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가 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 안팎 청소부터 해야 했다.
장학사 방문을 앞두고 전교생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던 1970년대 학교 풍경.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예!”
“황실의 존호를 말해 보아라.”
“황제폐하, 황후폐하, 대공전하, 차레비치전하….”
장학사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고, 선생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학사가 교실에서 나가자마자 마리는 선생님의 품에 뛰어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1960년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퀴리 부인’의 한 대목이다.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퀴리 부인의 결혼 전 이름이다.
마리가 학교를 다닐 무렵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의 혹독한 식민지배 아래 있었다.
어느날 러시아 장학사가 수업참관차 학교에 와서 식민지 학생들의 ‘국가관’을 점검했고 선생님은 가장 똑똑한 학생인 마리를 내세웠다.
‘압제자 수괴’들의 극존칭을 입에 담는 게 어린 마리로서도 도저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들게 본심을 감추며, 그러면서도 한 치의 오류도 없이 답변을 마친 마리는 선생님과 함께 ‘나라 잃은 설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런 내용이었다.
40년도 훨씬 더 지난 교과서 내용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 군사독재정권치하의 장학사들이 부리던 위세나 전횡이 19세기 식민지 폴란드의 상황과 흡사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장학사가 학교에 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때부터 학교 전체가 비상체제에 돌입해 마치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우선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에는 운동장으로 나와 사금파리나 시멘트 조각, 과자 포장지, 못 등을 이잡듯이 골라내야 했다.
장갑을 껴도 손이 시린 한겨울날 맨손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보면 손끝에는 터질 듯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교실이나 복도 바닥도 ‘파리가 앉다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들어야 했다.
당시 초등학교 건물은 교실이나 복도 모두 바닥이 나무로 된 경우가 많았는데, 양초를 듬뿍 바른 뒤 걸레로 닦거나 표면이 매끌매끌한 돌멩이로 열심히 문지르곤 했다.
장학사가 수업을 참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남원고을에 출두한 암행어사’였다.
장학사의 얼굴에는 관료적 거만함이 가득했고 평소엔 위엄이 넘쳐 흐르던 교장·교감 선생님은 졸지에 ‘이몽룡 앞에 무릎 꿇은 변학도’가 되어 비굴함에 가까운 공손함을 표시하곤 했다.
장학사의 수업 참관이 예정된 학급은 선생님부터 아이들까지 ‘단정한 복장’을 갖췄고, 선생님이 질문할 사항과 학생들이 답변할 내용을 사전에 철저히 연습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연습 때와는 달리 엉뚱한 대답을 할 경우 장학사의 표정은 굳어졌고, 교장·교감 선생님의 얼굴도 시커먼 흙빛으로 변했다.
장학사는 교육목표·교육내용·학습지도법 등 교육과 관련한 모든 영역에 걸쳐서 교육현장을 지도·조언하는 4급 또는 5급의 교육전문직 공무원을 말한다.
사전적인 의미야 ‘교육을 장려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교육현장을 통제·사찰하는 역할이 우선적이었다.
이는 장학사의 뿌리랄 수 있는 일제시대의 ‘시학관’이라는 명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학관의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식민지 어린이들이 ‘충용한 황국신민’으로 잘 길러지고 있는지 이른바 ‘불령선인’이 될 소지는 없는지 감시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이 명칭은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사용되다가 장학사로 바뀌었다.
요즈음 교육현장에선 장학사가 온다고 전교생이 환경미화 작업에 동원되는 등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교육과 학생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통제하며 정치권력이 주입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은연중 강요하는 따위의 행태는 아직도 바뀌지 않은 듯하다.
'제왕회관 휴게실 >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면ㆍ일본 닛신식품 개발…1963년 국내 첫 생산 (0) | 2017.10.13 |
---|---|
미장원ㆍ1920년대 국내 최초 개업…신여성 ‘마실’ (0) | 2017.10.13 |
청량음료ㆍ칠성사이다·환타·오란씨… ‘톡 쏘는’ 추억 (0) | 2017.10.13 |
미니스커트ㆍ1967년 국내 첫선…‘저속한 옷차림’ 단속도 (0) | 2017.10.13 |
영화관 ㅡ 1907년 개관 단성사 최초…TV등장 사양길 (0) | 2017.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