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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이상국가의 꿈, 파도 속으로 스러지다

by Ajan Master_Choi 2004. 5. 30.
이상국가의 꿈, 파도 속으로 스러지다

김정 제주 유배생활 기록 남겨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치 주도

◇제주에서 1년 살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제주에서의 1년 살기를 꿈꾼다.
직장인 정년퇴직 후의 로망 중 하나이다.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은 조선 초기 법무부장관을 지낸 고위급 인사이다.
당시 직함은 형조판서.
그는 1520년 8월부터 1521년 10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제주에서 살았다.
그리고 제주에서 1년 살기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이다.
제주에 대하여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문헌 자료의 하나이다.
16세기 제주를 이해하는 안내서이자 제주학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는다.

다만 그의 ‘제주 살기’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다.
중종 때 조광조와 함께 개혁의 쌍두마차였던 탓에 김정은 기묘사화의 광풍이 불어닥친 1519년(중종 14) 11월 그날 유배형에 처해졌다.
처음 유배지는 금산이었으나 죄가 무겁다는 이유로 진도를 거쳐 다시 제주로 옮겨졌다.

김정의 문집인 ‘충암집(冲庵集)’ 권4에 수록되어 있는 제주풍토록은 그가 사사(賜死)되기까지 제주에서 1년여 유배생활을 하면서 보고 겪고 느낀 바를 생생하게 기록한 체험담이다.

내용은 기후, 지형, 동식물, 주거, 풍속, 유배살이의 처지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주풍토록에 따르면 제주의 기후는 겨울에도 덥다.
바람이 세고 비가 많아 습하고 병들기 쉽다.
기와집이 별로 없으며 초가는 새끼로 얽어맸는데 어둡고 침침했다.
모기와 파리떼가 많고 지네 개미 지렁이 등 잡다하게 우글거리는 벌레들이 겨울이 지나도 얼어 죽지 않는다.

풍속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귀신을 숭상하여 신당[음사(淫祠)]이 300개나 된다.
김정은 이 책에서 “뱀을 신으로 받들고 있어 뱀을 죽여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개탄하였다.

들짐승 가운데 여우 토끼 호랑이 곰 등이 없고, 황새와 까치도 없었다.
노루 사슴 꿩 전복 오징어 등이 많이 난다.
표고와 오미자가 많이 나는데 오미자의 품질이 뛰어나다고 김정은 평했다.

김정의 눈에 비친 당시 제주는 문명의 암흑지대였다.
학문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부정과 비리가 난무했다.
약육강식의 반문명 사회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절망적 상황에서도 생의 의욕을 포기하지 않고 과실수를 심을 계획을 밝히기도 한다.
또 국법이 두려워 가끔 한번 나다니며, 밭에서 홀로 외롭게 걷는다고 자신의 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김일우 (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은 제주의소리 기고문을 통해 “제주풍토록은 16세기 전반 제주의 실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최초의 제주풍토지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라며 “성리학적 세계관과 유배객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저술”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남긴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는 1702년 목사로 부임하여 각 마을의 신당 129개소와 사찰 5개소를 불태우고 1,000여명의 무당을 귀농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제주문화원에서 2012년 발간한 ‘제주 고기문집(古記文集)’ 가운데 제주풍토록(왼쪽). [사진출처: 서귀포시] 오른쪽은 와유록(臥遊錄)에 실린 제주풍토록.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주도는 거친 자연과 부딪쳐야 하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신에게 의존하는 바가 컸다.
성격에 따라 본향당, 일뤠당, 요드레당, 해신당, 산신당, 미륵당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본향당은 마을의 출생, 사망 등의 일을 맡아보는 본향신을 모셔서 더 중요시된다.
특히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송당본향당은 제주도 본향신의 원조라고 전해진다.
담을 네모지게 두르고 계단식 제단을 마련한 뒤 제단 위에 단칸짜리 기와지붕 석실을 지었고, 안에 ‘금백조’를 모시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본향당. 일년에 세 번 이상 남녀가 춤을 추고 음식을 먹으며 본향당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제(堂祭)를 지낸다.
신당은 이처럼 커다란 나무에 종이나 헝겊을 매 제단을 만든다.
이 외에도 굴속이나 바위 밑, 돌담으로 울타리를 쌓아 제단으로 삼는다.

제주시 건입동 1275 동자복. 제주성 동쪽에서 성안을 수호하며 마을의 평안과 어로활동의 안전을 지키는 미륵당이다.
누군가 앞 제단에 가져다놓은 음료수와 껌 하나, 나무젓가락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제주의 민속신앙은 이처럼 지금도 면면히 전해져온다.
벙거지 모자는 후대에 씌운 것으로 돌하르방이 아니다.

