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녀석이 윤승운 선생의 <요철 발명왕> 복각판을 구해서는 연일 자랑이다.
주인공 요철이가 시간여행을 가서 자신의 묘비를 찾고 2069년 사망했음을 보고 100살을 살고 죽었다는 대사를 치니 요철이가 1969년 닭띠생 우리 또래라며 뭔 대발견이라도 한 양 감개무량해하는 걸 보니 슬몃 웃음이 났다.
허기사 가끔 페이스북 프로필로 쓰는 ‘꺼벙이’ 단행본을 사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던가.
‘만화책’은 안 사주신다는 부모님에 맞서 반기지 않는 이웃집까지 돌아다니며 세뱃돈을 모아 ‘백제출판사’에서 나온 <꺼벙이> 단행본을 산 게 1980년 정초였다.
송창식의 노래 가사처럼 ‘몇 무릎 몇 손이나 모아졌던가.’
그 추억을 꺼내 다림질하고 나니 나이 쉰에 <요철 발명왕>에 열광하고 요철이가 우리랑 동갑이었어 호들갑 떠는 녀석의 정서가 넉넉히 이해가 간다.
요철 발명왕의 또래라면, 플러스 마이너스 2 정도의 나이라면, 대부분 강가딘을 기억하실 것이다.
귀가 쫑긋 솟은 검둥개.
이 캐릭터의 이름이 왜 ‘강가딘’이 됐는가의 질문에 대해 작가 김삼은 뜻밖의 대답을 한 바 있다.
“강가딘이라는 이름은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영화에서 따 왔다.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영화였는데 주인공 소년 이름이 강가딘이었다. 이름이 잊혀지지 않았다.”
영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소년의 이름 그대로 ‘건가딘’이었다.
1939년 작 케리 그란트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다.
몇 달 전 이 까마득한 영화를 케이블 무료 영화 채널에서 보았다.
건가딘은 인도 소년(으로 나오지만 엉뚱하게도 역을 맡은 인도 배우는 주인공들하고 동갑내기로 보이는 중늙은이)이었고 영국군의 심부름꾼이었지만 영국군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친구다.
인도인 반란군이 매복하여 영국군을 기습하려는 순간 나팔을 불어 위기를 알리고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각의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이 영국군 군복을 입고 거수 경례하는 것으로 끝나고 “그는 이제 영국군 상병이야.”
요따위로 백인들끼리 치하하는, 좀 어이없기까지 한 영화다.
그 유색인종 소년이 건가딘, 즉 일본 식으로 발음하면 ‘강가딘’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만화가가 극장에서 내용도 까먹은 채 이름만 기억에 남겼던 헐리우드 영화 속 인도 소년은 그로부터 40년 쯤 뒤 한국에서 검둥개로 다시 태어났다.
또 내가 읽었던 강가딘 단행본 속에서는 (강가딘은 매우 다양한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정복자의 군대의 일원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헐리우드 영화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혁명가(?)로 탈바꿈한다.
내가 본 <강가딘>은 좀 불려 말하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무릎 정도는 능히 육박하는 정치적 우화였다.
영리한 검둥개 강가딘은 주인의 구박과 감시를 뚫고 자유를 얻고자 했고 여기에 소, 말,돼지, 토끼, 개 등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인간의 먹이와 소용을 위해 키워지던 동물들이 합세한다.
그들은 인간 세상을 탈출하여 자신들만의 나라, 가축 ‘공화국’을 세운다.
강가딘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
그런데 이 가축 공화국 근처에는 사자왕이 다스리는 맹수들의 나라가 있었다.
맹수들은 호시탐탐 평화로운 강가딘의 나라를 노렸고 강가딘은 이를 맞아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어렵사리 나라를 이끌었다.
그런데 사자왕의 참모인 여우가 꾀를 내 강가딘의 ‘비서실장’ 꿀꿀이의 탐욕을 자극하여 강가딘을 내쫓을 음모를 꾸미게 한다.
꿀꿀이 비서실장은 강가딘의 방에서 가축들의 뼈다귀가 나왔다며 이건 강가딘이 국민들을 잡아먹은 증거라고 우기고 강가딘은 유력한 증거(?)앞에 무죄를 호소했지만 이미 뼈다귀에 흥분한 백성들은 돌을 던지며 강가딘을 규탄한다.
