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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프로복싱 페더급 챔피언 역사

by Ajan Master_Choi 2008. 2. 28.

빌리 머피 Vs 조지 딕슨

프로복싱의 초창기만하더라도 경량급에 속하는 페더급, 밴텀급, 플라이급은 한계체중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1880년대 퀸즈베리 룰의 정착과 함께 차례대로 한계체중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이 중 페더급의 한계체중은 지금보다 더 가벼웠는데 아랫체급인 밴텀급이 자리잡으면서 1901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금의 126lbs 즉 57.150kg으로 조정되었다.
이 체급은 1886년 미국의 토미 워렌을 필두로 많은 선수들이 세계챔피언을 자임했지만 당시만해도 한계체중이 정립되지 않아 저마다 자기가 싸우기 쉬운 체중을 지정하기 일쑤였고 제대로된 글러브를 착용한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수 없었다.

각종 문헌에서 이 체급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공인한 선수는 뉴질랜드 출신의 <빌리 머피>였는데 자국을 벗어나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그는 1890년 1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영국의 아이크 오닐 웨어를 14R KO로 물리쳤다.
비교적 키가 큰 편이어서 가녀려 보였지만 어뢰라는 링네임답게 엄청난 파괴력을 소유한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8개월 뒤 호주출신의 명복서 <영 그리포>에게 15R TKO로 무너져 초대챔피언이라는 명함에 만족해야 했다.


한달에 많게는 서너차례 이상 시합을 가질만큼 왕성한 전투력을 보유한 그리포는 강타자는 아니었으나 안정된 수비를 기반으로 한 시원시원한 공격으로 인기를 모았다.
두 차례의 방어전은 상대선수의 반칙에 의해 모두 실격승을 거두었고 라이트급으로 월장하면서 이 체급과는 멀어졌다.

이 체급의 3대 챔피언에 등극한 캐나다의 <조지 딕슨>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밴텀급 초대챔피언으로서 파이오니어 시절에 이 체급을 정상궤도로 끌어 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1891년 3월 31일 미국의 칼 맥카시를 상대로 7번이나 다운을 빼앗은 끝에 22R TKO승을 거두고 2체급을 석권한 그는 세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승으로 장식한 뒤 대중적인 인기를 반영하듯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시범경기를 펼치며 팬들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그러던 중 1897년 10월에 모처럼 공식적인 타이틀 방어전을 갖었으나 한번 싸워 이긴 적이 있는 미국의 <솔리 스미스>에게 20R판정으로 패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테리 맥거번 Vs 영 코베트 2세

로스앤젤레스에서 탄생한 최초의 세계챔피언이었던 스미스는 잘 발달된 상체를 갖고 있었는데 움직임이 느리고 지나치게 라이트펀치에 의존하는 단순한 복싱스타일이었다.
3차방어전에서 아일랜드 출신의 <데이브 설리반>을 맞아 2R에서 왼쪽손목이 부러지는 불운을 겪으며 5R TKO패를 당해 1년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새챔피언에 오른 설리반은 빠르고 공격적이었지만 타이틀 탈환에 나선 <조지 딕슨>의 벽을 넘을 수는 없어서 10R 실격패를 당하며 두달도 못돼 타이틀을 빼앗겼다.
과거에 비해 파워가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한 포스를 잃지 않았던 딕슨은 순풍에 돛단 듯 방어행진을 펼치며 1년새 8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는 놀라운 업적을 쌓아 냈다.

절대강자로 군림한 딕슨의 쾌진격을 가로막은 것은 역시 밴텀급 세계타이틀을 버리고 올라온 미국의 <테리 맥거번>이었다.
미국의 링지를 창간했던 냇 플레이셔로부터 이 체급의 올타임 넘버원으로 선정될만큼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소유했던 맥거번은 별명인 "테러블"답게 6번의 방어전을 모조리 KO로 처리하며 최강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잘생긴 외모와 달리 날카로운 펀치와 매력적인 연타로 상대를 끝장내는 그의 모습은 상대에게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7차방어전에서 콜로라도의 로켓펀치로 불리우던 <영 코베트 2세>에게 2R만에 일격을 당하고 쓰러져 충격을 주었다.

맥거번에게 도전하기에 앞서 당대의 오스카 가드너와 전임 딕슨을 제압하긴 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코베트는 158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펀치력을 바탕으로 와일드하고 터프한 복싱을 구사해 높은 KO율을 기록했다.
비교적 기량도 뛰어난 편이어서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주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줄 알았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KO로 쓸어담은 뒤 4차방어전에서 맥거번을 다시 조우하여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R에서 맥거번의 턱에 통렬한 오른손훅을 먹여 KO승을 거두었다.
이후 코베트는 타이틀 방어에 소홀한 탓에 더 이상 세계챔피언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에이브 아텔 Vs 토미 머피

이즈음 또 한명의 대스타가 탄생하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희대의 승부사 <에이브 아텔>이다.
유태인 출신으로서 동생인 전 세계 밴텀급 챔피언 몬테와 함께 거리의 싸움꾼으로 자라난 아텔은 영리하다못해 교활하기까지했는데 프로 데뷔 초기에는 호쾌함이 넘치는 슬러거였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타고난 감각과 캐리어를 바탕으로 한 두뇌플레이를 펼쳤다.
노름을 좋아해서 포커판은 물론 자동차경주와 경마에도 탐닉했고, 심지어 자기시합에는 자신에게 큰 돈을 걸어 부를 축적해 눈총을 받았지만 매니저를 수시로 갈아치울 정도로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었다.

1901년 10월에 불과 17살의 나이로 만년의 조지 딕슨을 물리쳐 일찍부터 싹수를 보였고 2년 뒤 조니 리건에게 20R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세 번째 방어전에서 승패를 반복하던 동국의 <토미 설리반>에게 5R에서 레프트어퍼컷을 맞고 잠시 왕좌에서 물러났지만 설리반이 반칙타격과 체중초과 의혹을 받게 된데다가 논타이틀전에서 잇달아 패배하자 더 이상 세계챔피언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그 자리는 다시 <에이브 아텔>의 차지가 되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동국의 전 세계 밴텀급 챔피언 지미 월쉬를 15R판정으로 꺽고 왕좌컴백에 성공한 아텔은 1년에 대여섯차례나 방어전에 나서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그의 챌린저리스트에는 키드 허먼, 프랭키 닐, 오웬 모란같은 당대의 명복서가 수두룩했고, 한때 도전자가 품절되자 라이트급은 물론 웰터급이나 미들급선수까지 대적하는 괴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1912년 2월 동국의 조니 킬베인에게 20R판정으로 패할때까지 20번의 방어에 성공해 통산 22차방어의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두차례의 재임기간 중 이룩한 실적이지만 문헌에 따라서는 설리반과의 시합을 세계타이틀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후대의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던 조 루이스의 25차방어에 이은 두 번째 기록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아텔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경기를 포함한 프로복싱은 물론 프로야구 월드시리즈까지 승부조작을 일삼았던 괴짜였지만
복싱 실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은퇴할때까지 160전을 넘게 싸워 진 것은 고작 10여차례에 지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승부조작을 위해 고의로 저준 경기가 많았다.

조니 킬베인 Vs. 외젠 크리퀴

아텔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은 새로운 미국의 희망으로 등장한 동국의 <조니 킬베인>이었는데 동시대 무관의 제왕이었던 디펜스의 달인 짐 드리스콜에 비견되었던 뛰어난 챔피언이었다.
파워보다는 기술을 앞세운 테크니션으로 무려 11년3개월간 재위해 6개월 더 길었던 조 루이스 다음으로 장수했지만 대부분의 시합을 논타이틀전으로 치러 정식 방어횟수는 재위기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다섯차례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으로 불리웠던 짐 드리스콜이 세계챔피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체급의 왕좌도 NYSAC와 NBA로 양분되었는데 먼저 <NYSAC>가 타이틀방어에 소극적인 킬베인을 무시하고 이미 세계 Jr.라이트급 초대챔피언에 올라 있던 <조니 던디>와 영국의 대니 프러쉬 간의 챔피언결정전을 갖도록 해 9RKO승을 거둔 던디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시실리섬 출신인 던디는 형편없는 펀치력에도 불구하고 빠른 푸트웍을 바탕으로 거칠고 힘있는 복싱을 구사했는데 지금의 어퍼컷과 같은 올려치기에 능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페더급에서는 반쪽짜리 챔피언에 불과해서 던디는 Jr.라이트급 타이틀 방어에 치중했고, 그 사이 킬베인이 1년9개월여만에 6차방어전에 나섰다가 프랑스의 <외젠 크리퀴>에게 6RTKO로 무너지고 말았다.

과거 플라이급 시절에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재미를 봤던 크리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뒤부터 밀어치는 타법으로 전향해 하드히터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무서운 기세로 KO가도를 질주했다.
던디가 Jr.라이트급 타이틀을 상실하자 자연스럽게 크리퀴와의 통합타이틀전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1923년 7월 26일 뉴욕 폴로그라운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솜주먹인 줄 알았던 던디가 초반부터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퍼부어 1R에 한번, 2R에 두번의 다운을 빼앗으며 기선을 제압한 뒤 15R에서도 다운을 빼앗아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크리퀴는 프로데뷔 13년만에 오른 왕좌에서 50여일만에 물러났고 던디는 1년여동안 양분되었던 세계타이틀을 단일화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챔피언에 오른 던디가 체중조절의 어려움을 느끼며 타이틀을 반납하고 Jr.라이트급으로 돌아가자 이 체급의 왕좌는 또 다시 분열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다.

외젠 크리퀴 Vs. 조니 던디

이 체급은 신설 초기부터 파이오니어 시절의 대스타 조지 딕슨을 비롯해 테리 맥거번과 영 코베트 2세로 이어지는 세계챔피언 계보를 통하여 불후의 릴레이로 불리우며 많은 찬사를 받았고, 곧이어 등장한 천부적인 실력파 에이브 아텔의 장기집권으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후 ‘깃털’이라는 체급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 체급은 수많은 명챔피언을 배출하며 프로복싱의 ‘몸통’으로 발전해 나갔다.

조지 딕슨
루이스 키드 카플란 Vs 베이브 허먼

조니 던디가 스스로 왕좌를 물러나자 <NYSAC>는 이 체급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당시 프로복싱의 메카였던 뉴욕의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전을 개최했는데 6명의 참가자 중 유대계 러시아 출신인 <루이스 키드 카플란>이 예상밖의 선전을 펼치며 파죽지세로 최종전에 진출하여 미국의 대니 크라머를 9RTKO로 물리치고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소유한 터프가이로서 한때 리틀 나폴레옹으로 불리우며 맹위를 떨쳤으나 3차방어에 성공한 뒤 불어나는 체중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라이트급으로 전향해 버려 이 체급의 재임기간은 1년반에 불과했다.

1927년에 접어들자 NBA와 NYSAC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NBA>가 이 체급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세계챔피언을 배출했는데 카플란과 동향이면서 스타일이 비슷했던 <베니 바스>가 미국의 레드 채프먼을 10R판정으로 누르고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NYSAC>도 이에 질세라 한달 뒤 전임 조니 던디를 15R판정으로 제압한 미국의 <토니 칸조네리>를 챔피언으로 인정해 양 기구의 챔피언인 바스와 칸조네리는 자연스럽게 라이벌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향후 바스는 2관왕, 칸조네리는 3관왕에 오르는 명장들로서 이들은 많은 팬들의 염원에 부응하듯 이듬해 2월 챔피언 단일화에 나서 시종일관 난타전을 벌인 끝에 칸조네리가 통합챔피언에 등극했고, 바스도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선전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이탈리아인 이민 2세로 1년전 NBA 밴텀급 챔피언 찰스 버드 테일러에게 다소 억울한 판정패를 당했던 칸조네리는 불과 17살에 프로데뷔해 한달에 서너번씩 링에 오르면서도 언제나 정력적인 파이팅을 펼쳤다.

