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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보카시...

by Ajan Master_Choi 2018. 11. 12.

 

최근 어떤 여중생의 자살사건을 기사로 읽었다.

 

이 여중생과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여학생 A는 사귀던 남친B와 다툰 후 헤어졌고, 속상한 마음에 평소 친했던 여중생에게 전남친 B에 대한 뒷담화를 했고, 여중생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 후 여학생 A와 남학생 B가 서로 화해를 한 후 다시 교제를 시작했고, A는 여중생이 B에 대해 했던 뒷담화내용을 모두 B에게 일러줬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B는 화가나서 그 여중생을 포함한 수십명이 함께 있는 SNS 공간에서 여중생을 공격했다.

여중생은 앞뒤 상황을 설명하며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노력하면할수록 본인에게 가해지는 인신공격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마음이 싸~하니 아프다.

 

가르치는 수련생에게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서로 얘기를 나눴다.

 

중고딩들 교실에서 그리고, 카톡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고 그리고 부끄럽지만…어른들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그 여중생이 남학생 B에 대한 뒷담화를 한 것은 사실이고 친구 A의 푸념을 들어주며 공감, 위로해준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사실이 진실을 다 덮어버렸다.

그런 일은 허다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이병헌)와 관련된 정치스캔들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지만, 언론인답게 여유로이 검찰에서 빠져나온 이강희(백윤식)가 차에 올라타기 직전 기자들에게 날리는 대사…

 

"아, 끝에 세 단어만 고칠게요. (국회의원 장필우에 대한 어떤 세력의 정치공작으로)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그리고 영화에서의 또 다른 대사…

"보카시 장난이라고 합니다.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의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고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연관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청탁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안상구 같은 깡패한테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매우 보여진다라고도 쓸 수 있죠."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때로는 어떠어떠하다고 보여지고, 때로는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보카시(ぼかし, 경계를 흐리게 함) 장난>에 대한 설명인듯 하다.

 

극 중에서 언론인(수구언론)으로 나오는 이강희는 '말'을 갖고 싸우는 사람이다.

말이 권력이고 말이 돈이다.

그래서 하나의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의 말을 가지고 있으며 단어 선택에 신중하고 세심하고 매우 디테일하다.

그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

 

여중생 얘기를 하다가 괜한 영화얘기로 빠지긴 했지만, 말이 무기가 되어 사람을 괴롭히는 사건들은 내가 직접 겪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누군가가 겪는 것을 보는 것도 내가 겪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말로써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은 분명 양날의 칼일진대,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들에서도 늘상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그 프레임 속에 들어가면 진실을 봐내기가 어렵다.

 

중딩 제자녀석과 이 사건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특히 아무리 친해도 "남녀문제는 끼지마라"고 녀석에게 한번 더 당부를 하며 새삼 격세지감이다.

중딩과 남녀문제를 논하다니…

하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을 어찌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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