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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삶 이야기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by Ajan Master_Choi 2020. 8. 11.

가끔 ...

아주 가끔 ...

바닷가 길을 걷는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렇게 걷다 주워 온 돌이 몇개 있다.

모양은 다르지만 다들 겉이 만질만질하다.

 

기분이 처지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

이 돌들을 만지작 거리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딱딱한 돌에서 느껴지는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감촉이

거칠어지는 내 마음을 만질만질하게 해준다.

문득!

이 만질만질함은 어디서 온 걸까?

단단한 걸 보니 화강암이나 현무암일 텐데.
그렇다면 아마도 수백 수천만 년 전 지구 저 깊은 곳에서 그 어떤 것보다 뜨거운 상태로 솟구쳐 나와 굳어졌을 것이다.
원래 바다에 있었을 수도 있고.
어쩌다 바다로 흘러들어 갔을 수도 있지만 날이면 날마다 수천 번씩 파도에 씻기며 거친 모습을 떠나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돌 하나에 수백 수천만 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셈이다!
온갖 세파와 풍랑을 다 겪은 이런 축적된 시간이 내 마음을 다독이는 건지도 모른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알고 보면 오랜 시간의 결과들이 밤하늘에도 있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 중 가장 멀리 있다는 게 우리 옆 은하인 안드로메다 성운이다.
우리옆이라고는 하지만

25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참으로 우리의 시각으로 가늠할 수 없는 먼 이웃이다.

 

빛의 속도는 1초 동안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 속도다.
1년 동안 빛이 가는 거리(약 9조 5000억 km)를 1광년 이라고 하니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무려 250만 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저 안드로메다 별빛은

우리 인류가 생겨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옛날에 출발했다는 뜻이다.

 

원시 인류인 호모하빌리스가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근근히 살아가던 그 시절에.
이에 비하면 예로부터 밤길의 지표로 삼는 북극성 별빛은 그야말로 최근 것이다.
불과 400년 전 떠났으니 말이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 중

가장 밝다는 시리우스 별빛은 8년 7개월 전 떠난 아주 따끈따끈한것이고 말이다.

 

반면 우리가 보고 있는 햇빛은 8분 만에 우리 눈에 도착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햇빛이 8분 전의 빛이라는 애기다.
세상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시인들이 햇빛보다 별빛에 더 눈길을 주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별빛만이 아니다.

시인 박철은 '개화산에서' 라는 시에서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조용한 산이 더 높은 산이다''

이렇게 읇고 있다.

맞다.
높은 산은 대체로 최근에 생긴 것이다.
낮은 산은 대체로 최근에 생긴 것이다.
낮은 산은 생긴지 오래되어 낮아진 것이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기에 마음 편히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온 것이기에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 많다.


우리도 이럴 수 있을까?

 

모난돌이 무수한 풍랑과 세파를 거치며 둥글어 지듯이,
높은 산이 눈보라를 거치면 낮아 지듯이,
나이 들수록 부드러워진 단단함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괴로움과 번뇌 가운데 어둠속에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주고.
밤하늘의 별들이 그렇듯 어두운 시간을 함께해 주며 좌표가 되어 주면 어떨까!

 

이런 사람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주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진정한 스타일 것이다.

돈과 재물이 많고 높은 권자에 앉아있는 자가 스타는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위치가 높아질수록 높은 산처럼 조용하고,
살면 살수록 낮은 산처럼 마음이 편한 자연을 닮으면 나쁠일이 없다.

 

2500년 전에

과학이 지금과 같이 발달하기전에

5100여 자의 한자로 기록된 노자의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사상은 '무위자연'의 철학이다.

 

무위자연의 자세로 정치를 하고 기업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이다.

 

텅 비워진 마음의 자세로 일을 하되 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벌되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되 삶과 죽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나만의 주체성과 정체성으로 이 불투명하고 어둡고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 나가라는 영혼의 대 자유의 가르침일 것이다.

https://youtu.be/rZU4YSzJE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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