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제4대 세종대왕(이도)의 여자들ㅡ
조선의 왕들 중에서 우리는 세종에게 특별히 대왕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하신 일도 훌륭하거니와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면 불통이 되고,
불통이 되면 분통이 터진다.
분통이 터지면 열불나서 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만들어 어리석은 백성들이 뜻을 펴게 만드신 대왕님께 먼저 경건하게 고개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부창부수라고 남편 세종이 좋으니 부인 소헌왕후 심씨도 좋다.
참 좋은 한쌍의 원앙같은 부부였다.
소헌왕후 심씨!
태조 4년(1395년) 9월
양주에서 본관이 청송인 심온과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두 살 어린 충녕과 혼인을 했다.
슬하에 8남 2녀를 두었고
첫째가 제5대 문종이고
둘째인 수양대군은 제7대 세조가 되었다.
셋째는 저 유명한 문필가 안평대군이다.
우리는 세종을 성군聖君이라 부른다.
백성을 아끼는 애민정신이 강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세종이 나라를 잘 다스린 이유가 뭘까?
능력이 탁월해서..
지휘통솔력이 강해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세종이 위대한 성군이 되도록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지원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곧 소헌왕후 심씨이다.
옛날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암탉이 잘 울어야 알(R?)을 많이 낳는다.
소헌왕후 심씨는 마음씨도 후덕하고 사리에 밝은 왕비였다.
남편 세종이 집안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정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고로 남자가 밖에 나가 일할 때는 집안에 우환이 없어야 한다.
즉 뒷통수를 잡아 댕기는 일이 집에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즉 배움을 위해서이다.
앞에서 잘 된 것은 받들어 따르고
앞에서 잘못된 과오는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헌왕후는 태조의 신덕왕후 강씨와 정종의 비인 정안왕후 김씨
그리고 시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들의 상황을 잘 살펴보았다.
위 시어머니 왕비들의 희비극을 잘 보고 깨달은 것이 있다.
"인심을 후하게 하고 겸손해야 하며 절대 남편에게 투기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
는 것을...
왕비교육헌장(?)에 나온 대로,
'남편의 성공이 나의 성공임을 깨닫고 조용히 남편을 내조하여 집안의 걱정근심에서 남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는 것을...
참 현명한 왕비이면서, 아내이면서, 후덕한 엄마와 큰엄마였다.
한마디로 인자무적(仁者無敵) 이었다.
어진 이에게는 적이 없다!
세종은 다섯 명의 후궁을 두었다.
중전이 비록 후궁들의 방배정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궁들에게 같은 여자로서 후덕하게 대했고
그들의 자식들도 친자식처럼 잘해 주었다.
세종의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소헌왕후 심씨,
시어마마마 원경왕후와는 180도 달랐다.
자고로 '가화만사성'이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되는 법이다.
세종이 정사에 치중하여 성군이 되고 대왕 칭호를 받은 것은
아버지인 태종의 왕권강화의 힘도 컸지만,
부인 소헌왕후 심씨의 공과 덕도 무시할 수 없다.
''겸손은 이익을 얻고 교만은 손해를 얻는다!''
"인정을 베풀면 복이 따른다."
겸손의 아이콘 소헌왕후 심씨!
순풍만 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친정 집안도 원경왕후 민씨 집안처럼 멸문지화를 당했다.
상왕인 태종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로 건드리면 용이 GR를 한다.
건드리면 절대 안된다.
왕의 자존심을...
태종이 왕위를 세종에게 넘겨줄 때(선양)
한 가지는 안 넘겨 준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병권兵權이다.
군사력이다.
다 넘겨주었지만 힘까지 넘겨 준 것이 아니다.
비록 상왕이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세종이 즉위하자,
장인 심온이 영의정이 된다.
하긴 딸을 잘 두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심온과 그 동생 심정이 늙은 용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소헌왕후 심씨가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그렇게 조심조심 조신하게 처신했건만...
첫번째는 심온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출발하기 전에 환송연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실세이니까...^^
그런데 상왕인 태종이 볼 때,
''야, 이놈 봐라!' 어디 감히 외척이 난리여~''
심온, 돌아오다가 국경선을 넘자 바로 체포되어
수원으로 유폐되고 곧 사약을 받는다.
