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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프로복싱 S미들급 챔피언 역사

by Ajan Master_Choi 2010. 1. 22.

머레이 서덜랜드 Vs. 박종팔

1960년대 후반 프로복싱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대중들은 미들급과 라이트헤비급 사이 체급 신설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비공인 국제기구인 WAA를 비롯한 미국의 몇몇주에서는 76Kg(167~168파운드)을 한계체중으로 하는 주니어 L.헤비급 또는 슈퍼미들급을 인정하고 실제로 돈 풀머나 빌리 더글러스같은 챔피언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체급은 당시 대부분의 미디어와 커미셔너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메이저기구인 WBA나 WBC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그 뒤 1983년말 제3의 기구 <IBF>가 출범과 동시에 한계체중 168파운드의 슈퍼미들급을 신설하면서 비로소 16번째 체급이 탄생하게 되었다. 초대 챔피언에는 이미 L.헤비급에서 두차례 정상도전에 실패해 한계를 드러낸 영국의 <머레이 서덜랜드>가 1984년 3월 미국의 어니 싱글테리를 15R판정으로 꺽고 올랐다.

가라테선수 출신인 서덜랜드는 데뷔 초 미국에서 활동하며 강력한 한방을 소유한 강타자로 이름을 알렸는데 특히 풀스윙의 레프트훅이 위력적이었고 라이트스트레이트 역시 묵직했다.

하지만 부실한 맷집과 체력 부족 탓에 넉달 뒤 <박종팔>에게 4차례나 캔버스를 구르며 벨트를 넘겼다.

박종팔 Vs. 헤수스 가야르도

전대의 김기수와 유제두의 계보를 잇는 우리나라 중량급의 대들보였던 박종팔은 뛰어난 순발력에 탈아시아급 펀치력을 소유한 하드펀처였다.

동양권 출신답지 않게 리드 잽의 활용은 물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몸놀림이 뛰어났고 회전력 좋은 레프트보디샷은 경외감마저 들게 하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비록 미들급 시절 세계무대 진출에 실패했지만 OPBF 타이틀 15차방어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체급 신설 초기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더욱이 3차방어전에서 재격돌한 비니 커토를 미국 원정에서 15R에 KO시킴으로써 우리나라 복서로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열린 세계타이틀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IBF가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못한데다가 마빈 맥과 린델 홈즈 전에서 잇달아 졸전을 벌이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엠마누엘 오티와의 8차방어전을 통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그는 슈퍼미들급을 신설한 WBA의 손짓에 미련없이 타이틀을 반납하고 메이저기구를 선택했다.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 Vs. 백인철

<WBA>가 기대한대로 <박종팔>은 1987년 12월 멕시코의 강타자 헤수스 가야르도를 드라마틱한 2RKO로 잠재우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기쁨도 잠시여서 2차방어전에서 또 다시 숙적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의 높은 벽을 뚫지 못하고 참패해 세계무대에서 사라졌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오벨메히아스는 당대의 미들급 최강 마빈 해글러에게 두차례 KO당한 뒤 L.헤비급으로 월장해서도 지리멸렬하다가 36살의 나이에 세계챔피언의 염원을 이루었다.

185cm의 장신으로 전성기 시절 긴 리치를 활용한 레프트잽이 날카롭고 라이트스트레이트의 위력이 발군이었다.

 

베테랑답게 전반적으로 경기운영능력은 좋았으나 스태미나 배분이 나쁘고 스웨이나 블로킹도 불안해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상태였다. 토머스 헌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나라의 <백인철>을 선택해 초반 선전에도 불구하고 체력부족으로 11RKO로 무너져 그저 벨트를 둘러본 것에 만족했다.

백인철 Vs. 크리스토퍼 티오조

두 번째 세계 도전에서 꿈을 이룬 백인철은 타고난 복싱감각과 막강한 파워 그리고 뛰어난 순발력을 겸비한 26연속 KO승의 슬러거였다.

일발필도의 강타자이면서도 짧고 정확한 펀치로 상대를 서서히 침몰시키는 교타자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라이트훅이 주무기로 보디공격에도 일가견을 보였으나 슬로우스타터에 스피드 부족과 수비 불안이 흠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퇴색시킨 무절제한 생활(?)은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

 

결국, 두 번의 방어전을 KO로 장식한 뒤 프랑스 원정에 나서 홈링의 <크리스토퍼 티오조>에게 6R만에 침몰해 글러브를 벽에 걸었다.

LA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인 티오조는 탄탄한 기본기와 빠른 스피드에 피스톤같은 스트레이트를 장착한 테크니션이었다. 일찍부터 뉴욕을 오가며 커리어를 다진 덕분에 경기감각이 탁월했고 상대에 따라 인-아웃이 두루 가능했다. 그러나 롱런의 예상을 깨고 파나마의 복병 <빅토르 코르도바>에게 역전 KO패를 당해 불과 3차방어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장신의 사우스포인 코르도바는 조국의 내전으로 자주 링에 오르지 못해 늦게 개화한 케이스로 긴 리치를 활용한 레프트잽과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장기였으나 맷집과 배짱이 부족해 찬스를 잡고도 놓치는 일이 잦았다.

2차방어전에서 미들급에서 올라온 강호 <마이클 넌>과는 기대이상으로 잘싸우고도 석패해 아쉽게 왕좌에서 물러났다.

슈거 레이 레너드 Vs. 돈 라론데

1988년 출범한 <WBO>는 첫 세계타이틀전으로 슈퍼미들급 챔피언 결정전을 승인해 11월에 <토머스 헌스>가 제임스 킨첸에게 한차례 다운을 빼앗기는 악전고투 끝에 아찔한 판정승을 거두고 사상 최초로 5체급을 석권했다.

다섯달 전 이란 바클리에게 당한 충격적인 KO패의 상흔에 벗어나지 못한 헌스는 맷집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격에 소극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덧 지는 해의 서글픔을 맛보았다.

 

한편, 라이벌 기구 WBA의 슈퍼미들급 신설에 자극받은 <WBC>도 1988년 체급 신설에 합류해 돈 킹과 함께 <슈거 레이 레너드>에게 5체급 석권의 미끼를 던져 링으로 불러 올렸다.

 

세 번째 링 복귀에 나선 그는 당시 WBC L.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돈 라론데를 맞이해 9R 특유의 폭발적인 연타세례를 퍼부어 기절시키고 두 체급의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들의 대결은 한 경기에 두체급의 타이틀이 걸린 이례적인 경기로 복싱기구의 난립과 체급 신설이 거듭되면서 스스로 권위를 내팽개친 복싱기구가 스타복서를 쫓는 시발점이 되었고 많은 복서들이 경쟁적으로 다체급 석권에 뛰어들면서 세계챔피언의 가치는 물론 다관왕의 의미도 퇴색하게 되었다.

슈거 레이 레너드 Vs. 돈 라론데

헌스에 이어 두 번째로 5관왕을 달성하며 왕의 귀환(?)을 알린 레너드는 세계프로복싱계를 다시 한번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라론데와 골격이나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한 레너드는 곧바로 L.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1989년 6월 WBO 챔피언 헌스와 명실상부한 5관왕을 가리기 위한 일전에 나섰다.

