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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자료실

원효대사와 나녀

by Ajan Master_Choi 2020. 1. 22.

 

 

"원효 스님 원효 스님....."

 

거센 비바람 소리에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원효 스님은 자기의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환청을 듣는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이처럼 폭우가 휘몰아치는 깊은 밤에 남자도 아닌 여자가 찾아올 리가 없지"

 

바로 그 때였다.

휘익 하는 비바람 소리가 원효 스님이 선정하고 있는 토막 안으로 화악 밀려들었다.

 

"원효 스님 문을 좀 열어 주세요"

 

하면서 황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한동안 망설이던 스님은 이윽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악하는 비바람이 밀려들면서 방 안에서 타고 있던 등잔불이 꺼졌다.

 

"스님 죄송합니다. 하루밤만 쉬어 가게 해주세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자를 보았지만 스님은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여인이 너무 간곡하게 애원했기에 스님은 문 옆으로 비켜서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막 안으로 들어선 여인이 말했다.

 

"불을 좀 켜 주세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붙였다.

방 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어 온 몸을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스님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손으로 제 몸을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스님은 그제야 여인을 토막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을 후회했다.

스님은 떨면서 신음하는 여인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몸은 스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모든 일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저 여인은 목석과 다를 바 없다.

스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침상에 눞히고 언 몸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만한 여체에 손이 닿는 순간 스님은 본능적으로 묘한 느낌이 생겼으므로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내며 생각했다.

 

"오랫동안 계속했던 공부를 이렇게 허물 수는 없다. "

 

하지만 그는 이미 해골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스님이었기에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해골을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었는데 해골을 해골로 보았을 때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났다. 세상 만물의 모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니 내가 어찌 더 이상 속을 것인가?"

 

원효스님은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 속에서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기의 공부는 온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 앞으로 다가가서 두 손으로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했다.

전과는 달리 여인의 몸을 하나의 생명체로만 느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을 찾아 눌러 주면서 한 생명에 힘을 보태어 주었다.

남을 돕는 것은 매우 기뻐지는 일이다.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의 구분이 없을 때 사람들은 경건해진다.

여인과 자기라는 분별을 떠나 한 생명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 원효스님의 태도는 마치 자기가 원했던 것을 찾은 것처럼 잔잔했다.

여인의 몸은 서서히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이 요염하게 웃으며 스님 옆에 앉았으나 경계를 느낀 스님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폭풍우가 스치고 지나간 아침의 햇살은 더욱 찬란했다.

간밤의 폭우로 옥류 폭포의 물기둥이 굉음을 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원효 스님은 옷을 벗어 던지고 옥류천의 맑은 물 속에 몸을 담갔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 속에서 무한한희열을 느끼는데 그때 여인이 다가왔다.

 

"스님 저도 몸을 좀 씻어야겠어요."

 

여인은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 속으로 들어와 원효 스님 앞으로 다가왔다.

나신의 여인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스님은 그 여인이 하나의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본능적인 인간의 느낌을 자재하려고 애썼다.

스님은 두 눈을 부릅뜨고

 

"도대체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게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여인은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제가 스님을 유혹하다니요? 스님께서 저를 색안(色眼)으로 보시는 거지요?"

 

"뭐라고? "

 

그 순간 스님은 큰 방망이로 얻어맞는 충격을 받고 머리에서 커다란 혼란이 일어 났다.

자기가 색안으로 본다는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때문에 물기둥이 떨어지는 커다란 폭포 소리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여인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되뇌이던 원효 스님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폭포 소리도 다시 들렸고 눈 앞이 환해지며 나무와 풀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도리인 것이다."

 

스님은 옥류천에서 일어나서 벌거벗은 몸을 여인 앞에 드러내면서 유유히 물가로 걸어 나왔다.

여인은 어느 사이에 금빛 찬란한 후광을 가진 보살이 되어 폭포 위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서야 원효 스님은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원효 스님은 그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이름을 자재암(自在庵)이라고 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자유 자재로 할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서기 645년 원효 스님의 나이는 28세였다.

 

자재암은 동두천에서 멀지 않은 소요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 골짜기에는 지금도 그때 그 보살이 목욕한 곳이라는 옥류 폭포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스님들이 자재의 도리를 공부하는 장소 자재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그 외 소요산에는 원효굴, 원효대, 원효정, 원효폭포, 공주봉, 요석궁터, 백운암 등 많은 원효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소요산은 바로 원효의 산이고, 자재암은 원효의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