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서울을, 예전에는 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도성안이라고도 했지요.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도성안 만이 한양이었습니다.
사대문, 사소문 안의 사람들만이 한양 사람들인 이유는 서울은 팔대문으로 연결된 성곽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도성, 황성, 경성, 한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한양에 궁궐이 있습니다.
조선의 건국은 철저한 성리학의 개념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 서 전각 하나, 문 하나조차도 인간의 도리를 일깨우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의지예신
동대문은 흥인지문이며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이며 북대문은 숙정문입니다.
북대문이 숙정문이라고 불립니다.
동소문은 혜화문이며, 서소문은 소의문이고, 남소문은 광희문이며, 북소문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자하문, 즉 창의문입니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는 이름도 없고 아는 이조차 드뭅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북촌 마을은, 원래 왕의 궁궐을 비롯해서 고관 대작들의 집과 떠르르한 양반네들의 동네입니다.
운종가와 청계천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하여 남촌 마을은 목멱산, 지금의 남산 기슭을 중심으로 형성된 꼬장꼬장 한 가난한 양반들의 동네였습니다.
남산골 양반, 남산 딸깍발이등으로 불리운 이 선비들은 그야말로 물 마시고 이쑤시는 자존심 덩어리들 이었지요.
운종가는 많이 들어 보았을 겁니다.
흥인문에서 돈의문까지 도성을 가로지르는 중심가로였고, 전국의 물산이 집결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종로이지요.
지금의 세종로는 예전에는 육조거리로 불리웠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으로 길게 난 길로화문에 서 끝나는데, 나라의 육조를 비롯한 거의 모든 관부가 있었으므로 육조 거리로 불리웠습니다.
지금은 뭉뚱거려서 수도권이라 부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성안 사람들, 성밖 것들이라고 그 경계가 분 명했습니다.
삼 십여년 전만해도 서울의 일부 어르신들은 사대문 안에 사는 것을 자랑스레 말하곤 했지요.
간략하게나마 서울, 즉 도성을 말한 이유는 도성안에 궁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행궁이니 이궁이니 해서 지방에도 궁이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임금은 도성 안의 궁궐에 사는 존재였습니다.
우리의 궁궐을 고궁이라고 부릅니다.
왜 고궁일까요?
사람이 살지않는 빈 궁전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왕실이 살고 있다면 고궁이라고 부를리가 없겠지요.
예전에 낙선재에 이방자 여사가 살고 있었고,어렵게 귀국한 덕혜옹주가 궁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으나 지금의 궁궐은 모두 비어 있습니다.
고궁이란 말은 사라진 조선 왕실처럼 왠지 비감한 느낌을 주어, 나는 항상 궁이라 부르고 이름을 꼭 붙입니다.
여러분은 궁궐의 이름을 몇 개나 알고 있는지요?
아마 5대 궁궐은 알고 있을 겁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바로 5대 궁궐입니다.
간혹 경운궁과 덕수궁을 각기 다른 궁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운궁은 덕수궁의 다른 이름입니다.
종묘를 5대 궁궐에 포함시키는 엉뚱한 사람들도 있는데 종묘는 절대로 궁궐이 아닙니다.
중국의 자금성에 가본 사람들이 대부분 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경복궁이 자금 성의 전각 하나보다도 못하다는 말입니 다.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 입니다.
땅이 넓고 인구도 우리의 수 십 배이니, 궁궐도 크기 마련.
우리의 한양에 세워진 경복궁은 조선에 알맞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궁궐입니다.
5대 궁궐이외도 여러 궁이 있습니다.
별궁, 행궁, 이궁등 왕의 잠저도 궁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왕의 집에만 궁이란 호칭을 붙이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집을 운현궁이라고 부릅니다.
왕과 관계된 모든 것에 궁을 붙이기에 대비는 못되었으나 왕의 생모의 묘궁에도 궁자를 넣습니다.
바로 칠궁입니다.
대빈궁, 저경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육상궁, 덕안궁을 몰아서 칠궁이라고 부릅니다.
모두 왕의 생모들이지요.
원래는 육궁이었는데 1929년,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을 합하여 칠궁이라고 부릅니다.
궁궐은 나라 안에서 가장 크고 좋은 집이지요.
