지는 리니지를 통해 투계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면서 중남미복싱의 발전을 주도했고, 1960년대에는 명인 에델 조프레의 등장과 함께 황금의 밴텀으로 불리우며 팬들의 시선을 경량급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더욱이 괴물 루벤 올리바레스를 필두로 한 파괴적인 멕시칸시리즈는 1980년대 초반까지 경량급 복싱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전세계 복싱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이 체급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비록 1980년대 후반들어 하드펀처보다 테크니션이 득세하면서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멀어져 갔지만 개성이 뚜렷한 수많은 세계챔피언의 역사가 전통의 체급답게 두터운 선수층 속에서 살아 남았음을 증명하고 있어 아직까지 경량급에서만큼은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독보적인 체급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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