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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크레타에는 카잔차키스, 제우스, 테세우스가 내다버린 아리아드네가 있다

by Ajan Master_Choi 2010. 4. 1.

크레타 문명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고학자 에반스(Arther Evans, 1851~1941)이다.
아리아드네가 낙소스 섬에 남겨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테세우스가 다른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버리고 갔다는 설이 있고 아리아드네의 모습에 반한 디오니소스가 밤새 납치해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운명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헤르메스(혹은 아테나)가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갈 것을 명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결국 디오니소스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로부터 무슨 말을 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이 분노하여 아리아드네를 죽였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디오니소스가 여신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일설에 따르면

낙소스 섬에 도착한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성한 숲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일을 디오니소스가 여신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아리아드네는 처녀신의 신성한 숲을 더럽힌 죄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밖에도 낙소스 섬에 홀로 남겨졌을 때 테세우스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아리아드네가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뒤 실의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의 신화를 지배하는 강력한 코드 중의 하나가 인과율이다.

누구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신이든 영웅이든 비루한 자든.

헤라클레스도 오이디푸스나 이아손과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의 생애는 온통 살육과 도둑질, 사기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에반스가 1900년부터 10년간의 발굴을 통해 크레타 문명의 중심지인 크노소스 궁전을 발견함으로써 크레타 멸망 후 약 3천여 년 동안 완전히 잊혔던 크레타 문명이 되살아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에 전혀 알려지지 않는 문자가 적힌 점토판을 발견하고 크레타 상형문자에 비해서 선과 곡선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문자라는 뜻에서 더 오래된 것을 선문자A(선형문자A), 더 최근의 것을 선문자B(선형문자B)라고 이름 붙인다.
이후 그는 몇 십 년 동안 이 문자들을 해독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크레타 문명은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쇠퇴하다가 기원전 1450년경 그리스 본토에서 건너온 이들에게 멸망하는데, 이들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미케네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기에 이 문명을 미케네 문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유럽 문명의 출발점이 그리스 문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가 아닌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이다.
지금의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600년경 시작되었다.

에게 해 주변의 세계가 중기 청동기시대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기원전 1900년경에 제1차 궁전 문명(1st palace period)이 시작되었고 기원전 1700년부터는 제2차 궁전 문명으로 이 시기가 미노아 문명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전성기를 누리던 이 문명은 기원전 1400년 정도에 멸망했다.
크레타 섬에 고도의 문명이 만들어진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온난한 기후를 들 수 있다.
또 크레타 섬은 다른 섬들보다 면적이 훨씬 넓은 데다 평야가 많았다.

아시아와 가까워 오리엔트 문화권과 해상교통으로 연결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농업생산이 풍부한 데다 해상무역이 발달하면서 밝고 생동적인 문화가 성립되었다.

초기의 크레타 섬은 동부와 중부에 각각 독립적인 세력이 분립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경에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졌다.
미노스라 불리는 왕이 통일을 이루면서 섬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던 것이다.
미노아 문명이란 명칭은 전설적인 왕 미노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미노스 왕 때부터 정치·군사·예술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미노아 왕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의 교역을 거의 독점했다.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화려한 항아리에 담아 이집트, 시리아 등지로 수출하면서 무역국가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크노소스를 비롯하여 말리아, 파이스토스, 자크로스 등에도 궁전이 건립되었다.
도기와 금속기, 화려하고 세밀한 조각과 그림도 발달했다.

크레타 섬에는 오리엔트 지역과 달리 독립된 신전이 없었다.

신상이라고 확인될 만한 조상도 없었다.
이로 미루어 왕은 지배자인 동시에 최고의 신관으로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문자로는 그림문자(상형문자)와 선문자 A·B가 있었는데 선문자 B만이 1953년 영국의 고고학자 마이클 벤트리스(Michael George Francis Ventris)에 의해 거의 해독되었다.

아더 에반스(Arthur John Evans)는 미노아 문명을 발굴했던 고고학자다.

신화에서처럼 미노스의 크노소스 궁전이 크레타에 있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진 그는 1900년에 크레타의 수도 헤라크 레이온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서 발굴에 착수했다.
시작하자마자 거대한 궁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방이 1천 개가 넘는 궁전은 3~4층으로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궁전 안에는 유럽 최초의 포장도로가 깔려 있었고, 수도 설비와 하수도 시설까지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었고 호화로운 목욕탕도 있었다.
광정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건물 내부를 밝힌 구조는 건축술이 고도로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방과 복도의 벽은 화려한 프레스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장난치며 물속을 헤엄치는 돌고래들, 머리를 길게 땋은 젊은 여인들의 행렬, 돌진하는 황소와 곡예사 등을 그린 그림이었다.
커다란 항아리들이 많이 발견된 지하는 아마도 창고였던 것 같다.

