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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ang Muaythai GYM/제왕회관 이야기

이면주 "자비는 없다. 죽지 않아야 이긴다"

by Ajan Master_Choi 2004. 5. 6.

 

국내 종합격투기 첫 챔피언 이면주(제왕회관)

 

 

187cm·88㎏의 태국 전통무술 무에타이 수련자

“학교 다닐 때 싸워본 적 없어”
“수련 통해 정진하는 무인의 길 가겠다”

 

팔각의 링 위에선 붉은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소나기 펀치와 무시무시한 로킥(낮게 차는 발차기)을 주고 받은 지 벌써 30여분.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퉁퉁 부었고 코뼈는 부러졌는지 흘러내리는 피는 멈출 줄을 모른다.

선수의 몸도 주먹도 링 바닥도 붉게 물들어 있다.

주먹 하나만, 발차기 하나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승부가 결정지어질 것 같은데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마에서 떨어져 내리는 굵은 땀방울은 자꾸만 시야를 가리고 주먹을 뻗는 팔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팔을 내려서도 안 된다.

이기겠다는 생각은 사치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싸울 뿐이다.


64명 토너먼트 거쳐 4명 결선 진출

 

지난 4월 26일 장충체육관에서 국내 최초로 이종(異種)격투기 대회가 열렸다.

예선전을 통해 가려진 4명의 ‘전사’와 와일드카드로 선정된 4명의 선수들이 ‘최강의 파이터’란 타이틀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다.

대회 공식명칭은 ‘이종격투기 스피릿MC(Martail Challenge)’.

무술 문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가하여 최소한의 규칙으로 최강의 파이터를 가리는 격투기 대회다.

체급의 구분도 없다.

오직 강한 자만이 이기는 대회다.

총상금은 5000만원.

이종격투기는 타격계와 유술계의 구분 없이 누구나 경기장에 올라 승부를 가린다.

주먹과 팔로 무제한 공격이 허용되지만 뒷머리나 눈, 목, 척추 등 인체의 중요한 급소는 공격을 못하게 되어 있다.

 

국내에선 이번에 이종격투기 대회가 처음으로 열렸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대회 관계자도 “일본의 프라이드(Pride)와 K-1, 미국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등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경기는 처음이지만 위성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들을 통해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다.

 

이날 열린 대회에도 6000여명의 관중이 몰려 객석을 완전히 메웠다.

3월에 치러진 예선전에는 태권도·유도·합기도·복싱·레슬링·킥복싱 선수뿐만 아니라 보디빌더·스트리트 파이터도 참가하였다.

64명이 토너먼트를 통해 4명의 결선 진출자를 가렸는데 이들의 특기도 제각각이었다.

 

백종권(24) 선수는 미국과 일본의 이종격투기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브라질 유술’을 국내에 전파하고 있으며, 187cm에 88㎏의 이면주(26) 선수는 무릎 공격이 주특기인 무에타이 전사다.

태권도 사범 최정규(26) 선수도 브라질 유술을 익혔고 이은수(21) 선수는 레슬링과 킥복싱의 혼합파이터이다.

이들과 함께 결선에 오른 와일드카드 4명은, 대회 관계자가 “미리 공개할 경우 기권자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었다.

 

그 중 ‘우승 0순위’로 꼽혔던 김종왕(32) 선수는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으로 미국 ‘킹 오브 더 케이지(King of the Cage)’와 일본의 ‘프라이드 더 베스트’에 출전한 적이 있다.

체구는 작지만 ‘한국 격투기의 강자’로 꼽히는 김진우(27)와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친 ‘아마추어 레슬링의 자존심’ 김민수(26), 2002년 최우수 태껸선수선발전에서 우승한 권익선(25) 등 모두가 쟁쟁한 선수들이었다.

 

 

 

선혈 낭자한 경기에 여성들 벌벌 떨어

 


하지만 막상 결승전의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달리 다소 싱거운 승부의 연속이었다.

최종 결승전은 김민수를 꺾고 오른 이면주와 김종왕을 꺾은 이은수의 대결로 압축됐다.

결선에 진출한 8명의 선수 중 최연소인 이은수는 빡빡 밀어버린 머리로 강인한 인상을 선보였는데 “목표는 우승”이라며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최강자를 가리는 결승전은 그야말로 이종격투기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 혈투였다.

최강자전은 10분씩 1·2라운드를 치르고 그래도 승자를 가리지 못하면 5분의 연장 라운드를 무제한 반복하는 ‘데드 매치’였다.

먼저 저돌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은 이은수였다.

이은수는 이면주의 안면에 소나기 펀치를 퍼부으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을 듯이 보였다.

하지만 ‘무에타이의 전사’답게 이면주의 반격은 매서웠다.

주특기인 무릎 찍기 공격을 이은수의 복부에 꽂아 넣으며 전세를 뒤집었다.

그 전까지 “재미없다”며 야유를 보내던 관중들은 불꽃 튀는 육박전에 손에 땀을 쥐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선혈이 낭자한 경기에 벌벌 떠는 여성 관중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1·2라운드의 팽팽한 접전을 마치고 짧은 휴식시간 동안 세컨드의 임무는 작전 전달이 아니라 지혈이었다.

세 번째 연장라운드 종반, 결국 승부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체력의 열세를 보인 이은수가 빈틈을 보였고 그 곳으로 이면주의 송곳 같은 무릎 공격이 파고들었다.

탈진한 이은수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3라운드를 마쳤지만 4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이은수의 코너에서 피로 물든 타월이 링 위로 날아왔다.

이은수는 “싸울 수 있다”고 투지를 불태웠지만 승부는 이미 기운 상태.

30여분 계속된 혈투의 최후 승자 이면주는 ‘한국 최고의 파이터’에 오르며 우승 상금 3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석연찮은 판정에 관객들 야유도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결승전 경기와는 달리 대회 전체에 대한 평에서는 실망하는 목소리가 많다.

“저게 무슨 무술이냐. 막싸움이다”라면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다.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과 매끄럽지 못한 경기 진행에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킥복싱 태권도 레슬링 등 기존의 격투기 종목을 제외하고는 전통 무술 단체의 참여가 저조한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대회 주최측에서는 기존 무술단체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피를 튀기며 난투극을 벌이는 격투기 대회에 자기수양을 중시하는 무술 문파들이 참여를 꺼려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