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성종(이혈)의 여자들
첫부인 공혜왕후 한씨!
둘째 부인 폐비 윤씨!
셋째 부인 정현왕후 윤씨!
그리고 후궁
하나..
둘..
셋..
.
.
.
아홉.
성종!
재위 25년간
12명의 부인..
16명의 왕자와 12명의 공주를 생산했다.
다부인ᆞ다산왕이었다.
태종(29명 생산) 빼고...
참 힘들었겠다.
요즘 일부일처제에 애들 한 둘인 우리들도 힘든데
성종 임금님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거 원! 도와 드릴 수도 없고..."^^
성종은 공부(경연에 9229번 참석)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한 만큼 정력도 좋았다.
아니 왕성하셨다.
그러나 여복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부인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질투 때문이다.
嫉妬(질투)!
이 질투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공자님도 칠거지악에 대해 말씀하셨고
질투는 여자가 집에서 쫓겨나가는 네번째 구실(?)이 된다.
질투가 주특기인 여자한테 질투를 하지 말라고 아무리 교육한다고 되겠는가?^^
여자의 약간의 질투는 애교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질투가 커지면, 질투에 눈이 멀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고 이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사건이 된다.
무슬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거의 합법적으로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그런데 부인들 간에 불화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도 내명부 일에는 왕도 가급적 간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일에 왕이 쫀쫀하고 시시콜콜하게 참견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안에서도 법도가 있었던 것이다.
저 무슬림 가정에도 네 명의 부인들이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저 인수대비마마처럼 본부인이 집안에서는 보스(boss)다.
본부인은 다른 부인들의 방배정권(?)을 갖는다.
즉 오늘밤은 누가 서방님을 모셔야 하는지 결정을 첫째부인이 한다는 것이다.
이걸 어기면?
듁는다(die)!
남편도 첫째부인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것이 가정에서 불문률이다.
그래서 나머지 부인들은 첫째를 상전 모시듯이 떠받들어야 한다.
아니면?
국물도 없다.
그러니 질서가 유지 될 수밖에...^^
그런데 조선은?
이 방배정권을 왕이 가지고 있었다.
즉 왕 맘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의 승은을 얻기 위해 여자들이 얼마나 힘을 썼겠는가?
당근 질투도 많았을 것이다.
성종!
왕으로서는 100점인데 남편으로서는 0점이었다.
부인들의 애간장을 많이 태웠기 때문이다.
첫번째 부인,
공혜왕후 한씨!
한명회의 막내딸이다.
공혜왕후는 1467년(세조 13년)에 12세에 11살인 자을산군(성종)과 결혼했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후에 인수대비 )와 한명회가 정치적으로 야합한 것이다.
시어머니 인수대비는 공혜왕후를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중국의 열녀전을 가르쳤고 현모양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왕비는 남편 성종이 수많은 후궁들을 거느려도 질투나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후궁이 새로 들어오면 후궁에게 선물할 옷도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ㅠㅠ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했는데 이거 원...^^)
참 마음이 너그러운 왕비님이시다.
그러나 속까지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임신을 못한다.
위에는 엄한 시어머니 인수대비,
그위로 호랑이 같은 시할머니 정희대왕대비마마,
그리고 밑에 수많은 후궁들...
가슴앓이를 하다가 자식도 없이 성종 즉위 5년 4월에 한많은 여자의 일생을 마친다.
한명회, 끈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부인,
제헌왕후 윤씨!
그냥 폐비 윤씨라고 불리운다.
저 연산군의 생모다.
파평 윤씨가 아니고 함안 윤씨다.
집현전에 근무하던 윤기견이 아버지이고 엄니는 신씨다.
아버지가 어려서 돌아가셔서 어렵게 살다가 27세에 15세인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온다.
성종보다 무려 12살이 많다.
띠동갑이다.
세상을 한바퀴 더 돌았으니 눈치가 100단이다.
시어머니 인수대비에게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살갑게 대하고
밑에 후궁들에게 나이값을 제대로 했다.
헌신적이고..
친화적이며..
남편에게 충성(?)스럽게..
공혜왕비가 죽자,
윗선(비선은 아니다^^)의 지지를 받아
청문회(간택심사)도 받지 않고 검증없이 왕비에 오른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임금을 생산한다.
연산군!
조선왕조 최대의 폭군, 미친 호랑이 임금님이시다.
제헌왕후 윤씨!
왕비가 되자 본색을 드러낸다.
영웅본색이 아니라 여자본색이다.
드라마틱한 상황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접했을 것이다.
질투의 화신이 된다.
남편 성종의 발걸음이 뜸해지자 앙탈을 부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 행동이 도를 넘는다.
제6대 문종의 세자 시절 첫부인 김씨가 생각난다.
신발뒷굽 태워먹기,
교미 뱀가루,
미초풀,
붉은 박쥐 가루 등등
해괴한 짓을 한...^^
시어머니 인수대비가 조심하라고 해도 이제 막 대든다.
지도 왕비라고...^^
검소하고 유하고 후덕하다는 평은 저 멀리 인수봉을 넘어갔다.
게다가 해괴망칙한 짓까지 한다.
성종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친정엄마 신씨가 알려준 비법(?)을 동원한다.
후궁들 아이 못갖게 하는 방법..
반신불수가 되게 하는 방법..
후궁들 처소에 뼈다귀 묻기..
(개뼈다귀가 아님을 알 것이다.^^)
이 비법을 통칭하여 '방양비첩'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궁 정씨와 엄씨가 공모하여
자신과 원자를 죽이려 한다는 투서를 작성하여 공개한다.
후궁 정씨와 엄씨는 성종이 좋아하는 후궁들이다.
그래서 무피아에서 순발이 밥그릇 엎듯이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다.
여차저차 하여...
성종이 왕비 처소에서 비상(독약의 일종)과 방양비첩을 발견한다.
그래서 게임이 끝난다.
The game is over!
성종은 인수대비의 지원을 받아서 제헌왕후 윤씨를 폐하여 사가로 가택연금 시킨다.
물론 일부는 세자의 생모라고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