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속히 고향으로 가보세요.어서요"
설정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캄캄한 방안엔 향내음뿐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 그제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꿈을 꾸었음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오색 구름을 타고와 자꾸 흔들어 깨운 이는 관세음보살이었구나"
이상한 꿈이다 싶어 망설이던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고향으로 향했다.
설악산에서 충청도 두매산골 까지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30여년 만에 찾은 고향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스님은 괴이하다 싶어 어릴때 살던 집을 찾아갔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속명을 부르며 부모님이 쫒아 나오실 것만 같은데 인기척이 없었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집안을 둘러 보았다.
그리곤 어머니, 아버지 형님을 불러 봤으나 대답대신 마루틈에서 자란 밀과 보리싹만이 보였다.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관세음보살님은 왜 고향으로 가보라고 하셨을까"
그때였다.
아랫마을에 산다는 한 노인이 나타났다.
"허~ 시주를 오신 모양인데 잘못오셨소이다. 이 마을은 얼마전 괴이한 병이 번져 모조리 떼죽음을 당하고 오직 한 사람 세 살된 아이가 살아 있을뿐이오"
알고보니 그 아이는 설정스님의 조카뻘이었다.
설정스님은 그 아이를 등에 업고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잘 키워 가문의 대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야무지고 영리했다.
산짐승 소리도 무서워 하지 않고 다람쥐와도 장난치며 잘 자랐다.
스님을 따라 조석 예불에도 참석하고 염불도 곧잘 했다.
2년 후 아기가 다섯살이 되어 제법 상좌 구실까지 해냈다.
그해 늦은가을.
겨울살림 준비를 하던 설정스님은 겨우내 먹을 양식을 구하러 설악산을 넘어 양양에 가야했다.
워낙 멀고 험한 길이라 조카를 업고 갈수가 없었다.
총명하고 똑똑하지만 겨우 다섯 살 밖에 안된 조카를 혼자 두고 나가자니 스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스님은 조카를 앉혀놓고 몆 번이고 다짐했다.
"절대로 문 밖에 나오지 말아라. 그리고 무섭거든 관세음보살을 외워라."
조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탁을 추켜들었다.
설정스님은 몇 번을 단단히 이른 후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걸음을 재촉한 스님이 숨을 몰아쉬며 양양에 도착한 것은 해질무렵 식량을 구해 돌아가려니 이미 캄캄한 밤중이 되었다.
혼자 암자를 지키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며 밤길을 떠나려 했으나 동네 사람들은 한사코 만류하였다.
"험한 산길에 산짐승도 많거니와 바람이 유난히 날카롭고 세차니 오늘밤은 쉬고 내일 새벽에 떠나십시요"
하는 수 없이 양양에서 하룻밤을 지세웠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튼날 새벽 길을 떠나려니 밤새도록 내린 눈이 지붕에 닿게 쌓였다.
마을이 이러하니 산은 말할나위도 없었다.
적설량이 많기로 유명한 설악산은 눈이 내렸다 하면 열길 스무길이라 이듬해 봄까지 꼼짝달싹 못하는 터다.
그러나 스님은 미친듯 배낭을 짊어진채 문을 박차고 나섰다.
"스님 아니되시옵니다. 못가십니다."
"놓으세요 내 어찌 다섯살 짜리를 암자에 홀로 두고 그냥 있겠소."
스님의 심정을 모르는바는 아니나 이 눈 속에 설악산을 넘는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므로 마을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말렸다.
스님은 마을사람들에게 붙잡힌체 멍하니 설악산을 처다보았다.
그토록 아름답던 대청봉 소청봉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 속에 묻힌 체 배고파 울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아 몇 번이고 설악산을 향해 치달았건만 번번히 눈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설정스님은 자연의 섭리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음을 뉘우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님은 그만 병석에 누웠다.
식음을 전페하고 앓아눕기 한 달.
신도들의 극진한 간호에 병세가 호전되면서 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염불했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어느듯 설악산이 변해갔다.
스님은 어디서 기운이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이 스님을 부축하여 대청봉에 올라서니 저 아래 골짜기 관음암에서 이상한 서광 한줄기가 짙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
스님은 미친듯이 조카를 부르며 단숨에 산길을 달려 암자에 당도해보니 법당안에서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염불소리가 낭낭하게 들렸다.
순간 왠 여자가 오색 치마자락을 끌며 밖으로 나와 하늘로 사라지는것이 아닌가 !
스님은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법당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스님!"
"아니 네가!"
"제가 왜요? 스님 오시기만 기다리며 관세음보살을 외웠더니 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돌봐주셨어요."
설정스님은 조카를 와락 껴안았다.
조카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설정스님은 어찌나 감격했는지 그 날로 암자 이름을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고쳤다.
다섯살 짜리가 지킨 암자라는 뜻 뿐만 아니라 동자는 그 때 이미 불법을 깨쳤음을 시사하는 이름이다.
이는 고려 말엽 일이라 한다
그 후 오세암은 수차의 중창을 거쳤으나 6.25 동란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조그마한 방 한 칸이 전설과 함께 남아있다.
조선시대 설정雪淨 스님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다.
겨울이 막 시작된 10월의 어느 날, 스님의 월동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4살의 조카를 위하여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 스님은 신신당부하였다.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향하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
이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난 스님이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을 때, 밤새 내린 폭설로 길에는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은 눈이 쌓여버렸다.
혼자 속을 태울 뿐 어찌할 수 없게 된 스님은 겨울을 지나 눈이 녹은 이듬해에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달려가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의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스님이 아이를 와락 끌어안고 그 까닭을 물었다.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
그 때 갑자기 한 젊은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관세음보살의 가피에 감격한 설정 스님은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을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관음전 옆 마당에서 바라볼 때 뒷산이 관음조암觀音鳥巖으로, 전설에 나오는 관음보살의 응신이고, 반대편 백담사 쪽으로 바라볼 때 있는 바위가 관음보살이 오세 동자를 아들처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어머니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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