무려 8년만에 재현된 이들의 전쟁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같았던 1차전때문에 꿈의 대결로 일컬어지며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그러나 날카로움이 사라진 레너드는 3R와 11R에 각각 한차례씩 다운을 당해 한계에 이른 느낌을 주면서도 5R와 12R에 헌스를 그로기까지 몰고가는 뒷심을 발휘해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 후 헌스의 우세에 대한 여론이 많았지만 3차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정작 두선수는 모두 판정에 특별히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레너드와 헌스는 각각 1,300만달러와 1,100만달러의 대전료를 챙겨 1년 전 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마이크 타이슨과 마이클 스핑크스 간의 헤비급 통합타이틀전에 육박했다.

슈거 레이 레너드 Vs. 토머스 헌스(제2전)

이미 전성기가 지났음을 드러낸 레너드는 때마침 이란 바클리를 꺽고 4관왕을 달성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구적 로베르토 두란과 9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우노 마스’(Uno Mas)를 실현했다.

162파운드의 캐치웨이트로 성사된 이 경기에서 레너드는 상대적으로 뛰어난 풋워크와 부드러운 연타공격으로 두란을 셧아웃시키고 여전히 링의 황제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3차대전은 풍부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황혼을 앞둔 노스탤지어에 불과했고 레너드는 두란 전에서 입은 왼쪽눈 부상으로 공백이 길어진 채 타이틀을 반납할 수 밖에 없었다.

35살의 나이에 WBC 슈퍼웰터급 챔피언 테리 노리스를 상대로 컴백에 나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뒤 1997년 엑토르 카마초와의 노인정 매치를 끝으로 완전히 링을 떠났다.

슈거 레이 레너드 Vs. 로베르토 두란(제3전)

1970년대 후반부터 10년넘게 세계프로복싱을 주도했던 레너드는 고급스러운 테크닉과 현란한 스피드, 폭풍같은 연타와 영리한 경기운영능력을 통해 복싱을 예술로 승화시킨 현대복싱의 완성판이었다.

그의 매력은 단지 테크닉과 스피드를 앞세운 짤짤이 복싱(?)을 넘어서 공격적이고 매서운 아웃복싱을 구사한데 있다.

특히, 찬스가 왔을 때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뛰어난 결정력은 전대의 로빈슨과 알리는 물론 후대의 존스나 메이웨더같은 아웃복서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더욱이 절대 강자와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사적 기질은 윌프레드 베니테스를 포함한 전설의 4인방 중 최후의 승자로 기록될 자격이 충분했다.

레너드가 보여준 달콤하고 매혹적인 고감도 복싱은 모든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으로 감히 단언한다.

그러나 후일 은퇴와 컴백을 반복하던 시기에 알콜과 코카인 중독에 빠져 방탕한 생활과 가정폭력까지 휘둘렀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레너드의 공백이 길어지며 마지막 대결이 무산된 WBO 챔피언 헌스는 3차방어 후 스승인 엠마누엘 스튜워드의 은퇴 권고를 뿌리치고 L.헤비급으로 올라가 WBA의 롱런챔피언 버질 힐을 꺽는 괴력을 과시해 썩어도 준치임을 증명했다.

그라치아노 로치지아니 Vs. 무스타파 햄쇼

공석으로 남아있던 <IBF> 타이틀은 독일의 <그라치아노 로치지아니>가 빈센트 볼웨어를 8RTKO로 제압하고 허리에 감았다.

미들급 시절 해글러와 두 번 싸웠던 강호 무스타파 햄쇼를 1R만에 요절내 이름을 알린 로치지아니는 장신의 사우스포로 전형적인 업라이트 스타일의 복싱을 구사했으며 무엇보다 예리한 원투스트레이트가 장기였다.

 

홈링에서 압도적인 피지컬로 3차례의 방어전을 무난하게 마친 뒤 L.헤비급으로 월장해 이 체급의 재위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후임에는 2년 전 박종팔에게 홈텃세로 분루를 삼켰던 미국의 <린델 홈즈>가 2관왕을 노리던 프랭크 테이트를 누르고 프로 데뷔 10년만에 꿈을 이루었다.

크롱크짐에서 헌스와의 스파링을 통해 세기를 다진 홈즈는 레프트훅과 라이트보디샷이 위력적인 인파이터로 비교적 높은 KO율을 보유했고 흑인 특유의 유연성은 물론 레프트잽의 활용이 탁월했다.

 

그러나 33살의 늦은 나이에 오른 왕좌를 오래 지킬 수는 없어서 3차방어전에서 스피드가 좋은 <다린 반 혼>에게 후반 스태미나 부족을 드러낸 끝에 11RKO로 무너졌다.

Jr.미들급에 이어 두체급을 석권한 혼은 아직 나이가 젊고 공수도 안정적이어서 여전히 중량급의 화이트 호프로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2차방어전에서 <이란 바클리>의 통렬한 레프트훅을 맞고 2R만에 실신해 이번에도 단명에 그쳤다.

이란 바클리 Vs. 제임스 토니

3년만에 왕좌에 복귀한 바클리는 내친김에 설욕을 노리는 WBA L.헤비급 챔피언 헌스에게 도전해 2-1의 판정으로 물리치고 역시 천적임을 입증하며 3체급 석권의 기염을 토했다.

이어 1990년대 초반 미들급에서 상한가를 올리고 있던 <제임스 토니>와 격돌했으나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난타당하며 9R만에 무릎을 꿇어 짧은 치세를 마감했다.

 

당시 P4P 넘버원을 오르내리던 토니는 좋은 눈과 뛰어난 순발력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컴비블로우와 탄력 넘치는 교묘한 몸놀림으로 더욱 더 완성도를 높여갔다.

부드러운 슬리핑과 더킹을 활용한 압도적인 카운터펀치는 물론 근거리에서도 짧고 위력적인 펀치를 구사해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가지 빠른 스텝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는 지금까지의 상대와 차원이 다른 초특급 도전자 <로이 존스 주니어>의 춤을 추는 듯한 현란한 공수에 시달리며 한차례 다운까지 내주고 완패해 4차방어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임스 토니 Vs. 로이 존스 주니어

레너드가 떠나간 <WBC>에는 이탈리아의 <마우로 갈바노>가 다리오 마테오니를 근소한 차의 판정으로 꺽고 왕좌에 올랐다.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아웃복서 스타일로 손이 많고 체력이 좋아 상대를 질리도록 만들었다.

컴비네이션이 가볍고 펀치력 자체도 약하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난타전을 불사하기도 했다.

홈링에서 살얼음판같은 방어전을 거듭하다가 3차방어전에서 <나이젤 벤>에게 3RTKO패를 당했다.

 

슈퍼미들급에서 벤은 미들급 시절보다는 균형잡힌 공수를 보여주며 롱런을 예고했다. 링커리어가 쌓이면서 데뷔 초의 무모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특유의 닥공 본능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왕성한 체력과 투지를 바탕으로 일직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단순하고 저돌적인 그의 복싱스타일은 영국팬들의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스피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수옵션을 요구하는 당대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이젤 벤 Vs. 제랄드 맥클레란

갈바노와의 재대결에서 무난한 판정승을 거둔 뒤 4차방어전에서 동국의 WBO 챔피언 크리스 유뱅크를 상대로 리벤지에 나서 무승부 판정에도 불구하고 우세한 경기를 이끌어 1차전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7차방어전에서 벤은 미들급에서 원라운드 보이로 맹위를 떨치던 제랄드 맥클레란에게 초반 KO패의 위기를 어거지로 버텨내더니 10R에서 역전 KO승을 거두는 파란을 연출했다.

