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을 때때로 증오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감정이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과 이성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를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활동에 있어서 감정과 이성은 파트너 관계이다.
서로에 대해 신뢰를 유지하다가도 때때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갈등을 빚지만 헤어지는 법은 결코 없다.
양자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에 감정이 이성을 거의 배제한 채 단독으로 나서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채로 이성이 단독으로 먼저 나서는 경우는 상상해보기 어렵다.
감정이 우선 사고의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출발점이 주어지지 않으면 이성적인 사고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의무감이 먼저이고 전략적인 사고는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감정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식 상태를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감정은 해롭거나 귀찮은 것도 아니고, 유치한 존재도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감정은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감정이 한 사람의 ‘정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감정이 격하게 몰아치면 생각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토론 중에 내가 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더 이상 좋은 논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훗날 안정을 되찾은 후에 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우리의 삶에서 감정이 소멸된다면 이는 재앙이 될 것이다.
기쁨, 분노 그리고 질투는 우리의 인생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영약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이러한 감정이 없다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백지상태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인간은 행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뇌의 뉴런에 동인이 사라지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아무런 활기가 없는 적막강산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주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말자는 결단을 내릴 때에 그 주체는 이성이 아니라 뜻밖에도 감정이다.
우리의 사고는 언제나 감정에 의해서 채색되기 때문에 재미있는 착상, 마음을 졸이는 상상, 낙담이 뒤섞인 통찰, 불쾌한 생각, 낭만적인 발상 그리고 냉정한 계획들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감정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감정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감정은 철학에서 중요한 테마가 아니지만 고대 이후부터 철학자들은 위와 같은 질문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철학자들이 감정의 문제를 아무리 깊이 연구해보아,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자들은 자신이 설정해놓은 인식의 그물에 걸린 것만을 일단 감정이라고 부르자는 원칙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고 있다.
그들의 사고 목록에서 빠져 있는 것은 아예 토론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리거나 아니면 그 가치를 무시해버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인들은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이 문제와 씨름 하였다.
감정을 나타내는 그들의 단어는 ‘파토스 pathos’ 그리고 ‘파시오 passio’인데 이는 괴로움을 파생시킨다는 관점에서 열정 또는 격정을 의미하였다.
이에 비해서 ‘정서 emotion’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중립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 어원은 ‘움직이다 movere’라는 라틴어이고 따라서 정서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즉 감동을 의미하였다.
독일어에서 ‘감정 Gefühl’이라는 단어는 17세기에 프랑스 어 ‘상티망 sentiment’을 독일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감정이라는 단어는 복합적인 느낌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보다는 단순한 흥분상태를 의미하는 ‘상사시옹 sensation’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감정은 특히 신체적인 흥분상태로 표출되는데 이는 매우 유의미한 현상이다.
극한 상황에서 공포심과 같은 감정은 우리가 살아남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인원들은 외부 공격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고 있어서 필요한 경우에는 반사적으로 도망치는데 이는 유인원들이 살아남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행동수칙이다.
공포심과 이에 따른 반사적인 행동은 살아남는 데에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 및 여타의 동료집단에 적응하는 데에 유용하다.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 중에서 하나가 결여된 인간들을 상상해 보자.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매우 높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일찍 죽을 확률이 높다.
불쾌감을 못 느끼는 사람은 쉽게 중독이 되거나 질병에 걸린다.
타인에 대해 호감을 못 느끼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고립되고 동정심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의심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연정•충동•본능 그리고 열정 등은 한 개인의 생존 및 그룹의 유지에 도움이 되고 따라서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굶주림•수면욕•따뜻함에 대한 욕구가 문제가 되거나 아니면 도주•공격 또는 섹스가 현안이 되어도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무엇인가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회피하고자 노력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이다.
이는 단지 외적인 측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감정은 외부 자극에 상응하는 반응을 하도록 만들어줄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내적인 상태를 적당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진폭이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치면 이를 상쇄시켜 내적인 안정을 이루도록 이에 상반되는 감정이 거의 언제나 작용하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를 내거나 성적인 흥분에 빠져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큰 슬픔이나 실연의 아픔도 몇 달이 지나면 수그러들기 마련이어서 첫 번째 날처럼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이다.