이 항아리 모두에 올리브유를 채운다면 19,000갤론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청난 양의 올리브유 수출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궁전에서는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옥좌가 발굴되기도 했다.

신하들이 앉는 긴 의자 사이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그리핀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 옥좌이다.

기원전 1700년경에 대지진으로 추정되는 재난으로 섬 전 지역의 왕궁이 무너졌다.

그러나 곧이어 보다 대규모의 새 궁전이 재건되었음이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후 약 2세기 동안 크레타 문화는 절정기를 이루었다.

수도 크노소스는 인구 8만을 헤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했던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400년경 갑자기 붕괴했다.

미노아 문명을 발굴한 에반스는 지진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궁전의 방에서 갑작스런 재해의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피할 틈도 없이 숨진 것으로 보이는 주검을 찾아낸 것이다.
기름 그릇도 넘어져 있었고 연장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예술 작품, 가사 도구도 그대로 있었다.

크레타가 유럽에서 지진 활동이 활발한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에반스가 지진 붕괴설을 주장한 것은 체험의 영향도 있었다.
1926년 6월26일 크노소스 궁전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중에 강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궁전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근처 마을들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후 에반스는 거대한 크노소스 궁전이 지진으로 무너졌고 미노아 문명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지진학이나 지형학, 고기후학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시기였다.

1939년 그리스의 젊은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S. Marinatos)는 크레타의 여러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기원전 16세기를 기점으로 지중해 문명의 중심세력이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에서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에 주목하면서 크레타 섬 인근의 테라 섬 발굴 작업에 참여한 그는 죽기 전인 1988년까지 발굴을 계속하면서 미노아 문명을 연구했다.

1967년 그리스의 고고학자들은 테라 섬에서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화산재를 수십 미터 파헤치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한 아크로티리 마을 주변에서 고대 유적을 발굴한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잘게 부서져 바닥에 잔뜩 깔려 있는 채색 벽화의 조각들이었다.

복원된 완성품은 너무나 놀라웠다.
돌고래와 각종 물고기가 뛰노는 바닷속 풍경,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사슴들, 백합꽃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제비 등 자연의 생동감 있는 모습이었다.

권투하는 아이들, 양손에 물고기를 들고 있는 어부, 배를 타고 출전하는 용사들 등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 놀랍게 구체적으로 표현돼 있었다.
지금부터 3천6백여 년 전에 그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마리나토스는 에반스가 문명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한 지진보다 더 강력한 천재지변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지질학자들이 테라 섬 화산의 돌들을 조사했더니 이 화산이 크레타 문명 멸망 전에 폭발했고 두 번의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리나토스는 1883년에 발생했던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을 예로 들었다.
당시의 화산 폭발로 3만6천 명이 죽었고, 폭발로 생긴 쓰나미가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지질분석에 의하면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은 크라카타우의 4배가 넘는 규모였다고 한다.

테라 섬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350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대화>에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왕국 ‘아틀란티스’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전설은 원래 기원전 7세기 아테네의 정치가로서 이집트를 방문한 솔론이 그곳의 제사장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었다.


“많은 섬을 거느렸던 아틀란티스 왕국에 어느 날 갑자기 화산 폭발과 홍수가 발생해 사람들이 모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대륙 자체도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탐험가들이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고자 했으나 아무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1967년부터 시작된 아크로티리 유적 발굴은 아틀란티스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고도로 발달했던 테라 섬의 문명이야말로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로 지칭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테라 섬의 도시들이 기원전 1600년경 화산 폭발로 완전히 파괴된 사건의 기록이 이집트인들에게 전해졌고, 아테네의 솔론을 통해 플라톤의 작품에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화산재 속의 단서를 연구한 맥코이는 분출된 화산재가 크레타 섬을 뒤덮고 부석이 맹렬히 쏟아졌으며, 뒤를 이어 고온의 분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어서 강력한 쓰나미가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크레타 섬을 강타했다는 마리나토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입구가 좁은 크레타 북쪽 만에 쓰나미 파도가 갇히면서 피해가 훨씬 커졌을 것으로 본다.
바닷물이 크레타의 토지를 휩쓸어 염분으로 피해를 입었고 식량 저장창고의 식량도 상해 버렸다.

맥코이는 화산 폭발 때 분출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에 주목했다.

화산학자들은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이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폭발과 비슷한 규모라고 말한다.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성층권에 치솟은 이산화황은 태양빛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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