저돌적이면서도 영리한 인파이터였던 칸조네리는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고 몰아 부쳤는데 속사포같이 퍼붓는 눈부신 연타는 칸조네리 복싱의 백미였다.
한번 싸워 이긴 적이 있는 프랑스의 <앙드레 루티스>와 첫 방어전을 벌였지만 잦은 출전으로 인한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 15R판정으로 패한 뒤 곧바로 라이트급으로 월장했다.

토니 칸조네리 Vs 조니 던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업셋을 일으킨 루티스는 외젠 크리퀴에 이은 이 체급의 두 번째 프랑스 출신 챔피언으로서 파워부재를 교묘한 경기운영으로 커버해 온 링경력 10년의 베테랑이었다.
컨디션을 회복한 칸조네리와의 논타이틀전에서 실력차를 절감한 뒤 NYSAC로부터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1차방어 후 또 다시 네차례의 논타이틀전에서 전패하면서 황혼이 깃들어 2차방어전에서 미국의 신예 <배틀링 바탈리노>에게 완패했다.
아마추어에서 전미선수권을 석권하고 프로에 데뷔한 바탈리노는 엄청난 체력을 소유한 파이팅머신으로 맹수같이 사납게 달려드는 러싱파이터였다.

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이미 굴지의 밴텀급 세계챔피언 알 브라운을 제압해 돌풍을 예고했던 그는 2차방어전에서 쿠바출신의 기대주였던 키드 초콜레이트를 15R판정으로 누르고 루티스 이래 공석으로 남아있던 NYSAC 타이틀 마저 흡수했다.
이후 3차방어전에서 전 세계 플라이급 챔피언인 피델 라 바바를 돌려 세웠고, 4차방어전에서는 장래의 롱런챔피언인 동국의 프레디 밀러도 잡아내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밀러가 재도전한 6차방어전에서 한계체중을 초과한 채 링에 올라 3R에서 턱을 맞고 가벼운 다운을 당했을 뿐인데 돌연 레퍼리가 카운트 없이 밀러의 승리를 선언하는 해프닝을 겪으면서 어이없이 왕좌에서 물러났다.
후일 이 경기의 결과는 노컨테스트로 정정되었지만 한계체중 초과로 인해 챔피언벨트는 자진반납의 형식으로 거두어졌다.
이후 라이트급으로 월장했지만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파이팅을 잃어버린 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프레디 밀러 Vs 넬 타르턴

공석이 된 이 체급의 왕좌는 또 다시 분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우선 <NBA>는 8강전을 거쳐 최종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조니 페나를 누른 미국의 <토미 폴>을 새챔피언으로 인정했다.
비교적 기량이 좋았던 폴은 가드가 낮은 게 흠이었지만 워낙 펀치가 빠르고 강해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했었다.
그러나 논타이틀전마다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이더니 과거와 달리 <프레디 밀러>의 변칙적인 복싱에 고전하며 근소한 차이로 패해 첫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상실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보기드문 왼손잡이복서로 통산 246전에 빛나는 밀러는 카운터펀치를 주무기로 사용한 고급 기술자였는데 잘생긴 얼굴에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복싱을 펼쳐 보였다.
첫 방어전에서 1년 뒤 NYSAC 챔피언에 오르는 멕시코의 알베르토 아리스멘디를 격파한 이래 영국과 스페인을 날아다니며 11차례의 방어에 성공해 진정한 프로페셔널 챔피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밀러의 12차방어를 저지한 미국의 <피티 사론>은 아랍인의 피가 섞인 이민 2세로 아마추어시절 다친 오른손의 약점을 이겨내고 챔피언이 되었다.
펀치력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되었으나 눈이 좋고 움직임이 빨라 웬만해서 상대에게 타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4년전 NYSAC의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에 출전해 피델 라 바바에게 패했으나 그 후 논타이틀전에서 프레디 밀러와 베니 바스를 연파하며 이미 대기의 편린을 드러낸 바 있었다.

키드 초콜레이트 Vs. 류 펠드만

한편, <NYSAC>에서도 NBA에 대항하여 쿠반 봉봉 <키드 초콜레이트>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내세웠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미국의 류 펠드만을 12R에 KO시켰다.
아마추어에서 100연승(86KO)의 믿기 힘든 전적을 기록한 초콜레이트는 흑인특유의 탄력적인 상체놀림과 빠른 핸드스피드를 선보였고 타격전을 마다하지 않는 고감도의 펀치력을 갖추고 있어서 뉴욕에 스카웃된 이래 시대를 앞선 출중한 실력으로 연승가도를 내달렸다.
첫 세계도전에서는 배틀링 바탈리노에게 선제다운을 빼앗고도 종반에 체력이 떨어져 낙마했지만 이미 베니 바스를 꺽고 Jr.라이트급 정상에 올라 자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두 체급의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던 초콜레이트는 2차방어를 마치고 상위체급 도전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했으나 백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더 이상 세계챔피언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초콜레이트에 뒤이어 왕좌를 차지한 <알베르토 베이비 아리스멘디>는 서서히 프로복싱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멕시코의 두 번째 세계챔피언으로서 챔피언결정전에서 미국의 마이크 벨로이스를 15R판정으로 꺽었다.

후일 3체급을 제패하는 명장 헨리 암스트롱과 캘리포니아주에서 인정하는 이 체급의 타이틀을 놓고 승패를 주고받을 정도로 무시못할 실력을 갖추었지만 NYSAC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고 자국에서만 활동을 벌여 톱콘텐더였던 <마이크 벨로이스>가 챔피언 결정전 없이 그대로 타이틀을 승계받았다.
3형제가 모두 프로복서였던 벨로이스는 외모만큼이나 깨끗한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했는데 당대에 링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할 만큼 뉴욕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첫 방어에 성공한 후 역시 타이틀 방어에 소극적인 탓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헨리 암스트롱 Vs 피티 사론

<NBA>의 롱런챔피언 프레디 밀러의 몰락 이후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이 체급은 캘리포니아주가 인정한 세계챔피언 <헨리 암스트롱>이 등장하면서 팬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는데 한때 알베르토 베이비 아리스멘디에게 주저 앉아 실의에 빠졌던 그는 리벤지에 성공한 뒤 1937년 들어 10개월간 21연승(20KO)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광기를 드러냈다.
살인자라는 닉네임답게 경기가 시작되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강한 압박으로 때리고 부수며 돌진하는 스트롱스타일이 암스트롱 복싱의 진수였다.

당시 암스트롱의 타겟은 NBA챔피언 피티 사론이었는데 사론에게 암스트롱은 세 번째 도전자였고 이들의 격돌은 <NYSAC>에서도 챔피언 결정전으로 인정해 모처럼 맞이하는 이 체급의 빅매치가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참 물이 오른 암스트롱이 역시나 저돌적으로 사론을 몰아 부쳤고 5R들어 무자비한 펀치세례를 퍼부은 끝에 6R에 침몰시키고 KO승을 거두었다.
<헨리 암스트롱>은 챔피언 등극과 동시에 5년여만에 왕좌통일도 이룩해 그 해 미국의 링지가 선정한 최고의 복서로 뽑히기도 했다.

프로데뷔 후 비록 스타트가 좋지 못했지만 용솟음치는 강한 체력과 발군의 펀치력을 앞세워 KO가도를 질주한 암스트롱은 1938년 이 체급의 타이틀을 지닌 채 단숨에 웰터급과 라이트급 세계타이틀을 차례대로 손에 넣어 3체급의 타이틀을 동시  거머쥐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고, 사상 최초의 4체급 석권을 위해 미들급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는 용감무쌍한 활약상을 펼쳐 보였다.

페더급에서 웰터급으로 다시 라이트급으로 오르내렸던 암스트롱은 그 해 8월 라이트급 타이틀을 상실하자 이 체급의 타이틀도 반납하고 웰터급 타이틀 방어에 전념해 19차례의 방어에 성공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이 체급은 미래의 트리플크라운인 토니 칸조네리와 헨리 암스트롱의 폭발적인 파이팅으로 일대 광풍을 몰고 온 격전장이 되었고, 한편에서는 프레디 밀러같은 롱런챔피언도 배출해내며 식지 않는 열기를 이어갔다.

헨리 암스트롱

 

마이크 벨로이즈 Vs 조이 아치발드

괴물 헨리 암스트롱이 떠난 뒤 NBA와 NYSAC는 또 다시 각자가 인정하는 챔피언을 탄생시키며 분열했는데 먼저 <NBA>는 이탈리아의 레오네 에프라티에게 승리한 미국의 <레오 로닥>을 새챔피언으로 인정했고, <NYSAC>는 전임 마이크 벨로이스를 누른 미국의 <조이 아치발드>를 역시 새챔피언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인기 체급 답게 분열은 오래가지 않았고 양자는 1939년 4월 18일 챔피언 단일화에 나서 아치발드가 근소한 차의 15R판정승을 거두고 통합챔피언으로서 암스트롱의 뒤를 이었다.
단신의 영악한 아웃복서로 푸트웍이 좋은 해리 제프라의 러싱을 막아낼 만큼 치고 빠지는데 능했지만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높은 수준이 못돼 롱런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1년전 논타이틀전에서 KO패의 악몽을 경험하게 했던 피티 스칼조와의 지명방어전을 회피하다가 NBA타이틀을 박탈당했고, <NYSAC>타이틀은 <해리 제프라>와의 재대결에서 초반부터 턱이 돌아갈 정도로 얻어 맞으며 심판전원일치의 판정패를 당해 넘겨 주었다.
밴텀급시절 쓰리타임 챔피언 식스토 에스코바를 꺽고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제프라는 2관왕으로서 적쟎은 기대를 모았지만 <조이 아치발드>와의 러버매치에서 잘 싸우고도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해 2차방어에 실패하며 역시 단명에 그쳤다.

다소 겸연쩍게 왕좌에 복귀한 아치발드는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어서 멕시코계 강타자인 <찰키 라이트>에게 11R만에 무릎을 꿇고 넉달만에 다시 무관이 되었다.
유명 영화배우 매 웨스트의 보디가드 출신이면서 헨리 암스트롱의 스파링 파트너로도 일했던 라이트는 타고난 펀치력을 바탕으로 KO율이 높았던 하드히터였다.

첫 방어전에서 타이틀 탈환을 노리는 전임 제프라를 10R TKO로 제압했고 한번 이긴 적이 있는 루루 콘스탄티노에게도 거의 KO나 다름없는 판정승을 거두어 순조로운 방어행진을 펼쳤다.
하지만 희대의 테크니션으로 불리웠던 동국의 <윌리 펩>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 일방적으로 내몰리다가 타이틀을 빼앗겼다.

찰키 라이트 Vs. 윌리 펩

아치발드의 타이틀 박탈로 공석이 된 <NBA>쪽은 고만고만한 챔피언들을 양산하며 혼란의 시기를 맞이했는데 지명도전자였던 미국의 <피티 스칼조>가 프랭키 코벨리를 6RKO로 누르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브룩클린 출신으로 탁월한 기량과 더불어 원펀치의 파괴력도 장전하고 있어 요주의 인물이 되었던 그는 절제된 생활로 운동에만 전념했던 성실파였는데 3차방어전에서 무리한 감량때문에 거의 탈진상태로 링에 올라 6개월전 쉽게 이겼던 미국의 <리치 레모스>에게 1R부터 다운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으며 5RKO패로 무너져 아쉬움을 주었다.

