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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우리 삶은 문화재 아닌가?

by Ajan Master_Choi 2013. 9. 22.

한 인터넷 카페에서 누군가 옛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커다란 팔각정 건물 앞, 

얼어붙은 연못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 

한쪽으론 케이블카도 보였습니다. 

다들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

 

며 궁금해했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난후 한 회원이

 

 "혹시 창경원?"

 

이란 댓글을 달고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곳은 1967년 창경원 춘당지에 신축 개관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수정궁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1970년대의 추억이 회원들에게서 하나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보트를 탔던 얘기, 

코끼리와 기린을 처음 본 얘기, 

소풍과 수학여행과 밤 벚꽃놀이 인파 얘기,

여가를 보낼 장소가 드물었던 그 시절, 

동물원과 놀이 시설이 갖춰진 창경원은 수많은 서울 시민이 즐겨 찾던 명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추억은 1983년에서 멈춥니다. 

 

일제가 1909년 동물원을 만들어 개방하고

1911년 창경원으로 격하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조선왕궁 창경궁의 복원이 시작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광복 후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뒤늦게 문화유산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잘 복원된 창경궁을 가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창경원 시절의 자취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909년부터 1983년까지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잘못된 역사'로 치부돼 삭제와 망각을 강요당한 셈이지요. 

일제가 궁궐 훼손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고 문화재 복원 역시 필요하지만,,,

75년 동안 그곳을 거쳐 갔던 민초들의 추억과 즐거움과 흥성거림까지도 모두 지워져야 하는 것일까요?

며칠 전 문화재청이 태릉 주변 복원 공사를 시작한다며 낸 보도 자료에서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태릉은 60년대 이후 선수촌 등 각종 시설이 무질서하게 건립돼 조선 왕릉 중 가장 훼손이 심했다."

 

1966년 세워진 태릉선수촌이 문화재 복원의 시각에서는 그저 '왕릉을 훼손한 무질서한 시설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태릉 일대의 완전복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방향 자체는 맞는 일입니다. 

 

만약 지금 새로 선수촌을 짓는다면, 인식이 부족했던 1960년대처럼 문화재 경내에 세워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조상이 만들어 놓은 왕릉만이 문화재인가요? 

 

지난 40여년 동안 대한민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인력의 산실이었으며, 

숱한 선수들의 꿈과 땀이 서려 있는 태릉선수촌은 흔적 없이 제거해도 되는 존재인가?

 

훗날 우리 후손이 '왜 한국 체육사를 증언할 태릉선수촌을 모두 없애버리는 문화재 훼손을 저질렀느냐'고 묻는다면 어찌 대답할 것인가?

 

지난 2008년의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서도 이미 "근대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한 졸속 조치였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혹시 우리는 조상이 남긴 유산을 복원하는 데 몰두하다가, 

정작 '우리 자신이 살아온 흔적'은 깡그리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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