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밴텀급은 1920년 뉴욕주에 의해 -115lbs를 한계체중으로 J.플라이급, J.페더급과 함께 탄생했지만 역시 2년뒤 단 한번의 세계타이틀전도 없이 소멸되었다.
이후 프로복싱이 인기를 모으면서 1979년 12월 카사블랑카에서 개최된 WBC 연례총회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의 j.밴텀급 신설 제안을 수용하면서 플라이급과 밴텀급 사이에 한계체중 -115lbs 즉, -52.160kg 이하의 체급이 신설되었고, 과거 j.체급을 s.체급으로 개명했던 <WBC>는 이를 s.플라이급으로 호칭했다.
챔피언결정전 티켓은 동양권과 중남미권을 대표하는 거물 프로모터인 전호연과 라피토 세데뇨 입김에 따라 그들의 수하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이승훈과 베네수엘라의 <라파엘 오로노>에게 주어졌는데 오로노가 경기당일 무리한 감량으로 졸도했다며 경기를 연기하는 해프닝속에 1980년 2월 2일 카라카스에서 이 체급 최초의 경기가 거행됐다.
경기는 아웃복서인 오로노가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약삭빠른 복싱으로 발이 느린 이승훈의 추격을 뿌리치고 무난하게 초대챔피언에 등극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삐른 발을 이용한 아웃복싱에 능했고 스피디한 컴비블로우가 발군이었던 오로노는 170cm가 넘는 장신으로 심각한 감량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로 인해 2차방어전에서는 지명도전자 윌리 젠센에게 홈링에서 간신히 15R무승부로 타이틀을 지켜냈고 늘 도망다니는 재미없는 복싱을 펼쳐 이미지가 좋지 못했다.
4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에서 날아온 복병 <김철호>를 맞아 포인트면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으나 9R에 보디블로우 한방에 어이없이 침몰해 타이틀을 잃었다.
뜻밖의 낭보를 전해 온 19살의 김철호는 꾸준하고 성실한 복서로 세련된 테크닉을 갖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힘이 강점이었고 방어전을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나중에 이 체급의 롱런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와타나베 지로를 누른 데 이어 2차방어전에서는 오로노를 괴롭혔던 톱랭커 윌리 젠센의 뛰어난 테크닉을 불꽃같은 투지로 제압해 롱런의 기틀을 잡았다.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잦은 교체로 라울 발데스와의 5차방어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니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라파엘 오로노>와의 리매치에서 강타를 맞고 무너져 6차방어전에서 벨트를 돌려 주었다.
첫 번째 재임시절보다 훨씬 탄력이 붙은 오로노는 WBC가 처음으로 도입한 12R제 타이틀전에서 페드로 로메로를 4R에 내동댕이친 뒤 김철호와 무승부를 기록한 라울 발데스마저 여유있게 제압해 최강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레프트잽에 이은 라이트스트레이트와 각도가 예리한 레프트어퍼컷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오로노의 복싱은 공격적인 성향으로 완전히 탈바꿈돼 있었다.
그러나 만만히 보고 떠난 태국 원정경기에서 <파야오 풀타라트>의 까다로운 아웃복싱에 휘말려 예상보다 일찍 무관이 되었다.
아마추어시절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 태국 최초의 올림픽메달리스트로 각광받았던 풀타라트는 가드가 높고 푸트웍이 좋으며 안면을 노리는 펀치가 다양하면서도 리턴이 빨라 웬만해서는 상대의 펀치를 잘 맞지 않았다.
공격은 잽으로 페이스를 잡은 뒤 카운터블로우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업라이트스타일이라 보디공격이 거의 없고 상대의 연타에 대해 허리놀림이나 블로킹이 나쁜 것은 단점이었다.
3전만에 우리나라의 권순천에게 패한 뒤 영국인 트레이너 찰스 애트킨슨의 지도를 받아 밸런스를 고치고 파워를 높여 영국스타일의 카운터펀처로 키워졌다.
첫 방어전은 썩어도 준치였던 구티 에스파다스를 맞아 선제다운을 빼앗겼지만 10R에 레프트 카운터블로우로 중심을 잃게 만들어 오로노전에 이어 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두 번째 방어전이 된 WBA챔피언 <와타나베 지로>와의 반쪽짜리 통합타이틀전에서 석패해 재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편, <WBA>도 1년이 지난 뒤 같은 한계체중으로 j.밴텀급을 신설해 WBC와 보조를 맞추었는데 초대챔피언 결정전은 전통적인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러져 우리나라의 '배석철-라파엘 페드로사'조의 승자와 '구스타보 바야스-마루야마 자칼'조의 승자가 결정전을 벌이도록 했다.
그리고 4강전에서 승리한 배석철과 <구스타보 바야스>가 1981년 9월 12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격돌해 한수 위의 기량을 선보인 바야스가 일방적인 8R TKO승을 거두고 초대챔피언으로 입성했다.
18살이었던 1976년 프로에 데뷔해 이미 52승(17KO)1무의 무수히 많은 링경험을 갖고 있었던 바야스는 뛰어난 수비와 스피드를 바탕으로 아웃복싱에 능수능란하고, 빠르고 정확한 원투스트레이트와 예리한 어퍼컷으로 무장하고 있어 생각보다 강했다.
그러나 첫 방어전에서 한번 이겼던 파나마의 <라파엘 페드로사>에게 적지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 다잡았던 승리를 놓쳤다.
이 날은 당시 WBA 페더급 챔피언 에우세비오 페드로사도 조카 라파엘에 뒤이어 13차방어에 성공해 페드로사 가문은 겹경사를 맞이했다.
J.플라이급 시절 양대기구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세계정상의 높은 벽을 실감했던 페드로사는 비교적 강한 펀치력을 가졌지만 공격이 단조롭고 스피드도 좋은 편이 못되어 단명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역시나 넉달 뒤 오사카로 날아가 <와타나베 지로>의 세기를 당해내지 못한 채 맥없이 무너졌다.
많은 자국 팬들로부터 역대 최강의 테크니션으로 추앙받는 와타나베는 일본복서의 전형과 달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우스포로서 눈이 좋아 상대의 급소를 노려치는 펀치에 위력이 있고, 깨끗하고 매끄러운 공수전환과 함께 쇼트와 롱펀치가 조화를 이룬 연타능력이 탁월했다.
24살의 늦은 나이로 프로에 데뷔해 11전만에 WBC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김철호에게 석패했지만 챔피언에 오른 뒤로는 한층 더 침착하고 강력해진 복싱을 구사해 이 체급에서만큼은 명인으로 불러도 좋을만큼 훌륭한 기량을 보여줬다.