 

반면, 벤의 고의적인 버팅과 반칙에 가까운 후두부 공격으로 맥클레란은 경기 직후 코마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소생했지만 시력과 청력의 80%를 잃고 인지능력마저 상실하는 비운을 맞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9차방어까지 성공한 벤도 심리적 부담과 경기 후유증으로 인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툴레이니 말링가>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별다른 전과없이 링을 떠났다.

 

4수만에 왕좌에 오른 집념의 사나이 말링가는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슈거 보이라는 링네임으로 불리웠다. 발을 잘 쓰고 날카로운 원투스트레이트도 장착하고 있었지만 기술적 수준이 평범하고 중량급치곤 파워도 변변치 못해 첫 방어전에서 이탈리아의 <빈센초 나르디엘로>에게 좌초됐다.

손이 많은 사우스포 나르디엘로 역시 뻣뻣한 허리에 내구력마저 부실해 불과 석달만에 영국산 강타자 <로빈 리드>의 레프트보디샷을 맞고 가라앉았다.

마이클 넌 Vs. 댄 모건> 어렵게 2관왕을 달성한

어렵게 2관왕을 달성한 <WBA> 챔피언 넌은 미들급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1993년 꾸준하게 링에 올라 4차례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제임스 토니와의 리매치를 겨냥했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스파링 상대에 불과했던 도전자 <스티브 리틀>에게 졸전을 벌이며 업셋을 당해 평범한 복서로 전락한 후 2002년에는 마약복용 및 거래 혐의 등으로 체포되어 장기 복역하다가 2019년 출소했다.

저니맨 수준이었던 리틀은 풍부한 아마추어 경험으로 반사신경은 좋은 편이었으나 공수가 허술하고 경기력의 기복도 심해 6개월만에 <프랭키 라일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있던 <WBO> 왕좌에는 영국의 <크리스 유뱅크>가 3개월만에 재격돌한 동국의 마이크 와트슨과 토투토의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12R 레퍼리스톱을 끌어내고 2체급을 석권했다.

경기 후 뇌진탕 증세를 보인 와트슨은 40일 간 혼수상태에 빠진 채 6차례의 뇌수술을 받고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크리스 유뱅크 Vs. 마이클 와트슨(제2전)

와트슨 전을 통해 비극을 경험한 유뱅크는 이후 상대를 쓰러뜨리기 보다는 침착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포인트 위주의 경기를 펼치며 방어행진을 이어갔다.

툴레이니 말링가, 후안 히메네스, 린델 홈즈 등을 꺽고 7차방어까지 무사히 치러낸 뒤 1993년 당시 WBC 챔피언 나이젤 벤과 통합타이틀전을 벌여 무승부로 간신히 왕좌를 지켜냈다.

 

하이 스피드로 두자릿수 방어기록에 도달한 유뱅크는 스카이 스포츠와 1천만파운드짜리 대형계약을 체결하며 높은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일랜드의 <스티브 콜린스>에게 고배를 들어 15차방어전에서 벨트를 풀었다.

링 위에서 언제나 용맹스러운 전사 중 하나였던 유뱅크는 경기력 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기행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오만하고 파격적인 언행 때문에 국민적 밉상(?)에 등극하기도 했다.

 

크루저급까지 올라가며 끊임없이 왕좌 복귀를 시도했지만 더 이상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은퇴했다.

챌린저리스트의 순도가 낮고 풀라운드 방어전이 많았던 탓에 업적에 비해 국제적인 평가는 낮은 편이었다.

현재 아들인 유뱅크 주니어가 같은 체급에서 활동하며 부자챔피언을 꿈꾸고 있다.

크리스 유뱅크 Vs. 나이젤 벤(제2전)

우리나라의 박종팔과 백인철 덕분에 친숙했던 슈퍼미들급은 체급 신설 초기부터 레너드와 헌스, 두란이 뛰어들어 5관왕 경쟁을 벌이며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미들급 챔피언들이 잇달아 월장해 정상을 차지하고 WBC와 WBO는 벤과 유뱅크가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해 결코 만만히 볼 체급이 아니었다.

로이 존스 주니어 Vs. 비니 파지엔자

이미 미들급에서 대기의 편린을 드러낸 <IBF> 챔피언 <로이 존스 주니어>는 이 체급에서 변칙적인 프리스타일의 복싱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신기에 가까운 화려한 스텝을 바탕으로 상대의 잽보다 빠른 번개같은 컴비네이션을 구사했고 타고난 순발력과 유연성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린 뒤 놀라운 속도의 카운터 펀치까지 마구 날려대 도무지 답이 없는 사내였다.

 

지명도전자 안토니 버드는 물론 터프가이 비니 파지엔자마저 묵사발을 만들며 5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해 1996년 링매거진으로부터 파운드 포 파운드 최강의 파이터로 선정되며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라이벌이 없어 당대의 슈퍼스타 오스카 델 라 호야보다 한참 밑도는 대전료에 만족해야만 했다.

 

결국, 헤비급 정벌을 선언한 존스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L.헤비급으로 월장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후임에는 강타자 게리 발라드를 5R만에 때려 눕힌 미국의 <찰스 브루어>가 발탁됐다.

당당한 체격의 인파이터로 좌우컴비네이션이 도끼처럼 날카로웠고 장신에서 터져 나오는 라이트스트레이트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녔다.

그러나 흑인치곤 유연성이 부족해 허점이 많았고 내구력도 썩 좋지 못했다.

기교파 해롤 그래햄에게 두차례 다운을 극복하고 역전 KO승을 일궈냈지만 4차방어전에서 <스벤 오트케>에게 석패해 물러났다.

스벤 오트케 Vs. 바이런 미첼

무려 3번씩이나 올림픽에 참가했을만큼 연륜이 묻어났던 오트케는 30살의 늦깍이로 프로에 데뷔했다.

솜방망이같은 펀치력에 손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눈이 좋고 반사신경이 뛰어나 타이밍싸움에 능했고 상대의 빈틈을 요격하는 솜씨도 탁월했다.

팬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공수전환이 빠른 반면,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해 인파이팅을 선호하는 팬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초기에 녹록치 않은 도전자였던 토머스 테이트와 글렌 존슨을 잇달아 제압해 실력을 인정받더니 7차방어전에서 전임 브루어에게 우위를 입증하고 롱런가도에 들어섰다.

순수 독일 혈통인 탓에 자국에서 인기가 높아 L.헤비급 챔피언 헨리 마스케에 이어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9차방어전부터는 호쾌한 KO승을 이끌어내는 마력(?)을 발휘해 앤서니 문딘과 조 가티를 병원으로 실려보내기도 했다.

또한, 2003년에는 WBA 챔피언 바이런 미첼을 홈링으로 불러들여 특유의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따돌리고 슈퍼미들급 사상 첫 통합챔피언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듬해 21차방어의 대기록을 수립한 오트케는 37살의 나이를 고려해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하고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비록 선수층이 얇아진 탓에 챌린저 리스트가 초라했고 단 한번도 원정방어가 없었던 안방장군에 불과했지만 5년 간 꾸준히 4차례씩 타이틀 방어 행진을 벌이며 무패의 장수챔피언로 링을 떠난 업적만큼은 평가받을만 했다.

