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세계의 기독교도 들로부터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 받으면서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는 인정 받지 못하는가?
그가 그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또 후에도 이처럼 배척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의 진실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철학자나 비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진정성을 파악해 보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기독교측으로부터 집단적인 린치를 당하는게 사실이다.
그들은 그것에 생명(구원)을 걸고 있기 때문이며, 작은 구멍이라도 나면 큰 구멍으로 커질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레벨(급)로 보고있다.
즉 예수를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갖고있는 신비로운 측면처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볼 뿐이다.
부활이니 승천이니 재림이니 또 심판자니 하는 차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신약에 쓰여진 그의 말이나 행적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의 조상(예수)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과 같은 위치로 또 종말의 주인으로 추앙 받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런것을 모두 허상으로 보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밖으로 굽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들이 크게 반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것은 미국이나 유럽국가들(기독교 국가)의 도움으로 척박한 환경과 국가적인 위험을 모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국가를 되찾고, 또 유지할수 있는 도움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을 파괴할 수 는 없기 때문에 크게 부정하지는 않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예수는 사실 현재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본인의 뜻과 다르게 인간들의 영원한 삶을 갈구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는 실정이라 봐야한다.
다시말해 예수의 본의나 진의를 떠나 인간들(신앙인)의 욕망에 의해 다르게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예수의 진심은 인간의 마음을 의롭게(참되게)하여 평화로운 인류의 삶을 꿈꾸었던 것인데, 신앙인들의 욕심에 의해 차츰 변하여 구원영생이란 목적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렇게 알고 있고, 그 범주 만을 상정하며 받아 들이고 있을 뿐인데, 신앙인들은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라거나 인류를 구원한 메시야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달아놓고 숭배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구원자란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확장하고 또 굳건한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다윗같은 위인이 등장하는 것을 연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 같은 존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강물처럼 흐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안개처럼 내려앉는 그런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의 구원자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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