홈링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초대챔피언 바야스를 비롯한 중남미의 강호를 차례로 제압해 6차방어에 성공한 뒤 WBC 챔피언 파야오 풀타라트에게 추파를 던지며 동양 최초의 통합타이틀전을 성사시키는 듯 했지만 끝내 단일화에 부정적이었던 WBA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결국, WBA 타이틀을 박탈당한 와타나베는 WBC만 인정하는 반쪽짜리 통합타이틀전에서 풀타라트에게 신승을 거두고 단순히 기구를 갈아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WBA는 지명방어전 미이행을 이유로 J.미들급의 로베르토 두란과 WBC 챔피언 토머스 헌스 간의 통합타이틀전도 반대해 두란의 타이틀을 박탈해 버렸고, 게리 코에체와 WBC챔피언 래리 홈스 간의 헤비급 통합타이틀전은 아예 원천 봉쇄해버리는 등 IBF의 출현때문에 모처럼 일었던 통합무드를 일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즈음 제3의 기구 <IBF>도 1983년 12월 9일 이 체급에서 초대챔피언을 배출했는데 당시 IBF의 경량급 타이틀을 주물렀던 우리나라의 신예 <전주도>가 일본의 퇴물복서인 가스가이 켄을 적지에서 5R TKO로 무너뜨리고 영예를 안았다.
김철호보다 6일 빠른 19세 10개월 15일만에 세계챔피언에 올라 우리나라의 최연소 세계챔피언으로 기록된 전주도는 기술적으로는 아직 미완이었지만 왕성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한 파이팅 넘치는 젊음을 앞세워 비록 수준이하의 도전자를 상대하긴 했어도 하나같이 통쾌한 KO승을 이끌어내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박광구와 벌인 5차방어전은 IBF타이틀을 격상시킨 백병전의 진수로서 그의 진가를 확인시켜 준 경기였다.
적지로 뛰어든 6차방어전에서 컨디션 난조속에 인도네시아의 <엘리아스 피칼>에게 시종일관 밀린 끝에 8R에서 레프트훅을 턱에 맞고 쓰러진 뒤 조로했다.
J.밴텀급의 초창기는 아무래도 전세계적으로는 비인기 체급을 면할 수 없었지만 3대기구 모두 동양권의 수중에서 들면서 자국 내에서는 많은 팬들의 관심속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WBA에 이어 <WBC>마저 점령해 당시 이 체급 최고봉으로 부각된 <와타나베 지로>는 첫 만남에서 근소한 차의 승부를 펼쳤던 전임 파야오 풀타라트와의 재대결에서 5R에 라이트훅으로 파야오의 턱을 찍어 강렬한 첫 다운을 빼앗은 뒤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은 끝에 11RTKO승을 거두어 흠집난 명예를 치유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와타나베는 더욱 노련하고 강력해진 복싱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2류를 밑도는 상대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았을 수 밖에 없었다.
양대기구를 통해 장기집권을 쌓아 올리며 당분간 지속되리라 믿었던 와타나베의 타이틀은 통산 11번째 방어전에서 만난 멕시코의 교타자 <힐베르토 로만>에게 홈링에서 심판전원일치의 판정패를 당해 그 종막을 고했다.
160cm의 작은 신장이지만 제2의 미구엘 칸토로 불릴만큼 소리없이 강했던 로만은 안정된 스탠스를 바탕으로 지능적인 아웃복싱과 교묘한 테크닉을 통해 완벽한 복싱을 선보였는데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프로페셔널 챔피언으로 유명했다.
다섯 번의 방어전을 모두 적지에서 치러 위험한 도전자로 분류됐던 상대들을 모조리 군말없이 제압했고 WBA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의 강타를 견뎌낸 강호 콩토라니 파야카룬을 병원으로 실려보낼만큼 강렬함도 갖고 있었다.
비록 제3국에서 열린 <산토스 라시아르>와의 7차방어전에서 무리한 체중감량으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눈부상에 의한 11RTKO패를 당했지만 로만 왕조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플라이급 시절보다 다소 비대해진 모습의 라시아르는 80전을 넘어서는 캐리어를 통해 한층 노련해졌고 강력한 라이트훅의 위력은 여전히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전챔피언 라파엘 오로노를 잡고 급부상한 콜롬비아의 <베비 슈거 로하스>의 빠른 스피드에 농락당해 2관왕에 올랐던 이 체급에서의 수명은 길지 못했다.
근육이 좋으면서도 선이 가는 전형적인 복서타입의 로하스는 견고한 커버링과 무하마드 알리를 연상케하는 푸트웍으로 수비가 뛰어나며 찬스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파상공세를 펼쳐 상대하기 쉽지 않은 정통파였다.
첫 방어전에서 WBA 초대챔피언이었던 베테랑 구스타보 바야스를 회전을 먹인 컴비블로우로 시원하게 날려보냈지만 2차방어전에서 전임 <힐베르토 로만>이 보여준 한수위의 기량앞에 무릎을 꿇었다.
11개월만에 왕좌에 복귀한 로만은 여전히 적지를 날아다니며 일본의 도전자 우치다 요시유키와 하다나카 기요시를 차례대로 유린한 뒤 톱콘텐더 후앙 카라소와 다운을 주고 받는 백병전을 펼치며 타이틀을 지켜냈고 전임 로하스나 라시아르를 상대해서도 무난하게 승리해 당분간 로만의 천하가 계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항상 체중감량에 고심해 왔던 로만은 모처럼 홈링에서 벌인 6차방어전에서 컨디션 난조속에 가나출신의 복병 <나나 코나두>에게 도합 다섯 번의 다운을 당하며 생애 최악의 경기를 펼쳐 고개를 떨구었다.
로만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타이틀을 탈취한 코나두는 아프리카복서 특유의 리드미컬한 공수연결과 스피드 그리고 펀치력을 고루 갖춘 출중한 복서였다.
비록 두달여만에 우리나라의 강타자 <문성길>을 만나 두세차례씩 다운을 주고받는 혈전속에 9R부상판정패를 당해 왕좌를 양보했지만 그의 무한한 잠재력은 밴텀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에도 빛을 발해 투타임 챔피언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미 아마추어시절부터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물건이었던 문성길은 세계선수권과 월드컵복싱을 잇달아 석권하며 돌주먹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부실한 디펜스를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우악스러운 힘과 폭발적인 파워로 커버했던 문성길은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해 7전만에 WBA 밴텀급에 오르는 괴력을 발휘한 뒤 한 체급을 낮춰 2관왕이 되었다.
