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배운 윤리과목은
한국에만 있는 교육과정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유난히 윤리적인 담론들이 넘쳐납니다.
특히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교훈이나 격언 속담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진리인양, 삶의 나침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듣는 이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자신들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전합니다.
착하게 살자!!
욕심을 버리자!!
겸손하게 살자!!
도대체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착하게 살 필요도 악 하게 살 필요도 없이 그냥 살면 됩니다.
아무리 겸손하게 착하게 살아도
누구는 욕심이 많다고 비난 받고,
누구는 욕심이 없다고 질책을 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단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추상적인 의미로는 하나마나한 말입니다.
흔히 조선을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성리학이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고 중앙집권적인 왕조 체제를 유지시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지배 계급인 왕족과 양반이 98%의 평민과 노비를 지배한건 성리학이 아니라 공권력입니다.
물리적인 힘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리학이 이용되었던 것이지 성리학적인 가치를 백성들이 추종했기 때문에 조선의 봉건적 질서가 유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시대의 도덕률은 지배계급의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도덕은 기득권을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는 애당초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인간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노비제를 정당화 시키는 것이 봉건시대의 도덕률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다시말해 조선시대 대부분의 백성들이 신분적 질서를 바탕으로한 성리학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조선 사회가 유지된 것이 아니라,
신분적 질서를 거부할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와 물리적인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비들이 성리학적인 가치를 받아들여서 도망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도망가면 잡아서 죽이기 때문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한 개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도덕적 가치관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로서 당연히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이 개개인의 삶을 규정합니다.
그러니 전통적인 도덕적 담론들은 개개인의 삶에 그 어떤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는 공허하기 그지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격언은 유통기한이 다했고,
경험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담론은 자본주의적이거나 아니면 반자본주의적인 것,
이 두가지 뿐입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며
자본주의적인 삶에 유리한 담론을 말하든지
아니면 반자본주의적인 담론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 공허한 것이 된 세상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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