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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장난감ㆍ딱지·영롱한 구슬에 고무줄 새총도

by Ajan Master_Choi 2017. 10. 13.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딱지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서 시장과 대형마트에는 장난감이 넘쳐난다.

평소 때보다 두서너 배 넓어진 매장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정신을 빼놓고, 한편에서는 눈에 익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부모의 손을 잡아끌어 사고 싶은 장난감 앞에 선 아이들은 버티기에 들어간다.

부모들은 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떠올리며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만지작댄다.

신경전을 눈치챈 아이가 이때를 놓칠 세라 뒤로 벌러덩 눕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버릇 없다고 야단쳐보지만 ‘어린이날’인 것을 어쩌랴.


문제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매일이 어린이날 같다는 것이다.

장난감도 흔하다.

TV 어린이채널에서는 현란한 장난감 CF가 초 단위로 쏟아져나온다.

뽀로로, 미미인형, 토머스 기차, 키티, 도라에몽, 파워레인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캐릭터들은 수십, 수백 가지의 장난감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유혹한다.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사라진 뒤, 장난감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콘크리트 속에서 플라스틱을 친구로 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에는 어땠을까.

제품화된 장난감이 없던 시절엔 무엇이든 장난감이 됐다.

여자 아이들은 빨간색 벽돌을 갈아 고춧가루라며 소꿉장난을 했다.

콜라·맥주 병뚜껑이 밥그릇이었다.

지금은 인형 옷은 물론 구두, 액세서리까지 완비돼 나오지만 예전에는 갈아입힐 옷이 마땅치 않았다.

철없는 아이는 아버지의 양복바지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가장 평평한 엉덩이 부분을 싹둑싹둑 오려서 인형 옷을 만들려다가 혼구멍이 나기도 했다.

남자 아이들은 Y자형 나뭇가지를 골라 동생의 노란 기저귀용 고무줄을 끊어다 새총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골목의 주인이던 때, 골목대장은 꼬마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녔는데 부하들은 대장의 구슬과 딱지 꾸러미를 들었다.

옆 동네 아이들과 한판 붙을 때는 누런 박스 종이로 만든 초대형 딱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명 ‘배꼽치기’로 불린 딱지의 뒤집기 놀이를 즐겼다.

별표가 그려진 동그란 종이딱지가 흔하기 전 대부분의 아이들은 네모난 딱지로 놀았다. 영롱한 구슬도 대표적 장난감이었다.

그나마 딱지와 구슬이 없으면 돌을 갖고 돌치기를 했다.

맨손으로는 ‘오징어땅콩’ 잡기놀이를 하고 흙과 모래로는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풍성히 놀 줄 알았다.


첨단 장난감이 흔한 지금은 어떨까.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고 재롱을 떠는 인공지능 인형과 강아지 로봇까지 나와 있다.

장난감은 그냥 장난감이 아니다.

부모들은 장난감 하나에도 감성지수(EQ)와 우리 아이의 지능계발 여부를 따진다.

‘머리 좋아지는’ 기능을 내세우면 불티나게 팔린다.

장난감도 영어 발음 좋은 수입산이 환영받는다.


장난감 양극화도 빚어지고 있다.

마땅히 갖고 놀 장난감이 없어 소외감을 느끼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있지만 장난감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장난감 내수시장은 8222억원 규모로 2005년(7432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넘쳐나는 장난감은 급기야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중독’이라는 이상증세까지 앓게 한다.

함께 놀아줄 또래와 부모를 대신해 장난감 자체에 몰입하는 아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심한 경우 자폐로까지 발전한다고 한다.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 증가로 사람이 할 일을 장난감이 대신하게 되면서 생겨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노는 ‘장난감 없는 유치원’ ‘숲속 유아원’ 등이 나오고 있다.


생일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가슴 설레게 하던 장난감들. 골목이 사라지고, 골목의 아이들이 사라진 때 정작 아이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이 장난감만은 아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