주니어밴텀급은 밴텀급보다 선수층이 엷어 문성길이 놀기에 최적이었는데 첫 방어전에서는 베테랑 로만과 난타전을 전개해 기권을 받아낸 뒤 스페인으로 날아가 전임 코나두에게 천적임을 과시하며 4R만에 분쇄했다.
이후 경량급의 돌주먹으로서 더욱 더 빛을 발한 문성길은 프로복서로서의 천부적인 소질을 드러내며 매경기 피를 부르는 방어행진속에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WBA 챔피언 오니즈카 가쓰야와의 통합전을 앞두고 벌인 10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게 다운을 빼앗는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심판의 농간으로 타이틀을 날려 아쉬움을 주었다.
일천한 아마추어경력을 갖고 있었던 부에노는 스트레이트와 양훅이 위력적이긴 했지만 그다지 뛰어난 복서는 아니어서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가와시마 히로시>에게 맥없이 타이틀을 내준 뒤 반타작 복서로 전락했다.
와타나베의 타이틀을 박탈했던 <WBA>는 랭킹 1, 2위인 태국의 <카오사이 갤럭시>와 도미니카의 에우세비오 에스피날 간의 결정전을 통해 갤럭시를 새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세계 최초로 쌍둥이 형제 카오코 갤럭시와 나란히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갤럭시는 무에타이출신의 왼손잡이 인파이터로서 결코 빠르지 않았지만 상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전진스텝으로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결정적인 펀치를 터뜨리는 특기가 있었다.
타고난 맷집과 펀치력을 바탕으로 재임 중 보기드문 극강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7년넘게 왕좌를 지키면서 19차례의 방어에 성공했고 그 중 16번을 KO승으로 장식해 사실상 이 체급 최고의 복서로 손색이 없을만큼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이스라엘 콘트라레스, 알베르토 카스트로, 데이비드 그리만 등은 갤럭시의 왕좌를 위협할만한 유력한 도전자로 평가받았으나 선전을 펼친 카스트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갤럭시의 레프트훅 일발에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박력만점의 좌우훅과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드는 강력한 펀치로 연승행진을 구가했던 갤럭시는 적지에서 5번의 방어전을 치러 안방챔피언에 머물지 않았고 그의 챌린저리스트에는 전직 세계챔피언이 무려 7명이나 있을 정도로 순도높은 레코드를 자랑했다.
아만도 카스트로와의 19차방어전에서 승리한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할때까지 47승(41KO)1패를 기록했다.
은퇴한지 10년도 않돼서 1999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던 명챔피언이었다.
갤럭시가 반납한 타이틀을 차지한 일본의 <오니즈카 가쓰야>는 잘생긴 외모와 화끈한 경기력 덕분에 자국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선수로 결정전에서 태국의 타놈삭 시트보베이에게 악전고투 끝에 힘겨운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긴 리치에 일발필도의 강타를 보유한 인파이터였지만 생각보다 체력이 약하고 수비도 허술해서 재임 중 우리나라의 도전자 임재신과 이승구에게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홈어드밴티지 덕분에 타이틀을 지켜 안방장군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6차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이형철과 시종일관 어마어마한 난타전을 벌인 끝에 9R에서 로프를 등진 채 글자그대로 융단폭격을 받고 레퍼리스톱이 걸려 타이틀을 잃었다.
명챔피언이었던 갤럭시의 뒤를 잇기에는 한참 모자란 친구였다.
<IBF>를 통해 인도네시아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한 <엘리아스 피칼>은 왼손잡이 카운터펀처로서 레프트펀치의 위력이 남달랐다.
두 번째 방어전에서 도미니카의 복병 <세자르 폴랑코>에게 뜻밖의 15R판정패를 당해 잠시 타이틀을 빌려 주었지만 5개월만에 되찾아왔다.
전형적인 중남미 복서였던 폴랑코는 안정된 기량을 소유했지만 임팩트있는 복싱과는 거리가 멀어 대성하지 못했다.
5개월만에 벌인 <엘리아스 피칼>과의 리매치에서 강력한 레프트훅을 명치에 맞고 3RKO패했다.
챔피언에 복귀한 피칼은 첫 방어전을 마친 후 IBF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기세좋게 WBA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를 자카르타로 불러들였으나 14R에 갤럭시의 공포스러운 레프트훅에 간장을 급습당해 TKO패했다.
이에 따라 IBF는 피칼의 타이틀을 박탈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2관왕을 노리던 동국의 권순천을 근소한 차로 따돌린 우리나라의 <장태일>을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장신의 왼손잡이 아웃복서였던 장태일은 타고난 복싱센스와 타점높은 스트레이트를 가졌지만 과감한 공격력과 뚝심 부족이 흠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갤럭시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엘리아스 피칼>과 적지에서 좋은 시합을 펼쳤으나 중반을 넘기면서 피칼의 공격페이스에 말려 5개월만에 무관이 되었다.
당대의 로만이나 갤럭시에 비해 한수아래였지만 IBF 타이틀 정도는 주머니속 공기돌처럼 여겼던 피칼은 3번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장식했는데 싱가포르 사상 첫 세계타이틀전이었던 미국의 마이크 펠프스전에서 완승을 거두며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한단계 끌어 올렸다.
미국 원정길에 나선 4차방어전에서 콜롬비아의 <후안 폴로 페레스>와 지리멸렬한 졸전 끝에 타이틀을 빼앗겼다.
아마추어에서 싸운 경험도 있었던 페레스는 발이 빠르다는 것 외에 그의 복싱 어디에서도 그가 세계챔피언에 오를 만큼 뛰어난 복서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첫 방어전에서 인디언의 피를 이어받은 미국의 <로버트 퀴로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분에 넘치는 타이틀을 내줬다.
1991년 링지로부터 최고의 경기로 선정될 정도로 이 체급 최고의 명승부였던 아킴 아니포워시와의 사투로 유명했던 퀴로가는 성가실 정도로 잔주먹이 많이 나오는 대단한 파이팅머신으로 짧은 링경력에 비해 복싱스타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재임 중 이탈리아를 세차례 오가며 5번이나 타이틀을 지켜냈고 호적수였던 카를로스 메르카도와 호세 루이스를 이의없는 판정으로 뿌리쳐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6차방어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멕시코의 <훌리오 세자르 보보아>에게 예상밖으로 난타당하며 타이틀을 날리고 말았다.
100전이 넘는 탄탄한 아마추어전적을 보유한 보보아는 세계도전에 앞서 4번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어서 자국에서조차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나 나중에 WBO 밴텀급 챔피언을 지내게 되는 가나의 신성 알프레드 코티를 셧아웃시켜 이변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5:1의 언더독을 뒤집고 퀴로가를 스톱시켜 출세가도를 달렸다.