안정된 챔피언 스칼조를 누르고 챔피언에 등극하는 이변을 연출한 레모스는 혈기왕성한 21살의 멕시코계로서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전임 조이 아치발드를 원사이드하게 제압할 만큼 공수의 기본을 갖추었고 스위치 복싱에도 능했다.
넉달 뒤 갖은 첫 방어전에서 경험 부족으로 인해 노련한 베테랑이었던 동국의 <재키 윌슨>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며 완패했다.
글자 그대로의 백전노장으로서 레프트잽이 좋고 영리한 푸트웍을 바탕으로 한 아웃복싱에 능했고 상대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보디공격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미 프레디 밀러같은 챔피언 클래스와 여러차례 싸우며 솜씨를 발휘했던 윌슨은 첫 방어전에서 타이틀 탈환을 노리고 덤벼든 레모스를 다시 한번 스쿨링해주었으나 2차방어전에서 캐나다의 <재키 칼루라>와의 체력전에서 밀리며 타이틀을 내주었다.
바위같이 단단한 체격에 강철 체력을 지녔지만 기술적으로는 수수했던 칼루라는 승률이 50%대에 불과한 사실상 반타작복서였다.
2차방어전에서 NYSAC챔피언 찰키 라이트에게 나가 떨어졌던 미국의 <필 테라노바>에게 6R만에 KO패를 당해 금새 잊혀진 챔피언이 되었다.
157cm의 단신인 테라노바는 두려움없이 당대의 강자들과 글러브를 섞었던 열혈파이터였지만 동국의 <샐 바르톨로>와의 2차방어전에서 지나친 오버웍으로 막판에 체력이 달려 타이틀을 넘겼다.

아마추어시절 밴텀급 골든글러브에서 우승하며 빛나는 전적을 쌓았던 바르톨로는 후일 로베르토 듀란을 길러내는 프레디 브라운의 지도를 받았는데 펀치력은 없었지만 레프트를 잘 쓰고 움직임이 좋은데다가 면도날같은 펀치는 상대의 얼굴에 상처를 내기 일쑤였다.
링 안팎의 신사다운 매너와 스마트한 복싱으로 정상급의 인기를 누렸다.
3차방어에 성공한 뒤 구원의 숙적인 NYSAC챔피언 <윌리 펩>을 상대로 챔피언 단일화에 나섰다가 12RKO패로 져서 챔피언벨트를 잃었다.

윌리 펩 Vs. 샐 바르톨로

이 체급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으로 평가받는 펩은 기가막힐 정도로 완벽한 푸트웍을 지닌데다가 안정된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위빙과 더킹은 물론 스웨이기술이 탁월하여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했고 다양한 공격루트와 정확한 타이밍의 컴비블로우는 탄성을 자아낼만큼 화려했다.
현대복싱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감각적이었던 그의 복싱은 아웃복싱의 교과서라고 할만큼 명인다운 모습이었다.

18살에 프로데뷔한 이래 흠없는 53연승끝에 왕좌에 오른 펩은 라이트급을 오르내리며 강인함을 과시하다가 전 세계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새미 안고트에게 생애 첫 검은별을 달았지만 첫 방어전에서 화려한 아마추어 전적을 자랑하는 샐 바르톨로를 가볍게 넘어선 뒤 세계 밴텀급 챔피언 마누엘 오르티스와 보스턴에서 충돌하여 예상밖의 타격전속에 한수 위의 현란한 스피드와 테크닉으로 압승을 거두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후 정력적으로 많은 시합에 출전했던 그는 브레이크없는 연승가도를 질주하면서 라이트의 왕좌복귀를 저지하고 강호 필 테라노바마저 굴복시켜 1945년 미국의 링지로부터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46년 6월 7일 이미 두차례 이긴 바 있는 NBA챔피언 샐 바르톨로와 챔피언 단일화에 나서 긴 잽에 이은 좌우컴비블로우와 감각적인 카운터블로우로 바르톨로를 괴롭힌 뒤 12R들어 오른손훅으로 바르톨로의 턱을 부수며 깨끗한 KO승을 거두어 이 체급의 유일무이한 세계챔피언으로 거듭났다.
1947년 1월 호사다마처럼 다가온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어도 다리부상 등으로 인해 앞으로 링에 서기 어려울 것처럼 보여졌으나 6개월 뒤 기적처럼 링으로 돌아와 과거와 다름없는 많은 시합을 소화하며 통산 6차방어에 성공하는 놀라운 괴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후일 또 한명의 명복서로 탄생하는 동국의 <샌디 새들러>에게 3R에서 턱을 얻어맞고 두차례 다운을 당한 뒤 충격적인 4RKO패를 당해 롱런에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날 승리한 새들러의 터프니스와 파괴력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펩이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패한 것으로 여기며 비관했지만 그는 불사신같은 생명력으로 내일을 기약했다.

윌리 펩 Vs. 샌디 새들러 (제1전)

이 체급의 당대 지존이었던 윌리 펩의 무패행진을 73에서 스톱시킨 새들러는 장신의 하드펀처로서 밸런스가 출중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압박은 종종 상대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거칠고 힘이 넘쳤다.
첫 방어전에서 <윌리 펩>과 다시 격돌하여 펩의 화려한 히트앤드런에 맞서 중반 이후 하드펀처의 진수를 보여줬지만 포인트에서 뒤져 펩의 재집권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날의 경기는 양자가 촌보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승부를 펼쳐 1949년 링지로부터 그해 최고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KO패의 상처를 딛고 불사신처럼 되살아난 펩은 여전히 훌륭한 테크닉을 앞세워 세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4차방어전에서 라이벌 <샌디 새들러>와 러버매치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3R에서 한차례 다운을 빼앗은 새들러가 7R종료 후 펩의 어깨탈구로 인해 8R TKO승을 거두고 역시 재임에 성공했다.
그리고 1년뒤 다시 재회한 양자는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온갖 반칙이 난무한 더티파이트를 펼친 끝에 2R에서 선제다운을 빼앗은 새들러가 오른쪽 눈자위의 상처가 깊었던 펩으로부터 9R에서 기권을 받아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날의 더티파이트로 인해 양자는 NYSAC로부터 출장정지처분을 받는 등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즈음 전성기를 맞이한 새들러는 휴전을 앞두고 막바지 전투가 한창이던 우리나라의 전쟁터에 파병되어 2년여의 공백기를 갖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복싱은 급격히 종착역을 향해 내달렸다.
3년반만에 나선 2차방어전에서 어렵사리 왕좌를 지켜내더니 논타이틀전에서 눈에 띄게 패전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3차방어전에서 가브리엘 엘로르데를 상대로 복수에 성공한 뒤 또 다시 무명에게 완패를 당하자 미련없이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새들러는 검은 피부에 연민을 불러 일으킬만한 마스크를 가졌지만 사생아라는 멸시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링위에서 자신을 불살랐던 이 체급의 위대한 파이터 중 한명이었다.

윌리 펩 Vs. 샌디 새들러 (제3전)

1940년대를 통틀어 이 체급에서 가히 무적을 자랑했던 윌리 펩과 그의 라이벌을 자처하며 등장했던 샌디 새들러간의 4연전은 비록 새들러가 3승1패의 우위를 지켰지만 양자 모두 흑백을 대표하는 승부사답게 매경기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고, 4년여에 걸친 이들의 불꽃튀는 레이스는 이 체급의 역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기념비적인 대결이었다.

호건 키드 배시 Vs 데이비 무어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 체급도 다른 체급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심의 세계챔피언 역사에서 벗어나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에서도 세계챔피언을 배출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나이지리아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호건 키드 배시>였는데 1949년 프로데뷔한 그는 3년 뒤 영국으로 건너와 두번씩이나 영연방챔피언에 오르며 서서히 이 체급의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슬로우 스타터로서 초반에는 가끔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핸드스피드를 동반한 맹렬한 연타가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불을 뿜는 공격이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어 주었다.

토너먼트를 거친 챔피언 결정전에서 알제리출신의 강호 셰리프 아미아에게 선제다운을 내준 뒤 후반에 러싱하여 10RTKO승을 거두었다.
첫 방어전에 성공한 뒤 보스턴에서 만년의 윌리 펩을 9R에 무너뜨리며 포효했지만 2차방어전에서 미국의 <데이비 무어>에게 중반 이후 무수한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된 채 13R만에 경기를 포기해 타이틀을 잃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강준호에게 패해 금메달의 꿈을 접고 프로에 뛰어들었던 무어는 단신이기는 하나 푸트웍이 좋고 다양한 기술은 물론 일발파워까지 겸비한 수준급의 챔피언이었다.

첫 방어전에서 배시를 재차 요절낸 뒤 두차례의 일본 원정을 감행해 다카야마 가쓰오를 군말없이 주저 앉혔고, 올림픽의 한이 서려 있는 헬싱키에서 홈링의 올리 마키를 2R만에 가볍게 요리해 전세계에 강인함을 떨쳤다.
그러나 6차방어전에서 맞이한 21살의 특급도전자 <슈거 라모스>의 줄기찬 러싱에 고전하다가 10R에 한차례 다운을 당한 뒤 기권해 4년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경기 후 의식을 잃은 무어는 이틀만에 뇌출혈로 사망해 많은 복싱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라모스의 강타를 여러차례 허용한 탓도 있었지만 10R 종반 링포스트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1년전 웰터급 세계챔피언 베니 파레트의 사망에 이어 또 다시 링사고가 발생하자 미국의 정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복싱폐지론이라는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났고 밥 딜런을 비롯한 포크싱어들은 무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프로복싱을 비난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로프는 3줄에서 4줄로 강화됐고, 링포스트도 사각에만 멀리 설치하는 등 링사고 방지를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데이비 무어 Vs. 슈거 라모스

쿠바 출신으로 자국에서 프로스포츠가 금지되자 멕시코로 망명한 라모스는 아마추어전적 74승 불패의 강력한 하드펀처로서 프로에서도 안정된 밸런스와 경쾌한 스텝을 앞세운 파이팅머신으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레프트에 이어 날리는 라이트펀치가 살인적이었고 접근전에서는 다양한 각도의 쇼트훅과 어퍼컷까지 구사해 공격력만큼은 팔방미인이었다.
일본으로 날아가 벌인 2차방어전에서 세키 미쓰노리의 턱에 위력적인 라이트훅을 폭발시키며 멀리 동방에까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두터운 선수층속에 등장한 멕시코의 붉은 매 <비센테 살디바르>의 맹렬한 연타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12RTKO패를 당해 4차방어에 실패하며 예상보다 일찍 라이트급으로 쫓겨 났다.
160cm가 조금 넘는 작은 키에 두툼한 상체를 지닌 살디바르는 흥행성이 낮은 사우스포의 통념을 깨뜨리고 마치 성난 투우처럼 전율적이고 왕성한 전투력을 과시해 인기를 모았다.


결정적인 주무기는 없었지만 라이트잽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채로운 공격력은 아즈텍의 후예다운 불굴의 정신력과 함께 단신의 불리함을 극복하고도 남았다.
경이적인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찬스를 잡으면 절대 놓치는 법이 없었고 장기인 연타는 매우 집요하고 전율적이어서 끝내 상대를 쓰러뜨려야 멈추었다.

예상을 뒤엎고 살인펀처 라모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려 괴물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2차방어전에서 무패의 신예 라울 로하스를 15RTKO로 물리친 데 이어 대영제국의 자존심 하워드 윈스턴마저 적지에서 제압해 사우스포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성 높은 스타로 떠올랐다.
세차례의 방어전을 홈링에서 여유있게 즐긴 뒤 다시 어웨이와 홈을 번갈아가며 숙적 윈스턴을 상대해 마지막 시합에서 12R TKO승을 거두며 한수위의 실력차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8차방어전을 마치고 평범한 삶을 위해 링위에서 돌연 은퇴를 발표하자 장내의 팬들은 영웅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밴텀급의 미스터 넉아웃 루벤 올리바레스가 출현하기 전까지 멕시코 복싱을 대표했던 살디바르는 폭발력을 갖춘 인파이터이면서도 깨끗하고 정직한 스타일로 자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센테 살디바르 Vs 하워드 윈스턴 (제3전)

살디바르가 은퇴하자 WBA는 하워드 윈스턴과 호세 레그라, 조니 파메촌을 포함한 상위랭커를 대상으로 4강전을 모색했지만 유럽복싱연맹(EBU)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 틈을 타서 1963년 창설한 후발주자 <WBC>가 EBU의 비호아래 1968년 1월 <하워드 윈스턴>과 세키 미쓰노리와의 챔피언결정전을 치렀고 9R TKO승을 거둔 윈스턴을 새챔피언으로 인정하면서 이 체급의 타이틀은 22년만에 다시 둘로 쪼개졌다.

