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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헤르메스 이야기

by Ajan Master_Choi 2008. 2. 21.

바람딩이 신과 그에 아들래미 신이 지친 길손이 되어 이지꾸쓱 저지꾸쓱 문전에 서서 좀 쉬어 갈 수 없겠느냐 밤이슬을 피하게 해줄 수 없겠느냐고 통사정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느므 동네는 싸가지가 웂으스 집이란 집은 모조리 문을 더 단단하게 걸어 잠글 뿐 도무지 열어 주려 하지 않았다. 하기야 밤이 깊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 마을의 불친절한 사람들에게는 한밤중에 부스스 일어나 문을 열고 길손을 맞아들일 만한 정성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외딴 오막살이집에서 두 길손을 받아들여 주었다.

지붕에 띠를 얹은 오막살이집에는 바우키스라고 하는 믿음이 실다운 노파와 남편 필레몬이 살고 있었다.

이 노부부는 소싯적에 부부의 연을 맺은 이래 바로 그 집에서 함께 나이를 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부부는 희망을 안으로 다독거리고 친절을 밖으로 펴면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니 주인이 따로 있고 하인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노부부 단 두 사람뿐이었으니 이 두 사람이 주인이기도 했고 하인이기도 했다.
두 천상의 길손이 그 오막살이의 초라한 문지방을 넘어 나지막한 문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자 노인은 자리를 갖다 놓았고 노파는 무엇을 찾는 듯이 잠시 부산을 떨다가 그 자리 위에 깔개를 갖다 펴고는 두 길손에게 앉기를 권했다.

이어 노파는 잿더미에서 덜 탄 숯을 모아다 다시 모닥불을 지피고, 나뭇잎과 나무껍질을 넣고 입으로 솔솔 불어 불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었다.

노파는 어느 구석에서 장작과 마른 나뭇가지를 갖다가 잘게 쪼개어 작은 냄비 밑에다 넣었다.

이윽고 노인이 뜰에서 채소를 뜯어오자 노파는 줄기는 버리고 잎만 따서 그 냄비에 넣었다.
노인은 갈래진 막대기를 꺼내와 굴뚝 속에 걸었다.
연기에 그을린 돼지 살코기를 한 조각 벗겨내 냄비에 잘게 썰어 넣고 나머지는 나중에 쓸 몫으로 건사해 두었다.
너도밤나무 세숫대야에는 손님들이 손을 씻을 더운물도 준비되었다. 노부부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동안 두 길손은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손님용 의자에는 해초를 안에 넣어 만든 방석이 깔려 있었다.

방석 위에는, 꽤 낡은 것이긴 하나 큰일 치를 때만 나오는 것임에 분명한 깔개도 깔려 있었다.
노파는 앞치마를 입은 채 떨리는 손으로 상을 보았다.
식탁의 다리 중 하나는 다른 다리보다 조금 짧았으나 밑에 석판 조각을 괴어 식탁은 뒤뚱거리지 않았다.

준비가 대충 끝나자 노인은 냄새가 좋은 풀로 식탁을 문질렀다.

노파는 이 식탁에다 순결한 처녀신 아테나의 신목인 올리브 열매와 식초에 담갔다 꺼낸 산딸기를 차리고, 여기에다 무와 치즈, 그리고 잿불에 익힌 계란을 곁들였다.

이러한 음식을 담은 접시는 모두 토기(土器)였다.
그 옆에는 역시 토기 주전자가 목제 잔과 나란히 놓였다.

준비가 다 되자 이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이 올라왔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나 포도주도 따라 나왔다.

입가심할 사과와 꿀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음식보다 훨씬 귀한 것은 두 사람의 친절한 얼굴, 소박하나 참다워 보이는 노부부의 정성이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노부부는, 아무리 따라도 술병에는 항상 포도주가 한 병 가득 차는 데 몹시 놀랐다.
기겁을 한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자기 집 손님들이 예사 길손이 아니라 바로 천상의 신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며 대접이 소홀했던 것을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

이 집에는 거위가 한 마리 있었다. 노부부는 이 거위를 그 오막살이의 수호신인 양 기르고 있었다.
노부부는 이 거위를 잡아 귀하신 손님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위가 두 다리뿐만 아니라 날개의 도움까지 받으며 설치는 바람에 노부부로서는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거위는 노부부의 추격을 피하여 두 귀한 손님의 다리 사이로 빠져 달아났다.

두 천상의 신들은 거위를 죽이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천상의 신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인심 사나운 마을에 신에 대한 불경(不敬)의 죗값을 물리고자 한다.
그러나 너희에게만은 이 징벌을 내리지 않겠다.
이 집을 나서서 우리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자.

노부부는 서둘러 신들의 말에 따라 지팡이를 짚으며 신들을 따라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활을 쏘면 살이 산꼭대기에 닿을 만한 곳까지 올라갔을 때 노부부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노부부의 오막살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노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마을 사람들의 운명을 슬퍼하고 있을 동안 그들의 오막살이는 신전으로 변했다.

네 모퉁이 기둥은 굵은 원주로, 지붕의 띠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황금 지붕으로 변한 것이었다.
바닥은 어느 틈에 대리석판으로, 허름하던 문은 무늬가 새겨지고 황금 장식이 달린 으리으리한 신전의 문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윽고 제우스가 인자한 말투로 두 사람에게 일렀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노인이여, 그리고 그런 지아비에 어울리는 노부인이여,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무엇을 바라는지 어디 내게 말해 보아라.」

필레몬은 잠깐 바우키스와 상의한 뒤 두 사람의 소원을 아뢰었다.

「저희는 사제가 되어, 두 분을 모시고 이 신전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의좋게 살아온 만큼 이 세상에서 떠날 때도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바라건대 제가 살아남아 할미의 무덤을 보는 슬픈 일이 없게 하시고, 할미가 살아서 저의 무덤을 파는 슬픈 일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제우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두 사람은 살아 있을 동안 내내 신전을 지켰다.
두 사람이 늙고 늙어 더할 나위 없이 쇠약해진 어느 날, 신전 계단에 서서 그곳이 마을이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하던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러자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돋아나 관을 이루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입을 놀릴 수 있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잘 가요, 할멈.」
「잘 가세요. 영감.」

바로 그 순간 나무껍질이 두 사람의 입을 덮고는 그 모습을 가려 버렸다. 티니아 지방 양치기들은, 이 착한 노부부가 변하여 마주 서 있다는 두 그루 나무 아래로 지금도 우리를 안내한다.

이 바우키스와 필레몬 이야기는 조나단 스위프트에 의해 희화화된 적이 있다.
이 작품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두 사람의 떠돌이 성자, 오막살이는 교회, 필레몬은 교회의 목사로 되어 있다.

제우스는 아들 헤르메스와 동행이었다.
헤르메스는 날개를 떼어 놓고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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