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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자료실

정언명령

by Ajan Master_Choi 2020. 1. 19.



요즘 자주 핸드폰에 부고 문자가 찍히곤 합니다.

타인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예식이 모두 순차적일 수는 없어서,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나는 가끔 나의 죽음을 예견치 못한 곳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시기를 알 수 없는 내 죽음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만큼의 간격 그 공간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제자들 가르치며 사색 아닌 사색을 하곤 합니다.

 

인간은 빅뱅 이후 별의 탄생과 죽음 속에서 갈라져 나왔기에 

언젠가는 별의 일부로 돌아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인간은 타고난 결핍의 존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에 대한 결핍, 

살아가면서는 사랑에 대한 결핍, 

욕망에 대한 결핍, 

공부에 대한 결핍 등 

순간순간마다 자본과 나, 사랑과 나, 욕망과 나 사이, 

그 경계에 있는 존재에 대한 결핍을 살핍니다.


소멸하지 않는 한 존재의 결핍은 피할 수가 없나봅니다.

 

이항대립의 사전적 의미는 의견이나 처지, 속성 따위가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가 이룬 짝이라 나옵니다.

존재의 이면에는 나와 또 다른 내가 이항대립을 이루며 존재를 형성해 나갑니다.

그 많은 이항대립의 어디쯤에서 존재는 잠시 자리를 지키며 생물학적으로 호흡을 하며 살아갑니다.

 

죽으면 끝일 수도 있고 여타의 종교들처럼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죽음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어떤 ism을 선택 할 것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죽음에 이데올로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죽음에도 ism이 있을까요?

 

불꽃처럼 살아왔고 우여곡절 겪으며 때로는 목적을 가지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새롭지 않은 발견이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과 죽음 사이의 간격,

그 공간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든 달빛의 정언명령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비록 주술적일지라도...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가끔 발견한다

오늘과 죽음 사이 간격만큼 남아있는 시간

그 시공 속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한다

별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순간마다 경계에 서있는 존재의 결핍을 본다

고립된 말들을 가져다 존재를 살피지만

존재의 고립을 피할 수 없다

존재의 이면에 담긴 이항대립

숨을 쉰다는 것은 이항대립의 어디쯤에

잠시 자리한다는 것

어쩌면 존재 자체가 철저한 초현실주의 장르일는지...

 

죽음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어떤 ism을 선택할 것인가

불꽃과 굴절이 뒤엉킨 채로 걸어온 맹목

새롭지 않은 발견이지만

오늘과 죽음 사이의 비좁은 간격에 몸을 들이밀고

까무룩 달빛의 정언명령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