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같은 언론보도 제대로 보기 위한 7개의 질문
지난해 7월 국회는 연금개혁특위(위원장 주호영)를 만들었고, 연금개혁특위는 11월 위원 16명인 자문위원회(공동위원장 김용하‧김연명)를 띄웠다.
자문위원회는 올해 1월 말까지 연금개혁특위에 개혁안 초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납품일’을 지키지 못했다.
주호영 위원장은 ‘500인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해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직접 개혁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정부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조기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가운데, 지난 주 신문 방송은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자문위원회가 단일안을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국민연금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 인상에는 공감을 이루었다는, ‘오보인 듯 오보 아닌 오보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자문위원회가 단일안을 만들지 못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두 공동위원장은 국민연금에 대한 견해가 극과 극으로 다르고 자문위원들 역시 그렇다.
김용하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진영의 전문가고, 김연명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민주당 진영의 전문가다.
국민연금 개혁이 그런 두 사람이 석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합의할 수 있는 과제라면, 애초에 국회 특위나 민간 자문위원회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개혁문제가 길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킬 것 같아서 독자들에게 그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하고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려고 한다.
적절한 질문과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개혁의 방향과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또 쓰게 될 것 같아서 제목에 번호를 붙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늘 말하지 않겠다.
질문1:
국민연금은 존재 가치가 있는가?
데이터:
2022년 출생자는 약 25만 명이고 사망자는 37만여 명이었다.
2023년 대한민국 추계인구는 5156만 명이다.
나이가 65세 넘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하자.
노인 인구는 한 해 전보다 50만 명 넘게 늘어난 902만 명이다.
가장 최근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빈곤율은 10년 전보다 10퍼센트 포인트 감소했지만 여전히 39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인빈곤율은 소득이 노인 인구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노인의 비율이다.
노인 중에서도 아주 가난한 노인의 비율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앞으로 출산율이 2020년 수준을 유지하고 대규모 이민 또는 사망률에 큰 영향을 주는 돌발 사태가 생기지 않는다고 가정한 통계청의 예상 시나리오에 따르면, 30년 후인 2053년 우리나라 인구는 4436만 명이고 노인 인구는 전체의 42.6퍼센트인 1888만 명이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법률로 소득의 일부를 노후자금으로 저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없었을 경우 902만 명의 현재 노인 중에 몇 퍼센트가 스스로 노후자금을 저축했을지, 2053년의 노인 1888만 명 중에는 그런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지 보여주는 데이터는 없다.
질문2:
국민연금은 국민 모두의 연금인가?
데이터:
통계청 인구 데이터를 보면
2022년 12월 기준 18-59세 인구는 약 2980만 명이고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있는 경제활동인구는 2270만 명이다.
비경제 활동인구는 710만 명이고, 경제활동인구 중에도 국민연금 납부예외자 300만 명과 연금보험료 장기체납자 100만여 명이 있다.
이 세 집단을 합하면 현재 18-59세 국민의 약 40퍼센트가 노후에 법적으로 또는 사실상 국민연금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라고 한다.
질문3:
국민연금은 노후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가?
데이터: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시점의 국민연금 수급자는 622만 명이지만 유족연금 수급자 92만 명과 장애연금 수급자 7만 명을 제외한 순수 노령연금 수급자는 523만 명이다.
노령연금 수급자에 대한 1인당 월평균 지급액은 49만 원 정도이다.
20만 원 이하가 75만 명,
20-40만원이 198만 명,
40-60만 원은 104만 명,
60-80만 원이 53만 명,
80-100만 원이 32만 5000명,
100만 원 이상은 40만 명 정도다.
200만 원 이상은 3000명이 되지 않았고 최고연금액은 234만 원이었다.
2007년 개정한 국민연금법에 따라
노령연금 지급 개시연령을 65세로 올리는 중이지만,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를 포함해 64세 이하 수급자가 현재 140만 명 정도 된다.
65세 이상만 따지면 순수 노령연금 수급자는 383만 명으로 노인 인구 902만 명의 42.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소득대체율 40%는 가입자 평균소득을 버는 사람이 40년 동안 보험료를 빠짐없이 납부했을 때 생애 평균소득의 40%를 받는다는 뜻이다.
현재 수급자의 노령연금 실질 소득대체율은 25퍼센트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아직 35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가 납부하지 못한 기간이 있는 수급자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연금개혁특위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도 실질 소득대체율은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졌고, 비정규직과 법적으로는 사업자이지만 사실은 노동자인 특수고용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평균 근속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잦은 이직에 따른 경력 단절로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4:
국민연금 기금 고갈은 불가피한가?
데이터:
국민연금 보험료는 소득의 9퍼센트이고 연금 지급금의 소득대체율은 40퍼센트다.
직장가입자는 보험료 절반을 사용자가 내고, 지역가입자와 가입의무가 없지만 원해서 가입한 임의가입자는 9퍼센트를 모두 자신이 부담한다.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약 1.8이다.
‘평균적 가입자’가 자신이 낸 돈보다 1.8배 많은 연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평균적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의 평균에 해당하는 소득을 벌면서 전체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만큼 보험료를 내고 수명이 전체 가입자 평균 수명과 같은 ‘가상의 가입자’다.