결국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갇히는 강가딘.
피눈물을 흘리는 강가딘 앞에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는 황소 영감.
꿀꿀이는 강가딘을 추방하고 자신이 권좌에 앉는다.
가축 나라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사자왕은 꿀꿀이를 허수아비 삼아 형식상의 권력을 부여해 놓고서 자신의 식욕을 채우기 위한 제물을 요구했고 가축들은 제비를 뽑아 희생자를 정하는 신세가 된다.
이 장면에서 기억나는 가슴 아픈 장면 하나.
가축 나라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희생자를 정하는데 한 어린 토끼가 낙착된다.
아이 토끼는 울며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는 자신이 대신 죽기를 소망하지만 꿀꿀이 대통령은 그건 법을 어기는 일이라며 어린 토끼를 끌고 간다.
어린 토끼는 즉시 사자왕의 식탁에 올려지는데 그때 사자왕은 이런 멘트를 날리며 맛있게 먹어치운다.
“토끼의 간은 용왕도 탐내는 별미렷다.”
이후 꿀꿀이의 폭정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 꿀꿀이는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고 강가딘은 다시 국민의 지도자가 된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 보는 만화였지만 강가딘의 인생유전은 어린 소년은 정치라는 것에는 권모술수라는 유식한 말로 치장된 속임수와 사기와 어거지와 어리석음이 범벅이 돼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1976년 잡지 <소년생활>에 연재되기 시작했던 <강가딘>에는 작가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경험한 세상이 녹아 있는지도 모른다.
조작된 증거로 강가딘을 국민 잡아먹는 괴물로 만들었듯 뭐라 말 한 마디 못하고 엉터리 증거 앞에서 상종 못할 빨갱이가 되고 재판 받고 하루만에 목이 매달리는 사람들이 즐비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또한 <강가딘>은 앞으로 닥쳐올 시대에 대한 본의 아닌, 그러나 불길한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
80년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하던 그 시절, 이른바 3김시대라고 하여 다음 대통령은 저 3명의 하나가 되리라 하던 세 김씨 가운데 한 명 김대중의 운명이 바로 강가딘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았던가.
80년 벽두 나를 사로잡았던 또 하나의 명작으로 나는 이우정의 <갈기 없는 검은 사자>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이 당시 흔했던 것처럼 일본 만화를 베낀 것이 아니기를 지금도 바라는 것은 그만큼의 감동과 정보를 그득 담고 있었던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족의 대추장 쿠아나의 두 아들 바로오와 스와라.
바로오는 서양 선교사들과 친하게 지내며 마사이족을 개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스와라는 마사이족의 전통을 유지하자는 쪽이었다.
백인우월주의는 극동의 나라 만화가의 뇌리에도 침투해 있어서 동생 스와라 쪽이 악역을 맡는다.
스와라는 외국으로 떠난 형을 배신자로 몰아면서 조카마저 초원에 팽개친 후 사자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을 한다.
분노한 대추장 쿠아나는 사자 사냥에 나서지만 그 와중에 상처를 입고 죽게 되고 바오로의 핏덩이 아들은 사자들 사이에서 키워지게 된다.
아프리카 판 정글북?
마사이족의 대추장이 된 스와라.
하지만 형 바오로가 돌아오면서 마사이족은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권력욕에 불타고 권력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는 동생 스와라와 장자로서의 명분과 지도자로서의 덕성을 지닌 장남 바오로는 일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스와라는 대추장으로서의 기득권을 지니고 우세한 병력을 동원했지만 정의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
마사이 최정예 전사들을 거느린 데카요 추장과 오켄 장로가 바오로를 도와 스와라에 맞선다.
하지만 정직하고 사람 좋은 바오로는 스와라의 교활한 꾀에 쉽게 빠져들었고 바오로 군대는 전멸하고 데카요 추장과 오켄 장로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만다.
그 줄거리 중 간간이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스와라의 군세에 바오로 군대가 밀리고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마저 꽁무니를 빼려고 하자 마사이 최고의 용사 데카요 추장이 내지르던 호령.
“이게 무슨 꼴들이야. 천하의 데카요의 용사들이 적에게 등을 보이다니!”
하지만 만화 속에서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었고 데카요 추장도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는 데카요와 그 호령에 응해 도망가다가도 다시 창을 들고 전선으로 뛰어드는 마사이 모란(용사)들.
