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행위다.
나는 멀리 있는 당신의 고된 하루를 떠올리며 시름에 잠기고 내 곁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때로 서글퍼진다.
아이들이 항상 평온한 것만은 아니다.
그네들도 삶의 악몽에 시달려서 온몸을 뒤틀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나는,
"괜찮다, 다 괜찮다"
속삭여주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근거는 참으로 빈약하다.
나 역시 악몽을 잘 알고
한여름 더위가 스러지고 해가 기우는 것처럼
지나가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더위는 다시 올 것이고 혹한도 찾아올 것이며 장마 또한 예전과 비슷한 강도로 쏟아부으리란 것도 안다.
나는 아이에게 ‘보통의 존재’
한때는 묻고 또 물었다.
"과연 인생에 선의란 게 있을까?"
때로는 지독한 악의로만 똘똘 뭉친 채 배달된 소포 같은 이 인생을 내 것인 양 끌어안고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아헤맸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잠정적으로 도달한 타협점은,
인생에는 아무런 의도도 없다는 것이었다.
선의도 악의도 없이,
별다른 실체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영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적절한 좌표를 찍어 정리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쩌면 내 불안을 잠재우려는 몸짓에 불과했다.
순간을 지나가기 위해 벌이는 춤이었다.
어리석지만,
별수 없이 나란 인간은
이 과정을 이어가고 말 것이이라는,
체념일지 인정일지 잠정적 포기일지 모를 자리에 이르러 나와 삶을 향해 비탈길을 달려가듯 쏟아지던 질문을 멈춰 세웠다.
속도가 달라지니 풍경이 변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풍경을 비집고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삶 따위는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이
무작정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어릴 적부터 이어진 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전의 사랑은 맹목이자 환영이자 더 나아져야만 이를 수 있는, 내 존재와 내 삶의 부정이었다면,
이후에 찾아온 사랑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가난한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들이 잠시 통과해 나가는 작은 통로,
비좁은 세상에 불과했다.
그들이 내게 바란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
그러니까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정도...
오히려 나의 바람을,
그들에게 투영한 게
더 많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한동안 자꾸만 미안했다.
이렇게 신산한 삶에,
혼돈뿐인 세상에,
너희를 던져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역시 오만임을 알았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인생에서 대단한 존재도 아니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나가는 한 자리,
되도록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한 자리로 족하면 최선일 존재였다.
어느날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상하게 자꾸 슬퍼져요.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잠시 흐느껴 울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너도 나처럼 앓고 있는 거니?"
하지만 금세 깨달았다.
이 슬픔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너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을 너와 나만의
특별한 연대의식으로 생각하느니
이 세상 모두를 관통하는 슬픔 정도로만 생각해두자.
단지, 내가 조금 더 그 질감을 더 가깝고 비슷하게 느낄 수 있으니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이에게 말했다.
“그 느낌을 아주 잘 알아.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잘 감지하고 표현하는 데 능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그런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그 순간에 조용히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다보면 어느새 파도가 떠나는 것처럼 그 감정도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래도 우리는 맞닿아 있다
아이는 잘 웃고 자주 우울해했다.
엉뚱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엉엉 울기보다는 사람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를 떠나곤 했다.
새침하고 주변에 대한 경계가 심했지만,
한번 가까워지면 조곤조곤 말이 많았다.
생각의 가지가 무성해서 때로 자기가 골몰하는 것 외에는 무심해 보이기도 했다.
걱정을 찾아헤매는 나는 그걸 붙잡고 고민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사교적이고 잘 어울리지만,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감지하곤 했다.
타고난 무심함일 수도 있고
게으름일 수도 있고
지나친 자기 세계로의 몰입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사무치게 느끼고 있을 때라
아이가 힘들어질까 미리 걱정했다.
그리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아이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나라는 존재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가 살아온 과정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변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언젠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내 몫은 때때로 함께 느껴주는 일밖에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를 아끼고 보듬고 잘 살아가고 싶어졌다.
너와 나는 다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맞닿은 지점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너와 나는 우연히도 더 많이 맞닿은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맙게도 나를 찾아와준 네 덕택에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잘 살아남겠다.
네가 어느 날 내게 와서
인생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무작정 울고 싶을 때, 괜찮다고, 하지만 무슨 느낌인지 안다고 꼭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소식을 주고받는 나의 단짝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가깝고 마음 깊숙한 곳을 나누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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