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이면 집 뒤 산자락에 올라 달리고 뛰며 몸을 단련하는데…
영가 포목점 점원 오제비는 멀쩡한 자기 본이름이 있건만 모든 사람들이 제비라 부른다.
날씬한 그의 몸은 제비처럼 민첩하고 날렵하다.
포목점 주인 영감도 그의 본명은 모른 채 그저 제비라 부른다.
오제비가 하는 일은 배달이다.
포목점이 가장 반기는 손님은 시집가는 딸의 혼수를 준비하는 부잣집 마님이다.
회갑 잔치를 앞둔 집도 비단이다 공단이다 몇필 끊어가고, 친정 경사에 가는 딸도 손님이지만, 혼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시집갈 딸과 마나님, 혹은 곁따라 온 고모나 이모 한 떼거리가 영가 포목점을 독차지하고 포목을 골라내면 오제비는 산더미 같은 짐을 손수레에 싣거나 지게 지고 혼주들을 뒤따른다.
혼주들의 걸음걸이가 느릿하거나 다른 곳에 들르면 오제비는 쏜살같이 혼주 집에 먼저 가서 혼숫감을 내려놓고 돌아온다.
안동에서 가장 큰 포목점인 영가.
포목은 안동 고을에서만 팔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옹천·풍산·예천·의성…. 사십리, 오십리 밖에서도 혼수 포목을 끊으러 영가 포목점으로 온다.
오제비는 길이 아주 멀면 당나귀 등에 혼수 포목을 싣고 혼주 집의 행랑채에서 자고 올 때도 있다.
한번 혼인에 실패한 오제비는 지난해에 새장가를 갔다.
신부 임하댁도 무슨 사연인지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에서 수년 동안 눈칫밥을 먹다가 오제비와 재혼했다.
한번씩 실패한 혼인이라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았다.
임하댁이 이해 못할 일은 오제비가 밤중에 집 뒤의 산자락에서 온갖 자세로 몸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땅에서 달리고, 수직으로 세운 상수리나무를 짚고 날아다니는가 하면,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잡고 잔나비처럼 몸을 날리기도 한다.
낮에 포목점에서 그 힘든 일을 하고 나면 집에서는 쉬어야 할 텐데 왜 한밤중 어둠 속에서 그런 짓을 하느냐고 임하댁이 물으면 오제비는 싱긋이 웃기만 하는 것이다.
일년 열두달 하루같이 매일 그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열흘, 혹은 보름쯤 연이어 그 훈련을 할 때 오제비는 임하댁 곁에 오지 않는다.
봄에 그 훈련을 유독 많이 하고 가끔 가을에도 하지만, 한여름과 겨울에는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오제비가 기절할 일이 생겼다.
의성에 혼숫감을 배달하고 그 집 행랑에서 하룻밤 자고 집에 왔더니 임하댁이 사라진 것이다.
오제비는 눈이 뒤집혀서 만사 제쳐놓고 임하댁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친정도, 주막도, 친구집도, 친척집도 오만군데를 찾아봐도 임하댁은 보이지 않았다.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오제비는 소문을 듣고 낙동강변 나루터에 새로 문을 연 주막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새로 지은 번듯한 주막의 부티 나는 주모는 바로 임하댁이었다.
오제비는 짚신을 신은 채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경대 앞에서 박가분을 바르는 임하댁을 향해 외쳤다.
“야, 이 도둑년아!”
머리채를 잡으려는데 임하댁이 생긋이 웃으며 답했다.
“나보고 도둑년이라고 했소?”
오제비가 멈칫거리자 임하댁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둑하고 살 수 없어 뛰쳐나온 거요. 장독 아래 도둑이 파묻어둔 혼수 패물 반쯤 들고 나온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이혼 위자료요.”
오제비는 얼어붙었다.
임하댁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며 말을 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오. 제비씨도 이쯤에서 남의 혼사 망치는 일 그만하시오.”
얼이 빠진 오제비가 주저앉았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임하댁이 돌아앉아 오제비의 두 손을 잡았다.
“나하고 주막을 꾸려가며 발 뻗고 잡시다.”
오제비가 임하댁을 끌어안았다.
임하댁이 눈물을 훔치고 오제비의 눈물을 닦아줬다.
둘이서 땀을 흠뻑 흘리고 옷매무새를 고칠 때 부엌데기가 사립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