스티브 콜린스 Vs. 크리스 유뱅크(제1전)

크리스 유뱅크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2체급을 석권한 <WBO>챔피언 <스티브 콜린스>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영국복싱을 무너뜨린 아일랜드의 자존심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타고난 강타자도 아니고 비상한 테크닉을 소유한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 사자몰이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인파이팅을 전개하는 그야말로 상남자다운 화끈한 복싱을 구사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휘두르는 양훅과 예측불허의 롱펀치는 비정한 하드 보일드 액션의 중심축이었다.

 

간혹 지나친 공격으로 밸런스가 무너져 역습을 허용했지만 뛰어난 내구력과 강철같은 체력이 뒤를 받쳐 주었다.

왕좌 복귀를 노리던 라이벌 유뱅크를 재차 물리친 뒤 나이젤 벤의 도전도 두차례나 KO로 돌려세워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서며 유럽에서 100만 파운드짜리 스타 복서로 대접받았다.

7차방어에 성공한 뒤 당대 최강 존스와의 대결을 고대했지만 결국 무산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치면서 타이틀을 내놓고 은퇴를 선언했다.

 

후임에는 신예 <조 칼자기>가 노욕에 사로잡힌 유뱅크를 두차례나 캔버스에 굴리며 신구교대의 화려한 대관식을 치루었다.

이탈리아계로서 웨일스에서 자라난 칼자기는 비교적 큰 키에 아마추어 유망주로 활약한 덕분에 충실한 기본기는 물론 엄청난 스태미나를 자랑했고 사우스포임에도 영국출신답게 우직하고 투지넘치는 공격적인 복싱을 구사했다.

조 칼자기 Vs. 로빈 리드

스피드나 유연성이 부족하고 가드까지 허술해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폭발적인 연타능력과 다양한 궤적의 컴비네이션으로 연승가도를 달리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주로 자국에서 활동한 탓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낮았지만 아마추어 때부터 라이벌이었던 전 챔피언 리드와 우드홀을 차례대로 격파하고 롱런가도를 달렸다.

이후 방어전을 거듭하면서 과거의 푸닥거리는 복싱에서 벗어나 한결 세련된 풋워크와 몸놀림을 선보였고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까지 발휘해 완성도를 높였다.

 

자신감이 붙은 칼자기는 틈틈이 원정방어에도 나서며 두자릿수 방어를 돌파한 뒤 2003년 투타임 챔피언 미첼과 시작부터 난타전을 펼쳐 생애 첫 다운에도 불구하고 2R만에 요절내고 13차방어에 성공했다.

어느덧 WBO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으며 견고한 위상을 구축했으나 본고장 미국에서 능력을 보이기 전까지는 한물간 퇴물이나 무명의 도전자만 골라 방어횟수를 쌓았다는 수군거림을 피할 수 없었다.

2004년 이혼 등 개인사로 인해 방어간격이 벌어지면서 경기력도 다소 떨어졌지만 17차방어 성공의 기록을 달성해 동국의 유뱅크를 뛰어 넘었다.

프랭키 라일스 Vs. 마우리시오 아마랄

<WBA> 챔피언 <프랭키 라일스>는 아마추어시절 골든글러브 우승과 함께 존스의 호적수로 활약했을만큼 무시못할 기량의 소유자였다. 장신의 사우스포로 리드 잽과 컴비네이션이 정교하고 오른손의 파워가 대단해서 제대로 꽂히면 아무리 맷집 좋은 선수도 버티기 어려웠다.

브루어처럼 유연성이 떨어져 디펜스 능력은 아쉬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경기운영은 롱런의 발판이 되었다.

첫 방어전에서 왕좌 복귀를 노리던 마이클 넌을 판정으로 물리친 뒤 팀 리틀스와 세군도 메르카도를 잇달아 KO로 잡아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거 동문이었던 제랄드 맥클레란의 복수를 위해 나이젤 벤과의 일전을 갈망했으나 7차방어 후 프로모터 돈 킹과의 불화 속에 14개월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바이런 미첼>에게 업셋을 당했다.

역전 KO로 정상을 차지한 미첼은 강력한 파워와 터프니스를 갖추고 있었으나 프랑스의 <브루노 지라르>에게 벨트를 풀어줄 정도로 디펜스가 부실했다.

오트케 못지 않은 소프트 펀처였던 지라르는 피부색만큼이나 연약한 모습이었지만 손을 많이 내고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아웃복싱으로 단점을 커버했다.

 

첫 방어전에서 신승을 거둔 매니 시아카와의 재대결 지시를 거부해 타이틀을 박탈당한 뒤 L.헤비급으로 월장해 예상을 달리 두체급을 석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후임에는 대타로 기회를 잡은 전 챔피언 <바이런 미첼>이 시아카를 최종회 KO로 꺽고 복위했는데 2차방어 후 <스벤 오트케>와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선전에도 불구하고 석패하고 말았다.

앤서니 문딘 Vs. 니시자와 요시노리

2003년 오트케가 슈퍼챔피언으로 격상되면서 호주의 <앤서니 문딘>이 앤트원 에콜스를 꺽고 정규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잘나가던 럭비선수 출신으로 원주민 출신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프로복싱으로 전향했다.

어그레시브한 인상에 투박한 복싱을 구사하면서도 잽과 스트레이트가 날카롭고 좌우훅이 묵직했지만 솜주먹 오트케의 한방에 실신할 만큼 의외로 유리턱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매니 시아카>에게 역시나 한차례 다운을 허용하며 벨트를 내주었다. 4번째 정상 도전에서 염원을 이룬 시아카는 긴 다리를 이용한 아웃복싱과 예리한 카운터 펀치가 일품이었다.

 

그러나 허약한 맷집을 지닌 탓에 6개월 뒤 덴마크의 신성 <미켈 케슬러>에게 시종일관 흐느적거리다 7R 종료 후 링을 내려왔다.

상반신의 타투가 매력적인 케슬러는 바이킹의 전사라는 닉네임과 달리 매우 교과서적인 복싱을 구사했다.

자신의 거리에서 견고한 디펜스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한 뒤 컴팩트한 원투스트레이트와 레프트훅을 앞세워 부수어 나가는 심플한 스타일이었다.

항상 느긋한 모습으로 싸우면서도 경기 장악력이 뛰어나 상대에게 절대로 페이스를 내주는 일이 없었다.

 

첫 방어전부터 호주로 날아가 문딘을 돌려세운데 이어 에릭 루카스마저 초토화시켜 유럽팬들의 주목을 받더니 WBC 챔피언 마커스 바이어를 3R만에 압살하고 양대기구를 통합하며 일약 칼자기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케슬러의 슈퍼챔피언 승격에 따라 전 챔피언 <앤서니 문딘>이 동국의 샘 솔리만을 9RKO시키고 또 다시 정규챔피언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세컨더리 챔피언으로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자 4차방어전을 끝으로 조용히 타이틀을 반납하고 미들급으로 내려갔다.

미켈 케슬러 Vs. 마커스 바이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WBC> 챔피언 <로빈 리드>는 근육질의 후커로서 공수 패턴이 단순하고 보기와 달리 후반 체력도 부실했다.

홈링에서 하이 페이스로 3차례 방어에 성공하며 잠재력을 드러냈으나 전임 <툴레이니 말링가>의 능구렁이같은 공수에 말려들어 1년만에 추락했다.