전형적인 유럽스타일의 업라이트 복서였던 윈스턴은 장신의 스트레이터로서 날카로운 카운터 블로우가 주무기였다.
하지만 살디바르의 벽에 가로막혀 전성기를 다보낸 탓에 첫 방어전에서 리벤지에 나선 쿠바의 <호세 레그라>에게 1R부터 두 번씩이나 다운을 빼앗기더니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5RTKO패를 당해 단명하고 말았다.
마이애미와 멕시코를 거쳐 스페인에 정착했던 레그라는 1963년말부터 매년 20전 가까이 링에 오르며 통산 80전이 넘게 싸웠지만 패한 것은 윈스턴전이 유일할 정도로 승률이 매우 높았다.


마이애미에서 캐시어스 클레이시절의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운동하면서 알리의 전법을 따라했던 그는 미니 클레이로도 불리울 정도로 리드미컬하면서 파워넘치는 시원스러운 복싱을 선보였지만 6개월만에 갖은 첫 방어전에서 호주의 <조니 파메촌>과 접전 끝에 패해 후일을 도모해야만 했다.

프랑스 태생으로 어릴적에 호주로 이주해 당대의 밴텀급 세계챔피언인 라이오넬 로즈와 더불어 호주복싱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파메촌은 빠른 잽과 스피드를 보유한 고도의 테크니션이었다.
윌리 펩이 레퍼리로 기용된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영웅 파이팅 하라다의 거친 러싱에 밀려 세차례나 캔버스 신세를 지는 망신을 당한 뒤 제 발로 적지를 찾아가 후반에 하라다를 공략해 14RTKO승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2년여만에 컴백한 <비센테 살디바르>에게 한차례 다운을 당하며 판정으로 물러나 그 치세가 오래가지 못했다.

돌아온 살디바르는 여전히 전사의 모습 그대로였으나 홈링에서 갖은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젊은 자객 <시바다 구니아키>에게 밀리며 예상밖의 업셋을 허용해 과거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말았다.
적지에서 대어를 낚으며 WBA챔피언 사이조 쇼조와 함께 이 체급에 일본열풍을 몰고온 시바다는 요네쿠라짐 최초의 세계챔피언으로서 명트레이너인 에디 타운센드의 지도를 받은 테크니션이었다.


비교적 아담한 체구에 스피디하고 리드미컬한 복싱을 구사했던 그는 스냅을 활용한 컴비블로우와 빈 곳을 파고드는 연타능력이 탁월했고 프로복서로서의 근성 또한 만만치 않아 요주의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통산 여섯 번의 패배중 다섯 번의 KO패를 기록할만큼 형편없는 유리턱 때문에 3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클레멘테 산체스>가 날린 원투스트레이트를 맞고 3R만에 넉아웃돼 Jr.라이트급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조니 파메촌 Vs. 파이팅 하라다 (제2전)

전신인 NBA를 승계한 <WBA>는 유력한 상위랭커들이 WBC의 스케줄대로 잇달아 세계타이틀전에 나서자 1968년 3월 느닷없이 하위랭킹에 머물러 있던 미국의 <라울 로하스>와 엔리케 히긴스 간의 챔피언결정전을 지시하는 우를 범해 세계챔피언의 정통성을 훼손하게 되었다.


강력한 좌우훅을 앞세운 하드펀처였던 로하스는 벌써 3년전에 불세출의 챔피언 살디바르와 정면대결을 펼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바 있었지만 발이 느린 편이어서 테크닉이 좋은 우리나라의 서강일과도 접전을 벌였고 첫 방어전에서 일본의 난적 <사이조 쇼조>를 맞아 허공만 가르다 오히려 6R에 다운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판정으로 패해 자신의 시대가 지났음을 느껴야 했다.

이미 논타이틀전에서 로하스를 한차례 제압했던 장신의 사이조는 데뷔 4년만에 단신으로 도미하여 경쾌한 스텝과 빠른 스피드를 선보이며 적지에서 타이틀을 거머쥔 일본의 첫 번째 복서가 되었고 그해 연말 미국의 링지로부터 최고의 발전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타이틀 획득 후에는 홈링에서만 방어전을 치러 아쉬움을 주었는데 평소 솜방망이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시절 승패를 나누어 가졌던 호세 루이스 피멘텔의 턱에 통렬한 레프트훅을 꽂아 넣으며 2RKO승을 거둔 뒤 남미의 강호 고프리 스테벤슨에게는 최종회에 레프트어퍼컷으로 다운을 빼앗아 숨겨온 펀치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6차방어전에서 베네수엘라의 <안토니오 고메스>에게 묵직한 레프트훅을 맞고 3R부터 캔버스를 뒹굴더니 이판사판으로 고메스에게 달려들다가 5R에서 쓰리넉다운을 당해 3년만에 참담한 모습으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25살의 한창 나이에 은퇴한 뒤 킥복싱 선수로 데뷔해 이름을 날렸던 후지와라 토시오와 싸우기도 했다.

오소독스 스타일의 전형이었던 고메스는 스텝은 무딘 편이었지만 상체의 움직임이 좋아 상대의 타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고 좌우훅에 파워를 장착해 제법 KO를 잘 이끌어 냈다.
챔피언에 오르기전 장차 Jr.웰터급의 명장으로 등극하는 안토니오 세르반테스를 잡은 적도 있고 첫 방어전을 앞두고는 라이트급의 강자 에스테반 데 헤수스에게 생애 첫 검은별을 안겨줘 녹록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파나마의 흑표범 <에르네스트 마르셀>의 탄력있는 무브먼트를 따라잡지 못해 짧은 재위를 마쳤다.

사이조 쇼조 Vs 고프리 스테벤슨

윌리 펩과 샌디 새들러가 사라진 뒤 세계챔피언 데이비 무어의 사망 등으로 인해 다소 침체에 빠지는 듯 했던 이 체급은 불세출의 영웅 비센테 살디바르가 나타나면서 다시 한번 크게 조명을 받았고, 두터운 선수층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수준급의 세계챔피언들이 물고 물리며 군웅할거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이 시기에 일본의 동갑내기 스타였던 사이조 쇼조와 시바다 구니아키는 각각 적지에서 양대기구 타이틀을 획득해 재패니스 파워를 과시했고 두 선수는 1년 넘게 이 체급을 지배하며 일본천하를 이루었다.

클레멘테 산체스 Vs 호세 레그라

일본의 자랑인 시바다 구니아키를 적지에서 3RKO로 때려잡고 비센테 살디바르가 빼앗겼던 <WBC>타이틀을 멕시코로 되찾아 온 <클레멘테 산체스>는 덥수룩한 구렛나룻이 인상적이었는데 데뷔초만해도 그저 투지를 앞세운 돌격형에 불과했지만 캐리어가 쌓이면서 엄청난 화력으로 무장한 하드펀처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첫 방어전에서 체중을 맞추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한 채 전임 <호세 레그라>와 맞서 싸우다 무려 11번이나 캔버스를 기어다니며 10RTKO패를 당해 일찍 사라져 버렸다.

4년여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레그라는 여전히 날렵하고 예리한 모습이었으나 이번에는 밴텀급에서 올라온 멕시코의 <에델 조프레>에게 가로 막혀 첫 왕좌때와 마찬가지로 단 한차례도 왕좌를 수성하지 못하고 은퇴로 내몰렸다.
파이팅 하라다에게 밴텀급 세계타이틀을 넘겨준 뒤 8년만에 왕좌복귀에 성공하며 2관왕에 오른 조프레는 37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성도 높은 복싱을 구사했는데 첫 방어전에서 이 체급의 터주대감이나 다름없는 비센테 살디바르의 도전을 단 4R만에 셧아웃시켜 황금의 밴텀다운 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든든한 후원자였던 부친의 사망에 이어 매니저와의 불화가 겹치면서 링에 대한 열의가 식어버린 탓에 방어전에 나서지 못해 왕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프레의 후임으로는 곱상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펀치력과 폭풍같은 파이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미국의 스쿨보이 <보비 차콘>이 왕좌에 올랐다.

훗날 세계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무패의 라이벌 대니 로페즈를 9RTKO로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나서 베네수엘라의 노장 알프레도 마르카노에게 9R에서 강력한 라이트어퍼컷 더블펀치를 먹여 왕좌를 쟁취했다.
불과 22살에 세계챔피언의 영예를 안은 차콘은 첫 방어전을 마친 뒤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 시작하더니 신구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전 세계 밴텀급 챔피언 <루벤 올리바레스>와의 2차방어전에서 엄청난 감량 때문에 최악의 컨디션으로 링에 올라 불과 2R만에 KO패를 당하며 졸지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루벤 올리바레스 Vs 알렉시스 아르게요

1970년대 초반 WBC 타이틀이 혼돈속에 빠진 가운데 <WBA>쪽은 완벽주의자인 파나마의 <에르네스토 마르셀>이 굳건하게 왕좌를 지키고 있었다.
1년전 WBC 챔피언 시바다 구니아키에게 도전하여 우세한 경기를 벌이고도 엉터리 판정으로 왕좌등극을 미룰 수 밖에 없었던 마르셀은 농구선수출신답게 큰 키에 천부적인 스피드와 탄력있는 무브먼트를 자랑했는데 순간적인 기습공격에 능하고 묵직한 위력을 장전한 레프트훅은 물론 찬스시 터지는 맹렬한 좌우연타는 웬만한 인파이터못지 않은 화력을 보유했다.

논타이틀전에서 까다로운 상대였던 레오넬 에르난데스에게 실족했지만 세차례의 타이틀방어전에서는 탁월한 경기력을 발휘하며 모두 완벽한 KO승을 거두어 승승장구했다.
4차방어전에서 니카라과의 신예 알렉시스 아르게요를 맞아 심판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용에 불만족스러워하며 링위에서 은퇴를 선언해 타이틀을 가진 채 현역을 떠나려했던 평소의 꿈을 이루었다.

공석이 된 왕좌에는 멕시코의 괴물 <루벤 올리바레스>가 2체급을 제패하며 등장했는데 그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일본의 우타가와 젠스케를 7R만에 잠재우고 여전히 왕성한 전투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첫 방어전에서 정상 재도전에 나선 <알렉시스 아르게요>를 맞아 초반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13R에서 레프트훅을 맞고 첫 다운을 빼앗긴 데 이어 라이트어퍼컷을 맞고 역전KO패를 당해 불과 넉달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전임 마르셀의 예언대로 후일 위대한 챔피언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아르게요는 이 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지만 178cm의 장신에 완벽한 기본기와 밸런스를 바탕으로 펼치는 교과서적인 공수와 언제라도 상대를 눕힐 수 있는 파괴력을 겸비해 장래가 기대되는 매력만점의 챔피언이었다.
난적 레오넬 에르난데스를 비롯한 4명의 도전자를 모조리 KO로 제압한 뒤 내전에 빠진 조국의 현실앞에 잠시 방황하며 링에서 멀어졌지만 이듬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한 체급 위로 월장했다.

