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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드라마 미스터션사인의 실제 역사적 상황

by Ajan Master_Choi 2018. 8. 19.

 

[펌글]…드라마 속의 유진 초이가 방한하기 직전인

1898년, 조선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 사건이 발생 했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조선에서 세력균형을 형성하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중요한 협정이 체결됐다.

주일 러시아 공사 로만 로마노비치 로젠과 일본 외무 대신 니시 도쿠지로가 체결한 로젠-니시 협정의 핵심은, 러시아는 만주 경영에 집중하고 일본은 조선 침략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 훈련교관 및 재정고문이 철수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됐다.

이것이 7년 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어지는 밑바탕이 됐다.

드라마 속의 유진 초이, 고애신, 구동매는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빌을 디디고 있다. 

 

이렇게 밖으로부터 위기가 가중되는데도 조선은 대응할 힘이 없었다.

1897년 대한제국으로 개칭돼 외형상은 강해졌지만, 실속은 없었다.

대한제국 선포는 1896년 부터의 러·일 세력균형으로 어느 한 나라도 조선을 장악 할 수 없게 된 틈을 활용한 조치였을 뿐이다.

로젠-니시 협정으로 일본이 세지면서 조선은 다시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고, 황제국 위상은 더욱 더 껍데기 로 변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황제국이란 허울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 스스로를 개혁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

조선 정부가 정권을 지킬 욕심에, 그런 역량들을 죄다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1894년, 이 시대의 최대 직업군인 농민들이 동학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했지만, 고종을 대표 로 하는 국가권력은 이들을 진압하고자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였다가 불청객 일본군까지 함께 불러들이는 화를 자초했다.

결국 고종은 청나라가 아닌 일본군의 힘을 빌려 동학군을 진압했다.

동학군이 궤멸되면서 조선은 민중의 힘으로 나라를 개조할 기회를 상실했다. 

 

동학이 진압된 뒤, 새로운 데서 역량이 표출됐다.

서양 문화를 접한 신지식인들이 1896년 독립협회를 조직해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1898년 공권력을 앞세워 이 역시 진압했다.

정치 시스 템이 바뀌면 자기 자리가 위험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조선은 대중의 힘은 물론이고 신지식인들의 힘 도 빌릴 수 없는 나라가 됐다.

그래서 1904년 직전의 조선 사회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 내지 분노와 더불어, 향후 방향을 확신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불안감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미스터 션샤인>이 묘사하는 1904년 직전의 조선 대중은 그런 분위기에서 살고 있었다. 

 

 

 

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당시 유생들

 

 

 

대중과 신지식인의 힘을 빌릴 수 없게 됐다면, 전통적 지식인인 유생들 쪽은 어땠을까?

입만 열만 충군(忠君)을 열변하는 그들이 정부를 도와 나라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들 상당수가 지주계급이었으니,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나라를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시대에는 유생들이 주축이 된 의병 활동이 많았다.

<미스터 션샤인> 속의 고애신도 유생은 아니지만 의병 활동을 하고 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일반 농민들을 구국 투쟁에 동원했 다. 

 

하지만, 고종은 이들도 믿기 힘들었다.

동학과 독립협회 를 바라보는 그 시선으로 고종이 의병들을 바라볼 만한 사정이 있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이 겉으로는 충군을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반된 행동들을 했기 때문 이다. 

 

을미년인 1895년의 명성황후(민비) 시해에 격분해 일어난 을미의병 때도 고종이 의병들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았다.

사단법인 '의병정신 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인 역사학자 이태룡의 <한국 의병사> 하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고 일제의 공포로부터 한숨을 돌리던 국왕은 춘천부·충주부 관찰사, 안동부 관찰사 ·경무관, 강릉부 경무관, 해주부 경무관·총순, 진주부 ·함흥부 참서관, 나주부 참서관·총순과 각지의 군수 등 30여 명, 일본인 40여 명이 의병들에 의해 참수되었다는 소식에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총순'은 경찰 직책이었다.

관찰사와 군수를 포함한 지방관 수십 명이 피살된 사건은 의병들이 읍성 점령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관찰사와 군수는 지방에서 왕명을 대표하는 관직이었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유생들이 무기를 들고 지방관을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왕조 전복을 시도 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간파 했기에 고종은 의병들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신속히 의병 해산령을 내렸다. 

 

나라를 위해 일어섰다는 선비들이 왕명을 받은 신하들을 죽였다는 것은 선비들 역시 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농민들과 신지식인들에 이어 사회의 동량인 유생들조차도 왕조에 희망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을 꽉 붙들어줘야 할 지식인들조차 자기 시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한 공황을 겪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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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실제 역사적 상황에 대해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보여주는 글이군요.

이 글 쓰신 분의 드라마 평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만(아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다 나옵니다만…) 당시 심각하고 답없는 상황을 잘 서술한것 같아 가져와 봤습니다.

 

사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두고 정통 사극이 아닌 판타지 로맨스나 퓨전 사극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게 사실이긴 합니다.

일단 저 부터도 구한말 배경으 로 한국계 미군 장교가 나온다는 기사 읽고 '이런 미친…

작가가 제 정신이야?ㅎㅎ' 혼자 피식 웃고 말았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어느 분의 말씀으로 마무리 대신합니다.

 

 

1905년 미 해병대에 동양계 장교가 있다는 설정은 확실 히 무리수고, 아무리 막장 대한제국이라지만 도성 한 가운데서 일본 낭인들이 칼차고 다니며 활개친다는 설정도 오버입니다.

일본에 폐도령으로 칼차고 다니는 풍속 사라진게 언제인데...

 

러일전쟁 직전에 친일파가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설친다 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지요.

기회주의자들이 친일 노선 으로 줄을 서서 매국에 적극 나서게 되는 시기는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종결된 이후 부터로 알고 있습니 다.

덧붙여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까지 없어진 상황에서 천민이라고 길가다 엎드려 절한다는 것도 과장이죠.

조선 말 양천제가 흔들리면서 양인 천인 구분마저 모호 해졌는데.

 

그러나 이게 드라마라는거, 그리고 장르도 구한말 배경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로 이해해야지 이걸로 역사를 이해하려들면 진짜 낭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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