재임에 성공한 말링가 역시 어느덧 황혼길에 접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영국의 <리치 우드홀>이 손쉽게 대관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 준결승에서 존스를 만나 선전했던 우드홀은 장신의 업라이트 스타일로 레프트잽의 활용이 좋고 라이트펀치의 위력도 만만치 않았다.

전임 나르디엘로를 KO로 눕힌 뒤 고질적인 손부상과 감량에 어려움을 겪으며 복병 <마커스 바이어>에게 판정으로 물러나 3차방어에 실패했다.

동독 출신의 사우스포 바이어는 파워 부족과 단조로운 공수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공격력으로 한몫했다.

 

비록 2차방어전에서 영국의 <글렌 캐틀리>에게 최종회 라이트훅을 맞고 무너졌지만 두차례나 왕좌에 복귀하면서 이 체급의 터주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자극적인 원투스트레이트를 소유한 캐틀리는 예상과 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딩간 토벨라>에게 드라마틱한 역전 KO패를 당해 단명에 그쳤다.

경기 후 글러브 속 이물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체급의 기적을 일으키며 라이트급에 이어 두체급을 석권한 토벨라는 과거와 달리 굼뜬 모습에 손도 많이 줄어 불과 석달만에 <데이브 힐튼>에게 타이틀을 넘겼다.

클렌 캐틀리 Vs. 에릭 루카스

캐나다 복싱가의 장남으로 인파이팅과 아웃복싱에 고루 능했고 비교적 전적도 좋은 편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 미성년인 두 딸을 성추행한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타이틀을 내놓았다.

후임에는 펀치력이 부실했던 캐나다의 <에릭 루카스>가 캐틀리를 7R에 실신시키는 놀라운 KO씬을 연출하며 왕좌에 올랐다.

아마추어를 거친 안정된 기량에도 불구하고 과거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던 루카스는 전임 토벨라에 이어 난적 오마 쉐이커마저 셧아웃시키는 일취월장한 실력을 선보였다. 내친김에 거액을 제시한 <마커스 바이어>를 상대로 적지에서 잘 싸우고도 홈어드밴티지로 고배를 들어 4차방어에 실패했다.
어렵게 재임에 성공한 바이어는 루카스의 재기를 가로막은 대니 그린에게 두차례 다운을 당하고도 석연챦은 실격승으로 위태로운 왕좌를 연명하더니 3차방어전에서 무명의 <크리스티안 사나비아>에게 허를 찔려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우스포인 사나비아 역시 솜주먹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안 특유의 터프니스를 발휘했지만 5개월 뒤 <마커스 바이어>의 레프트훅 한방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일 최초의 쓰리타임 챔피언에 등극한 바이어는 장기인 레프트훅과 좌우보디샷을 앞세워 그린과 쉐이커를 연파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했으나 젊은 챔피언 <미켈 케슬러>와의 통합타이틀전에서 3RKO로 물러나며 6차방어에 실패해 사실상 커리어를 마감했다.

제프 레이시 Vs. 시드 밴더풀

오트케의 은퇴로 비어있던 <IBF> 왕좌에는 미국의 <제프 레이시>가 노장 시드 밴더풀을 8RTKO로 누르고 새롭게 등장했다.
목이 짧고 가공할 위력의 양훅을 소유한 그는 일찍부터 리틀 타이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도유망한 아이돌급 신인으로 각광받았다.
레프트훅을 주무기로 한 파워펀처에 가까웠지만 200전이 넘는 아마추어 전적에 시드니 올림픽 대표까지 지냈을 만큼 기본기가 철저하고 앞손의 활용은 물론 공수의 균형도 잘 잡혀 있었다.

첫 방어전에서 다소 고전했지만 이후로는 무자비한 3연속 KO방어를 질주하며 대뜸 칼자기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WBO> 챔피언 <조 칼자기>는 잠시 망설이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증명하기 위해 2006년 3월 맨체스터로 레이시를 불러들였다.
경기 전 예상은 젊은 레이시 쪽으로 기울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종일관 무수한 연타를 퍼부은 칼자기가 일방통행의 시합을 전개하더니 최종회 한차례 다운까지 섞어가며 완승을 거두었다.
쇼타임 중계를 통해 마침내 본고장 미국에서도 찬사를 받으며 흥행력을 인정받은 칼자기는 지명방어전을 요구하는 IBF 타이틀을 반납한 채 피터 만프레도 주니어를 제물로 대망의 20차방어를 달성했다.

조 칼자기 Vs. 제프 레이시

이후 미들급 통합챔피언 저메인 테일러와의 빅매치가 대전료 문제로 무산되자 <WBA> <WBC> 통합챔피언 케슬러를 상대로 3대기구 통합타이틀전에 나서 5만명의 대관중 앞에서 만장일치의 판정승을 거두고 슈퍼미들급 제왕의 자리에 오르며 오트케의 21차방어와 타이를 이루었다.


2008년 4월 드디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한 <조 칼자기>는 당시 미들급에 이어 L.헤비급에서도 최강으로 군림하던 노장 버나드 홉킨스를 꺽은데 이어 6개월 뒤 뉴욕으로 날아가 썩어도 준치였던 천하의 존스마저 농락하고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듬해 37살이 된 칼자기는 복싱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며 46연승 무패의 전적으로 은퇴를 발표해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나 칼자기의 놀라운 업적은 비인기체급인데다가 주로 영국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네임밸류 낮은 도전자들을 상대로 쌓아올린 것이고 커리어 막판 미국에서 싸운 홉킨스와 존스 역시 이미 전성기가 지나버린 탓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더욱이 동시대의 빅네임들과 비교할 때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복싱스킬이나 센스, 스피드와 정확도면에서 레벨 차이가 확실해 실력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이 체급의 맹주로 활약하며 사실상 4대기구 타이틀을 통일시키고 무적의 챔피언으로 링을 떠난 슈퍼미들급 사상 최고의 복서였던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은퇴 후에는 아버지 엔초와 칼자기 프로모션을 설립해 운영하며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 칼자기 Vs. 미켈 케슬러

1990년대 중반 빅네임들이 떠나버려 공허해진 이 체급은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이 득세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특히 숨가쁜 회전율을 보였던 WBC 타이틀은 2000년 한해에만 4명의 챔피언을 배출하고 바이어가 세 번씩이나 왕좌에 오를 만큼 권위가 실추돼 있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IBF와 WBO쪽은 오트케와 칼자기가 철옹성을 구축하며 연이은 통합타이틀전으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다만, 중량급다운 흥미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을 찾아 볼 수 없었던 탓에 유럽을 제외하고 전세계 복싱팬들의 폭넓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조 칼자기 Vs. 로이 존스 주니어
미켈 케슬러 Vs. 안드레 워드

