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의 시골 영지와 도시의 저택에서 성장했지만 그때 이미 속으로는 편치가 않았다.
스물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9년 전부터 끔찍한 고독 속에서, 거의 자살의 가장자리에서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런 기본정서는 평생 그에게 남았다.
그는 언제나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지성을 잃어버리거나 죽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언제나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그러면 스스로 일어나 다시 계속 가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평생 그렇게 해야만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부모 집에서는
대단히 세련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음악이 열렬한 격려를 받았다.
클라라 슈만, 말러, 브람스 등이 집안의 친구들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클라리넷을 배웠는데 재능이 없지 않았고,
한동안은 지휘자가 될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의 음악성은 친구들 앞에서 교향곡과 협주곡 전체를 휘파람으로 들려주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그것은 친구들 좋으라고만 했던 일은 아닌 것 같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비트겐슈타인은 베를린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기술도 그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에 그는 새로운 종류의 재봉틀을 고안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항공술의 문제들에 관심을 돌렸다.
이것을 계기로 수학에 대한 관심이 깨어났다.
그는 러셀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갔다.
다음 몇 해 동안 그는 러셀과 솔직한 우정을 맺었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흥분되는 정신적 체험의 하나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천재의 완벽한 예’라고 불렀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대학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1년을 노르웨이의 한적한 농장에서 보냈다.
1914년에는 질병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는데도 지원병으로 나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들어가 장교로 동부 전선과 남부 전선의 전투에 참가했고, 이탈리아의 포로가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첫 번째 중요한 작품 <논리철학 논고>를 썼다.
전쟁이 끝난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심각한 내적 위기에 빠졌다.
시골 서점에서 복음에 관한 톨스토이의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이 그의 내면을 깊이 흔들어놓았다.
그는 단순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시골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그의 전기를 쓴 사람 하나가 이렇게 보고한다.
“그는 수줍고 소심하고, 상당히 낡은 옷을 입고서 가장 단순한 환경을 거처로 삼았다. 수도사의 방처럼 보이는 벽지를 바르지 않은 작은 방에서 지냈다. 자기가 살던 주막집에서 춤곡을 연주하자 한동안 학교 부엌에서 지냈다. 그런 다음 시골 주민의 집에 딸린, 사용되지 않는 작은 세탁실에서 살았다.”
그래도 비트겐슈타인은 시골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공과 대학에서 공부한 것이 쓸모가 있어서 시골 공장의 고장 난 증기기관을 고치고, 농부 아낙네들의 재봉틀을 손보아주었다.
그는 학교에서의 임무를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학습 방법을 실험했다.
다만 동료 교사들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몇 해 뒤에 비트겐슈타인은 학교 일을 포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우울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한동안 그는 수도원에 들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수도원의 보조 정원사로 일했다.
도구들을 보관하는 헛간이 그의 침실이었다.
그 후에는 건축으로 관심을 돌려서 여동생을 위해 당시 가장 현대적인 건축 방식으로 저택을 설계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친구들의 재촉을 받고 케임브리지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명예 교우로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에는 동료들도 몇 사람 들어왔다.
그곳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방 한가운데 있는 소박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자신의 생각들과 싸웠다. 그는 자기가 생각을 명료하게 하지 못했음을 알아채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바보다.’, ‘여러분은 끔찍한 선생을 만났다.’, ‘나는 오늘 너무 멍청하다.’ ‘이따금 그는 강의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7시 전에 강의가 끝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렇게 부르기는 했지만 이 모임을 ‘강의’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첫째로 그는 이 만남에서 자신의 탐구를 진행했다. 그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혼자서 하는 것과 똑같이 깊이 생각했다. 둘째로 이 모임은 주로 대화로 진행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보통 여러 참석자들에게 질문했고 그들의 답변에 반응했다.