하나 더 들어 본다면 데카요 추장과 오켄 장로가 마지막 결전 이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엔곤구와 파파두 두 추장이겠다.
바오로를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는 철석같이 했지만, 데카요 추장과 오켄 장로는 엔곤구와 파파두 추장이 형세를 보아 재빨리 강한 쪽에 붙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데카요와 오켄으로서는 그들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불안한 걱정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엔곤구 파파두 추장은 스와라에게 잽싸게 항복하면서 바오로 군대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들은 사자들 사이에서 길러진 바오로의 아들 자칼을 사로잡아 스와라에게 바치려고까지 한다.
마치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는 풀”
처럼.
그들은 신속하게 변했고 빠르게 주인을 바꿨다.
강력한 리더의 향배를 본능적으로 아는 ‘들쥐’처럼.
그리고 당시의 한국 사람들처럼.
바오로 군이 전멸하고 바오로와 데카요, 오켄 등이 몰살당한 뒤 작가는 대충 이런 내용의 지문을 쓴다.
“마사이족을 위한 의로운 불꽃이 마침내 꺼졌다.”
그렇게 바오로 이하 그들을 따르던 이들은 죽었고 마사이족의 역사에는 암흑이 시작됐다.
하지만 사자들 틈에서 길러진 바오로의 아들 자칼이 있었다.
자칼은 아버지의 최후를 보았었다.
야성이 남아 있던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던 용사 안티오가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아버지를 감싼 채 함께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 기억 속에서 복수의 의지를 담금질한다.
그는 자신의 사자 형제 삼손과 함께 악전고투를 벌이고 아버지의 사람들을 규합한 끝에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대추장 스와라를 무찌르게 된다.
그 장구한 드라마가 <갈기없는 검은 사자>였다.
그 드라마 가운데 바오로와 스와라의 정면 대결, 즉 불의와 정의, 정통과 반역, 미덕과 악덕의 정면 승부가 소년중앙 별책부록 속에 펼쳐지던 때가 바로 1980년 겨울이었다.
아직 계엄령이라는 이름의 뭔가 엄숙한 명령은 여전히 ‘하달’ 중이었다.
동네에는 ‘시 지정 벽보판’이라는 것이 세워져 있었다.
범생이 중의 범생이요 고지식하기로는 부산에서 제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한 소년은 그 벽보판에 <26x365=0>이니 <영자의 전성시대>니 <O양의 아파트>니 하는 벌거벗은 여자들이 등장하는 싸구려 영화 재재재개봉 포스터가 나붙는 것에 분노했었다.
“부산시에서 할 말을 붙이는 데지 00이 아부지 극장 포스터 붙이는 데는 아니잖아.”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건전한 문제 의식이 충족됐다.
모든 포스터가 북북 찢겨 깨끗해진 게시판에 주먹만한 글씨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나붙은 것이다.
“그래 이런 게 붙어야 시 지정 벽보판 아이가.”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포고령은 종종 나붙었다.
12월달에는 ‘정승화’였는데 1월 이후 이름은 ‘이희성’이었다.
어느 날 나가 보니 시 지정 벽보판에 붙어 있던 이희성 명의의 계엄사 포고문이 또 다시 영화 포스터에 박혀 있었다.
<가시를 삼킨 장미>
당시 정윤희 장미희와 더불어 트로이카를 구성하고 있던 유지인이 옷을 입은 듯 안입은 듯 앉아 있던 그 포즈는 이희성의 포고문을 덮어버린 무엄함에 대한 분노(?) 따위는 날려 버렸다.
참 인상적인 포즈였다.
이후 80년대를 뒤덮은 에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전적인 포즈가 되지만.
그 선전 문구도 기가 막혔다.
"단단한 조가비의 신음인가 분노인가."
조가비가 어디 사투리인지 모르겠는데 그 한국어 보캐뷸러리를 그때 처음 알았다.
1980년 겨울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Jewang Muaythai GYM > 제왕회관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陳情表(진정표) 李密(이밀) (0) | 2019.05.21 |
---|---|
狗猛酒酸(구맹주산) (0) | 2019.05.06 |
오직 독서뿐... (0) | 2019.04.25 |
서밍업 (0) | 2019.04.22 |
인도차이나 (0) | 2019.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