보기보다 펀치가 무겁고 상대의 리드펀치를 위축시키는 라이트크로스와 특유의 레프트보디블로우를 앞세워 호엘 루나 사라테와 롤란도 파스쿠아같은 만만치 않은 상대를 압도하며 5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콜롬비아의 강타자 <해롤드 그레이>의 스피디한 펀치와 뛰어난 기량에 밀려 주특기를 살리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6차방어에 실패했다.
1989년 4월 <WBO>도 이 체급에서 첫번째 세계챔피언을 배출하게 됐는데 무난하게 승리하리라 예상됐던 전 WBC 챔피언 베비 슈거 로하스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신예 <호세 루이스>에게 덜미가 잡히는 망신을 당했다.
중남미 출신답게 무브먼트가 좋고 카운터펀치가 탁월했던 루이스는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강타자 후안 카라소를 1R에 속전속결로 해치워 세계챔피언 등극이 결코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뒤 4차례의 방어에 성공했으나 5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2류 <호세 퀴리노>를 맞아 중반에 눈부상을 당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해 완패했다.
티후아나출신의 로컬복서에 불과했던 퀴리노는 공수가 단조롭고 그다지 빠르지도 못해 불안감을 주었는데 덴마크의 뉴페이스 <조니 브레달>의 희생양이 되며 일찌감치 왕좌에서 물러났다.
형인 지미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WBO 챔피언에 오르는 이색적인 기록을 남긴 브레달은 아마추어시절 서울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자국에서 인정받는 실력파였고 프로전향 후 14전만에 유럽 밴텀급챔피언에 올라 기대에 부응했다.
세차례 방어에 성공한 뒤 더 큰 꿈을 위해서 타이틀을 반납하고 원래 체급인 밴텀급으로 이동했다.
상대적으로 선수층은 얇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카오사이 갤럭시와 힐베르토 로만이 양분한 이 체급은 어느덧 플라이급과 밴텀급 사이에서 서서히 입지를 굳혀 갔고 1990년대 초반 로만의 뒤를 이은 문성길이 갤럭시와 함께 다시한번 천하를 호령하면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 체급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하향 평준화된 고만고만한 챔피언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먼저 요네쿠라 겐지의 손에서 길러진 <WBC>챔피언 <가와시마 히로시>는 데뷔초만해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자국챔피언에 오르면서 급성장했다.
섬세한 스피드복싱을 선호해 경쾌한 몸놀림과 예리한 펀치를 장기로 나중에 IBF챔피언에 오르는 카를로스 살라자르와 전임 호세 루이스 부에노를 포함한 여섯명의 도전자를 뿌리쳤다.
왼손잡이로서 눈과 반사신경이 예민해 상대의 펀치를 잘 맞지 않았고 빈 곳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감각이 탁월해 과분하게도 언터처블로 불렸지만 터프니스 부재로 우리나라의 이승구에게는 KO패 직전까지 몰리는 등 강한 이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7차방어전에서 제대로 된 임자였던 필리핀의 <제리 페날로사>에게 후반을 내주면서 타이틀을 빼앗겼다.
전통적인 복싱 명가에서 사사받은 페날로사는 왼손잡이 아웃복서로서 많은 경기경험을 통해 원숙하고 노련한 기량을 선보였고 날카로운 좌우컴비네이션과 폭발적인 레프트펀치로 무장한 카운터펀처였다.
코리언킬러로 불리울 정도로 우리나라 복서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과시했지만 링밖의 복잡한 사생활로 인해 4차방어전을 앞두고는 체중조절에 실패하더니 <조인주>의 아웃복싱에 희롱당하며 벨트를 풀었다.
페날로사는 그 뒤 한체급을 올려 밴텀급에서 WBO챔피언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아웃복싱을 구사했던 조인주는 다소 재미없고 소극적인 경기스타일로 인해 복싱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100전에 가까운 아마추어 경력에서 배어 나오는 빠르고 정확한 원투스트레이트, 철저한 디펜스, 간결한 푸트웍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쳐 한차례의 원정방어전을 포함해 5차례나 타이틀을 지켜냈다.
6차방어전에서 조총련계 재일동포 3세인 <도쿠야마 마사모리>에게 예상외로 난타당해 왕좌에서 물러났다.
홍창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었던 도쿠야마는 평소 복싱을 통해 남북한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며 링에 오를 때마다 한반도기를 앞세웠고, 국가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으며 트렁크에는 항상 'One Korea’를 새기고 나와 뜨거운 민족애를 과시했다.
자세가 매우 안정되어 있고 타점높은 좌우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언제나 빠른 푸트웍과 스피드를 보여줬다.
파워가 약한데다 펀치구사가 단조로운 게 흠이었지만 조인주와의 리매치에서 통쾌한 5RKO승을 거두었고 롱런의 최대고비였던 전임 제리 페날로사를 두차례나 제압하며 방어전을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는 기량을 뽐냈다.
한차례 자웅을 겨루어 완승을 거둔 바 있던 일본의 <가와시마 가쓰시게>에게 충격적인 1RTKO패를 당해 9차방어전에서 잠시 타이틀을 빌려 주었다.
가와시마는 기술적으로 별볼일 없었으나 터프니스와 함께 일정수준 이상의 펀치력을 갖춰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인 난적 호세 나바로에게 홈타운디시젼으로 승리한 뒤 13개월만에 돌아온 <도쿠야마 마사모리>에게 헌격한 기량차이를 드러내며 타이틀을 돌려 주었다.
과거와 조금도 다름없는 안전제일을 표방한 도쿠야마는 여전히 뛰어난 스피드와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라이트스트레이트로 가와시마를 괴롭힌 호세 나바로에게 압승을 거둔 뒤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다.
2000년대 전반기에 이 체급의 다른 기구 챔피언들이 WBO챔피언 조니 타피아를 제외하고 대체로 단명한 데 비해 WBC쪽은 도쿠야마가 사실상 5년여간 왕좌를 지배하며 장수챔피언 대열에 합류했다.
은퇴 후 무국적이나 다름없었던 조선적을 버리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우리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는 선수였다.