대니 로페즈 Vs 호세 토레스

밴텀급에 이어 이 체급에서도 투타임챔피언에 오른 <WBC>챔피언 올리바레스는 석달 뒤 가나의 <데이비드 코테이>와 첫 방어전에 나섰는데 이 무렵에는 이미 상대를 떨게 할 만큼의 위압감을 잃어버린 상태라 1R에서 비운의 징조처럼 레프트훅을 맞고 캔버스 신세를 지더니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 못하며 2-1의 판정으로 패해 또 다시 1차방어의 벽을 넘지 못했다.
4년 뒤 WBA 타이틀에 도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에우세비오 페드로사에게 12R TKO로 무너져 사실상 복싱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가나 최초의 세계챔피언인 코테이는 푸트웍을 이용한 교묘한 테크닉의 소유자로서 파워는 부족하나 스마트한 경기운영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롱런을 기대할 만한 유망주였다.
홈과 적지를 오가며 펼친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쓸어 담아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드러냈으나 홈링에서 미국의 <대니 로페즈>와 유혈이 낭자한 명승부를 펼친 끝에 로페즈의 강력한 좌우훅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인디언의 후예답게 화려한 깃털모자를 쓰고 링위에 등장했던 로페즈는 친형인 어니와 함께 형제복서로 활약했는데 데뷔초 거칠고 야성적인 강타를 앞세워 연전 연KO승을 질주했고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올리바레스를 포함한 당대의 강호를 상대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염원하던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늘 에너지 넘치는 경기스타일과 위력적인 펀치력으로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그는 전형적인 슬로우스타터로서 스피드는 물론 반사신경도 나쁜 편이나 어느새 상대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인 뒤 엔진이 잔뜩 걸린 좌우연타로 쓰러뜨리는 기술적인 파이터였다.

8차례의 타이틀 방어전 중 절반 이상은 초반의 열세를 뒤엎어 버리는 투지와 강타로 스릴만점의 역전극을 펼쳤고 단 한차례도 15R 종료 공소리를 듣지 않았지만 9차방어전에서 만난 멕시코의 젊은 도전자 <살바도르 산체스>에게는 더 이상 불사조가 아니었다.
초반부터 시종일관 얻어 터지며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13RTKO패를 당해 시대를 물려 주었다.

에우세비오 페드로사 Vs 로키 로클리지

아르게요의 월장으로 비어 있던 <WBA> 왕좌에는 톱랭커인 파나마의 <라파엘 오르테가>가 니카라과의 프란시스코 코로나도를 꺽고 새 챔피언에 올랐다.
눈이 빙빙도는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를 현혹시키는 마법의 아웃복서로서 통했던 오르테가는 형편없는 파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면에서 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정상정복을 이루었다.

일본으로 원정을 떠나 플리퍼 우에하라를 희롱하며 첫 방어에 성공했지만 스페인 원정에서는 홈링의 <세실리오 라스트라>에게 3R에서 죽다 살아난 뒤 끝까지 도망다니다가 챔피언벨트를 풀어 주었다.
비교적 프로전향이 늦었던 라스트라는 강력한 펀치력을 앞세운 성실하고 꾸준한 공격이 트레이드마크였으나 첫 방어전에서 여우같은 파나마의 <에우세비오 페드로사>에게 정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실수를 범해 세 번의 다운을 빼앗긴 끝에 13RTKO패하고 말았다.

전임 오르테가의 은퇴로 기회를 잡았던 페드로사는 밴텀급시절에는 WBA 밴텀급 챔피언 알폰소 사모라에게 도전했다가 글래스죠에 울었지만 챔피언에 오른 뒤 무려 7년간이나 왕좌를 지키며 19차방어의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한 굴지의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비교적 큰 키에 스피드와 유연성은 물론 때로는 변칙을 구사할 정도의 고감도 테크닉을 소유한 그는 레프트잽에 이은 날카롭고 정확한 타격과 함께 찬스시 피스톤같은 연타까지 구사해 전성기시절 단점을 찾기가 어려울만큼 퍼펙트한 복싱을 보여주었다.
전매특허였던 라이트어퍼컷을 앞세워 상대방의 가드 안팎으로 몸통과 안면을 고르게 공격하며 서서히 무너뜨린 뒤 후반에 프레스를 가해 KO승을 이끌어냈다.

철저한 가드와 더불어 교묘한 위빙과 더킹을 통한 세련된 수비력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고 클린치웍에도 능해 떨어지면서 뻗는 긴 리치의 훅과 스트레이트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원정경기가 많았던 탓으로 심리적인 적극성이 부족하고 끊어치는 맛이 떨어져 펀치의 강도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활발한 푸트웍과 접근전에서의 다양한 컴비블로우는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았다.

9차방어전까지는 순조로운 방어행진을 펼쳤지만 로키 로클리지와의 방어전을 기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더티플레이가 습관이 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노련미에만 의존하는 답답하고 재미없는 경기내용 때문에 팬들의 외면을 자초했다.
1984년 자국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후 본업보다 정치에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하더니 연습부족과 체중조절 실패로 인해 이듬해 6월 갖은 마지막 방어전에서 아일랜드출신인 클론즈의 폭풍 <배리 맥기간>에게 한차례 다운을 당하는 고전 끝에 대차의 판정패를 당하며 업셋의 희생양이 되었다.

살바도르 산체스 Vs 윌프레도 고메스

준수한 용모와 미끈한 몸매를 소유한 <WBC>챔피언 <살바도르 산체스>는 멕시칸 특유의 치고 또 치는 공격형이 아닌 날카로운 카운터공격을 주무기로 하는 기교파에 가까웠다.
데뷔초부터 빠른 스피드와 스냅이 들어간 레프트훅을 앞세워 일찌감치 제2의 살디바르로 통했고 화려함이 돋보이는 푸트웍을 바탕으로 전진과 후퇴를 적절히 반복하며 어떠한 각도에서든지 자로 잰듯한 정확한 펀치를 구사할 줄 영리한 복서였다.

또한 발을 이용한 아웃복싱에 능하면서도 찬스때 몰아치는 기가막힌 연타는 이미 대니 로페즈와의 두차례 경기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비교적 터프한 전진형 복서에게 강한 반면 루벤 카스티요나 패트릭 포드처럼 기본기가 충실하고 손이 많이 나오는 테크니션에게는 단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패의 KO왕 윌프레도 고메스의 32연속 KO 신화를 붕괴시키면서 경량급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최후의 경기가 된 9차방어전에서 후대에 명복서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아주마 넬슨의 도전마저 뿌리치는 찬란한 업적을 세워 당대의 롱런챔피언 에우세비오 페드로사를 능가하는 전도유망의 화려전사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10차방어전을 앞두고 포르쉐를 운전하며 스프링캠프로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소형트럭과 정면충돌하는 대형사고를 당해 23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알렉시스 아르게요전을 비롯한 수많은 빅카드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인생무상을 느껴야 했다.
산체스의 후임에는 톱랭커였던 푸에르토리코의 <후안 라포르테>가 마리오 미란다를 11RTKO로 꺽고 왕좌에 등극했다.
그동안 페드로사와 산체스의 벽에 막혔던 라포르테는 기본적으로 리드미컬한 스텝과 화려한 몸놀림을 이용한 영리한 공수의 아웃복서이면서도 인파이팅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일발파워와 터프니스도 갖추고 있어 강호로 분류되었다.

아웃복서치고는 히트 앤드 어웨이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높은 가드와 감각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수비능력도 탁월해 더욱 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두 번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치러낸 후 재도전에 나선 동국의 <윌프레도 고메스>에게 무수한 펀치세례를 받은 끝에 판정으로 패해 전임 산체스의 영광을 잇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드러냈다.

최초의 판정승으로 2관왕을 이룬 고메스는 이미 루페 핀토르와의 혈투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복싱생명이 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슈퍼밴텀급 시절에 비해 힘이 달렸고 수비에서도 많은 허점을 드러냈으며 바주카포의 위력 또한 예전같지 않았다.
결국, 첫 방어전에서 아프리카의 맹우 <아주마 넬슨>의 교묘한 공격에 시종일관 허우적거리다 11R 참담한 모습으로 가라앉아 충격을 주었다.

후안 라포르테 Vs 윌프레도 고메스

1970년대 초중반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과 출중한 실력으로 무장한 수준급의 챔피언들이 각축을 벌였던 이 체급은 WBC를 대표하는 대니 로페즈와 살바도르 산체스, WBA 챔피언 에우세비오 페드로사가 롱런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고메스를 꺽고 경량급 먹이사슬의 최강자로 부상한 산체스가 요절하자 수많은 빅카드가 사라지면서 점점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살바도르 산체스

 

에우세비오 페드로사

루벤 파라시오스의 타이틀 박탈로 비어있던 <WBO> 왕좌에는 영국의 저니맨 <스티브 로빈슨>이 동국의 유망주 존 데이비슨을 물리치고 새 챔피언에 등극하는 이변을 낳았다.
이로 인해 신데렐라맨으로 통했던 로빈슨은 챔피언에 올라 방어전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었던 케이스로 세련되고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레프트의 활용이 좋고 접근전에 능했으며 굳건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의 위, 아래를 고루 공략하다가 기회가 오면 좌우로 후려치는듯한 연타로 경기를 끝냈다.
자국의 전챔피언 콜린 맥밀란과 폴 호드킨슨은 물론 3관왕인 듀크 맥켄지마저 눕히면서 왕좌등극이 결코 행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였으나 8차방어전에서 희대의 쇼맨 <나심 하메드>의 표적이 되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예맨계 영국인인 단신의 하메드는 두 팔을 내린 노가드에 변칙적인 움직임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로 복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엔터테이너에 가까울 정도로 쇼맨쉽이 강했다.

아마추어를 거쳐 18살에 프로데뷔한 이래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복싱기질과 페더급을 뛰어넘는 강펀치, 파격적이고 코믹한 아웃복싱스타일로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KO행진을 펼치며 대영제국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순발력 넘치는 동물적 반사신경과 예측불허의 스피디한 기습공격으로 상대를 데리고 놀다가 기회다 싶으면 퍼붓는 무차별적인 연타가 압권이었다.
5차방어전에서 IBF의 롱런 챔피언 톰 존슨을 8R TKO로 눕혀 IBF 타이틀을 접수한 뒤 빅머니를 노리며 HBO와 중계권을 계약하고 본고장 미국에 진출하여 전 WBC 챔피언 케빈 켈리와 3번씩이나 다운을 주고 받으며 짜릿한 4R TKO승을 거두어 세계적으로 주가를 높였다.