두번째로 역린을 건드린 것은 심온의 동생 심정이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날 때
왕실 경호 군사력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수강궁에서 자신을 경호하라고 시켰는데 심정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했단다.
심씨 두 형제가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생긴 거다.
''잘 나갈 때 조심 ㅎㅑ~ !''
소헌왕후 심씨 집안이 다시 풍비박산 났다.
상왕 태종에게...
군사력!
이거 좋은 것이니 함부로 자식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
왕비의 친정 엄마도 관노로 추락했다.
왕비 엄마가 노예로... ㅠㅠ
소헌왕후 심씨, 죽을 맛이다.
심온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박은 일파들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하여
소헌왕후 심씨도 폐위시킬려고 했지만
상왕 태종이 ''No'' 한다.
이유는?
소헌왕후가 성품이 후덕하고..
집안을 잘 다스리며..
자기 마누라와 달리 질투심이 없고
특히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이다.
소헌왕후 엄니,
세상을 떠나면서 후손들에게 신신당부했단다.
"앞으로 절대 박씨 하고 결혼하지 마라. 심씨들은..."
겸손이 왜 이익이 되는지 알았을 것이다.
소헌왕후 심씨는 현모양처였다.
다음에 십만원권 화폐가 발행된다면 도안 인물로 소헌왕후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만원권 세종대왕보다 더 고생했으니...^^
그러나...
집안에 우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자 문제다.
나중에 문종이 되는 세자 이향의 아내들 때문이었다.
세자빈을 두 명이나 쫓아낸다.
첫째 세자빈은 열여덟 살인 상호군 김오문의 딸이었다.
열네 살의 세자는 몸도 허약하고
어릴 때 같이 놀던 중전의 시비인 효동과 덕금이와 더 어울렸다.
물 오를 나이인 세자빈 김씨도 질투심이 대단했다.
남편 세자의 사랑을 받겠다고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한다.
1.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한다.
2.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내어 먹게 한다.
3. 미초라는 풀을 먹고 자란 나비를 말려서 차고 다닌다.
4. 붉은 박쥐를 가루로 만들어 써 보기도 한다.
그렇게 별짓 다했는데 소용이 없다.
세자빈 김씨, 결국 들통이 나서 퇴출되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독약을 먹고 죽었다.
불쌍한 세자빈이여!
둘째 세자빈은 세자와 동갑인 봉여의 여식이다.
이때 후사를 위해서 세자의 후궁도 들인다.
그것도 셋씩이나...
훗날 단종의 어머니인 권전의 딸,
정갑손의 딸,
홍심의 딸.
질투심 많은 봉씨!
봉 쫓던 암탉이 되어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된다.
정욕을 참지 못한 세자빈, 시비와 동성연애를 한다.
즉 레즈비언이 되었다.
조선왕조 최초로...
세종실록 75권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이 글이 <선데이 서울>처럼 될까봐 삼가하겠다.
세자빈 봉씨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아버지인 봉여는 딸을 혁띠로 목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맨다.ㅠㅠ
나중에 문종의 아들 단종이 비참하게 죽은 것은
문종의 죽은 두 세자빈의 원귀가 씌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으~윽 무섭다!"
같은 남자로서 볼 때,
세종이 부인을 여섯 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주일은 7일이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만들 때 6일 동안 열심히 일하시고
마지막 칠일 째에는 안식일을 가지셨다.
세종대왕도 현명한 분이어서 6일 동안 밤마다 후궁 방을 정찰하시고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知止(지지)!
그침을 알라!
세종대왕의 좌우명이다.
비운이면서도 행운녀였던 소헌왕후,
56세로 둘째 아들 수양대군 집에서 먼길을 떠나셨다.
아이들을 많이 낳으니 그중에서 특출한 분도 생겼다.
안평대군...
몽유도원도에 글을 쓰신 조선의 명문장가!
암튼 많이 낳고..
세상사 겸손하자!
소헌왕후 심씨를 본받자!
우리 모두가...
그래도 세종대왕 치적이나 알고 가자.
집현전 설치..
훈민정음 창조..
최초의 여론조사..
실용위주의 인재등용..
의정부 서사제..
노비의 육아휴직 보장..
삼강행실도 편찬..
과학기술 발전..
칠정산 편찬..
음악정리..
대마도 정벌..
많이 하셨다.
소헌왕후님도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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