이 모임은 주로 대화로 진행되었지만, 그가 자기 속에서 생각을 끄집어내려 한 경우에 그는 단호한 손짓으로 모든 질문과 발언을 금지했다. 이따금 아주 긴 침묵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주목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비트겐슈타인은 이따금씩 중얼거리곤 했다. 이런 침묵의 시간에 비트겐슈타인은 극도로 긴장하고 활동적이 되었다. 그는 눈길은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얼굴은 생생하고 두 손은 매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표현은 답답했다. 참석자들은 자기들의 극단적인 진지함, 긴장된 집중, 가장 강력한 정신적 강제를 목격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면 비트겐슈타인은 완전히 지쳐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아무 영화나 보면서 잠시 철학을 잊기 위해서였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한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그의 방에는 안락의자도 독서용 램프도 없고 사방 벽도 완전히 텅 비었다. 복장도 케임브리지의 엄격한 예의범절이 요구하는 것과 극히 달랐다. 그는 잿빛 플란넬 바지를 입고, 넥타이는 없이 셔츠를 입고, 모직 작업복이나 가죽 재킷을 입었다. 전기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양복을 입거나 넥타이를 매거나 모자를 쓴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는 단순한 식사를 좋아했다. 그가 콘플레이크만 먹고 산다는 소문은 좀 과장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그는 빵과 치즈만 먹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똑 같은 것이기만 하다면 자기가 뭘 먹든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중간에 1년 동안 노르웨이에 머문 것을 빼고 케임브리지에 머무는 동안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두 번째 중요한 책인 <철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죽은 다음에야 출간되었다. 그 사이에 그는 철학교수직을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다시 자원입대해서 야전병원에서 환자를 나르는 일을 하다가 의학연구소에서 실험조수를 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지만 머지않아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철학교수라는 맞지 않는 지위’에 ‘산 채로 파묻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고독한 농가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더블린의 호텔에 살면서 수많은 병에 시달리며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다.
1951년 예순두 살의 나이로 비트겐슈타인은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들에게 내가 경이로운 삶을 살았다고 말해 주십시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색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논리 철학 논고>(이하 <논고>로 표기함.)로 대변되는 시기로, 이것은 앵글로색슨 세계에서 주도적인 논리 실증주의 조류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준 작품이다.
두 번째 단계는 <철학적 탐구>로 대표되는데, 이것 역시 영국과 미국에 큰 영향을 남겼고 언어학 방향을 시작한 책이다.
<논고>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책으로, 차갑고 수학적인 형식 아래 정열적이고 근원적인 사색이 감추어져 있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있는 것을 말하기’를 문제로 삼는다.
이것은 그에게 정직한 철학 하기의 과제로 여겨졌다.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사실들’이라고 대답한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합이다.”
그러니까 세계는 전통적인 의미로 물건들의 총합이 아니라 사실들의 총합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물건이란 책상 같은 것이다.
사실이란 책상이 갈색이다, 아니면 책상이 방 안에 있다 등과 같은 것이다.
사실이라는 말 대신 비트겐슈타인은 ‘일이 있음’이라고도 말한다.
‘(문장내용이 될 수 있는)일’은 그 자체로 ‘대상들의 결합’이다.
대상들은
“세계의 실체를 이룬다.”
세계 안에는 복잡한 일들과 단순한 일들이 있다.
복잡한 일들은 더 이상 다른 것들로 줄일 수 없는 단순한 것들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근본적인 현실은 이렇게 단순한 것들에게 있다.
일은 문장의 대상이 된다.
복잡한 일은 복잡한 문자의 대상이, 단순한 일은 단순한 문장이나 기본문장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문장의 분석을 통해 일들의 세계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도달할 수가 있다.
여기서도 복잡한 문자들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 이름들로 이루어진’ 단순한 문장들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는 연관성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기본문장들과 단순한 일들 사이에서 원래의 접촉, 따라서 현실의 확실성의 기원이 생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전제로 삼았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참된 기본문장들 모두의 진술이 세계를 완전히 서술한다.”
왜냐하면 기본문장들에서 모든 참된 문장들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장은 기본문장들을 가지고 참이 되도록 작업한 결과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문장과 일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서술하면서
그림 개념을 도입했다.
“우리는 사실들의 그림을 만든다.”
“문장은 현실의 그림이다.”
물론 이것은 사진처럼 그대로 보여준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장이 일의 논리적 구조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논리적 형식들은 세계나 세계에 대한 문장들에서 공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문장은 현실의 논리적 형식이다.”
그로써 철학의 영역은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다.
“철학의 목적은 사상의 논리적 해명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은 거기 어울린다.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명료하게 생각될 수 있다. 표현되는 것은 명료하게 표현된다.”
이런 원칙은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자연과학에만 들어맞는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참된 문장들의 총합은 전체 자연과학이다.”
하지만
“철학은 자연과학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을 넘어가는 모든 철학적인 말하기, 특히 형이상학적인 말하기가 버림받는다.
