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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엽전고개 전설

by Ajan Master_Choi 2008. 1. 6.

아주 먼 옛날 백곡면 엽전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하던 노랑이 박서방이 있었는데 많은 돈을 벌어 놓고 써 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핏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어서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끝낸 사람들은 박서방이 생전에 벌어 놓았던 돈을 어디에 숨겼을까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집 안팎을 샅샅이 뒤져 돈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돈은 없었다. 그날부터 이 주막은 주인 없는 빈집으로 오고가는 길손의 휴식처가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돌보는 이가 없어 폐허가 되었다.

 

어둠이 깔리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어느 여름 밤, 이 고개를 넘는 길손이 날도 저물고 비도 오고해서 이 주막에서 쉬어 가려 들어가는데 왠지 으스스하였다.

그러나 피곤에 지친 길손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인근 마을에 사는 농부가 밭에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 주막에 짚신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죽어 있어서 놀라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불렀다.
모여든 사람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기만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서 담이 세기로 소문난 청년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 시체를 끌어내어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 후로도 이곳 주막에 들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아침에 시체가 되어 나오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주막을 귀신이 붙은 집이라 하여 날만 저물면 얼씬도 않게 되었다.
귀신이 붙었다는 소문이 돌자 담이 세기로 이름난 마을 청년이 자기 손으로 귀신을 잡겠다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그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에 들어서니 등골이 오싹하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옷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젖었다.
그래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서 불을 밝혀 놓고 커다란 몽둥이를 준비한 다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귀신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쯤이 되자 바람이 일고 방문이 덜컹덜컹 흔들리기 시작하며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천장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청년은 마음을 다잡고

 

“귀신이냐, 사람이냐? 어서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잠시 발소리가 멈추더니 천장 판자가 떨어지며 별안간 사람의 다리 하나가 축 늘어져 흔들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청년은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발목을 잡고 힘껏 당겼다.

다리가 쑥 빠지는 순간 천장 속에서 와르르하고 엽전꾸러미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어찌나 많았던지 방에 가득 쌓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 청년은 곧장 마을로 내려왔다.
청년을 본 마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다.
청년은 태연하게 집으로 가서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다시 주막으로 올라가 엽전꾸러미를 자루에 담아 가지고 내려왔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천장 속에 감춰 놓았던 엽전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둔갑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떠들어댔다.

그 후로도 청년은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여 이 고장에서 제일가는 갑부로 지냈다.

당시에 주막이 있었다는 곳은 오랜 풍상 탓인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엽전고개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박서방의 재물을 탐내는 주민’, ‘길손의 죽음으로 생성된 공포’, ‘두려움을 극복하고 횡재한 청년’ 등이다.
많은 설화들 중에서도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이라고 따로 나누어 부르는 이유는 각각의 성격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전설은 증거라고 할 만한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

엽전고개 전설은 비록 주막은 찾아볼 길이 없다
하지만 고개의 이름이 엽전고개이므로 그것에 비추어 생각하면 흡족하지는 못하지만 전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엽전고개 전설은 많은 사람들이 귀신 때문에 급사하는 상황이 주인의 혼령이 혹시 남아 자신의 재물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초자연적인 귀신이라고하는 존재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그런 공포를 견딜 수 있고 용기가 있는 청년이었기에 재물을 찾아서 갑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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