2000년대 후반 사실상 원탑이었던 조 칼자기의 은퇴로 새 판짜기에 들어간 슈퍼미들급은 여전히 유럽이 4대기구를 모두 석권하며 초강세를 이어갔다.
먼저 <WBA>에는 전 챔피언 <미켈 케슬러>가 디미트리 사르티손을 최종회 실신시키고 왕좌에 복귀했다.
전보다 노련해진 경기운영과 산뜻한 풋워크를 선보인 케슬러는 거침없는 KO방어로 네임밸류를 높이며 2009년 쇼타임이 개최한 슈퍼식스 월드복싱 클래식에 1순위로 초청됐다.
그러나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그는 첫 판부터 미국의 신예 <안드레 워드>를 만나 악전고투 끝에 11R 부상 판정패를 당해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워드는 마스터급의 링 IQ와 감각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펀치의 정확도가 높고 완벽한 디펜스는 물론 카운터 펀치의 스킬도 대단해서 복싱을 스윗 사이언스(Sweet Science)로 일컫는 팬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아웃복서에 가깝지만 피스톤같은 잽을 축으로 인-아웃이 빠르고 기습적으로 치고 나오는 좌우훅은 로이 존스 주니어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수시로 좌우 스위치 복싱을 구사해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고 엄청난 수준의 완력을 통해 클린치 상태에서도 펀치를 날리는 동시에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드레 워드 Vs. 칼 프로치

다만 탁월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전략 복싱을 구사한 탓에 난타전을 선호하는 팬들에게는 비호감이었고 쇼맨쉽도 부족해 실력에 비해 아주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두차례의 방어전을 셧아웃으로 장식하고 예선 1위로 준결승에 진출해 전 IBF 미들급 챔피언 아더 아브라함에 이어 2011년 WBC 챔피언 칼 프로치마저 완파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4차 방어에 성공하며 양대 기구를 석권한 워드는 2011년 링매거진을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로부터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며 바야흐르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어 버나드 홉킨스를 꺽고 기세등등했던 WBC L.헤비급 챔피언 채드 도슨의 도전을 10R만에 일축해 역시 왕중왕을 입증했지만 얼마 뒤 어깨부상을 입어 전선을 이탈하고 말았다.

공백이 길어지자 WBC는 워드를 명예챔피언으로 밀어냈고 14개월만에 돌아온 워드는 에드윈 로드리게스를 제물로 건재를 과시하며 6차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프로모터 댄 구센과의 오랜 불화 속에 법정다툼까지 벌이며 또 다시 링과 멀어졌다.

이후 1년 반만에 복귀한 워드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L.헤비급으로 월장해 뛰어난 정신력으로 강호 세르게이 코발레프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며 2체급을 석권했다.
비록 어깨부상과 소속사와의 불화때문에 전성기가 짧았지만 흡사 당대의 메이웨더와 홉킨스를 섞어 놓은 듯한 아웃파이터로서 이 체급에서 ‘신의아들’이라는 훌륭한 링네임으로 불리며 강한 울림을 남겼다.

칼 프로치 Vs. 아더 아브라함

<WBC>에는 영국의 쾌남아 <칼 프로치>가 홈링에서 장 파스칼을 누르고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장했다.
오랜 아마추어 생활로 프로 데뷔가 다소 늦었지만 투지와 맷집, 체력의 강점을 살려 끊임없이 전진하는 터프가이의 전형이었다.
공격에 치중하다보니 수비가 허술하고 테크닉도 부족했지만 라이트어퍼컷이 위력적이고 찬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 폭발적인 연타 능력을 소유했다.

슈퍼식스 토너먼트에 참전해 4대기구 미들급 통합챔피언 출신인 저메인 테일러를 최종회 종료 14초를 남기고 극적인 역전  KO로 물리쳐 환호했지만 3차방어전에서 슈퍼미들급의 맹주 <미켈 케슬러>에게 역부족을 드러낸 채 벨트를 풀었다.
슈퍼식스 토너먼트 첫승과 함께 왕좌에 복귀한 케슬러는 다시 한번 홈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그동안 악화된 눈부상 때문에 더 이상 링에 오를 수 없어 넉달 뒤 타이틀을 반납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공석이 된 왕좌는 전임 <칼 프로치>가 예상과 달리 아브라함에게 압승을 거두고 재집권에 성공하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전보다 빠른 움직임과 예리한 보디공격으로 무장한 프로치는 케슬러의 대타로 뒤늦게 합류한 노장 글렌 존슨을 제물로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WBA 챔피언 <안드레 워드>의 스피드와 테크닉 앞에 무릎을 꿇고 2차방어에 실패했다.

사키오 비카 Vs. 앤서니 디렐(제2전)

통합챔피언에 오른 워드가 어깨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자 WBC는 정규챔피언 결정전을 지시해 호주의 <사키오 비카>가 마르코 안토니오 페리반을 판정으로 따돌리고 대관했다.
3전 4기의 집념의 사나이 비카는 카메룬 태생으로 시드니 올림픽 참가 직후 호주에서 데뷔했는데 라이트펀치의 위력이 강하고 연타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공격 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아프리칸 특유의 터프니스를 앞세워 몸싸움에도 능하고 맷집도 강했다.
지명도전자 <앤서니 디렐>과의 첫 대결은 무승부로 세이브했으나 8개월 후 리매치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며 만년에 얻은 타이틀을 넘겼다.

안드레와 형제 복서인 디렐은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미들급의 다니엘 제이콥스와 함께 인간 승리의 표상이었다.
장신에 아마추어에서 닦은 유연한 몸놀림과 발군의 반사신경을 소유했고 스위치 히터로서 펀치력까지 좋아 롱런이 기대됐다.
그러나 겨우 첫 방어전에서 스웨덴의 <바도우 잭>에게 컨디션 난조 속에 예상과 달리 무기력한 패배를 당해 단명에 그쳤다.

루시안 부테 Vs. 브라이언 맥기

<루시안 부테 Vs. 브라이언 맥기>

칼자기로부터 일찌감치 타이틀을 거둬들인 <IBF>쪽은 2007년 콜롬비아의 <알레한드로 베리오>가 적지에서 무패의 로버트 스티글리츠를 3RKO로 때려 눕히는 이변을 연출하고 정상에 올랐다.
스피디한 컴비네이션을 소유한 하드히터였으나 호리호리한 체구에 맷집도 부실해 첫 방어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루마니아의 <루시안 부테>에게 타이틀을 넘겼다.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 출신인 부테는 동국의 레오나르드 도린을 따라 캐나다에서 데뷔했다.
사우스포의 강타자로 손이 많고 치명적인 보디블로우를 소유해 결코 예사롭게 볼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안면과 보디를 오르내리는 공격루트가 다양하고 필살의 레프트 어퍼컷은 부테의 장기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디펜스가 약하고 후반 체력마저 부실해 2차방어전에서 리브라도 안드라데에게 최종회 KO패의 위기에 몰렸으나 레퍼리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슈퍼식스 월드복싱 클래식에 초대받지 못한 부테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안드라데와의 리매치를 비롯해 6연속 KO방어가도 달리며 2010년 일약 슈퍼미들급 최강으로 떠올랐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어서 투타임 WBC 챔피언 <칼 프로치>에게 5R만에 침몰해 10차방어에 실패하며 그동안의 업적이 거품이었다는 비아냥을 듣고 말았다.