WBA 타이틀을 박탈당한 윌프레도 바스케스마저 7RTKO로 쓰러뜨린 하메드는 또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WBC 챔피언 세자르 소토를 심판전원일치의 판정으로 제압해 WBC WBO 통합챔피언에 오름으로써 사실상 4대기구를 모두 정복하며 당대에 이 체급 최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산 15차방어 성공 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벌인 WBO의 라이벌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의 경기에서 바레라의 정석플레이에 예상과 달리 완패한 뒤 사실상 은퇴해버려 아쉬움을 주었다.
여왕 앞에서 스스로를 프린스로 칭하고 자신의 경기에 KO승을 예고할 만큼 스타성 풍부한 언행과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던 그의 복싱스타일은 일부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미대륙이 내세우던 당대의 실력자들을 차례차례 해치우며 복싱종가 영국의 자존심을 찾아주었고 세기말 신세대 복싱팬들이 필요로 했던 재밌고 강렬한 파이터로 인정받았다.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Vs 나심 하메드

베네수엘라 출신이면서도 한때 일본에 수입돼 활약하기도 했던 <WBA>챔피언 <엘로이 로하스>는 일발파워를 장전한 하드펀처로 슬로우스타터이긴 하나 한번 불이 붙으면 쉴새없이 공격을 퍼붓는 승부욕 강한 파이터였다.
비교적 큰 키에도 불구하고 스피드가 좋은 편이었고 리드잽으로 상대를 교란시킨 뒤 화력이 좋은 좌우훅과 스트레이트를 활용해 KO를 이끌어냈다.
타이틀 방어전이 이어지면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기보다는 지능적인 아웃복싱으로 상대를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해 쉽게쉽게 방어횟수를 늘려갔으나 7차방어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노병 <윌프레도 바스케스>에게 11R에서 통한의 레프트 카운터 블로우를 턱에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바스케스는 36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이 넘치는 러싱파이팅을 펼치며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하지만 4차방어에 성공한 후 WBA의 지명방어전 지시를 무시한 채 한참 뜨고 있던 WBO 챔피언 나심 하메드와의 일전을 감행해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시합에서도 7R TKO로 패해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새 챔피언에 등극한 미국의 <프레디 노우드>는 민대머리 때문에 작은 해글러로 불리운 무패의 왼손잡이 변칙복서로 챔피언결정전에서 2관왕을 노리던 안토니오 세르메뇨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상대에 따라 임기응변이 탁월했던 노우드는 눈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난데다가 위빙과 사이드스텝을 적절히 활용해 상대에게 정타를 허용하는 일이 드물었고 예측불허의 기습공격으로 상대를 찌른 뒤 우악스럽게 프레스를 걸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비스듬이 숙인 자세의 숄더블록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추었지만 발이 없는 허슬플레이로 인해 간혹 노가드상태에서 안면을 노출하는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한달 간격으로 2차방어에 성공한 뒤 마쓰모도 고지와의 3차방어전을 앞두고 체중을 맞추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노우드의 실수로 기회를 잡은 <안토니오 세르메뇨>는 회장국 출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원으로 약체 게나로 리오스를 상대해 4R KO승을 거두고 가볍게 2체급 석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2차방어전에서 원래 주인이었던 <프레디 노우드>와 지루한 범전 끝에 타이틀을 잃어 이 체급에서의 재위는 짧았다.
재집권에 성공한 노우드는 첫 세계도전에 나선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에게 신승을 거둔 뒤 다시 찾은 일본에서 고시모토 다카시를 요절내며 위용을 과시했지만 4차방어전에서 로이 존스 주니어의 절친인 미국의 <데릭 게이너>에게 11R TKO패를 당하면서 하강곡선을 그렸다.

루이시토 에스피노사 Vs 마누엘 메디나

아마추어시절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던 <WBC>챔피언 <케빈 켈리>는 사우스포 하드히터로서 프로데뷔 후 뉴욕의 메디슨스퀘어가든을 주무대로 하는 동부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흑인 특유의 탄력있는 움직임과 순발력은 물론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했던 그는 비교적 수비력도 견실한 편이어서 챔피언에 오른 뒤 롱런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3차방어전에서 맞이한 멕시코의 복병 <알레한드로 곤살레스>에게는 초반부터 여러차례 큰 펀치를 허용하며 다운을 주고 받는 혈전 끝에 눈부상으로 인해 10R종료 후 경기를 포기해버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챔피언에 오르기전부터 루이시토 에스피노사와 세자르 소토같은 미래의 챔피언들을 잇달아 격추시켜 물건임을 암시했던 곤살레스는 체격조건이 좋은데다가 상대를 가두는 능력이 탁월하고 못때리는 펀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컴비네이션을 자랑했다.
두차례의 방어전은 손쉽게 넘어섰으나 3차방어전에서 동국의 전 IBF 챔피언 <마누엘 메디나>의 빠른 스피드를 잡지 못해 분루를 삼켰다.

곤살레스에게 예상외의 선전으로 투타임챔피언에 오른 메디나는 호시탐탐 2관왕을 노리던 전 WBA 밴텀급 챔피언 <루이시토 에스피노사>의 좌우연타에 시달리다 80여일만에 추락해버려 스치듯 사라지고 말았다.
조 고이즈미의 권유로 일본에서 뛰고 있었던 에스피노사는 체증고에서 해방된 이 체급에서 경쾌한 스텝과 긴 리치를 이용해 레인지가 큰 좌우컴비블로우를 앞세워 승승장구했는데 과감하게 멕시코 원정에 나서 타이틀 탈환을 노리는 전임 곤살레스를 4R에 떡실신시키고 리벤지에 성공한 이래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멕시칸 파이터들을 줄줄이 쓰러뜨려 본고장으로부터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 진출 이후 무패의 후안 카를로스 라미레스를 11R부상판정으로 꺽은데 이어 7차방어전에서 인기복서 케네디 맥키니마저 불과 2R만에 쓰러뜨려 한때 WBC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부상했지만 2차방어전 상대였던 멕시코의 노장 <세자르 소토>와 벌인 리매치에서 상대의 끊임없는 접근전을 제대로 풀어 내지 못해 간발의 차로 패퇴해 아쉬움을 주었다.
지칠줄 모르는 접근전이 특기인 소토는 경기경험이 많고 원펀치의 위력도 갖고 있었지만 발빠른 상대에게 고전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심 하메드>와의 통합타이틀전에서 버팅과 홀딩이 난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끝에 판정으로 패해 5개월만에 좌초했다.

WBC 타이틀은 통합챔피언에 오른 하메드가 WBO 타이틀 방어에 전념키로 결정하면서 공석이 되었는데 왕년의 플라이급 강타자였던 구티 에스파다스의 아들 <구티 에스파다스 주니어>가 왕좌복귀를 노리던 에스피노사에게 압승을 거두고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묵직한 좌우훅과 다채로운 연타를 지니고 있어 일정거리에서 절대적으로 강한 장점이 있었고 끊임없이 파고드는 공격적인 자세에 안정된 밸런스까지 갖추고 있었던 반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푸트웍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슈퍼밴텀급에서 올라온 <에릭 모랄레스>의 아웃복싱을 잡지 못해 접전 끝에 타이틀을 상실했다.

톰 존슨 Vs 스테판 하쿤

<IBF>쪽은 미국의 <톰 존슨>이 장기집권했는데 기교가 뛰어나거나 하드펀처는 아니었지만 안정된 밸런스를 바탕으로 긴 리치의 레프트를 잘 썼고 궤적이 큰 좌우훅은 빠르면서도 강했다.
발도 적당히 쓸줄 알았고 기민한 상체놀림으로 상대에게 쉽게 공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스테판 하쿤과 올란도 소토같은 신예들을 돌려 세우고 러버매치에 나선 전임 마누엘 메디나를 재차 물리쳐 롱런가도에 진입했다.
이후 유럽을 밥먹듯이 드나들며 순조로운 방어행진을 펼친 존슨은 11차방어에 성공한 뒤 전격적으로 WBO 챔피언 <나심 하메드>와 통합타이틀전을 갖었는데 하메드의 빠른 스피드와 변칙적인 움직임을 잡지 못한 채 헛스윙만 남발하다가 8R에 레프트어퍼컷을 맞고 침몰했다.

IBF 타이틀까지 거머 쥔 하메드는 두차례의 통합타이틀 방어전을 초반 KO승으로 장식한 뒤 빅매치에 목말라 있던 중 IBF가 지명방어전을 지시하자 타이틀을 내팽개쳐 버렸다.
공석중인 왕좌에는 멕시코의 톱랭커 <엑토로 리사라가>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전 IBF Jr.페더급 챔피언 웰컴 은시타에게 기대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10R에서 기권을 받아냈다.
캘리포니아에서 데뷔한 리사라가는 투지만점의 돌격형으로 데뷔초만해도 시계제로의 저니맨이었으나 펀치력과 터프니스를 키우면서 반전을 이뤄낸 역전의 용사였다.
하지만 정신없이 들락거리는 전임 <마누엘 메디나>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말려들어 기운만 뺀 채 불과 넉달만에 잊혀졌다.

3년만에 또 다시 챔피언벨트를 허리에 두른 메디나는 여전히 위태로운 왕좌를 수성해야 했는데 2차방어전에서 영국의 강타자 <폴 잉글>과 다운을 주고 받는 난타전끝에 판정으로 패해 역시나 단명하고 말았다.
아마추어시절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했다가 금메달리스트인 북한의 최철수에게 고배를 마신 뒤 프로에 뛰어들어 연승행진을 펼치며 전도유망한 뉴페이스로 등장한 잉글은 밀리터리룩에 아마추어 출신답지 않은 터프니스와 파이팅을 선보였는데 스트레이트보다는 좌우훅을 선호하는 단신의 인파이터였다.

첫 방어전에서 3관왕을 넘보던 주니어 존스를 11R에 KO시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부실한 턱 때문에 2차방어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블레로 보틸레>에게 12RKO패를 당한 뒤 의식을 잃어 뇌수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폴 잉글 Vs 주니어 존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다소 어지러운 혼전 양상을 보인 이 체급에서 사실상 4대기구를 통일한 나심 하메드의 활약은 매우 독보적이었고, 슈퍼밴텀급에서 올라온 에릭 모랄레스와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의 등장은 2000년대 초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와 매니 파퀴아오 등과 함께 이 체급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에릭 모랄레스 Vs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제2전)

뉴밀레니엄에 들어서자 이 체급에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만한 폭풍전야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슈퍼밴텀급시절 ‘Z-보이스의 재래’로 불리우며 이미 한차례 충돌했던 경량급의 라이벌 <WBC> 챔피언 <에릭 모랄레스>와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가 이 체급에서 또 다시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치루게 된 것이다.

 

첫 방어전에서 우리나라의 지인진에게 고전했던 모랄레스는 나심 하메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던 바레라를 맞이해 첫 만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박진감 넘치는 타격전 속에 막상막하의 선전을 펼쳤지만 경기 후 바레라의 손이 올라가면서 생애 첫 검은별을 달게 되었다.

 

모랄레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1차전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레라에게 승리를 빼앗겨 다소 아쉬운 일전이 되었다.

2체급 석권에 성공한 바레라는 WBC 챔피언벨트에는 관심조차 없어서 곧바로 내버린 뒤 3관왕인 조니 타피아와 케빈 켈리를 연파하고 이 체급 최강으로 군림하면서 달러박스 역할을 툭톡히 해냈다.

그러나 역시 아래체급에서 월장해 온 필리핀의 매니 파퀴아오에게 컨디션 저하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더니 11RTKO로 완패해 지존의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 경기를 통해 일약 월드스타로 떠오르게 된 파퀴아오는 비록 이 체급에서 그 흔한 세계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액션스타 이소룡을 방불케하는 빠르고 정확한 타격과 유연한 스텝으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넘버원으로 대접받았다.

머리와 어깨를 불규칙적으로 흔들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며 치고 빠지는 특유의 복싱스타일은 상대로 하여금 공격의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고 플라이급 출신의 불리한 신체조건을 번개같은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극복해냈다.

체중을 완전하게 실어 치는 섬광같은 원투스트레이트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고 상대의 안팎을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공수는 체급을 올려 싸울수록 빛을 발했다.

게다가 스태미나와 맷집은 물론 공・수・주가 뛰어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왼손잡이라는 잇점까지 갖고 있어 당분간 그의 천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Vs 매니 파퀴아오(제1전)

공석이 된 왕좌에는 원래 1, 2위인 지인진과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가 챔피언결정전을 갖어야 했으나 WBC와 봅 애럼의 비호 아래 <에릭 모랄레스>가 폴리 아얄라를 제물로 다시 한번 이 체급의 챔피언으로 복귀했다.

약골을 상대로 두 번의 타이틀방어에 성공한 뒤 3체급 석권을 위해 감량에 무리가 없는 슈퍼페더급으로 월장했다.

 

톱콘텐더로서 모랄레스에게 도전해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었던 우리나라의 <지인진>은 적지에서 영국의 마이클 브로디와 두차례나 챔피언결정전을 벌이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7RTKO승을 거두고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불같은 투혼과 엄청난 스태미나를 소유한 지인진은 침착하게 압박하다가 상대의 빈 곳을 찌르는 기술이 탁월했고 예리한 스트레이트와 어퍼컷에는 파괴력을 장전하고 있어 그의 연타에 걸려든 상대는 쉽게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눈이 좋아 상대의 펀치를 흘리는 기술이 좋고 웬만한 펀치에는 흔들리지 않는 맷집도 겸비했다.