그것은 명료하게 생각할 수도 없고 명료하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철학적인 것들에 대해 씌어진 대부분의 문장들과 질문들은 거짓이 아니라,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답변들뿐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이 이미 거부된다.
이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고>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책은 철학적인 문제들을 다루거니와, 이런 문제들을 질문으로 내놓는 것이 우리 언어의 논리의 남용에 근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논고>의 유명한 마지막 문장이 타당성을 얻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요약하면 이런 뜻이다.
“철학의 올바른 방법은 다음의 방법이다. 말이 되는 것, 곧 자연과학의 문장들-그러니까 철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그리고 다른 사람이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하고자 하면 언제나, 그가 자신의 문장들에서 어떤 (언어)기호들에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음을 증명하기, 이런 방법이 상대방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겠으나-그는 우리가 자기에게 철학을 가르쳤다는 느낌을 갖지 못할 것이다-그것만이 유일하고 엄격하게 올바른 방법이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자연과학적인 명료함으로
말해지지 않은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 없이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학문적인 질문들이 답변된다 해도 우리의 삶의 문제들이 전혀 건드려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삶의 문제들은 엄격한 척도에 따르면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것을 건드린다.
“철학은 생각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긋고, 그로써 생각할 수 없는 것의 경계도 그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속에서부터 제한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비트겐슈타인은 ‘신비적인 것’이라 불렀다.
“물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신비적인 것이다.”
드러남이라는 방법이 신비적인 것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파악될 수 없는데도 분명히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표현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뜻하게 된다.”
첫째,
윤리적인 것이 말할 수 없는 것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곧 신비적인 것에 속한다.
그것은 ‘일이 아니지만’ 모습을 드러낸다.
둘째로는
삶이 신비적인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 바깥에 있다. "
셋째로
나가 신비적인 것의 영역에 들어 있다.
“주체는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경계이다.”
넷째로
여기있음으로 나타난 전체로서의 세계가 신비적이다.
“세계가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있다는 것이 신비적인 것이다.”
다섯째로
세계의 의미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이 타당하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 바깥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세계의 의미를 부르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이해하는 것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세계의 사실들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음을 본다는 뜻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과학적으로 잡을 수 없고, 따라서 신비적인-신 개념은 세계의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 안에서는 이런 세계 신을 찾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신은 세계 안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세계의미다.
이 생각은 다른 표현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총합이라고도 이해한다.
“신은 모든 것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엄격하게 보면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신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인간의 존속이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비적인 것, 신을 가리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종속되어 있다. 우리가 거기 종속된 그것을 신이라 부를 수 있다. 신은 이런 의미에서는 단순히 운명이거나 아니면 운명과 동일한 것으로-우리 의지에서 독립적인-세계이다.”
<논고>를 완성한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해결했다.”
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그에게 의심스러워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책에서 그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세계가 사실들로 쪼개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 같은 방식으로 올바르게 세계는 물건들로, 혹은 사건들로 쪼개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분석에서 여러 가능성들이 있고,
단 한 가지 분명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통해 <논고>의 기본전제 하나가 무너졌다.
또한 문장들을 기본문장들로 쪼갠다면 문장들의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주장도, 언어에서 다의성이 지배한다는 사실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석이 반드시 참된 현실에 도달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을 넘어 복잡하거나 단순한 일 혹은 복잡하거나 단순한 문장들로 구분한 것도 문제가 많다고 보았다. 절대적 단순성은 도무지 없다.
나아가 그림 이론도 의문스럽다.
단순한 일이나 물건도 없고, 단순한 문장도 없다면 단순한 문장들이 단순한 일이나 물건들을 그대로 그려낸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신비적인 것의 이론도 포기했다.
이렇게 해서 <논고>의 전체 건물이 안으로 무너져버렸다.
새로운 시작을 찾아야 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색>을 썼다.
여기서 그는 철학의 어려움과 사색의 ‘혼란’은 언어의 뜻이 여러 개라는 사실에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탐색을 향하게 된다.
그것도 이제는 논리적 문장이 아니라 일상 언어가 문제가 된다.
일상 언어가 가장 근원적인 현실이다.
인간은 이 현실 안에 살고, 그렇기 때문에 철학도 이 현실을 잡을 수 있고, 잡아야 한다.
일상 언어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철학적 용어의 효력을 없앨 수 있다.
“우리는 단어들을 형이상학적 용도에서 일상의 용도로 되돌린다.”
