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살인자',
'인류의 적'.
유대인에게 지난 수천 년 동안 따라붙은 꼬리표다.
제 2차 대전 당시 수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히틀러.
악마의 환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과연 그가 수많은 유대인 학살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악마'이기 때문이었을까?
무슨 목적으로 그런 악행을 벌였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물론 그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유추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말 하겠다.
가장 먼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인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독일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다."
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런 히틀러에게 자신들은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믿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만한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인이 좋게 보일리 없었다.
따라서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러한 유대인을 학살을 행했다고 한다.
또한 자금에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전쟁자금이 필요한 히틀러는 이러한 유대인을 학살하며 그 자금을 모두 몰수하여 전쟁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자금에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전쟁자금이 필요한 히틀러는 이러한 유대인을 학살하며 그 자금을 모두 몰수하여 전쟁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신을 죽인 살인자',
'인류의 적'.
유대인에게 지난 수천 년 동안 따라붙은 꼬리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는 오명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까지 반유대주의의 절대적 명분이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7장 25절을 대표적 근거로 삼았다.
이른바 '유대인 집단 책임론'이다. 특히 당시 기독교를 기반으로 둔 유럽에서 더 가속화하고 고착화됐다.
일부 사가들은 반유대주의가 유대인 집단 책임론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정서는 B.C., 즉 예수 그리스도 탄생 전인 기원전 이미 형성됐다.
고대부터 수 세기에 걸친 가장 오래된 증오다.
그래서 '고대 증오', '사라지지 않을 증오'라고도 불린다.
주체는 시대마다 달랐다.
고대에는 애굽, 아말렉, 바벨론, 페르시아 등에 의해 탄압과 학살이 반복됐다.
이유 없는 증오, 명분 없는 학살
반유대주의는 십자군 전쟁을 기점으로 조직적인 양상을 띠며 전개됐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11세기 말부터 2세기가 넘는 동안 십자군은 프랑스와 독일, 잉글랜드 등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마을을 약탈하고 학살을 저질렀다.
학살 앞에서 많은 유대인이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유럽 전역이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이교도 척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악마'
를 벌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대량 학살을 감행했다.
유대인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도 나돌았다.
유대인이 기독교 영아의 피로 제사를 드린다는, 일명 '피의 중상'이 대표적이다.
피의 중상은 12세기부터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했고 유대인 학살의 또 다른 구실이 됐다.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할 때는 유대인에게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소문이 퍼졌다.
페스트를 피해 간 나라조차 유대인이라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생매장하거나 화형 시켰다.
많은 유대인이 학살을 피해 동유럽과 러시아로 이주했다.
그들이 마주한 건 또 다른 재앙이었다.
폴란드에서는 17세기 중반 우크라이나 코사크 부대의 반폴란드 무장봉기로 유대인 수만 명이 대량 학살됐다.
19세기 러시아에서는 포그롬(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 및 학살)이 여러 차례 벌어져 수십만 명이 희생됐다.
군중은 유대인을 닥치는 대로 살육했다.
심지어 영아는 갈가리 찢어 죽이는 광란의 대학살이었다.
하지만 포그롬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반유대주의가 초래한 인류 최악의 비극은 홀로코스트였다.
나치 독일에 의해 당시 유럽 전체 유대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희생됐다.
홀로코스트 참화를 겪은 유대인은 오롯이 생존을 위해 선조들의 땅, 오늘날의 이스라엘로 향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반유대주의는 전쟁으로 확산했다.
이번에는 중동의 '공공의 적'이 됐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반유대주의 새로운 명분으로 언급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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