로버트 스티클리츠 Vs.헨리 베버

<WBO>에는 러시아의 <데니스 인킨>이 풀헨시오 수니가를 판정으로 꺽고 바톤을 이어 받았다.
군인복서 출신으로 리드 잽을 잘 쓰고 훅과 어퍼컷이 예리했지만 첫 방어전에서 헝가리의 <카롤리 발차이>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한 뒤 고질적인 허리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고 말았다.
260전이 넘는 아마추어 실적을 인정받아 우니베어줌에 스카웃된 발차이는 사우스포로서 착실한 기본기에 정확한 레프트스트레이트와 찬스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연타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의외로 후반 체력 부실을 드러내며 불과 2차방어전에서 독일의 <로버트 스티글리츠>에게 10RTKO로 무릎을 꿇고 타이틀을 넘겼다.
러시아 태생인 스티글리츠 역시 기본기가 좋고 손이 많은 편이기는 하나 기량 자체가 일류와 거리가 있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이미 베리오와 안드라데에게 KO패를 당할 정도로 맷집에도 문제가 있었다.
더욱이 왕좌에 오른 뒤 무명의 도전자들을 상대로 매번 판정승에 그쳐 펀치력에 대한 의구심을 받기도 했다.
롱런의 고비가 된 7차방어전에서 <아더 아브라함>에게 석패해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3년만에 벨트를 풀고 말았다.

로버트 스티클리츠 Vs. 아더 아브라함(제1전)

2009년 케슬러를 슈퍼챔피언으로 승격시킨 <WBA>의 세컨더리(Secondary) 계보는 스테판 보지치를 5RTKO로 물리친 카자흐스탄의 <디미트리 사르티손>이 이어받았다.
역시 독일에서 데뷔한 사르티손은 데뷔초 매서운 타격감을 자랑하며 KO가도를 질주했으나 아마추어의 티를 벗지 못한 단조로운 공수로 인해 이미 케슬러에게 한계를 드러낸 바 있었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스티글리츠와의 통합타이틀전을 앞두고 부상으로 링에 오르지 못하면서 소중한 타이틀을 잃고 말았다.
WBO 챔피언 출신의 <카롤리 발차이>는 스타니슬라프 카쉬타노프를 꺽고 왕좌 복귀에 성공했으나 전임 사르티손을 파워로 압도한 뒤 부상과 프로모터와의 갈등이 겹치면서 타이틀을 버리고 링을 떠났다.

잠정챔피언에서 승격한 <브라이언 맥기>는 오랫동안 IBO의 얼굴마담으로 활약했던 파이팅 좋은 영국의 터프가이였지만 한달 뒤 백전노장 <미켈 케슬러>의 묵직한 보디샷에 3R만에 무너져 애초부터 깜냥이 아니었음을 실토했다.
이 체급에서만 4번째 왕좌에 오른 케슬러는 더 이상 그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실감한 채 한창 물이 오른 <IBF> 챔피언 <칼 프로치>에게 리벤지를 당하며 흡수 통일되었다.

카롤리 발차이 Vs. 디미트리 사르티손

슈퍼식스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기술적으로도 성장한 프로치는 피지컬의 장점을 극대화한 파워 복싱으로 동국의 신예 조지 그로브스와의 두차례 대결을 모두 KO로 쓸어담아 워드가 떠난 뒤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부각했다.
이 때문에 2015년 당대의 미들급 최강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대전설이 오갔지만 37살의 나이 탓인지 4차방어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해 아쉬움을 주었다.

비록 워드의 수준높은 세기에 브레이크가 걸리긴 했지만 힘과 체력을 앞세운 터프한 공격력으로 세 번씩이나 챔피언에 오르며 영국 복싱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은퇴 후에는 스카이 스포츠의 해설가로 변신해 조리있는 말솜씨로 여전히 팬들의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프로치의 후계자를 자처한 <제임스 디게일>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안드레 디렐을 꺽고 영국 최초로 올림픽에 이어 프로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긴 리치를 소유한 왼손잡이 아웃복서로 무엇보다 디펜스가 출중하고 잽과 스트레이트가 일품이었으나 소극적인 플레이로 인해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2차방어전에서 부테의 재기를 가로막아 주목을 받았지만 WBC 챔피언 잭과의 통합타이틀전에서는 후반에 추격을 허용하며 무승부에 그쳤다.
이후 어깨부상으로 공백이 길어지더니 <케일럽 트루액스>에게 업셋을 당해 무관으로 전락했다.

제임스 디게일 Vs. 루시안 부테

감비아계인 WBC 챔피언 잭은 몸놀림이 많지 않고 흑인치곤 유연성도 부족해 보였지만 레프트잽에 이은 라이트펀치가 날카로웠고 상대의 보디를 겨냥한 파워풀한 좌우훅이 위협적이었다.
지명도전자인 그로브스와 부테를 연파한 뒤 디게일을 상대로 한 왕좌 통합에 실패하자 L.헤비급으로 월장해 WBA 정규타이틀을 획득했다.
후임에는 약관 20살의 <데이비드 베나비데스>가 로날드 가브릴을 꺽고 왕좌에 등극했다.
멕시코계로서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에 긴 리치를 활용해 강한 압박전술을 구사하며 거리감각이 뛰어나고 공수전환은 물론 펀치력도 준수한 편이어서 장래가 촉망됐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가브릴과의 리매치에 압승을 거두고 우위를 입증했지만 도핑테스트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으로 타이틀을 잃어 아직은 철부지에 불과했음을 드러냈다.
베나비데스에게 도전이 무산된 전임 <앤서니 디렐>은 아브니 일디림을 상대로 10R 부상 판정승을 거두고 4년만에 정상에 복귀했으나 전보다 움직임이 둔해진 그는 <데이비드 베나비데스>의 화려한 컴비블로우 앞에 속수무책으로 얻어 맞으며 9R에 레퍼리 스톱이 걸려 또 다시 첫 관문을 넘는데 실패했다.

돌아온 베나비데스는 2020년대를 이끌어갈 신성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첫 방어전을 앞두고 체중조절 실패로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데이비드 베나비데스 Vs. 로날드 가브릴(제2전)

슈퍼식스 토너먼트의 부진을 털고 2체급 석권에 성공한 <WBO> 챔피언 아브라함은 여전히 슈퍼미들급에 적응하지 못하며 2차방어전에서 복수를 벼르고 나온 <로버트 스티글리츠>의 맹공에 3R만에 항복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타이틀을 탈환한 스티글리츠는 빠른 스피드와 활발한 공격력으로 두번의 방어전을 압승으로 이끌었지만 <아더 아브라함>과의 러버매치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판정으로 물러났다.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안정감을 되찾은 아브라함은 하드펀처의 본능이 깨어나면서 4번째 격돌한 스티글리츠를 6R에 KO시켜 질긴 인연을 끊어냈으나 30대 중반에 접어든 아브라함이 <힐베르토 라미레스>의 젊음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되며 6차방어에 실패했다.
멕시코 최초로 슈퍼미들급을 정복한 라미레스는 사우스포로서 장신에서 터지는 원투스트레이트가 위력적이고 보디공격에도 일가견을 보였지만 스피드가 떨어지고 중량급다운 폭발력이 부족한 것은 흠이었다.

3년동안 5차방어에 성공한 뒤 L.헤비급으로 월장해 2체급 석권을 노리고 있다.
비어 있던 자리는 미들급에서 올라온 <빌리 조 사운더스>가 쉐파트 이수피를 가볍게 누르고 낚아챘다.
영리한 컨트롤 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인 사운더스는 전보다 과감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2차방어에 성공한 뒤 슈퍼미들급에 정착한 WBA WBC 통합챔피언 <사울 알바레스>와 진검승부에 나섰지만 끊임없는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8R 종료 후 기권했다.

