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요즘으로 치면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부인인 힐러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참~ 또이또이한 여자였다.
강씨는 공민왕 5년(1356)에 태어났다.
태조 이성계가 1335년에 태어났으니 무려 19살 차이가 난다.
19살 차이...
좀 거시기 하지만
이성계가 원래 무골 타입에다 힘께나 썼으니 얼마나 강씨를 이뻐했겠는가?
슬하에 방번과 방석, 경순공주를 두었다.
실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강씨 말은 100%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방원이가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철퇴 완샷으로 죽였다는 것을 알고
대발노발 아니 노발대발 했는데
이때 강씨가 말렸다고 한다.
"대장부가 쫀쫀하게 뭐 그런 걸로 화를..."
그래서 이성계는 화를 풀었다고 한다.
강씨 집안 내력이 흥미롭다.
강씨 아버지는 고려 때 판삼사사(判三司事. 고려 시대에 둔,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으로 재신(宰臣)을 겸하였다.)를 역임한 강윤성의 둘째 아들로 엄니도 진주 강씨이다.
강윤성의 애비 강서는
조선의 연산군과 비슷한 방탕한
충혜왕(고려 34대 왕 중에서 최고의 성왕性王이었다)에게 아첨하여 그의 총애를 받았다.
마치 연산군 채홍사의 임사홍 부자처럼...
또한 강서의 셋째 아들 강윤충은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신덕왕후 강씨의 언니가 신귀에게 시집갔다가
개경의 고관대작들과 스캔들로 개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신귀는 신돈의 친척이었고 나중에 신돈과 함께 처형되었다.
참 대단한 집안이었다.
신덕왕후 강씨는 빼어난 외모와 지략을 갖추고
개성의 상류계에서 남편의 출세를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한다.
강씨는 방번이를 세자로 봉하려고 했지만
며느리가 고려 왕가 집안이라 단념하고 막내 방석이를 태자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정도전과 남은이를 방석의 스승으로 삼고...
이방원!
한씨 소생 다섯째 방원이는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지만 작은 엄마 강씨 때문에 닭쫒던 개 하늘만 쳐다보듯이 황~이 돼 버렸다.
이방원이가 누구인가?
이성계 무인 집안 최초로 과거에 급제한 집안의 귀재였다.
오죽했으면 방원이가 과거(고시)에 합격하자
두 부부가 얼싸안고 울었겠는가?
기쁨에 겨워서...
"우리 무인 집안에서 문인이 나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겠는가?"
방석 태자의 세자빈 유씨!
방석이의 밤운동이 시원찮았는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끼가 많이 있었는지
밤에 내시 '이만'을 불러들여 춘심春心을 불태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듯이
방원이가 중전에 심어둔 미녀하녀 춘심이에게 들키게 된다.
춘심이...
한 건 크게 했다.
곧장 방원이에게 달려가 이를 알린다.
이방원에게는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역전의 기회를 잡았으니 말이다.
이방원이는..
춘심이를 끌어안고
자신이 왕이 되면 일등공신으로 봉하고
세컨드로 삼을 것을 약속한다.
조선판 마타하리다.^^
나중에 방원이가 왕이 되어 본부인 원경왕후 민씨와 아홉 명의 후궁들을 두었는데
그 중에 집안이 불분명한 고씨와 김씨가 있는데 그 둘 중에 하나가 춘심일 것이다.
방원이가 쓰리쿠션으로 이를 중전에게 알리자 중전은 이만을 잡아 족친다.
이만이, 고문에 못이겨 그만 사실을 실토해버린다.
화가 난 중전마마 강씨는 불에 담근 인두를 가져오게 하여
이만이의 거시기(?)를 사정없이 지져버린다.
"으~~~"
무섭다.^^
긍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잖여?
남자는 세 뿌리를 조심하라고...
혀뿌리..
발뿌리..
거시기뿌리..
그거 조심하지 않으면
패가망신한다고 어른들이 신신당부 하셨다.^^
''이만이! 남자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지.. 그리고 오리발을 내밀어야지..''
그걸 실토하다니 참 한심한 친구다.
불으나 안 불으나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여자라도 보호해야 되는 거 아녀?
그게 사내의 의리여?^^
그랴서 졸지에 세자빈은 사가로 추방되었고
방석이는 졸지에 새장가를 가게 되었다.
이조 전서 심효생의 열여섯 살 먹은 딸에게...
이를 우리는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나?
전轉
화禍
위爲
복福
헌 마누라 버리고
새 마누라 얻었다^^
신덕왕후님,
속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완전히 뒤집어졌으리라.
속이 가지런해야 오래 산다는데...^^
강씨는 그만 태조 5년 1396년 8월 15일
첫부인 한씨의 뒤를 따라 하느님과 인터뷰차 떠나게 된다.
우리의 8.15 해방처럼 속세의 모든 굴레를 벗고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다.
이성계에게 두 아들 부탁을 신신당부 하면서...
그러나 2년 후 1398년 8월 26일!
제1차 왕자의 난 때 강씨의 두 아들은 강씨의 뒤를 따른다.
엄마 찾아 삼만리가 아닌 엄마 찾아 황천길로... ㅠㅠ
슬프다.
비정스럽다.
그깟 권력이 뭔지...
강씨 묘는 정릉에 있다.
죽어서도 방원이에게 철저하게 응징 당한다.
죽어서도 편히 못 있고 왔다리 갔다리 하고 묘에 썼던 돌은 광통교 공사에 물구나무로 세워졌다.
군대에서 원산폭격(?)하듯이...
"여자들이 이 말을 이해할까?"^^
좀 심했다.
아무리 미워도 작은 엄마인데...
신덕왕후 강씨의 묘는 260년이 지나자 복원ᆞ복권 되었다.
1669년 11월 1일,
정릉의 정자각이 완공되고
신덕왕후 강씨가 종묘에 배향되던 날,
유독 정릉 일대에 비가 많이 내렸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 주는구나!"
이를 우리는 '세원지우洗怨之雨'라고 부른다.
원한을 씻어주는 비...
참, 삶의 덧없음을 느낀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일텐데...
뭐가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How to live?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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