명장 카오사이 갤럭시 덕분에 오랫동안 태국에 머물러 있었던 <WBA>타이틀은 일본을 거쳐 드디어 우리나라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 챔피언 <이형철>은 전형적인 헝그리복서 출신으로 그 출발은 순탄치 않았지만 한국챔피언에 오른 뒤부터 펀치에 불이 붙기 시작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나라 선수로서는 허리를 잘 쓰는 편이었고 공수분리가 뚜렷하지 않아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을 갖고 있는데다가 끈기와 정신력이 투철해 롱런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불과 2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인 베네수엘라의 <알리미 고이티아>에게 4R종료 공이 울린 뒤 무방비상태에서 왼손훅을 관자놀이에 맞고 쓰러져 사실상 타이틀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12전만에 세계타이틀을 거머 쥔 고이티아는 오랜 아마추어 경력을 가진 사우스포로서 중남미 특유의 아웃복싱에 능하면서도 송곳같은 좌우훅을 갖추고 있어 강렬함을 겸비했다.
3연속 KO방어로 휘파람을 불었지만 태국 원정경기에서 <요크타이 시토아>의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에 시달리다가 복부에 연타를 맞고 8RTKO로 패퇴했다.
카오사이 갤럭시가 반납한 타이틀을 5년만에 되찾아 온 요크타이는 무에타이 출신으로서 끊임없는 전진스텝으로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는데 가드가 높아 수비가 안정되고 투박하긴해도 제법 다양한 각도의 펀치를 구사할 줄 알았다.
플라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냈던 아킬레스 구스만과 헤수스 로하스를 차례로 제압한 뒤 한번 무승부를 기록했던 숙적 <이다 사토시>와의 5차방어전에서 첫 회 다운을 빼앗긴 뒤 돌출행위로 감점까지 받으면서 최종회에 찾아 온 역전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아쉽게 벨트를 풀었다.
천신만고끝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다는 왼손잡이복서로 원투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하는 복서파이터스타일이었는데 수비가 취약하고 맷집이 약해 롱런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꼭 1년만에 베네수엘라의 베테랑 <헤수스 로하스>와의 3차방어전에서 초반에 당한 오른쪽 어깨부상때문에 소극적인 경기를 펼쳐 왕좌를 물려줘야만 했다.
이 때부터 일본과 베네수엘라는 이 체급의 WBA타이틀을 놓고 뺏고 빼앗기는 용호상박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 서로 앙숙이 되었다.
WBA 플라이급 챔피언에 이어 2관왕에 오른 로하스는 과거와 달리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카운터펀처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상체의 움직임으로 공수를 조율했다.
첫 방어전에서 고의적인 버팅으로 테크니컬 무승부를 기록했던 일본의 <도다카 히데키>와의 리매치에서 2R에 선제다운을 빼앗기더니 도다카의 계속된 러싱을 극복하지 못해 플라이급에서와 마찬가지로 단명에 그쳤다.
멧돼지를 연상케할만큼 저돌적인 공격력을 선보였던 도다카는 평범한 기량과 파워를 투지와 정신력으로 커버했다.
2차방어전에서 전임 요크타이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R에 통쾌한 KO승을 거두었지만 경량급 3관왕이었던 잠정챔피언 <레오 가메스>에게는 핸드스피드에서 밀리며 7RKO로 무너져 실망을 안겼다.
회장국의 은근한 지원속에 당시 베네수엘라 최초이자 사상 6번째로 4체급 석권의 대기록을 수립한 가메스는 자그마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파상공세로 한몫하고 있었다.
그러나 첫 방어전에서 키가 큰 일본의 <셀레스 고바야시>에게 경기내내 보디공격에 시달리다 10R에 강력한 레프트카운터가 턱에 걸려 추락하고 말았다.
1년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말콤 투나카오에게 도전해 무승부로 분루를 삼킨 뒤 프로데뷔 10년만에 소원을 이룬 고바야시는 왼손잡이로서 빠른 연타와 정확한 컴비블로우를 장기로 했는데 전임 헤수스 로하스를 넘어선 뒤 베네수엘라가 보낸 자객 <알렉산더 무뇨스>의 강타앞에 다섯차례나 매트를 뒹구는 굴욕을 경험하며 왕좌에서 밀려났다.
아마추어에서 170전이 넘는 캐리어를 쌓고 프로에 데뷔한 무뇨스는 폭발적인 라이트스트레이트를 자랑하는 슬러거로서 챔피언에 오를 당시 21전KO승을 자랑할만큼 이 체급의 하드펀처로 손꼽혔다.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레프트리드펀치가 좋고 상대의 공수에 대한 반사신경이 뛰어나 득점력도 좋은 편이었다.
일본 원정 경기로만 세차례의 방어에 성공했으나 잦은 감량고때문에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멕시코의 <마틴 카스티요>에게 허점을 보이며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다.
2년전 IBF타이틀 도전 실패를 딛고 무뇨스의 연승을 저지한 카스티요는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라이트스트레이트와 접근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레프트훅이 장기였다.
첫방어전에서 2관왕을 노리던 에릭 모렐을 완벽히 제압한 데 이어 무뇨스와의 재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2류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했다.
4차 방어전에서 프로전적 7전에 불과한 <나시로 노부오>를 만만히 보고 상대했다가 예상밖의 접전속에 왼쪽눈꼬리가 찟기면서 10R에서 뜻밖의 레퍼리스톱이 걸렸다.
링닥터의 확인도 없이 레퍼리가 경기를 끊어버려 카스티요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아직은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었던 <WBO>는 미국의 <조니 타피아>를 네 번째 챔피언으로 옹립하면서 이 체급에서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아마추어에서 100전이 넘는 캐리어를 기록한 타피아는 1988년 프로데뷔 후 승승장구하다가 코카인 흡입혐의로 3년반동안 링에 오르지 못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탁월한 체격조건과 강한 내구력을 바탕으로 호전적이고 장쾌한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하며 강한 이미지를 풍겼는데 좌우펀치에 힘이 실려 있고 무엇보다 질풍노도와 같은 연타와 아래로부터 올려치는 인상적인 보디샷은 타피아의 전매특허였다.
링복귀 후 1년만에 WBO챔피언에 등극해 싸움닭답게 두세달에 한번씩 방어전에 나서 당대의 한다하는 실력자들을 때려 잡으며 2년여만에 10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했다.
희생자 명단에 아더 존슨, 윌리 살라자르, 이반 알바레스, 우고 라파엘 소토 등이 포함돼 당시의 WBO수준에 비해 순도가 높았다.
방어전이 거듭될수록 동향의 라이벌인 IBF챔피언 대니 로메로와의 통합전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고 지나치게 날카로웠던 양측의 감정 때문에 고향 앨버커키가 아닌 라스베이거스에서 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시종일관 타격전 양상이었고, 로메로를 거칠게 몰아붙인 타피아가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통합챔피언에 등극했다.