단어가 하나의 뜻이 아닌 것은 그들이 등장하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단어에 대해서도 단 하나뿐인 철학적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한 단어가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적용을 보고 거기서 읽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시간’의 통일된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표현은 그 표현이 사용되는 언어적 문맥에 따라서 각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약속을 했을 때,
시계를 읽을 때,
시간 길이를 잴 때 각기 다른 의미가 된다.
짧게 말하면
“한 단어의 의미는 언어에서의 사용이다.”
여기서 철학적 노력이 개입해야 한다.
그것은 말의 여러 가지 가능한 의미들을 분명하게 한다.
“철학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오성이 마법에 걸리는 것에 맞서는 싸움이다.”
이처럼 마법에 걸리는 것은, 없음이나 정신 등과 같은 보편개념들을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가-플라톤의 의미에서-모든 현실의 말들이 동참하는 ‘말’이라는 본질성이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그것은 근본적인 오류다.
나무로 만든 말이나 초원에 있는 말을 모두 가리킬 수 있는 ‘말’이라는 단어는 통일된 본질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같은 점이 아니라 차이점이다.
본질의 동일함이라 추정된 것은 여러 맥락들에 서 있는 단어가 가진 ‘가족간의 닮음’ 정도로 환원된다.
단어들이 등장할 수 있는 삶의 풍부한 영역들이 있다.
많은 언어세계들이 있다.
그들의 다름에 따라 말의 뜻이 달라진다.
‘너’라는 표현이 사랑의 관계에서 쓰일 경우는 협박으로 말해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어들이 각기 다른 의미로 나타나는 삶의 형식들을 비트겐슈타인은 ‘말게임’이라 부른다.
말게임은 그들이 각기 다른 뜻으로 말해지는 구역들이다.
그에 대한 예로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것을 내놓는다.
“명령하기와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대상을 보이는 대로 서술하기와 측량대로 서술하기-서술에 따라 대상을 만들기-진행과정을 보고하기-진행과정에 대해 추측을 내놓기-가설을 내놓기와 검토하기-실험의 결과를 도표와 그림으로 표현하기-이야기를 꾸며내기와 읽기-연극을 공연하기-윤무곡을 부르기-수수께끼풀기-농담 만들기와 말하기-응용 계산문제 풀기-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청하기, 감사하기, 저주하기, 인사하기, 기도하기.”
비트겐슈타인이 이해하는 철학의 과제는,
사색이 언어가 쳐놓은 함정들에서 벗어나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전통에서 전해진 철학적 문제들의 엄청난 혼란에서 구원하는 길은 말게임들을 밝히고 묘사하는 데 있다.
“우리가 파괴하는 것은 그냥 공중누각일 뿐이다. 우리는 말이 서 있는 그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최종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단어들의 사용을 서술하는 것이다.
“모든 설명은 사라지고 서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철학적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는 것이 중요했다.
이로써 전통적인 철학은 역할이 끝났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타난 것은 철학의 붕괴였다.
무술의 본질은 강함!!
자타가 인정하는 지상최강의 실전무술 "무에타이"
다이어트는 목적이 아니라 기본!!