궁궐보다 크게 지은 집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임금이 사는 집이며, 직장이며, 놀이터며 , 평생을 살다가 죽는 곳.
정상 코스로는 궁궐에서 태어나서 원자, 왕세자를 거쳐 왕이 됩니다.
그러나 조선의 임금들은 밖에서 생활하다가 궁으로 들어와 왕관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살던 곳을 잠저라고 부릅니다.
임금이 되어 궁궐에 들어가 살게 되면, 잠저는 궁의 이름을 달고, 왕의 또 다른 공간으로 인정되어서 다른 사람은 살지 못 합니다.
왕이 허락하는 종친이나 종실의 사람들만이 살 수 있었습니다.
임금이 살던 곳을 떠나 옮겨 사는 것을 이어,
다른 궁궐로 옮겨가 사는 것은 임어라고 하며,
원래의 궁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어라고 합니다.
궁이 많지만 임금이 그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머물 수 없는 노릇이고,
모든 궁궐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곳을 법궁이라고 부르는데 그 곳에서 거처합니다.
정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의 궁궐은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실은 얼마동안 개경의 궁궐에서 살았습니다.
조정의 신하들도 이름만 바뀌었지,거의 대부분 개경을 근거로 한 토박이들이었지요.
그들은 천도에 거의 미온적 이었습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는 달랐습니다.
그는 개국을 했고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옮겨야만 새로운 왕권이 확립된다고 굳게 믿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고려의 궁궐이 몸서리나게 싫었을 겁니다.
태조는 직접 여러 예정지를 둘러 보았고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자 누구보다 천도에 큰 열정을 보였습니다.
원래 한양은 고려의 남경 이었습니다.
1394년 태조 3년 9월에 정도전, 심덕부 등이 먼저 한양으로 가서 종묘와 사직터를 정했습니다.
태조가 얼마나 개경을 싫어했으면 공사가 아직 시작되기도 전, 10월에 한양으로 천도를 합니다.
사극에서 보면 한양의 궁궐이 다 지어지고 천도를 하는데 현실의 역사는 그게 아닙니다.
궁궐은 커녕 행궁 한 채도 없는 상태에서 한양부의 객사를 행궁삼아 지내며 밤낮으로 공사를 독려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종묘와 궁궐 공사는 12월 4일에 착공, 십 개월 만에 완성합니다.
그 얼마 뒤 궁궐을 둘러싸는 성곽을 쌓고 동쪽에 건춘문, 서쪽에 영추문, 남쪽으로 광화문을 짓습니다.
태조 4년 12월 28일,
드디어 태조를 비롯한 왕실이 새 궁궐에 입성하니 조선왕조 최초의 궁전, 경복궁입니다.
내전이 173간, 외전이 192간, 나머지 필요 공간을 합하여 총 755간의 궁궐입니다.
자, 그럼 경복궁 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본디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은( 광화문, 근정전,사정전,교태전) 일직선상에 놓여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그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축을 비틀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얼굴 앞에다가 엉덩이를 들이 미는 꼬락서니입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가리려고 총독부 청사를 짓고 광화문까지 없애려고 했지요.
그 광화 문이 보존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덕분이었 습니다.
조선의 친일파를 비롯, 왕실과 사대부 들은 총독부를 짓는 십 년 동안, 아무런 저항도 하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광화문
을 없앤다 해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1922년, 개조라는 잡지 9월호에
"사라지려고 하는 조선 건축을 위하야"
라는 야나기의 글은 조선 민중의 심금을 일깨웠고, 그로 인해 광화문은 겨우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기어이 광화문을 해체해서 1927년 9월에 경복궁의 동북 쪽으로 옮겼습니다.
지금의 국립민속 박물관 입구 쪽입니다.
중건된지 60년만에 경복궁의 정문에서 유배 당해 죽은 문이 된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왜놈들이 광화문에 가한 두 번째의 폭거였습니다.
그렇게 죽은 문으로 있었으나 형체는 있었건만, 6.25 동란 때 폭격으로 형체조차 사라져 겨우 석축만 남게 되었습니다.
쓰라린 한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 무더기로 이 십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광화문이 복원된 것은 1968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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