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무불위(無爲而不無爲라는 문장을 만나,
한 참 생각을 했다....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
대답하는 일상에서 질문하는 일상으로 건너가자.
이런 건너 가기를 시도해야,
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이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면
잘못한 후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써서 반성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마음을 써서 반성하지 못하므로
잘못을 반복한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無爲而不無爲 지혜롭게 삶을 통찰하고
나를 향해 건너갈 수 있는 용기를...
책읽기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일이다.
다음을 향해 넘어가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을 하게 하는 힘을 상상력 또는 창의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힘은 책을 읽는 데서 나온다.
우리 인간들에게
그 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힘이
가장 높은 지혜이다.
인간은 원래 머물지 않고, 건너가는 존재이다.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산다.
양심도 건너가기를 멈추면 딱딱하게 권력화 한다.
건너가기를 잃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이제 양심이 아니라 폭력이다.
건너가기를 포기한 지식은 시체이다.
도덕도 마찬가지이다.
건너가기를 하게 하는 힘은 책을 읽는 일로 가장 잘 길러진다.
여행을 나서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한 쪽만 읽은 두꺼운 책과 같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밖의 먼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한다.
나 자신마저 문득 낯설고
아득해 지는 그 먼 곳으로
하지만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그 여행자만이 낯설 뿐...
가자
생의 여행자여
먼 곳으로
저 먼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깊은 어둠 속으로
빛나는 길을 따라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 자신에게 가장 낯선 자인
나 자신을 탐험하고 찾아내는 것...
그 하나를 찾아 살지 못하면
내 생의 모든 수고와 발걸음들은 다
덧없는 길이 있기에...
무위無爲라는 말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과중하게 느낄 정도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장 훌륭한 통치자는 있다는 사실만 아는 자이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친밀하게 느끼며 찬양하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 하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비웃는다.
최고의 리더는
무엇을 해도 반드시
자기 뜻대로 하려 하지 않기를 하는 자이다.
통치자가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으로 강하게 무장하여
그것을 백성들에게 반드시 실행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통치의 주도권이 통치자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있을 때라야 그려질 수 있는 풍경이다.
이는 신뢰의 문제이다.
영화나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예술가가 예술 향유자의 수준을 믿어야 한다.
신뢰의 문제이다.
믿지 못하면
예술가의 의도를 못 믿을까 봐
일일이 설명한다.
예술은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만들어져야 한다.
영화의 경우로 들면,
관객이 영화 스토리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구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감독의 일방통행을 구경했다는 느낌만 남게 하는 경우에
그 영화는 재미가 없다.
감독의 강압성만 있고 관객의 자발성이 없어진다.
관객은 없고 감독만 남는 형국이 된다.
통치자도 백성을 믿지 못하면,
자기의 뜻을 강하게 관철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통치자가 강한 이념이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은 자신이 지닌 강한 기준 때문이다.
자식과 부모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불신하면, 갈등이 생긴다.
이는 모두 기준 때문이다.
말을 아끼라.
잔소리를 줄이라.
잔소리는 지켜야 할 것을 부과하는 이념이나 기준이다.
이것을 줄이는 일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삶의 주도권을
리더가 갖는 것이 아니라,
팀원이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발성이 일어나고,
스스로의 존재적 자각이나 자부심이 더 크게 자리한다.
백성도
자식에게도
다 마찬가지이다.
이를 무위의 통치 또는 무불치의 지경이라고 한다.
무위하면 되지 않는 법이 없다.
무위보다도 되지 않는 일이 없는 무불위의 결과였다.
무위라는 지침은 무불위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구부리고,
비우고,
덜어내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는 것이
함이 없는 함, 즉 무위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이 앞서게 된다.
자신을 소홀히 하지만, 오히려 보존된다.
얇은 지성은
무불위로 대표되는 결과를 읽는 대신,
무위만 읽는다.
지금 우리는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새 세상이 열리는 과정에 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완성을 이루려는 사람이
잡다한 현실을 따돌리기만 하면 될 것으로 믿다가는
얇고 창백하며 정체 모를 환각에 싸일 뿐이다.
자신의 힘을 튼튼하게 하여야 한다.
얇고 가벼운 것은
감각적이어서 빨리 오고,
무거운 것은 느리게 온다.
느리게 오는 것이 진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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