통산 13차방어의 기록을 수립한 뒤 1999년 나나 코나두를 제압해 WBA밴텀급 왕좌에 올랐고, WBO밴텀급에 이어 2002년 IBF페더급 타이틀까지 차지해 3관왕이 되었다.
비극적인 부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코카인복서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화려한 링캐리어를 자랑했지만 끝내 2012년 5월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비록 KO왕은 아니었어도 링위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며 항상 팬들을 즐겁게 만드는 경기를 선사했디.
타피아가 떠난 후, WBO는 이렇다할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는데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아르헨티나의 강타자 <빅토르 고도이>가 타피아의 후임을 자처했으나 7개월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체중조절에 실패하면서 에릭 모랄레스의 막내동생 <디에고 모랄레스>의 강한 프레스를 견디지 못해 10R종료 후 기권했다.
20살의 젊은 챔피언 모랄레스는 스피드가 좋고 탁월한 기량을 갖춘 전도유망한 강타자였지만 언더독이었던 니카라과의 <아도니스 리바스>에게 예상밖의 패배를 당하며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했다.
2차방어전에서 강적인 호엘 루나 사라테를 잡아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던 리바스는 파나마의 <페드로 알카사>의 빠른 잽과 탄력있는 움직임에 홀리며 왕좌에서 물러났다.
나중에 한 체급을 내려 플라이급에서 WBO챔피언에 올라 2관왕이 되었지만 두달여만에 그마저도 쫓겨난 뒤로는 패전처리용으로 전락했다.
아마추어국가대표 출신으로 중남미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 정도로 기본기를 갖추었던 알카사는 밸런스가 좋고 공수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기교파였으나 2차방어전에서 플라이급에서 월장한 <페르난도 몬티엘>에게 파워차이를 느끼며 6RTKO패를 당해 2관왕을 허락했다.
알카사는 이 경기의 충격으로 이틀이 지난 뒤 의식을 잃고 사망해 복싱팬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이 체급에서도 몬티엘의 파워와 연타는 빛을 발해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밴텀급에서 한계를 느끼고 돌아온 노장 <마크 존슨>의 얄미운 컨트롤플레이에 농락당하며 한차례 다운까지 빼앗긴 채 판정패해 일찍 타이틀을 잃었다.
밴텀급에서 라파엘 마르케스의 벽에 울었던 존슨은 서른셋의 나이에도 여전히 회초리같은 라이트잽과 기민한 푸트웍을 과시했지만 2차방어전에서 만난 젊은 도전자 <이반 에르난데스>에게 8RKO로 무너져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장신의 하드히터였던 에르난데스는 인파이팅을 선호하는만큼 공격시 빈틈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방어전에서 절치부심하며 챔피언 복귀를 노리던 <페르난도 몬티엘>에게 잇달아 보디공격을 허용하면서 7R에 가라앉아 버렸다.
1990년대 들어 로버트 퀴로가와 훌리오 세자르 보보아를 배출하며 나름대로 세계타이틀로서의 영역을 구축한 <IBF>타이틀은 콜롬비아 출신의 강타자 <해롤드 그레이>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는데 챔피언이 된 후 파워가 실종된 탓에 매 방어전마다 시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4차방어전에서 나중에 WBO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라 2관왕이 되는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살라자르>에게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적지에서 타이틀을 잃었다.
이미 세차례나 WBC타이틀에 도전했다가 한계를 드러냈던 살라자르는 모처럼 활기를 띠었으나 <해롤드 그레이>의 홈링에서 벌인 리매치에서 완패해 6개월만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잃었던 타이틀을 되찾은 그레이는 자존심을 회복했지만 첫 방어상대로는 부담스러웠던 미국의 <대니 로메로>를 맞아 상대의 폭풍같은 다이나마이트펀치에 1R시작부터 허물어져 세차례 다운을 당한 뒤 2R에서 강력한 라이트훅을 얻어맞고 실신해버렸다.
IBF 플라이급에서 이어 Jr.밴텀급까지 점령한 로메로는 여전히 수준급의 파워를 자랑했지만 당대의 WBO 동급 롱런챔피언이었던 동향의 라이벌 <조니 타피아>와의 통합타이틀전에 나섰다가 혈투 끝에 브레이크가 걸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통합챔피언에 오른 타피아는 두차례 더 방어전을 갖은 뒤 밴텀급 월장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했다.
공석이 된 타이틀은 IBF 플라이급 타이틀을 버리고 월장한 <마크 존슨>의 차지가 되었는데 두 번의 방어전을 마치고 밴텀급으로 전향해버리는 바람에 또 다시 공석이 되었다.
존슨의 뒤를 이은 베네수엘라의 <펠릭스 마차도>는 첫 번째 챔피언결정전에서 니카라과의 훌리오 감보아와 무승부를 기록한 뒤 재경기를 갖고서야 비로소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비교적 큰 키에 빠르고 정확한 펀치를 구사하는 아웃복서로서 아랫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냈던 마우리시오 파스트라나와 나중에 WBA 동급 챔피언에 오르는 마틴 카스티요를 제압해 세계챔피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네 번째방어전에서 니카라과에서 날아온 <루이스 알베르토 페레스>의 묵직한 주먹에 광대뼈를 다치는 부상을 입은 탓에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이틀을 넘겨야 했다.
자국의 복싱영웅 알렉시스 아르게요를 동경했던 페레스는 왼손잡이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파괴력과 무서운 승부욕을 앞세워 데뷔초 연전 연KO승을 기록할만큼 강펀치를 과시했다.
마차도와의 재전에서 압승을 거둔 뒤 매니지먼트가 원활하지 않아 3년이 넘게 타이틀을 지키고 있었지만 방어횟수는 고작 세차례에 불과했다.
타이틀을 반납하고 체급을 올려 IBF 밴텀급 타이틀을 따내 2관왕이 되는 수훈을 올렸다.
<WBC>는 2006년 12월초 도쿠야마 마사모리가 타이틀을 반납하고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하자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크리스티안 미하레스>를 결정전도 없이 곧바로 정규챔피언으로 승격시켰다.
멕시코의 복싱가문 출신인 미하레스는 17살에 프로데뷔해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경기 경험을 통해 기량이 급성장했다.
키가 크고 눈이 좋은 사우스포로서 스피드가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발도 쓸줄 알고 상체의 움직임이 부드러워 공수가 안정적이었다.
라이트잽으로부터 시작되는 컴비네이션과 카운터펀치가 상당히 날카롭고 찬스시 터져나오는 연타 역시 매우 위협적이었다.