감정과 관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감정을 잠재우거나 불러일으키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쌀쌀맞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도 마음속으로는 보다 자발적으로 감정에 휩쓸린 행동을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이와는 반대로 걸핏하면 흥분부터 하는 사람들도 냉정하고 침착하자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감정이 우리를 관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항하여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감정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뇌를 도구처럼 이용하여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는 뇌가 지닌 하나의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의 감정 그 자체인 것이다.
철학자들이 감정과 자아의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 뇌 연구는 최근 몇 년 동안에 이와 관련된 주제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뇌 연구는 MRI를 이용하여 뇌에서 일어난 흥분상태를 영상화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데에 성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뇌신경 생물학자가 주도하는 감정에 관한 연구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프랑스인들이 상티망과 상사시옹을 구분하듯이 ‘감정’과 ‘기분’을 서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데에 익숙하게 되었다.
뇌신경 연구자들이 이해하는 ‘기분’이란 화학적 반응과 뇌신경상의 반응이 서로 어우러진 결과이다.
기분은 일정한 본보기를 형성하며 인간이나 동물이 같은 기분을 지녔을 경우에 서로 구분되지 않고 매우 비슷하게 보인다.
기분에는 틀에 박힌 유형이 있고 그 생성 및 소멸 과정도 자동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서 감정은 상당한 규모의 의식이 항상 개입되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지닌다.
사람들은 필요한 경우에 감정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기분의 경우에는 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감정의 경우처럼 조절하기가 여의치 않다.
감정은 기분과 상상이 혼합된 결과이고 매우 개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굶주림 또는 반사적인 도망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 인간은 도마뱀이나 까치 그리고 박쥐와 동병상련할 처지겠지만 실연이나 향수 그리고 우울증은 그들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뇌 연구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세기 후반에 그 당시 새롭게 등장한 심리학은 철학자들이 그 사이에 철저하게 외면하였던 감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감정의 목록을 도식적으로 작성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기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서로 상이하게 분류되는 기분들은 도합 몇 개인가?
감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 감정에는 문화적인 배경과는 상관이 없는 기본적인 레퍼토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기분의 가짓수는 놀라울 정도로 단출한데 그렇다고 변별력을 지닌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창안해내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기분의 종류는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세기의 전환기에 빌헬름 분트는 인간의 감정 전체는 ‘유쾌함-불쾌함’, ‘흥분-망설임’ 그리고 ‘긴장-해소’라는 3개의 대립된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이러한 대립 감정의 짝짓기는 상당히 자의적이었다.
예를 들면 유쾌함과 흥분을 서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이후의 심리학자들은 대립 감정의 쌍을 포기하고 ‘근본적인 기분’을 나열하는 데에 주력하였고 1920년대에 이에 대한 12개의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이를 열거해보면, 행복-슬픔-분노-두려움-불쾌감-고마움-부끄러움-사랑-자부심-동정심-미움-놀라움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인류학 및 심리학 전공자 폴 에크먼은 이를 보강하여 16개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가 추가한 것은 존경심-만족감-안도감-죄책감이었고 슬픔은 너무 복합적인 감정을 뜻하기 때문에 제외했다.
그러나 이러한 리스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속 만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특히 이러한 기분들은 여타의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변질되기 때문에 우리말로 ‘기분’이라는 단어와 영어 또는 독일어로 표현되는 ‘이모션’이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나 마사이 족이 폴 에크먼의 견해를 자세하게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자신의 언어로 리스트를 만들고자 할 경우에는 1대 1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을 수도 있고 있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단어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뇌 연구자들도 기분과 감정의 의미를 언어로 설명할 때에 번역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우리의 기분을 촉발시키는 화학적 물질을 탐구해낼 때에는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연구대상을 오해의 여지없이 특정해낼 수 있다.
뇌 연구자들이 연구대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불리는 화학적인 매개물질로서 뇌를 비롯하여 체내의 신경세포 시냅스에서 방출되어 인접해 있는 신경세포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특정한 기분이 발생한 경우에 이러한 기분을 촉발시키는 것은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인데 특히 대표적인 것은 아세틸콜린, 도파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이다.
모든 신경전달물질은 놀라운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능은 아직까지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세틸콜린은 여러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운동선수 및 트레이너와 같은 존재로서 신경세포와 근육 사이의 자극을 전달해주고 땀샘을 활성화시킨다.
