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경전 '서경'에서 유래한 '탕평'… '치우침이 없으면 나라가 평온하다'
탕평 인사란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을 등용하는 것을 말해요.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이란 정책을 펼친 데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탕평책 하면 꼭 등장하는 전통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탕평채라는 요리랍니다.
◇치우침이 없으면 '탕탕하고 평평하다'
'탕평'은 원래 유교 경전 '서경'에서 나온 말이에요.
서경은 사서오경의 하나로, 고대 중국의 정치에 관한 책이죠.
이 책에는 주나라 무왕이 당대의 현자인 기자를 찾아가 세상을 잘 다스릴 방법을 물었다는 얘기가 실려 있어요.
무왕의 질문에 기자는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이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치우침이 없으면 나라의 정치가 큰 바다처럼 잔물결 없이 평온하고 고르다'
는 뜻입니다.
여기서 따온 말이 '탕평' 혹은 '탕탕평평'이에요.
탕평이란 말은 조선 전기 연산군과 중종 때 실록에 나오기 시작해, 당파 싸움이 기승을 부리던 숙종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상소문에도 탕평이란 단어가 자주 쓰였어요.
숙종의 아들 영조 대에 이르면 탕평은 시대의 화두가 됩니다.
탕평이란 말이 영조실록에만 300번 넘게 등장할 정도로요.
◇"사사로움을 버려 탕평을 이루라"
선조 임금 때 조선 정계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였어요.
이후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다시 갈라졌지요.
이를 사색당파라고 합니다.
영조는 당파 간의 대립이 너무 심해졌다고 판단하고 당파를 떠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 정책을 추진합니다.
영조는 즉위한 해에
"사사로움을 버리고 탕평을 이루라"
라는 왕명을 내립니다.
탕평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반대하는 신하들을 준엄하게 나무라고 관직에서 내쫓기도 했어요.
◇탕평채가 먼저냐 탕평책이 먼저냐
탕평채는 묵에 다른 나물을 섞어 무친 요리입니다.
18세기 조선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책 '경도잡지', 19세기 책 '동국세시기' 등에 탕평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영조가 신하들과 탕평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탕평채라는 요리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1940년 홍선표라는 인물이 쓴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 처음 나와요.
다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과거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게 없답니다.
정말로 탕평채가 탕평책에서 유래했고, 영조가 만들어 신하들에게 권한 음식이었다면 조선시대 문헌에 그런 내용이 적혀 있을 텐데 말이죠.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그래서 정반대 가설을 내놓았어요.
탕평책에서 탕평채가 나온 게 아니라, 탕평채라는 음식에서 탕평책이란 정책 이름이 나왔다는 주장입니다.
조선 후기 선비 조재삼이 1855년 펴낸 '송남잡지'에 '송인명이라는 인물이 청포묵에 고기와 나물을 섞어 만드는 탕평채 파는 소리를 듣고 탕평책을 펼치겠다고 다짐했고, 그가 영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725년에 동부승지가 돼 탕평책을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어느 쪽이건, 탕평채는 색과 맛이 다른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탕평 정치'와 잘 어울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색당파'와 4가지 재료 탕평채
조선의 사색당파는 초기에는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후기에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나뉩니다.
공교롭게도 요즘 먹는 탕평채에는 전통 사회에서 동서남북을 상징했던 4가지 색이 모두 들어갑니다.
녹두로 쑨 청포묵(흰색·서쪽), 쇠고기볶음(붉은색·남쪽), 김(검은색·북쪽), 데친 미나리(푸른색·동쪽) 등이죠.
그래서 탕평채 재료의 색깔이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펼쳤던 사색당파를 상징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 역시 근거가 부족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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