내셔날급 도전자를 상대로 두차례의 방어에 성공한 뒤 빅매치를 소원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다가 1년만에 적지에서 벌인 3차방어전에서 일본의 <고시모토 다카시>에게 홈텃세를 당해 타이틀을 잃었다.

34살의 노장이었던 사우스포 고시모토는 장신의 발빠른 아웃복서로서 경기를 장악하는 힘과 자신이 싸우기 좋은 거리유지에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하지만 이미 전성기를 지나버린 탓에 풋내기에 불과했던 멕시코의 <로돌포 로페스>에게 7RTKO로 무너져 세계챔피언에 명함을 내민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힘과 체력이 좋고 일발파워를 갖춘 로페스는 아직은 단조로운 공수와 어설픈 경기스타일로 인해 챔피언벨트 자체가 과분했던 약체였는데 첫 방어전에서 타이틀 탈환을 노리던 <지인진>의 노련미에 쉽게 굴복하고 말았다.

베스트체급에서 투타임 챔피언에 오른 지인진은 파퀴아오를 비롯한 여러선수들과 다시한번 빅매치설이 오갔지만 글자 그대로 설로 그쳤고 결국 척박한 현실속에 대전료문제로 프로모터와 불화를 겪으며 K-1으로 진출해버려 안타까움을 주었다.

지인진 Vs 마이클 브로디(제2전)

나심 하메드가 롱런챔피언 톰 존슨을 정복하고 타이틀을 반납한 이래 왕좌교대극이 빈번했던 <IBF>는 여전히 혼돈의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2관왕에 등극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브렐로 보틸레>는 아직까지 기량이나 파워 모두 쓸만했지만 폴 잉글전의 충격때문인지 미국의 <프랭키 톨레도>에게 예상밖의 허를 찔리며 힘한번 못써보고 타이틀을 넘겼다.

사우스포의 카운터펀처였던 톨레도는 테크닉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잽과 백스텝을 이용해 교묘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었다.

 

전임 <마누엘 메디나>에게 두어차례 당한 버팅으로 5R종료 후 테크니컬무승부가 선언되는 듯 했으나 결국 TKO패로 처리되어 다소 억울하게 타이틀을 날렸다.

행운이 따른 승리를 거두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던 메디나는 5개월 뒤 미국의 <조니 타피아>와 난타전 끝에 근소한 차로 패해 단명의 역사를 이어갔다.

 

36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외모만큼이나 여전히 야수와 같은 복싱을 펼쳤던 타피아는 어느덧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3체급 석권이라는 외형이 말해주듯 무서운 저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IBF의 지명방어전 지시를 무시하고 무관의 제왕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 이 체급의 진검승부에 나섰다가 나이에서는 오는 체력감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경기에도 지고 타이틀마저 박탈당해 이후로는 세계정상과 거리가 멀어졌다.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Vs 조니 타피아

새 챔피언에는 그동안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나심 하메드를 비롯한 당대의 정상급 복서들에게 기피대상 1호로 지목되어 기회를 잡지 못했던 멕시코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가 전임 메디나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리고 정상정복의 한을 풀었다.

 

잘 발달된 상체에서 나오는 힘과 안정된 밸런스,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천천히 상대를 무너뜨리는 냉정한 파이터였던 그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날리는 컴비블로우에 박력이 넘쳤고 전라운드를 풀로 뛸정도로 뛰어난 스태미나를 갖고 있었다.

늘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계산된 경기를 운영하며 위기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노련함도 지니고 있었다.

봅 애럼에게 발탁되어 톱랭크사의 간판이 되면서 WBA 챔피언 데릭 게이너와의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게이너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 두 기구를 석권하는 강인함을 보여준 뒤 사실상의 넘버원으로 평가받던 파퀴아오와 정면대결을 펼쳐 1R에서 당한 세차례의 다운을 극복하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후 투타임 세계챔피언에 오르는 올란도 살리도와 빅토르 폴로를 연파한 마르케스는 지명방어전을 제때 치루지 못하면서 타이틀을 모두 박탈당해 야인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태국의 파프라코브 라키아트짐을 물리치고 마르케스의 뒤를 이은 브라질의 <발데미르 페레이라>는 ESPN FNF를 통해 성장한 슬러거였지만 의외로 대범하지 못해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첫 방어전에서 미국의 무명 <에릭 아이켄>의 어설픈 주먹에 두차례나 다운을 빼앗긴 뒤 로우블로우를 남발하면서 8R에 실격패를 당해 단명했다.

전 IBF 챔피언 팀 오스틴을 쓰러뜨린 여세를 몰아 챔피언에 오른 아이켄은 한방이 있는 하드펀처였으나 왕좌를 지켜낼만한 기본기가 부족해 첫 방어전에서 동국의 <로버트 게레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8RTKO로 물러났다.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 Vs 매니 파퀴아오

<WBA>챔피언 <데릭 게이너>는 스피드와 테크닉이 뛰어난 반면, 전반적으로 선이 가늘어 안정된 챔피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부상으로 장기간 방어전을 갖지 못하다가 무려 18개월만에 나선 2차방어전도 버팅으로 인해 2R만에 얼버무린 뒤 3차방어전에 가서야 오스카 레온을 상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흑인 특유의 유연한 허리와 빠른 발을 갖고 있었지만 상대를 압도할만한 밑천이 없어서 통합타이틀전으로 열린 4차방어전에서 한참 떠오르던 IBF 챔피언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에게 흡수 통일당했다.

 

잠정챔피언으로 있다가 마르케스가 슈퍼챔피언으로 승격되면서 정규챔피언이 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메이저기구 세계챔피언 <크리스 존>은 동남아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흠잡을데 없는 감각적인 복싱을 구사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하지 않는 냉정하고 침착한 경기운영능력이 돋보였고 날카로움에 둔탁함까지 더하고 있어서 상대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푸트웍과 함께 레프트로 시작되는 공격은 한박자 빠른 원투스트레이트와 다양한 컴비블로우를 통해 상대의 안면과 보디를 훓어냈고 안정된 밸런스와 견고한 수비력은 롱런챔피언의 기본이었다.

펀치를 내뻗는 횟수가 많고 일순간 접근해 짧게 끊어치고 빠지는 기술은 얄미울 정도로 계산적이었다.

홈과 적지를 오가며 방어횟수를 쌓은 뒤 5차방어전에서 타이틀 탈환에 나선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의 도전을 뿌리쳐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둔 뒤 매경기 도전자에게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여주며 승승장구했다.

크리스 존 Vs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

나심 하메드가 떠난 <WBO> 왕좌에는 아마추어에서 올림픽과 월드컵대회를 모두 제패했던 헝가리의 영웅 <이스트반 코박스>가 도미니카의 실력파 안토니오 디아스를 최종회에 격침시키고 등극했다.

300전 가까운 아마추어 전적을 통해 정상급의 기량을 자랑했던 코박스는 무엇보다 스피드가 좋았고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와 레프트훅은 상대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었지만 불과 5개월만에 아르헨티나의 <훌리오 파블로 차콘>이 휘두른 기습적인 좌우훅을 맞고 침몰하는 비운을 맞이해야 했다.

 

체력을 앞세운 하드펀처였던 차콘은 이미 홈링에서 프레디 노우드에게 완패해 소문만큼 뛰어난 복서는 아니었으나 힘이 실린 좌우훅 하나만은 쓸만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3차방어전에서 만난 잠정챔피언 <스코트 해리슨>의 힘과 투지앞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거칠고 호전적인 스코틀랜드 복싱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해리슨은 전형적인 유로피안 복서로 힘이 잔뜩실린 양훅을 주무기로 황소같이 밀어붙이는 인파이터였는데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의 <마누엘 메디나>에게 얕보고 덤벼들었다가 홈링에서 판정으로 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 체급에서만 다섯 번째 왕좌에 등극한 메디나의 끈질긴 집념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 넉달 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온 <스코트 해리슨>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11RTKO로 패해 왕좌를 돌려 주었다.

낮은 수준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펀치력과 공격력이 더욱 더 향상된 해리슨은 머리까지 들이대며 3연속 KO방어의 상승가도를 달렸지만 불안한 수비력과 초반의 오버페이스는 늘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한때 지인진, 바레라와의 대결설이 나돌며 빅매치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6차방어에 성공한 뒤 폭행과 알콜릭 등 링 밖의 문제로 허송세월하다가 방어시한을 넘기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공석이 된 왕좌는 잠정챔피언으로 있었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가 정규챔피언으로 승계받았으나 넉달 뒤 WBC 슈퍼페더급 챔피언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에게 도전하기 위해 반납함으로써 단 한차례의 정규 타이틀전없이 다시 공석으로 남았다.

스코트 해리슨 Vs 사무엘 케베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이 체급은 에릭 모랄레스와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의 두 번째 충돌로 다시 한번 전세계 복싱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거함 바레라를 무너뜨린 매니 파퀴아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까지 합세해 중량급 4인방 체제를 구축한 그들은 주지하다시피 슈퍼페더급으로 주전장을 옮겨가며 치열한 다툼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들이 떠난 빈 자리에는 인도네시아 출신인 크리스 존이 WBA왕좌에 똬리를 틀고 장기집권의 기틀을 다져나가 파퀴아오와 함께 아시아복서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쳤다.

호르헤 리나레스 Vs. 오스카 라리오스

<WBC>는 2007년 7월말 지인진이 타이틀을 반납하자 일주일전에 멕시코의 고공폭격기 오스카 라리오스를 10R만에 격추시키고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베네수엘라의 강타자 <호르헤 리나레스>를 그대로 정규챔피언으로 인정했다.

17살에 일본의 테이켄짐에 스카웃돼 프로데뷔한 리나레스는 나이답지 않은 탄탄한 기량과 빠른 스피드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타점높은 고감도 펀치까지 장착해 금방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마리엘 디아스에게 8RKO승을 거두고 첫 방어에 성공한 뒤 줄곧 부상에 시달려 1년 가까이 시합에 나서지 못하다가 WBA로부터 에드윈 발레로의 후계자로 간택되어 슈퍼페더급 왕좌에 오르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잠정챔피언으로 있다가 리나레스의 월장으로 운좋게 2관왕을 달성한 <오스카 라리오스>는 이미 펀치의 각도가 무뎌져 있었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나타내고 있던터라 일본의 <아오 다카히로>에게 다운까지 내주며 간신히 첫 방어에 성공했지만 리매치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며 완패해 은퇴하고 말았다.

 

리나레스와 같은 소속이었던 아오는 뛰어난 복싱감각을 자랑하는 사우스포 카운터펀처로서 절묘한 타이밍의 왼손카운터블로우가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한 스타일로 변칙적이거나 발빠른 복서에게는 약점을 보여 지명도전자 도미니카의 <엘리오 로하스>에게 넉달만에 함락당한 뒤 슈퍼페더급으로 쫓겨 났다.

아마추어시절부터 팬암대회를 비롯한 각종대회에 참가해 대기의 편린을 보여 주었던 로하스는 불안정한 밸런스에도 불구하고 변칙적인 기습공격에 능한 스타일로 레프트잽에 이은 컴비블로우가 좋고 손을 많이 내는 부지런한 파이터였다.

재기를 꿈꾸던 전임 구티 에스파다스 주니어를 물리치고 첫 방어에 성공한 뒤 손부상때문에 2년 넘게 방어전에 나서지 못해 휴양챔피언으로 물러났다.