뿐만이 아니다. 아세틸콜린은 기억력과 학습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알츠하이머병은 이 물질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파민은 선동자이며 동기부여자이다.
이 물질은 혈액 공급에서 큰 역할을 하고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으며 혈압이 매우 낮은 경우에 혈압 상승효과가 있다.
그리고 호르몬과 관련해서 도파민은 정신병과 여타의 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면 정신분열증은 도파민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세로토닌은 외교관이자 중재자이다.
이 물질은 혈액순환에 영향을 미치고, 혈압을 조절해준다.
취침과 기상의 리듬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 이의 해소를 주선하는 것도 이 물질이다.
세로토닌이 정상적인 수준에서 존재할 때 사람의 원초적인 생명현상인 배고픔, 분노, 성행위 등을 적당히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경우에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기쁨과 만족감을 전달해주었다.
그러나 세로토닌이 부족한 경우에는 이와는 반대로 편두통이 발생하였다.
노르아드레날린은 경주용 자동차 운전자로서 거침없이 가속페달을 밟는 자이다.
두 사람이 대결하는 운동시합을 한다든지 무슨 일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경우에 체내에 이 물질이 활발하게 분비된다.
이 물질은 주로 동맥에 영향을 미치며, 도파민과 마찬가지로 혈압상승에 관여한다.
노르아드레날린이 감소하면 의욕도 사라지게 된다.
응급실에서는 약물중독 등으로 급격한 마비증상이 나타날 때에 이 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세틸콜린, 도파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은 대뇌변연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다량으로 발견되고 있다.
대뇌변연계는 다양한 감정반응들과 운동신경을 관리하는 센터로서 중뇌수도관주위회색질, 시상하부, 편도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중뇌수도관주위회색질은 섹스, 공격과 방어 그리고 굷주림 등을 조절한다.
비명, 한숨 그리고 한탄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이곳이다.
시상하부도 역시 영양 및 수분 섭취, 섹스 그리고 공격과 방어를 주관하고, 이 밖에도 취침과 기상의 리듬조절 그리고 혈액순환 조절 기능을 하고 있다.
인간의 섹스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언급해보자.
시상하부의 핵들 중의 하나인 내측시각전핵은 공격적인 성향과 섹스에서 큰 역할을 하고 동시에 이 둘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데 이 핵은 남성의 경우가 여성에 비해서 훨씬 더 발달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뇌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남녀간의 해부학적 차이 중 하나로서 남성과 여성이 섹스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지닌 이유를 설명해준다.
편도체의 크기는 비록 보잘것없지만 인간의 감정 조절과 관련하여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짐작만이 가능할 뿐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곳에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뿐만 아니라 아세틸리콜린도 집중적으로 분비되고 있으며 편도체의 핵에는 두려움과 공포를 관장하는 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밖에도 편도체는 학습과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를 맨 처음 놀라게 만들었던 일은 회를 거듭할수록 무덤덤하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처럼 기분이 학습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편도체 덕분이다.
우리의 모든 감정, 생각 그리고 행동은 화학적인 신호물질의 도움으로 파생되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흥분의 질적인 성격은 신경화학적인 관점에서 결정되고 조종된다.
기분과 감정에 대한 지금까지 설명은 감정에 대한 기초적인 문법에 불과하고 다양한 쓰임새에 따른 구체적인 의미는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
선동적인 도파민 분자, 중재적 기능을 지닌 세로토닌 분자 그리고 흥분을 일으키는 노르아드레날린 분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다.
이들은 한 신경세포에서 또 다른 신경세포로 뇌의 한 중심에서 도 다른 중심으로 파견되어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특정한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억제, 촉진, 동기부여 또는 차단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호전달물질은 자체적으로 의미 보유 기능을 지니고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의미를 방출하는 기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한 세트로 완성된 감정은 수많은 주체가 참여하는 복잡한 게임 같은 양상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특정한 뇌의 영역 또는 그 중심, 신경세포의 정보송출 및 응답과 관련된 성질, 신경전달물질, 뇌의 영역들의 연결 부위 그리고 감각기관을 통하여 뇌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자극 등이다.
특정한 어떤 음악은 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반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릿한 굴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을 때때로 증오하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감정을 화학적인 관점에서만 설명하라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감정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고 소멸되는지를 입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의 의식들을 묶어주는 접착물질이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본질적인 것을 결정짓는 것은 감정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의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의식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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