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은
두 가지 가능성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나는 사는 보람을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지점을 인생에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를 보완해준다.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삶의 보람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의 일에서 흥미와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타인으로는 불가능한 나만의 어떤 지점이란 숙련도다.
내가 기쁨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일에서 타인이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완성도를 갖춰놓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노 아야코가 말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노인을 안다.
그는 쿠바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이다.
침대, 식탁, 의자 밖에 없는 낡은 판잣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끼니를 굶는 건 예사다.
어부임에도 벌써 팔십사 일째 빈 배로 돌아왔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다들 안다.
내가 누굴 말하는지.
"아, 나도 알아. 그 어부. 이름이 아마 산티아고지?"
어릴 때 만난 그는 참 지루하기만 했다.
망망대해에서 커다란 물고기에 끌려가는 조각배에 앉아 혼잣말을 하는 그를 보며 졸기도 하고 답답함에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커다란 물고기뼈만을 나에게 남겨주었었다.
그런데 머리 희끗해지는 이때 다시 만난 그는 달랐다.
그는 타인에게 겸손했으나
자신의 일에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았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나홀로 잘났다 말하는 꼰대가 아니다.
자신의 일터인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 위와 아래의 생물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그렇다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즐길 줄도 안다.
그의 옆에 마놀린이 있어서 감사하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할아버지가 굶은 채 고기잡이를 하시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이 따뜻하고 사랑스런 소년이
산티아고에게 이렇게 대꾸할 땐
그만 목이 메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운은 제가 갖고 가면 되잖아요."
"얼른 나으셔야 해요. 전 아직 할아버지한테 배울 게 너무 많으니까요. 또 할아버지는 제게 모든 걸 가르쳐 주셔야 해요. 대체 얼마나 고생하신 거예요?"
"많이 했지."
나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노인의 두 손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오려고 조용히 판잣집을 빠져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줄곧 엉엉 울었다.
깨어난 노인과 대화를 하고 노인에게 먹을 것과 신문을 갖다주기 위해 문밖으로 나와 발길에 닳고 닳은 산호초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또 엉엉 우는 소년을 보며 나도 엉엉 울고 싶어졌다.
이제는 빈 배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며
"지금 그 애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하며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지도 않으리라.
하지만 어쩌면 또 온몸이 녹초가 되어서
"다만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하며 자신을 위로할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바다는 지금 갖고 있는 물건만으로 헤쳐나가야하는 고난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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