아브너 마레스 Vs. 조니 곤살레스

사실상의 공석이 된 왕좌에는 밴텀급에서 롱런했던 일본의 <하세가와 호즈미>가 WBC의 은혜로 기회를 잡아 후안 카를로스 부르고스를 잡고 2관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페르난도 몬티엘에게 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첫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조니 곤살레스>에게 강력한 라이트훅을 정통으로 얻어 맞고 4R만에 무너져 내렸다.

마치 웰터급의 피피노 쿠에바스를 연상케하는 화끈한 사나이였던 하드펀처 곤살레스는 밴텀급시절보다 업그레이드된 호쾌한 스윙으로 무서운 파괴력을 선보였는데 세명의 도전자를 모조리 초반KO로 보내버린 뒤 부상에서 벗어난 전임 로하스마저 제압해 당분간 그의 천하가 이어질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물간 줄 알았던 동국의 <다니엘 폰세 데 레온>의 압박에 한차례 다운까지 허용하며 난조를 보여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 체급으로 월장한 뒤 애드리언 브로너와 유리오키스 감보아에게 잇달아 브레이크가 걸리며 내리막을 향하다가 기사회생한 레온은 초스피드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려는 <아브너 마레스>의 젊음 앞에 9R만에 레퍼리스톱이 걸려 2관왕에 만족해야 했다.

 

이 체급에서 단신에 속했던 마레스는 불리한 체격조건을 폭풍같은 파이팅으로 극복하려 했으나 부실한 디펜스탓에 전임 <조니 곤살레스>의 그림같은 레프트훅을 맞고 불과 1R만에 가라앉아 충격을 주었다.

내년 2월 마레스와의 리매치를 앞두고 있는 곤살레스는 아직까지 초반에 강한 모습을 보이긴 하나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미래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크리스 존 Vs. 록키 후아레스(제1전)

롱런에 접어든 <WBA>챔피언 <크리스 존>은 본고장 미국 원정길에 나서 강타자 록키 후아레스를 사실상 두차례나 일축해 버려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철벽 아성을 구축했는데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어느덧 노련미까지 덧붙여 카리스마 강한 제왕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이즈음 WBA는 존이 12차방어에 성공하자 슈퍼챔피언 칭호를 수여한 뒤 잠정챔피언에 올라 있던 쿠바의 강타자 <유리오키스 감보아>를 정규챔피언으로 승격시켰다.

 

이로인해 만만한 상대만 골라 방어횟수를 늘려가던 존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익사이팅한 복싱을 구사하는 감보아가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아테네올림픽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로서 이미 아마추어시절부터 유명세를 탔던 감보아는 2006년 동료들과 미국으로 망명한 뒤 독일에서 프로 데뷔했다.

165cm로 작은 키를 가졌지만 단단한 상체를 소유한 그는 타고난 복싱감각에 귀신같이 빠르고 정확한 컴비블로우를 앞세워 상대를 압도했는데 번개같이 달려들어 쏟아붓는 연타능력과 안정된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현란한 무브먼트는 가히 복싱머신다웠다.

 

하지만 지나친 노가드로 인해 상대의 카운터블로우에 다운을 당하는 모습이 목격돼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돈 킹을 거쳐 봅 애럼의 품에 안긴 뒤 올란도 살리도와 다운을 주고받는 열전끝에 IBF 타이틀까지 거머쥐면서 미국의 링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로부터 이 체급의 넘버원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WBA는 자체규정에 따라 존에 이어 감보아에게도 슈퍼챔피언의 지위를 부여해 더블 슈퍼챔피언이 탄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잠정챔피언 호르헤 솔리스전을 앞두고 IBF의 재계체 지시에 응하지 않아 타이틀을 박탈당한 감보아는 이에 분풀이라도 하듯이 솔리스를 초주검상태로 만들어 통산 4차방어전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WBA측에서 더 이상 통합챔피언이 아니라는 이유로 슈퍼챔피언 칭호를 박탈해 졸지에 무관으로 전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WBA의 말도 않되는 처사에 많은 팬들이 혀를 찼지만 감보아는 훌훌털고 슈퍼페더급으로 월장해 잠정챔피언에 오른 뒤 정규챔피언 우치야마 다카시와의 시합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시 한체급 올려 라이트급 잠정챔피언으로서 정규타이틀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유리오키스 감보아 Vs. 호르헤 솔리스

감보아가 슈퍼챔피언이 되면서 어빙 베리를 꺽고 정규챔피언에 등극한 아르헨티나의 <조나단 빅토르 바로스>는 저돌적이며 힘이 좋고 터프한 반면 수비가 허술하고 세기도 부족한 편이어서 2차방어전에서 파나마의 <셀레스티노 카바에로>에게 두차례나 다운을 허용하고도 홈텃세로 수성했지만 리매치에서는 확실한 실력 차이를 느끼며 완패했다.

 

슈퍼밴텀급에서 WBA IBF 통합챔피언을 지냈던 35살의 노장이나 긴 리치를 이용한 아웃복싱으로 건재를 과시했던 카바에로는 1차방어에 성공한 뒤 부상으로 링공백이 길어지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물러났다.

다울리스 프레스코트를 7RTKO로 요리하고 새챔피언에 등극한 자메이카출신의 <니콜라스 월터스>는 도끼를 휘두르는 듯한 좌우펀치를 소유한 하드펀처로 이 체급에 새바람을 몰고올 잠재력 풍부한 사나이다.

 

한편, 어느덧 18차방어에 성공하며 에이브 아텔과 에우세비오 페드로사의 방어횟수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은 슈퍼챔피언 존은 10여년 가까이 왕좌를 지켜온 노회한 복싱으로 고만고만한 상대를 차례로 격퇴시켰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복병 <심피웨 베테카>를 맞아서는 지금까지의 모습과 달리 초반부터 지나치게 서두르다 상대의 카운터블로우를 맞고 캔버스를 허우적거리다 6RTKO로 패해 권불십년의 섭리를 깨달은 뒤 가족과의 안식을 위해 얼마전 깨끗이 링을 떠났다.

 

조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흑백통합을 이루어 냈던 넬슨 만델라의 영전에 챔피언벨트를 바친 베테카는 전 IBF Jr.페더급 챔피언 부야니 붕구의 애제자로서 흑인 특유의 유연한 상체와 빈 곳을 찌르는 날카로운 컴비블로우를 무장한 기술자이나 33살의 적쟎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 것 같다.

크리스 존 Vs. 심피웨 베테카

<IBF>챔피언 <로버트 게레로>는 체격조건이 좋은 사우스포의 강타자로 173cm의 장신을 바탕으로한 직선공격이 위력적이었고 안면과 복부로 이어지는 다양한 컴비블로우도 탁월했다.

첫 방어전에서 올란도 살리도의 거친 대쉬에 밀려 고개를 떨구었지만 살리도의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드러나 덴마크의 스펜드 아바지를 9RTKO로 제압하고 챔피언벨트를 되찾았다.

 

두 번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한 뒤 체중고를 감안해 한체급 위로 월장했다. 게레로의 뒤를 이은 멕시코의 <크리스토발 크루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명예회복을 벼르던 동국의 살리도를 간발의 차로 꺽고 왕좌에 올랐다.

전형적인 잡초로서 애시당초 세계정상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거칠고 힘있는 복싱을 구사해 세 번의 방어에 성공한 뒤 재도전에 나선 <올란도 살리도>의 집요한 공격에 결국 두손을 들었다.

 

대기만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살리도 역시 데뷔초만해도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승패를 반복했으나 미국에 진출한 뒤 강렬한 러싱파이터로 변신해 하드히터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타고난 맷집을 앞세운 끊임없는 전진스텝과 강력한 터프니스를 발휘해 상대를 괴롭혔지만 여전히 수비가 허술하고 발빠른 주자에게는 약점을 보여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타이틀을 박탈당한 뒤 WBA챔피언 <유리오키스 감보아>와 다시 치룬 챔피언결정전에서 석패하고 말았다.

 

감보아가 IBF룰을 지키지 않아 박탈된 왕좌에는 중동계인 호주의 <빌리 딥>이 호르헤 라시에바를 꺽고 새챔피언에 등극했다. 풍부한 아마추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움직임과 스피드를 보유한 딥은 칼날같은 잽과 스트레이트를 자랑하며 골든보이프로모션에 합류해 일약 호주복싱의 아이돌로 떠올랐지만 3차방어전에서 러시아의 <에브게니 그라도비치>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판정으로 패해 생각보다 빨리 추락했다.

 

아마추어에서 활약하다가 뒤늦게 프로전향한 그라도비치는 타고난 힘과 체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지칠줄 모르는 접근전을 펼치는 인파이터로서 때로는 투박해 보이기도 하나 빠르고 강력한 속사포를 앞세워 경량급 러시아복싱의 선봉장으로서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빌리 딥 Vs. 에브게니 그라도비치(제1전)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의 월장으로 비어있던 <WBO>타이틀은 미국의 <스티븐 루에바노>의 품에 안겼는데 챔피언결정전에서 홈링의 기대주였던 영국의 니키 쿡에게 5차례나 다운을 빼앗는 인상적인 대관식을 펼치고 왕좌에 올랐다.

왼손잡이 테크니션으로 체력이 좋고 비교적 스피드도 겸비해 후일 IBF 챔피언에 오른 딥을 포함한 다섯명의 도전자를 물리치며 빅카드에 근접했으나 정직하고 소극적인 플레이로 대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6차방어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돌주먹 <후안 마누엘 로페스>의 강타 앞에 7RTKO로 무릎을 꿇어 2관왕의 희생양이 됐다.

2차방어전에서 3관왕을 노리던 라파엘 마르케스를 8R에 무너뜨리며 이 체급에서도 변함없는 파괴력을 과시했던 로페스는 WBA챔피언 유리오키스 감보아와의 통합타이틀전을 앞두고 벌인 전 IBF 챔피언 <올란도 살리도>와 3차방어전에서 스태미나와 맷집의 한계를 나타내며 충격적인 8RTKO패를 당해 일찍 저물기 시작했다.

 

이미 6개월전에 감보아도 혼쭐을 내준 적이 있었던 돌풍의 주역 살리도는 1년 뒤 로페스와의 리매치에서도 파이팅넘치는 명승부를 펼치며 10R에 역전TKO승을 거두어 천적임을 과시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새롭게 부상한 미국의 신예 <마이키 가르시아>에게는 역부족을 드러내며 KO패나 다름없는 부상판정패를 당해 다시 무관으로 떨어졌다.

 

명트레이너인 로버트 가르시아의 동생인 마이키는 탄탄한 기본기에 고감도의 강펀치를 소유한 하드히터로서 각광받는 유망주였으나 첫 방어전을 앞두고 중량조절에 실패해 타이틀을 박탈당했지만 곧바로 월장해 2관왕에 올라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가르시아의 월장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은 전임 <올란도 살리도>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올란도 크루스를 7RKO로 물리치고 이 체급에서만 세 번째 왕좌에 등극해 마지막 불꽃을 태울 것으로 전망된다.

올란도 살리도 Vs. 후안 마누엘 로페스(제2전)

헤비급과 라이트급, 미들급에 이어 탄생한 페더급은 ‘깃털’처럼 가벼운 사나이들의 경연장으로서 12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조지 딕슨, 테리 맥거번, 에이브 아텔을 필두로 초창기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 후 트리플크라운에 오르는 토니 칸조네리와 헨리 암스트롱같은 명복서를 배출했고 윌리 펩과 샌디 새들러간의 라이벌전은 전세계 복싱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1960년대 들어 비센테 살디바르가 이 체급의 영웅 반열에 올랐고 중남미로 확산된 이 체급의 타이틀 홀더들은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두터운 선수층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하지만 최근 챔피언벨트의 인플레와 체급을 넘나드는 세태로 인해 이렇다 할 명복서가 사라진 지금은 특출난 챔피언이 아니면 큰 대전료를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체급으로 전락한 듯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