국민연금 제도를 현행 그대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운영할 경우,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2041년 약 1778조 원으로 정점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해인 2042년 연금 지급액이 보험료 수입과 기금운용 수익을 합친 것보다 많아져 첫 적자를 내고, 불과 15년 후인 2057년에는 기금이 완전 소진된다.
2019년에 실시한 제4차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올 4월 공개할 예정이라는 제5차 재정계산에서는 연금 고갈 시점이 조금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무엇보다 출산율이 예상보다 더 많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출생률과 사망률, 경제성장률, 기금운용 수익률 등 여러 요소가 연금수지에 영향을 미치는데, 재정계산을 할 때 모든 변수에 현실성이 높은 확률을 적용하기 때문에 예측이 크게 어긋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질문5:
국민연금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넣은 것은 합리적인가?
데이터: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접속해 내 연금 계산하기 서비스를 이용해 보시라.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소득이 높을수록 수익률이 낮고 소득이 낮을수록 수익률이 높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인 소위 ‘A값’을 모든 가입자의 연금액을 산정할 때 같은 비중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그렇지만 소득 최고등급 가입자의 수익률도 어떤 민간보험회사의 연금 상품보다 수익률이 높다.
산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분은 국민연금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국가, 사회, 국민 전체의 과제다.
국민연금이 건강보험처럼 명실상부한 온 국민의 보험이라면 세금으로 하든 국민연금으로 하든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연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이 40퍼센트가 넘는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는 절반의 국민들끼리 노후소득을 재분배하도록 강제한다.
이것은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질문6:
기금이 없어져도 국민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가?
데이터:
5차 재정계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4차 재정계산의 기금고갈 시점인 2057년 통계청 인구추계를 보자.
이것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2020년 수준 출산율이 지속되고 대규모 이민이나 사망률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없다고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른 예상 수치다.
총인구는 4219만 명,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871만 명으로 전체의 44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들 중 60퍼센트가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수급자는 112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15세부터 64세까지 인구는 2103만인데,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70퍼센트로 잡고 실업자가 없으며 취업자 전원이 예외 없이 국민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매월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은 최대 1470만 명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납부예외자나 장기미납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의 수와 연금 수급자의 수가 비슷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게 합당하다.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이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해도 소득활동을 하는 가입자의 소득 중에서 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을 보험료로 징수하면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기금을 쌓아두고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적립식’이라 하고 기금 없이 해마다 징수하는 보험료로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부과식’이라고 한다.
부과식 노후연금을 운영하는 국가는 독일이 대표 사례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은 얼마일까?
70년 넘게 그 제도를 운영하면서 수없이 손을 보았기에 어느 시점을 특정해서 말하기가 어려우니 최근 상황을 소개한다.
독일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43퍼센트 이상으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소득의 22퍼센트 수준에 묶어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저출산 현상이 오래 되어서 연령별 인구 편차가 우리만큼 크지 않은데도 보험료율이 그 정도 된다.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이 고갈되는 2057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은 현재 독일보다 훨씬 높다.
보험료율 22퍼센트 정도로는 부과식 연금 제도를 지탱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도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질문7:
특수직역연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데이터:
국민연금 이외의 공적 연금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을 특수직역연금이라 하며 현재 가입자는 160만 명 정도 된다.
군인연금은 1973년,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정부는 2022년 한 해에 두 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6조원 넘는 돈을 지출했다.
사학연금은 2033년 첫 적자를 기록하고 2048년 기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제도를 손보지 않고 현행 그대로 운영할 경우 정부는 2050년 한 해에 특수직역연금의 적자를 보전하는 데 25조 원을 지출할 전망이다. 「e-나라지표」에 올라 있는 정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민간기업의 직원 임금 수준을 100으로 할 경우
2020년 현재 공무원임금 수준은 90.5였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29세 청소년과 청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1위와 2위가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었다.
특수직역연금의 기본형인 공무원연금의 보험료는 과세소득의 18퍼센트(절반은 국가 부담)이고 수익비는 국민연금과 큰 차이 없는 1.7이다.
수익률은 국민연금보다 조금 낮지만 보험료 액수가 많기 때문에 혜택의 절대적 규모는 국민연금보다 훨씬 크다.
공무원연금 수급자 50여 만 명 중에 월 300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 사람이 25퍼센트인 12만 5000명이나 되고 전체의 40퍼센트가 200-300만 원을 수령한다.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의 월 300만 원 이상 수령 비율은 각각 48퍼센트와 34퍼센트 정도 된다.
남은 질문들
중요한 질문이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공적 부조’인 기초연금 문제도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논의해야 마땅하다.
원래부터 국민연금 개혁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제도라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민간기업의 퇴직연금 제도 또한 고려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한꺼번에 거론하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오늘은 국민연금 자체 문제만 다루었다.
기초연금 문제는 적절한 기회에 이야기하겠다.
정부와 언론은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는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명히 말한다.
그렇게 해서는 답을 찾을 수도 없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오늘 소개한 질문과 관련 데이터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누구나 같은 판단을 하리라 믿는다.
머리 아픈 질문과 데이터지만, ‘시민언론 민들레’ 독자들이 국민연금 개혁 문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이해하고 오류를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썼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머리가 아팠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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