병와 이형상이 남긴 탐라순력도 중 ‘공마봉진(貢馬封進)’. 진상에 필요한 말을 각 목장에서 징발하여 제주목사가 관덕정 앞에서 확인하는 광경이다.
당시 진상에 필요한 말은 어승마(御乘馬, 임금이 탈 말) 20필을 비롯해 총 433필이며, 검은 소(黑牛)는 20마리이다.

◇제주에 온 다섯 현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는 ‘오현단(五賢壇)’이다.
육지에서 건너와 제주의 학문 및 풍속 발전에 기여한 다섯 현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이들을 배향하던 귤림서원(橘林書院) 터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다섯 현인은
▷중종 15년(1520) 유배 온 충암 김정,
▷중종 29년(1534)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宋麟壽),
▷선조 34년(1601) 안무사로 온 청음 김상헌(金尙憲),
▷광해군 6년(1614) 유배 온 동계 정온(鄭蘊),
▷숙종 15년(1689) 유배 온 우암 송시열(宋時烈)이다.
 
그러니까 3명은 유배를 왔고, 2명은 근무차 부임해 왔다.
특이한 것은 제주 5현 중 김정, 송인수, 송시열 등 3명이 대전 출신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은 제주와 인연이 꽤 깊은 셈이다.

오현단 내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글씨를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曾朱壁立)’이라는 글씨와 김정, 송시열의 적려유허비 등이 있다.

김정은 세상을 달관한 듯하면서도 유배생활 내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임금은 그에게 죽음을 내렸다.
김정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술을 한잔 마신 뒤 형과 아우에게 노모를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는 편지를 한 통 썼다.
그리고 절명시(絶命詩)를 읊조렸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가 머물렀던 유배지 오현단에는 ‘임절사(臨絶辭)’라는 절명시를 새긴 아담한 시비가 서 있다.

<외딴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어

멀리 어머니 두고 가니 천륜을 어겼네
이런 세상 만나서 나의 목숨 끊어지니
구름을 타고 천제의 궁궐에 들렀다가
굴원(屈原)을 따라 높이 노닐고 싶건만
기나긴 어두운 밤 언제 날이 밝으랴
빛나던 일편단심 풀밭에 묻혔구나
당당하고 장하던 뜻 중도에 꺾였으니
아아! 천추만세토록 나를 슬퍼하리라>

머나먼 유배지에서의 외로움, 고향 땅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 선비의 뜻을 채 펴지 못하고 꺾인 처절함, 임금을 향한 충심 등을 그린 임절사는 가슴을 저민다.

제주에 유배를 온 또 다른 사람으로는 김정보다 약간 뒤의 미암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을 들 수 있다.
유희춘은 기묘명현 김안국(金安國), 최산두(崔山斗)의 문인이기도 하다.
대윤파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던 유희춘은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1547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종성으로 옮겨졌는데, 그가 유배지에서 보낸 세월이 19년에 이르렀다.
1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미암일기’와 부인 송덕봉과 주고받은 편지 등이 유명하다.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이 헐린 뒤 제주 유림이 서원 터에 설치한 제단이다.
제단 가운데 작은 돌 5개는 다섯 현인의 위패를 상징한다.
맨 왼쪽에 동강난 채 서 있는 김정 적려유허비가 보인다.

오현단 내 송시열 적려유허비(왼쪽). 오른쪽은 새로 세운 김정 적려유허비.

복원한 오현단 내 일부 귤림서원 건물

오현의 이름과 제주에 온 시기, 시호 등을 적은 ‘오현비’. 김정 좌우로 송인수, 송시열의 이름이 보인다.

김정의 절명시 '임절사'를 적은 시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정은 14세에 부정기시험인 별시(別試)의 초시(初試)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19세 생원시에 입격했다.
3년 뒤 대망의 문과 장원급제에 올랐다.
또 20대 2차례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될 만큼 청년 김정은 학식과 필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였다.
이후 출세가도를 달려 34세에 형조판서에 올라 육경(六卿)의 반열에 오른 그였다.

그런 김정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중죄인이 된 것이다.
'여럿이 붕당을 만들어(交相朋比 교상붕비)’, ‘과격한 궤변이 버릇이 되어(詭激成習 궤격성습)’라는 죄목이었다.

처음 금산에 유배됐으나 유배지 이탈이라는 억울한 죄목이 추가되어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조광조와 함께 중종 및 훈구세력이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내몬 기묘사림의 핵심 인물이었다.