✔ 제왕낙무아이 모집 ✔
모집대상 ; 취미, 호신, 다이어트, 선수부, 지도자부, 취업부, 주말부 모집
지원자격 ; 최고를 꿈꾸는 남녀노소 누구나
모집인원 ; 각부 9명 정원제(충원시까지)
도장오프 : 평일 오후4시~10시(코로나 종료후 조정)
방문상담 : 평일 오후5시~5시30분(시간엄수)
상담예약 : HP.010-5405-7731(문자로 방문날자 예약)
도장위치 : 대전가양동 보건대4거리 - 한국폴리텍대학 입구
도장전화 : TEL.042-635-7730
EMPEROR muaythai GYM
Master. CHOI MIN-KYU
TEL : 042-635-7730 HP.010-5405-7731ADDRESS : 1B,?hyeseong BUILDING, 350, Uam-ro, Dong-gu, Daejeon, Republic of Korea
✔ 도장 선택도 실력이다 ✔
복싱은 #복싱 전문도장에서~
유도는 #유도 전문도장에서~
쥬짓수는 #쥬짓수 전문도장에서~
합기도는 #합기도 전문도장에서~
태권도는 #태권도 전문도장에서~
가라데는 #가라데 전문도장에서~
킥복싱은 #킥복싱 전문도장에서~
무에타이는 #무에타이 전문도장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 제왕회관 지도자 프로필 ✔
1992년 제왕회관 설립
국내최다 챔피언 타이틀 보유자 배출
국내최초 무에타이 국가대표 배출
국내최초 MMA 무제한급 챔피언 배출
국내최초 K-1 WGP 출전자 배출
국내최초 단증 유료발급제도 폐지
국내최초 각부별 정원제 실시
한국무에타이협회 핀급 챔피언 배출
Kma-FC 무에타이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연합회 J.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대한무에타이연맹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크레모아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대한격투기협회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맥스파워 반탐급 챔피언 배출
J-NETWORK KOREA 챔피언 배출
대한종합격투기총연맹 챔피언 배출
국제킥복싱연맹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협회 플라이급 챔피언 배출
세계프로킥복싱총연맹 챔피언 배출
파이터붐 반탐급 챔피언 배출
파이터붐 헤비급 챔피언 배출
맥스FC 여자페더급 챔피언 배출
한국킥복싱협회 여자페더급 챔피언 배출
코리아무에타이협회 페더급 챔피언 배출
WBC KOREA 무에타이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세계무에타이연맹 헤비급 챔피언 배출
한국격투기연맹 페더급 챔피언 배출
세계프로태권도연맹 미들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협회 J.핀급 챔피언 배출
세계격투사협회 무제한급 챔피언 배출
Spirt-MC 종합격투기 무제한급 챔피언 배출
한국무에타이연합회 헤비급 챔피언 배출
맥스파워 라이트급 챔피언 배출
등등 기타 다수 육성
✔ 제왕회관 소개 ✔
제왕회관은 태국전통무술인 "무에타이"를 보급하기 위해 1992년 대전 정동에서 최민규관장에 의해 설립되어 최고의 파이터 육성,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benevolence, righteousness, propriety, wisdom and sincerity)을 실천하는 생활무술인 양성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무에타이 전문도장으로서 공식명칭은 한글로는 "제왕회관"이라 하고 영문으로는 EMPEROR GYM 또는 EMPEROR muaythai GYM, 한자나 일어로는 帝王會館이라 하며 공식지부도장은 명칭 뒤에 지부이름을 붙여 표기하고 있습니다.
#무에타이 #제왕회관 #muaythai #제왕무에타이 #대전무에타이 #무에타이제왕회관 #다이어트 #트레이닝 #엠퍼러무에타이 #대전가양동무에타이 #무에타이짐 #무에타이짱 #최민규 #타이복싱 #태국무술 #태국 #대전다이어트 #킥복싱 #대전킥복싱 #격투기 #대전격투기 #실전무술 #엠퍼러 #무에타이엠퍼러짐 #보건대행복기숙사 #동대전초등학교 #흥룡초등학교 #동아마이스터고 #동대전중학교 #보건대 #한국폴리스텍 #명석고 #가양동 #비래동 #송촌동 #자양동 #삼성동 #용전동 #중리동 #원동 #대동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technik #mixed Martial Arts #emperor #emperorgym #emperormuaythai #emperorkickboxing #emperormma
무에타이, 제왕회관, 킥복싱, 다이어트, 격투기, 트레이닝, 대전가양동무에타이, 무에타이짐, 무에타이짱, 최민규, 타이복싱, 태국무술, 태국, 대전다이어트, 대전킥복싱, 대전격투기, 실전무술, 엠퍼러, 엠퍼러무에타이, 무에타이엠퍼러짐, 무에타이킥복싱, 무에타이기술, 무에타이도장, 무에타이체육관, 킥복싱기술, 킥복싱다이어트, 킥복싱체육관, 다이어트운동, 호신술, 무에타이단증, emperor, mperorgym, emperormuaythaigym, thaiboxing, muaythai, kickboxing, kickboxer, fight, fighting, muaythaifight, fighter, padwork, thaiboxen, kickboxen, kickboxing, team, training, workout, technik, mixed Martial Arts, emperormuaythai, emperorkickboxing, emperormma, Kick, MMA, boxen, boxing,
'제왕회관 휴게실 >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하게 잊을건 잊고 살자 (0) | 2021.03.10 |
---|---|
노인과 바다 (0) | 2021.03.07 |
읽고 쓴다는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0) | 2021.02.28 |
미당 서정주의 추억 (0) | 2021.02.27 |
망각의 동물, 인간 (0) | 2021.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