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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학생답다

by Ajan Master_Choi 2017. 7. 25.

이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난처해진다.

수백만 명의 학생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학생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가는 변화무쌍함과는 달리 학생다움이라는 말은 너무나 견고하고 밋밋하다.

학생답다의 범주에 들지 않는 학생들은 그럼 뭔가 싶기도 하고 학생답다의 의미를 학생이 정의하지 않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교육학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데 학생답다는 말이 널리 쓰이는 것과는 달리 교사답다, 학부모답다는 왜 없는지 희한하기도 하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도 이상하다.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꽂혔던 그 말이 지금 이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파고들고 있다.

사전에서는 본분을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나 직무라고 설명하는데 신기한 것은 이 본분이라는 단어가 학생이라는 단어와만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말에 명사 간 호응이 있었던가?


교사의 본분은 수업이다.

소방관은 본분은 화재 진화이다.

경찰의 본분은 치안 유지다.

무술지도자의 본분은 지도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그렇게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직장인의 본분은 업무일진대 그들에게 업무란 견뎌내야 할 고통이며 생계 유지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고통을 인내한 대가로 받는 월급과 그것을 통해 얻는 여가에서 나온다.


공부를 즐겨보라고,

학교를 좋아해 보라고,

수학을 즐겨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다.


반면에 업무를 즐겨보라고,

회사를 좋아해보라고,

부장님께 보고하는 것을 즐기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 성격이 이상하고 내 노력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조직문화가 이상하고 회사의 인간미가 부족해서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기준을 아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직업과 직장은 자기가 선택하기라도 했지 아이들은 학교에 그냥 던져진 건데 말이다.


학생은 당연히 머리가 단정해야지!

학생은 당연히 교복을 입어야지!

학생은 당연히 화장을 하면 안 되지!


위와 같은 말은 대한민국에서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럴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배웠다.

신도에게 교주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종교를 사이비라고 배웠다.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명령하는 이슬람 국가를 인권 후진국이라고 배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14세~19세의 사람들은 자기 머리 길이를 자기가 정할 수도 없고

자기가 입을 옷을 자기가 고를 수도 없고

자기 얼굴 모양과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대.


금기와 제약이 많을수록 닫힌 사회라고 했다.

우리 안의 타자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