김정은 1520년 1월 금산에서 진도로 이배되었을 때 안처순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단명하든 장수하든 변함없이 자신을 수양하며 천명을 기다리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술이 없으면 수시로 밀려오는 시름을 달랠 길이 없었다.
평소 음주를 즐기던 김정은 고단한 심사를 오직 술로 달랬는데 외딴섬에서 술을 구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김정은 “소주 두세 말을 빚어서 보내준다면 평생의 큰 은혜일 것, 곤궁한 내 처지를 누가 돌아보겠느냐, 의지할 것은 친구뿐”이라고 적었다.
김정의 절박한 처지와 두 사람의 친분을 웅변한다
김정이 사제당 안처순의 구례현감 부임 시 써준 전별시.
보물 ‘기묘제현수필’에 수록된 것으로 ‘남쪽으로 가는 안순지를 전송하다(贈送 安順之南行, 증송 안순지남행)’라는 제목의 오언율시 4수이다.
김정은 안처순에게 지방관으로서 인의 행하여 백성들의 근심을 달래고 어머니를 기쁘게 모시라고 당부하였다.

기묘제현수첩 제63~64면에 수록된 김정의 편지. 1520년 1월 18일 쓴 것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신항서원(莘巷書院)과 묘정비.
경연 박훈 김정 송인수 한충 송상현 이색 이이 이득윤 등 9명을 배향하고 있다.

김정이 남긴 그림 ‘산초백두(山椒白頭)’.
산초나무에 앉은 두 마리의 할미새를 그린 그림이다.
종이에 수묵담채, 32.1×21.7㎝, 개인 소장.

충북 보은군 삼산공원에 세워진 김정 시비. 보은은 김정의 출생지이다.

1758년(영조 34) 내려진 김정 증직 교지

◇향약(鄕約) 보급에 적극 나서

대사헌 김정이 아뢰었다.

“신이 밖에서 살펴보니 ‘여씨향약(呂氏鄕約)’이 풍속 교화에 기여한 바가 컸습니다. 예전에 사이 나쁘던 형제가 뉘우쳐서 화합하고 패역(悖逆)하던 자가 어질고 양순해졌습니다. 그러니 잘 실천하게 한다면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는 데 어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백성들이 조정의 뜻을 모르고 감사의 일시적 명령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사가 바뀌면 그만둘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수령도 간혹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 조정의 뜻을 단단히 일러두는 게 좋겠습니다.”
[중종실록 1518년(중종 13) 9월 14일]

향약은 중종 때 처음으로 시행한 이후 각지에서 16세기 후반부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좋은 일을 서로 권장하는 덕업상권(德業相勸), 잘못한 일을 서로 꾸짖는 과실상규(過失相規), 서로 사귐에 있어 예의를 지키는 예속상교(禮俗相交), 재난과 어려움을 서로 돕자는 환난상휼(患難相恤) 등 대개 4대 덕목을 강조했다.

향약은 한마디로 성리학적 이념을 일반 백성에게까지 널리 보급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이었다.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의 주장에 의하여 처음 여씨향약을 도입해 실시했다.
1517년(중종 12)에는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여씨향약 언해본을 펴내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기묘사화로 인하여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다 선조 때 이황(李滉)은 ‘예안향약(禮安鄕約)’을, 이이(李珥)는 ‘서원향약(西原鄕約)’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향약을 시행하여 차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7세기 간행된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 중종은 기묘명현의 의견에 따라 유교적 이상사회를 이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향약을 통한 백성들의 교화라고 여겨 전국에 적극 보급하였다.

김안국이 한글 번역을 덧붙여 간행한 여씨향약언해.
1574년(선조 7) 교서관제조 유희춘(柳希春)이 주관하여 간행한 을해자본(乙亥字本)이다.
이전 판본의 오탈자를 철저하게 수정해서 이후 유포되는 책의 모본으로 활용되었다.
퇴계 이황이 짓고 쓴 ‘향입약조서(鄕立約條書)’.
이황은 고향 안동에서 시행할 목적으로 여씨향약을 본떠 예안향약을 제정하였다.
이 글은 그 취지를 밝힌 서문에 해당한다.
보은 상현서원. 김정 성운 조헌 송시열 등 4명을 배향하고 있다.