2006년 9월 전임 가와시마 가쓰시게에게 신승을 거두고 잠정챔피언에 올랐지만 넉달 뒤 정규챔피언이 돼서는 가와시마를 10R에 쓰러뜨린데 이어 플라이급에서 올라 온 친구 호르헤 아르세를 데리고 놀면서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5차방어에 성공한 뒤 이 체급의 왕좌통일을 꿈꾸며 IBF챔피언 드미트리 키릴로프와 통합전을 갖으려 했으나 키릴로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기수를 WBA로 돌렸다.
투타임챔피언으로서 어느덧 관록이 묻어나기 시작한 알렉산더 무뇨스를 상대로 물오른 기량을 뽐낸 미하레스가 한박자 빠른 움직임과 예리한 카운터펀치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12R판정승을 거두고 조니 타피아 이래 10년만에 이 체급의 WBA WBC 통합챔피언이 되었다.
이로인해 당시 P4P 톱10에 오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던 미하레스는 노웅 차차이 사사쿨을 3R만에 요절낸 후 여세를 몰아 재기에 성공한 IBF챔피언 <빅 다치니안>과 경량급에서는 보기드문 3대기구 통합타이틀전에 나섰다.
그러나 다치니안의 묵직한 돌진에 1R부터 다운을 허용하더니 경기내내 다치니안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9R들어 강력한 레프트스트레이트를 턱에 맞고 그대로 넉아웃돼 졸지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비록 선배 슈퍼스타에 비해 격은 낮았지만 통산 8차방어에 성공하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통합전에 나섰던 미하레스 덕분에 이 체급은 모처럼 본고장의 관심과 조명을 받았다.
노니토 도나이레에게 당한 충격적인 패배의 악몽에서 벗어나며 경량급 사상 최초의 WBA WBC IBF 3대기구 통합챔피언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다치니안은 터프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여전히 강력한 컴비네이션과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난적인 호르헤 아르세를 11RTKO로 일축해 다시 한번 줏가를 높인 뒤 만만한 상대로 보였던 IBF 밴텀급 챔피언 조셉 아그베코를 제물로 3관왕을 노렸으나 난타전 끝에 근소한 차의 판정패로 물러나면서 IBF Jr.밴텀급 타이틀을 반납했다.
이후 WBA WBC 통합챔피언으로서 두차례 더 방어전을 갖은 뒤 밴텀급 재도전을 위해 이 마저도 반납했다.
이에 따라 WBC 타이틀은 2류에 불과한 멕시코의 <토마스 로하스>가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현 WBA챔피언 고노 고헤이를 적지에서 물리치고 행운을 잡았다.
9개월전 잠정챔피언으로서 다치니안에게 도전했다가 2R에 떡실신한 경험이 있는 전형적인 잡초로서 정상 일보직전에서 항상 패전을 기록해 때를 잘만난 케이스였다.
장신의 사우스포로서 선이 가늘고 공수조화는 부족했지만 긴 리치를 끊임없이 뻗어내서 부실한 디펜스를 보완했고 비교적 빠른 스피드의 다양한 펀치를 구사했다.
두 번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치룬 뒤 태국 원정길에 나섰다가 <수리얀 소 룽비사이>의 힘을 앞세운 접근전에서 약점을 노출해 타이틀을 잃고 말았다.
펀치력은 없지만 태국 낙무아이답게 호전성을 갖춘 수리얀은 플라이급시절 퐁삭렉 원종캄에게 도전해 선전을 펼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타격전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치고 빠지는 복싱에도 능하고 카운터블로우를 잘 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적지에서 벌인 2차방어전에서 <사토 요다>의 영리한 경기운영에 휘말려 난타전 끝에 12R판정패를 당해 예상보다 빨리 왕좌에서 내려 왔다.
장신에 가드가 높은 사토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면서도 접근전에서 어퍼컷을 잘치지만 유연성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까지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하고 있으나 이 체급의 미래를 걸머지고 나갈 만큼 강인한 편은 못된다.
당시 이 체급 최강으로 인정받았던 마틴 카스티요에게 예상밖의 승리를 거둬 8전만에 <WBA>타이틀을 획득한 <나시로 노부오>는 상대선수를 사망에 이르게 할만큼 살인적인 일발강타를 보유한 단신의 인파이터였으나 단조로운 공격패턴으로 인해 2차방어전에서 전임 <알렉산더 무뇨스>에게 현격한 기량차이를 드러내며 왕좌를 넘겼다.
재집권에 성공한 무뇨스는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무뎌진 펀치력 탓에 2차방어전에서 가와시마 가쓰시게와도 접전을 펼칠만큼 과거와는 사뭇 달랐는데 WBC챔피언 <크리스티안 미하레스>와의 통합전에서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통합챔피언에 오른 미하레스를 슈퍼챔피언으로 격상시킨 WBA는 곧바로 정규챔피언 결정전을 주선했는데 전챔피언이었던 일본의 <나시로 노부오>가 열세를 극복하고 고노 고헤이에게 판정승을 거두어 재임에 성공하는 호사를 누렸다.
당시 파나마의 라파엘 콘셉시온이 잠정챔피언으로 있었지만 비즈니스 덕분에 나시로가 기회를 가로챘고 공교롭게도 콘셉시온은 나시로가 챔피언에 등극한 날 호르헤 아르세에게 9R TKO패를 당해 잠정챔피언에서도 밀려나 할말이 없게 됐다.
그 사이 슈퍼챔피언 미하레스가 3대기구 통합타이틀전에서 <빅 다치니안>에게 무릎을 꿇어 다치니안이 새로운 슈퍼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한편, 과분하게 투타임챔피언의 반열에 오른 나시로는 첫 방어전부터 동국의 도미야마 고노스케에게 행운의 역전승으로 타이틀을 방어하더니 홈텃세로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했던 전WBO Jr.플라이급 챔피언 <우고 카사레스>와의 리매치에서 완패해 챔피언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 Jr.플라이급에서 강펀치를 휘둘렀던 카사레스는 멕시칸답게 2체급을 월장해서도 여전히 돋보이는 강력한 프레싱과 파괴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제집처럼 드나들던 일본에서 속도광 <시미즈 도모노부>의 스피드에 추월당해 5차방어전에서 타이틀을 내주었다.
플라이급 시절 심약함 때문에 두 번의 정상도전에서 좌절했던 시미즈는 아마추어에서 닦은 기본기와 빠른 발을 바탕으로 아웃복싱에 능했는데 불행하게도 카사레스와의 경기 후 안와골절로 인해 곧바로 방어전을 갖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WBA는 석달 후 시미즈를 제쳐 두고 잠정챔피언으로 있던 태국의 <테파릿 싱완차>를 정규챔피언을 승격시켜 슈퍼챔피언도 아니고 잠정챔피언도 아닌 정규챔피언만 2명을 인정하는 촌극을 벌여 챔피언벨트의 가치하락을 부채질 했다.
