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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언어(language)란 무엇인가?

by Ajan Master_Choi 2015. 7. 26.

 

여타의 유인원들과는 달리 유독 인간에게서 이러한 과정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개연성이 높은 가설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후두가 점차로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낱소리의 가능성들이 폭넓게 확장되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충분한 해명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이와는 달리 인간에게 문법이 가능하도록 하는 뇌의 영역이 진화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주장도 등장하였다.

연속된 낱소리들을 분절함으로써 의미를 생성해내는 능력은 왼쪽 귀의 위쪽에 위치한 소위 브로카 영역이 담당하고 있는데 어린아이들은 약 3세에 도달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 여기에 의존하여 언어를 형성해낸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에 대한 감각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고, 생후 처음으로 숙지하는 언어에 대한 문법은 이러한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는 촘스키의 주장이 옳다면, 이러한 선천적인 감각은 바로 브로카 영역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훗날 접하게 되는 제2, 제3의 언어들은 브로카 영역과 바로 이웃해 있는 뇌 영역의 도움을 받아 숙달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브로카 영역은 발음과 관련된 운동역학 전반에 관여하여 낱소리 구성, 낱소리 분석, 발음 중에 음절 끊기를 가능하게 해주며, 이 밖에도 추상적인 단어의 형성에 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언어의 흉내를 포함하여 언어의 이해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고, 이를 소위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부른다.

언어와 관련된 뇌의 영역이 이렇게 2개로 구분된다는 사실은 이미 19세기에 밝혀졌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다만 언어가 발현되는 세부적인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 추가적으로 밝혀졌고, 이에 따르는 뇌 연구의 대상도 여타의 뇌 영역들까지 새롭게 확대되고 있다.

 

적어도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 접하게 되는 언어는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언어는 사회적으로 “흉내를 내는” 대상이 된다.

흉내 내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를 이해하는 법, 그리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이해할 만한지 또는 아닌지, 그 여부는 문법뿐만 아니라 문맥의 구성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예를 들어 “내 눈에는 검게 보인다”라는 문장은 내가 검은색이 칠해진 어떤 것 앞에 서 있고 그래서 내 눈에 검은색이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하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혈기가 넘치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이런 문장은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언어생활에서는 사실상 다의성을 지닌 문장들이 언제나 우글거리고 있다.

비트겐슈타인 식의 정확한 언어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가 실패로 돌아간 원인은 사실 간단하다.

한 문장의 의미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의 단위가 아니라, 여러 단어들의 사용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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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논고』에 대한 반론의 가능성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신경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아니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여를 이미 다했으며 사물에 대해 최종적으로 유의미한 것들을 모두 언급해놓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어쩌다가 성과를 즐기기 위하여 잠깐 들를 수는 있겠지만 철학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며 종사를 하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자산을 형제들에게 분배해주고 젊은 시인, 화가 그리고 건축가들을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마저 기부하였다.

그 다음 단계는 교육학을 실질적으로 실현해보기 위해 지금까지의 보금자리를 떠나 첫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영국 내에서 높은 칭송을 받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빈에 위치한 교사양성 교육기관을 방문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몇 년 동안 학교교사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사로서 그의 업무성과는 참담하였고 시골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비트겐슈타인은 차라리 재앙이었던 것 같다.

1926년에 그는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교사직을 그만두고 한 수도원에서 정원사 보조로 몇 달 동안 일하다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견하여 곧바로 여기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건축가 한 사람과 함께 그의 누이 소유인 입체파 양식의 고급 주택을 설계•건축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가 특히 신경을 쓴 곳은 내부 인테리어의 설계였다.

이 주택은 빈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이 되었고 ‘빈 학파’도 이곳에서 자주 회합을 가졌다.

1929년에 비트겐슈타인은 15년 동안 떠나 있던 케임브리지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까지도 계류 중이었던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논문은 『논리철학 논고』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의 학문적인 작업은 그가 청년시절에 주장했던 것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반대되는 내용이었다.

그는 신들린 사람처럼 학문에 매달리고 글을 썼지만 출판을 할 만큼 무르익은 내용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였다.

그는 얽매이지 않는 계약강사로서 약간의 수입과 장학금에 의지하며 생활해야 했고 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의 기억에 따르면 이러한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는 “은둔자, 고행자, 정신적 지도자, 영도자”라는 평가를 주변세계로부터 받았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삶을 자진하여 청산하고 곧바로 궁핍 속으로 떨어진 비트겐슈타인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것 같은 삶의 주인공이었고 살아 있을 때에 이미 그 자신이 전설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현실에 대한 복사라는 관점에서 언어에 대한 이론을 주창하였지만 이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그 자신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동료였던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 피에로 사프라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는 현실의 논리적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을 강조하자 그는 손바닥이 밖을 향하도록 손을 들어 올려서 손가락 끝으로 턱밑을 긁으며 물었다.