김정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했던 석천암.
2019년 복원돼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2021년 12월 김정 500주기 추모기념식에서 종손 김응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단경왕후 복위 상소 올린 김정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은 충북 보은에서 낳고 자랐다.
조선 전기 이조정랑, 순창군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경주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순창군수 때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과 함께 폐비 단경왕후 신씨(愼氏)의 복위를 청하는 소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조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김정은 보은으로 귀양 갔다가 9개월 후 풀려났다.

조광조와 함께 현량과 설치, 공신의 위훈삭제(僞勳削除), 향약 보급 등 개혁정치를 폈으나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삭탈관직되었고, 1520년 8월 제주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1521년 제주에서 사사되었다.

김정은 그림뿐 아니라 글씨도 잘 썼다.
1519년 경 구례현감으로 있던 안처순(安處順)에게 보낸 편지가 기묘제현수필과 기묘제현수첩에 실려 있다.
대전 숭현서원, 청주 신항서원, 보은 상현서원, 제주 귤림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1646년(인조 24)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정 묘는 당초 다른 곳에 있었으나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종가, 재실, 불천위 사당, 신도비, 부인의 정려각 등이 묘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다.
묘와 종가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에 가까이 있어 산책 겸 둘러보기 좋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은 폐 경부고속도로 옆 신하동에서 시작해 흥진마을, 백골산성, 절골을 거쳐 와정 삼거리(방아실 입구)까지 가는 약 13km의 코스이다.
주변 풍경과 억새가 무척 아름다워 인기가 높다. 
순창 강천사 맞은편의 삼인대(三印臺). 김정 박상 류옥 3명이 각자 관인(官印)을 걸어놓고 단경왕후 복위상소를 결의했다고 전한다.

김정 묘. 묘비엔 ‘有明朝鮮 資憲大夫刑曺判書 贈領議政謚文簡公 沖庵金先生之墓 贈貞敬夫人恩津宋氏祔左’(유명조선 자헌대부형조판서 증영의정시문간공 충암김선생지묘 증정경부인은진송씨부좌)라고 적혀 있다.

2021년 김정 500주기 때 제막을 앞둔 신도비각.
왼쪽 살짝 보이는 비각은 김정 부인 은진송씨 정려비각이다.
김정이 제주에서 사사되자, 자진하려 했으나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효도로 공양했다.
시어머니 사후 8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세상을 떠났다.
1803년 순조 3년 정려를 내렸다.

김정 출생지임을 알리는 보은의 유허비

대전 숭현서원. 정광필 김정 송인수 김장생 이시직 송시영 송준길 송시열 등 8명을 배향하고 있다.

충암선생연보(왼쪽), 충암집.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김정 묘소 인근의 대전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김정 후손 인터뷰

“서울에서 내려왔죠, 종손 일하러요”
김응일 충암공파 회장 인터뷰
선조현양·유적지복원 등 앞장

충암(冲菴) 김정(金淨, 1486~1521)의 17대 종손 김응일(金應一) 경주김씨 충암공파 대종회장은 2006년 돌연 서울의 약국 문을 닫았다.
부인의 반대가 걱정돼 고민 끝에 내린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해서 친구가 모두 서울에 있고, 약국도 제법 잘 되던 차였다.
그런 그가 시골살이를 선택한 것은 ‘종손’이라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종손(宗孫)은 장손(長孫)과 달라요. 집안의 맏아들이라는 점은 같지만 종손에겐 모셔야 하는 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도덕 및 학문이 높은 이에 대해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가 계셔요. 우리 가문의 자랑이신 훌륭한 어른을 제가 모실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뭐.”

김 회장이 모시는 불천위는 정암 조광조와 함께 대표적인 기묘명현으로 꼽히는 충암 김정이다.
충암은 경주김씨 충암공파의 파조이기도 하다.
그의 선친이 1991년 별세하고 어머니 혼자 넓은 종가를 지키며 제사를 받들던 차였다.
쇠약해진 어머니를 더이상 혼자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김 회장은 2006년 서울 대신 대전 유성에 약국을 차리고 종가로 이사를 했다.
대전시의 변두리인 동구 신하동 대청호변이었다.

2021년 12월 3일 김 회장은 큰 행사를 하나 치렀다.
김정이 제주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뜬 것은 1521년 음력으로 10월 그믐.
그러니 이날은 꼭 500년째 맞는 기일이었다.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김 회장은 몇몇 내빈과 후손을 초대해 ‘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추모 기념식’을 가졌다.

매년 전국에서 20명 이상씩 후손들이 기제사에 참석하지만 그래서 이날은 훨씬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기제사에 얼굴 한번은 비추어야 충암 할아버지가 저승에서 알아보신대요. 그래서 전국의 후손들이 꼭 한번은 얼굴 도장 찍으러 여기 찾아오십니다. 할아버지가 못 알아보신다면 큰 불효잖아요?”