아더 아브라함 Vs. 힐베르토 라미레스

프로치의 타이틀을 박탈한 <WBA>는 잠정챔피언 <페도르 추디노프>가 노장 펠릭스 스텀을 2-1의 판정으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러시아 태생인 추디노프는 비교적 움직임이 좋고 강력한 라이트훅을 소유한 하드펀처면서도 상체가 뻣뻣해 공매를 허용하는 일이 잦았다.
첫 방어에 성공한 뒤 벨트 장사에 더욱 혈안이 된 WBA 덕분에 슈퍼챔피언으로 승격했지만 <펠릭스 스텀>과의 리매치에서 압도적인 펀치스탯에도 불구하고 홈텃세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더러운 판정으로 기어코 2관왕을 달성한 스텀은 경기 후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내 논란이 됐으나 채취된 샘플이 부정확해 타이틀 박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조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이주해 팔꿈치 부상을 이유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사실상 링을 떠났다.
추디노프의 슈퍼챔피언 승격으로 정규챔피언에 오른 독일의 <빈센트 파이겐부츠>는 데뷔 초 놀라운 파괴력과 저돌적인 공격으로 잠시 괴물로 통했지만 사흘만에 이탈리아의 <지오바니 데 카롤리스>에게 리벤지를 당하며 타이틀을 넘겨 페이퍼 챔피언이나 다름없었다.
오랜 커리어를 통해 힘과 체력을 앞세운 노련한 공수를 자랑했던 카롤리스 역시 첫 방어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독일의 <타이론 초이거>에게 최종회 KO로 무너져 단명했다.

조지 그로브스 Vs. 칼럼 스미스

아마추어 출신답게 기본기가 철저했던 초이거는 손이 많은데다가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예리하고 훅과 어퍼컷의 연결도 좋았지만 영국의 <록키 필딩>에게 허를 찔려 4차방어전에서 낙마했다.
비교적 장신인 필딩은 긴 리치와 스텝을 활용한 아웃복서 타입으로 카운터펀치에 능했고 쇼트펀치를 잘 치기 때문에 접근전에도 강했으나 슈퍼미들급 사냥에 나선 <사울 알바레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어 강력한 레프트보디샷을 맞고 3R만에 가라앉았다.

한편, WBA는 스텀의 타이틀 반납으로 재대결이 무산된 추디노프를 구제하기 위해 영국의 <조지 그로브스>와의 슈퍼챔피언 결정전을 지시했지만 예상과 달리 홈링의 그로브스가 추디노프를 6RTKO로 물리치고 4번째 도전에서 염원하던 정상에 올랐다.
타고난 피지컬에 펀치력이 강했던 그로브스는 움직임이 분주한 허슬 플레이어로서 바깥쪽에서 날아드는 특이한 궤적의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장기였다.
보기보다 수준급의 테크닉과 디펜스 능력을 소유했으나 이미 프로치에게 두차례나 KO로 쓰러질만큼 체력과 맷집에서는 아쉬움을 주었다.

2017년 월드복싱 슈퍼시리즈에 참전해 제이미 폭스와 크리스 유뱅크 주니어를 연파하고 결승무대를 밟았지만 동국의 복병 <칼럼 스미스>와 난타전 끝에 7RKO로 패퇴해 3차방어에 실패했다.

호세 우스카테기 Vs. 케일럽 플랜트

적지에서 감격스러운 대관식을 갖은 <IBF> 챔피언 트루액스는 강력한 터프니스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저돌적인 인파이터였지만 그동안 중요한 길목에서 번번히 KO를 당했을만큼 허점도 많았다.
넉달 뒤 스피드를 살려 치고 빠지는 <제임스 디게일>에게 설욕을 당해 벨트를 돌려 주었다.
재임에 성공한 디게일은 지명방어전을 거부하고 빅매치를 위해 타이틀을 반납하더니 고작 동국의 유뱅크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은퇴했다.

공석이 된 왕좌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잠정챔피언 <호세 우스카테기>에게 승계되었다.
고감도의 타격감을 자랑한 우스카테기는 기본기가 잘 갖춰졌고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은 컴비네이션이 폭발적이었으나 미국의 뉴페이스 <케일럽 플랜트>를 맞이해 초반에 다운을 내주며 판정으로 물러났다.

아마추어 골든글러브 우승자로 레프트잽의 활용이 좋고 스타일리쉬한 원투컴비네이션과 레프트더블이 매우 위협적이다.
특히, 가드를 뚫고 올려치는 기습적인 레프트어퍼컷과 페이크성 카운터 펀치에도 능해 기술적으로 물이 올라 있다.
더욱이 풋워크가 자유로우며 회피능력도 상당해 더킹과 슬리핑이 부드럽고 숄더블로킹까지 구사하며 맞지 않는 복싱을 추구한다.
파이겐부츠와 트루액스를 연파하며 세차례의 방어전을 깔끔하게 클리어하고 사울 알바레스의 상대로 지목돼 커리어 최고의 승부를 앞두고 있다.

칼럼 스미스 Vs. 사울 알바레스

2018년 월드복싱 슈퍼시리즈 우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WBA> 슈퍼챔피언 스미스는 4형제가 모두 프로복서인 스미스가의 막내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 몸놀림은 적지만 가드가 좋고 안정적인 스탠스에 자신의 거리를 유지하며 긴 리치의 잽과 스트레이트로 경기를 조율한다.
근거리에서의 레프트보디샷이 일품이고 라이트어퍼컷의 화력 또한 대단하며 찬스 시 폭발적인 연타능력까지 소유했다.
두차례 방어에 성공한 뒤 정규챔피언 <사울 알바레스>와 단일화에 나섰으나 유리한 신체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소극적인 경기운영으로 패배를 자초해 4년 전 형 리암의 복수에 실패했다.

앞서 베나비데스의 타이틀 박탈로 공석이었던 <WBC>는 알바레스 Vs. 스미스 전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승인해 알바레스는 졸지에 양대기구 벨트를 거머쥐게 되었다.
미들급 타이틀까지 버리고 슈퍼미들급에서 철옹성을 구축한 알바레스는 더욱 강력하고 교묘해진 압박과 묵직하면서도 예리한 카운터펀치는 물론 정상급의 헤드무빙을 선보이며 거의 난공불락의 수준에 이르렀다.

2021년 사상 최초로 슈퍼미들급 4대기구 통일을 선언한 뒤 <WBO>챔피언 사운더스를 8R만에 함락시켜 탑티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다만, 스피드가 좋은 아웃복서와는 여전히 상성이 좋지 못함을 드러내 숙제로 남겨 두었다.
공수 양면에서 거의 슈퍼맨 급으로 진화한 알바레스는 오는 11월 6일 IBF 챔피언 케일럽 플랜트와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의 자리를 놓고 격돌할 예정인데 이미 커리어 최고인 4천만달러의 대전료를 보장받아 역시 현역 최고의 흥행파워를 입증하고 있다.

사울 알바레스 Vs. 빌리 조 사운더스

그동안 유럽이 득세했던 이 체급은 2010년대 초반 최강으로 군림했던 워드가 슈퍼식스 토너먼트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잠시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나 그가 떠나자 세대교체 속에 또 다시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각 기구의 타이틀이 돌기 시작했다.

후반기 들어 라미레스와 베나비데스를 비롯한 좋은 자원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임팩트가 약했고 최근 현역 파운드 포 파운드 넘버원인 알바레스가 침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면서 모처럼 전세계 복싱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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