"현실에 논리적 형식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지요?”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였고 1936년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초안을 거쳐서 말년에 완성한 저서 『철학적 탐구』를 사프라에게 헌정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죽은 후 2년째가 되던 1953년에 출판된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복사이론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논리의 수단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언어라는 생각도 더 이상 내세우지 않고 거두어들였다.

이를 표현해놓은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은 하나의 회화처럼 뚜렷한 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훗날 여성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언어는 오래된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좁은 길과 작은 공터가 얼기설기 뒤얽혀 있고, 낡은 집과 새 집이 한곳에서 어우러지고, 거기에 덧붙이고 또 덧붙여 지은 집들도 각양각색으로 여러 시대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수많은 위성도시들이다. 반듯하고 규칙적인 도로로 연결된 그곳에는 단조로운 양식의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한 단어의 의미는 언어생활에서 사용되었을 때에 비로소 규정될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철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는 단어의 의미와 문장 구조를 논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의사소통 도구로서 이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서로 상이한 ‘언어유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예전에 제멋대로 멸시해버렸던 심리학의 의미를 드디어 발견하였다.

언어유희는 아무도 없는 머릿속 허공에서 일어나는 내면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언어유희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에 기초를 둔 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고, 바로 여기에서 대부분의 오해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유희를 사회적인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것이 심리학자들이 해야 할 본질적인 임무라는 주장이다.

“철학에서 당신이 찾고 있는 목표가 있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대답은 언어의 논리라는 “유리병에 갇힌 파리에게 출구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58세의 이른 나이에 연금을 받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죽기 전의 마지막 해는 아일랜드와 옥스퍼드에서 생활하다가 1951년에 암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이었다.

“제 친구들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정말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가 막다른 골목에 불과했다고 한다면 그의『철학적 탐구』는 철학뿐만 아니라 당시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언어학에도 매우 생산적인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학문이 ‘분석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20세기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철학적 사조로 각광을 받았다.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분석철학의 출발점은 철학적 문제는 언제나 언어적인 표현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분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세계를 체험하는 양식과 방법은 언제나 언어를 통해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수단이 되는 사고에서 문자 그대로 ‘순수한’ 감각적 체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는 언제나 다의적이기 때문에 명징하게 하나로 수렴되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지각과 언어의 문제가 상호 침투하여 얼기설기 뒤얽히면서 생성되는 복잡성이 거대한 밀림에 비유된다면 분석철학은 이곳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셈이 된다.

 

언어학은 비트겐슈타인의 이론 중에서 ‘언어유희’에 주목하여 특정한 언어행위가 문맥에 따라서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해내고자 하였다.

영국의 존 랭쇼 오스틴과 미국의 존 로저스 설은 이를 통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언어행위에 관한 이론을 개발해냈다.

오스틴에 따르면 누군가가 무엇을 말했다면 그는 이미 ‘어떻게든 행동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제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문장의 이해가 성공하여 의도하였던 의미가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실패하였는지를 묻는 질문이 되었다.

언어를 통해 진리를 모색하는 이론에서 사회적인 의사소통 이론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특출한 수단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철학이 깨달아야 하는 점이 있다면 언어가 진리로 향하는 접근로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고와 언어는 정신이 질서를 확보할 때에 사용하는 수단일 뿐, 현실 ‘그 자체’를 정리하는 주체가 아니고 오히려 세계를 독자적인 규칙에 따라 해석해보는 한 모델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을 이해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 한 걸음 더 접근하게 될 것이다.

서로 상이하게 사물을 지각하는 사람은 역시 남다른 체험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다른 체험을 하는 사람은 역시 그 생각도 다를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역시 그에 맞는 언어를 독자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서로 상이한 개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사고와 언어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별해낼 수 있는 일차적인 증표가 된다.

감각기관의 지각적인 한계 그리고 언어의 한계가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된다.

 

우리의 사고가 언어라는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면 결국 옷의 선택은 한 눈에 파악되는 우리의 옷장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언급되는 것은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불문법을 따랐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이란 종의 필요에 따라서 현실과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만일 뱀이 방향감각을 찾는 데 언어가 필요하다면, 이는 뱀의 언어가 될지언정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뱀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만일 사자가 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를 통해 사자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