500주기 기제사에 앞서 먼저 신도비각 제막식이 열렸다.
김정 신도비는 지붕돌과 받침돌이 풍화로 많이 상해있는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김 회장이 앞장서 비각을 씌운 것이다.
김정 신도비는 조선 4대 문장가로 이름 높은 월사 이정구(李廷龜)가 짓고 등 당시의 역사적 사실도 담겨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87년엔 한글로 번역한 국역 신도비도 그 아래 세웠다.
충암의 덕행과 학문을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야 종손의 당연한 의무지만 이를 넘어 조상 어른을 현양(顯揚)하는 일에도 신경 써야 한다”라는 것이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에는 제주도 우도에 가서 ‘우도가’ 시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충암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던 충북 보은군 석천암(石泉菴) 복원을 위해 노력한 끝에 2019년 준공식을 갖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동안 행정기관의 지원, 문중의 노력에 힘입어 다소 번듯한 모양은 갖췄어요. 앞으로 문화해설사 상주, 시티투어 코스 포함, 충북 보은군 생가 복원까지 마저 이루어져 충암의 올곧은 정신을 널리 계승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재실 겸 모임장소로 사용하는 사당 옆 ‘산해당(山海堂)’. 우암 송시열이 충암 김정의 성품을 “높은 산과 같고 넓은 바다와 같다(山高海活)”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현판은 1978년 대청호 수몰로 인해 묘를 이장하면서 나온 관의 목재를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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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회관™ 소개 ✔
??제왕회관™은 ??태국전통무술인 "무에타이"를 보급하기 위해 1992년 대전에서 최민규관장에 의해 설립되어 최고의 파이터 육성,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benevolence, righteousness, propriety, wisdom and sincerity)을 실천하는 생활무술인 양성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무에타이 전문도장으로서 공식명칭은 한글로는 "제왕회관"이라 하고 영문으로는 EMPEROR muaythai GYM, EMPEROR muaythai Institute, 영어 약자로는 EMI 또는 EMI team을 사용하며, 한자나 일본어, 중국어로는 "帝王會館"이라 표기하며, 공식지부도장은 명칭 뒤에 지부이름을 함께 붙여서 표기합니다.

✔ 제왕회관™ 프로필 ✔
▶1992년 무에타이 제왕회관 오픈
▶국내최초 무에타이 국가대표 배출
▶국내최초 종합격투기 초대챔피언 배출
▶국내최초 K-1 WGP 출전자 배출
▶국내최초 체육관 정원제 실시
▶국내최초 단증 유료 발급제도 폐지
▶국내최다 챔피언 타이틀 보유자 배출
▶세계복싱평의회(WBC) 무에타이 라이트급 한국챔피언 배출 
▶세계무에타이연맹(WMF) 무에타이 헤비급 세계챔피언 배출
▶Spirt-MC1 종합격투기 무제한급 챔피언 배출
▶J-NETWORK KOREA 반탐급 한국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협회(KMA) 핀급 챔피언 배출 
▶Kma-FC 무에타이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연합회(KMTF) J.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대한무에타이연맹(KMF)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크레모아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대한격투기협회(KKA)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MAX-POWER 반탐급 챔피언 배출 
▶대한종합격투기총연맹(DMF) 무에타이 반탐급 챔피언 배출 
▶국제킥복싱연맹(IKBF) 페더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협회(KMA)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세계프로킥복싱총연맹 반탐급 챔피언 배출 
▶FIGHTER-BOOM 반탐급 챔피언 배출
▶FIGHTER-BOOM 헤비급 챔피언 배출
▶MAX-FC 여자페더급 챔피언 배출 
▶한국킥복싱협회(KBA) 페더급 챔피언 배출 
▶코리아무에타이협회 페더급 챔피언 배출 
▶한국격투기연맹 페더급 챔피언 배출 
▶세계프로태권도연맹 미들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협회 J.핀급 챔피언 배출 
▶세계격투사협회 무제한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연합회 헤비급 챔피언 배출 
▶MAX-POWER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등등 다수 

✔ 제왕회관 관련 SNS ✔
★제왕회관_채널1 https://www.youtube.com/c/muaythaiemperor
★제왕회관_채널2 https://www.youtube.com/channel/UCI1lyJd663FITw_iW1pn0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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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_채널4 https://www.youtube.com/channel/UCmEw5Dnf0V1KfKi9u-PPF7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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