졸지에 정규챔피언이 된 테파릿은 파워는 떨어지나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좋은 러싱파이터로서 유독 일본선수에게 강했는데 첫 방어전에서 가메다 다이키를 제압한데 이어 두 번째 방어전이 된 시미즈와의 WBA 통합타이틀전(?)에서 맹렬한 기세로 시미즈를 몰아붙인 끝에 9R TKO승을 거두어 유일무이한 진짜 챔피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4차방어전에서 일본의 노장 <고노 고헤이>의 레프트카운터블로우에 걸려 들어 4R에서만 3번의 다운을 허용한 채 왕좌에서 물러났다.
프로데뷔 12년만에 절치부심하여 세계챔피언에 오른 고노는 깔끔하고 안정된 기량을 갖추고 있어 자국에서 오래전부터 세계챔피언 후보로 손꼽혔으나 두차례 기회를 놓친 뒤 만년에 꽃을 피운터라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루이스 페레스의 타이틀 반납으로 공석이 된 <IBF> 타이틀은 2류로 분류되던 러시아의 <드미트리 키릴로프>가 난적 호세 나바로를 근소한 차로 물리치고 손에 넣었다.
하지만 3류에게도 무승부를 기록할 정도로 허약한 모습을 보이더니 플라이급에서 월장한 대물 <빅 다치니안>의 표적이 되면서 손한번 못쓰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 5R만에 주저 앉고 말았다.
IBF에서 플라이급에 이어 Jr밴텀급 타이틀까지 거머 쥔 다치니안은 WBC챔피언 미하레스를 제물삼아 WBA WBC IBF 왕좌를 통일함으로써 IBF챔피언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으나 밴텀급 타이틀 도전에 실패하자 IBF타이틀을 반납해버려 왕좌는 다시 한번 공석이 되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 37살의 노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심피웨 농콰이>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나선 호르헤 아르세에게 예상밖의 선전을 펼치며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켜 새 챔피언에 올랐다.
오랫동안 아마추어복서로 활약하다가 30살의 늦은 나이에 프로전향한 농콰이는 체스판같은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는데 노련한 경기운영과 감각적인 공수전환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지명도전자인 <후안 알베르토 로사스>의 둔탁한 펀치에 6RTKO패를 당해 재임기간은 짧았다.
로사스는 멕시코 출신의 하드펀처로서 공격일변도의 단순한 복싱을 구사해 발빠른 주자에게는 늘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전WBA WBC 통합챔피언 <크리스티안 미하레스>에게 고스란히 약점을 드러낸 채 첫 방어에 실패했다.
밴텀급에서 네오마르 세르메뇨의 벽에 막혀 돌아온 미하레스는 이미 중량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에서 더 이상의 방어전도 무의미해서 1차방어 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2체급을 올려 슈퍼밴텀급으로 월장해 버렸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라울 마르티네즈에게 6R부상판정승을 거두고 새 챔피언에 오른 멕시코의 <로드리고 게레로>는 공격형 사우스포였으나 톱클래스와는 거리가 멀어 첫 방어전에서 14전에 불과한 21살짜리 루키 <후안 카를로스 산체스>의 뒷꽁무니만 쫓아 다니다 4개월만에 왕좌에서 내려 왔다.
174cm의 장신인 산체스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공수를 자랑하며 전임 로사스에게 대차의 판정승을 거둔 데 이어 전 WBC L.플라이급 챔피언 로델 마욜마저 군말없는 9RKO로 제압하며 2차방어에 성공해 목하 눈여겨 볼만한 선수로 급성장하고 있다.
한창 피어나고 있던 이반 에르난데스를 잔인하게 꺽어 버리고 <WBO>챔피언에 복귀한 <페르난도 몬티엘>은 여전히 강력한 포스를 과시하며 방어행진을 펼쳤는데 중간에 3체급 석권을 위해 WBO 밴텀급 타이틀을 노렸으나 챔피언 조니 곤살레스에게 체급차이를 실감한 채 돌아와 타이틀 사수에 전념했다.
2008년 다른 기구가 통합타이틀전으로 어수선할 때에도 몬티엘은 전 WBA챔피언 마틴 카스티요와 동국의 강타자 루이스 말도나도를 잇달아 KO로 제압하면서 7차방어에 성공해 2체급 석권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WBO에서 밴텀급 진출을 위해 잠정챔피언 결정전에 출전을 주선해 주자 타이틀을 반납하고 월장했다.
푸에르토리코의 <호세 로페스>는 플라이급에서만 4차례의 세계도전에 실패할 정도로 상처가 많았지만 한방을 장전한 터프가이로서 프라무안삭 포수완을 따돌리고 몬티엘의 뒤를 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필리핀에서 날아온 10대소년 <마빈 손소나>에게 한차례 다운까지 당하는 망신속에 야인으로 전락했다.
장신의 사우스포 강타자로서 원투스트레이트와 레프트어퍼가 장기였던 손소나는 한때 자국에서 매니 파퀴아오를 잇는 기대주로까지 관심을 받았지만 알레한드로 에르난데스와의 첫 방어전부터 체중오버로 타이틀을 박탈당하더니 2체급을 뛰어넘어 윌프레도 바스케스 주니어에게 덤벼들었다가 4RKO패로 물러나 거품이었음을 입증했다.
손소나가 박탈당한 타이틀은 지면 은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챔피언결정전에 나선 <호르헤 아르세>가 인도네시아의 앙키 앙코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7R부상판정승으로 기어코 이 체급에서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 빅매치를 기대하기 어렵고 다관왕에 욕심이 많았던 아르세는 타이틀 방어에는 관심이 없어 석달 뒤 월장했다.
아르세가 버리고 간 타이틀은 플라이급에서 WBO타이틀 16차방어의 위업을 달성한 아르헨티나의 노장 <오마르 나르바에스>가 낚아채 2관왕에 올랐다.
과거와 같은 파워나 러싱은 확실히 부족해 보였지만 이기는 복싱에 도가 터서 벌써 6차방어에 이르고 있다.
노니토 도나이레가 지배하고 있는 WBC WBO 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도나이레의 강펀치를 의식해 지나치게 디펜스에 치중한 나머지 생애 첫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체급 신설 초기 비록 선수층은 얇았지만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던 이 체급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둘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챔피언이 없는 실정이며, 시간이 갈수록 전통의 플라이급과 밴텀급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팬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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