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두발자율화 시대를 맞아 여고생들이 동네 미장원에서
자유로운 스타일로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볕 좋은 날이면 엄마는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아들딸을 차례로 불러냈다.
보자기를 목에 둘러씌우고는 기다랗게 자란 머리칼을 가위로 슥삭슥삭 잘라냈다.
동네 어느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미용기술을 배운 적 없는 엄마의 커트는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한동안은 바가지머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드라마 <몽실언니>가 인기를 끌면서 적잖은 아이들이 바가지머리를 하고 다녔지만 어린 마음에도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동안 엄마에게 불평을 했더니 효과가 있었나보다.
어느 날 엄마는 딸을 미장원에 데리고 갔다.
물론 이전에도 미장원에 간 적은 있다.
‘파마’(퍼머넌트웨이브·펌)하는 엄마 따라 갔다가 덩달아 함께 머리를 말고 몇 시간씩 옴짝달싹 못하고 갑갑해한 기억이 난다.
기술이 좋아진 요즘에야 2시간이면 파마가 끝나지만 1980년대만 해도 파마가 완성되려면 한 나절은 족히 걸렸다.
당시 어머니들은 아침 일찍 머리를 감고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말고 수건이나 보자기로 동여맨 뒤 집에 가 아이들 밥을 챙겨주거나 시장에 다녀온 뒤 미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머리가 일명 ‘아줌마 파마’ 혹은 ‘뽀글이 파마’였다.
풀리지 않게끔 오래 가라고, 짧은 머리를 라면 면발처럼 꼬불꼬불하게 만 파마머리는 당시 아줌마들의 공식 헤어스타일이었다.
각양각색의 머리를 한 금발미녀들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는 미장원에는 주부들을 위한 온갖 잡지가 완비되어 있었다.
아줌마들은 ‘마실’ 가듯 미장원에 들러 <선데이서울>이나 <주간경향>을 돌려 보며 수다를 떨었다.
미장원은 온갖 소문이 생겨나는 진원지이자 유통되는 허브였다.
국내에 미장원이 최초로 생긴 것은 1920년대.
조선 최초의 미장원 ‘퍼머넨트’가 화신백화점에 개업했다.
그러나 당시 ‘퍼머넨트’에서 지금과 같은 파마를 시술하지는 않았다.
현재와 같이 약품을 사용해 웨이브를 만드는 방법은 36년에야 고안됐기 때문이다.
서구의 신문물을 습득한 모던 걸들은 짧게 머리를 자르고 열을 가한 고데로 머리를 바깥으로 말아올려 멋을 냈다.
20년대 이 같은 ‘신여성’의 단발은 사회적으로 논란 대상이어서 토론회까지 열릴 정도였다.
파마가 일본을 통해 수입된 것은 3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침체·억압됐던 사회분위기에 따라 파마는 사치풍조의 하나로 금지되기 시작했다.
파마가 다시 유행한 것은 해방 이후다.
당시의 파마 역시 불에 달군 아이론을 이용한 것으로, 머리카락이 타서 끊어지기도 하고 이마나 귀 주위에 화상을 입는 일도 왕왕 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고 본격적인 근대화·산업화 바람이 일면서 짧은 커트머리와 단발 등 서양식 머리스타일은 이제 전 국민 사이에 보편화된다.
영화, 잡지 등을 통해 당대 외국의 패션스타일도 따라 들어왔다.
55년 국내에서 <로마의 휴일>이 개봉하자 한동안 이 영화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짧은 단발이, 61년 <슬픔이여 안녕>이 선보이자 여주인공을 따라 짧은 보이시한 커트머리가 여대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본격적인 파마의 유행은 70년대 이뤄졌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시간 절약을 위한 간편한 스타일이 선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만큼이나 미용산업도 큰 변화를 겪었다. 해방 후 미용사 자격증 제도가 생겼음에도 도제식으로 계속되던 미용사 교육은 80년대 들어 체계화됐다.
서구의 미용기술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미용학원과 대학 내 미용학과가 줄줄이 생겨났으며 93년 이후 외국계 프랜차이즈 미용실까지 국내에 상륙했다.
미장원이란 전통적 명칭 대신 미용실, 헤어살롱, 헤어숍, 뷰티살롱 등으로 간판이 바뀌었고, 일부 국내 미용실은 체인점화되면서 해외에 수출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미용사들의 위치도 한 사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헤어 디자이너’로 격상됐다.
‘남자들은 이발소, 여자들은 미장원’의 구분도 사라졌다.
요즘에는 젊은 남성 대부분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매만진다.
손님뿐 아니라 미용사들 사이에서도 남성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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