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자들의 마음속에 자아성찰을 위해 어떤 글을 새기면 좋을지 늘 고심하는데요^^
묵자의 이런 가르침을 우리 수련자들이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人無遠慮必有近憂 인무원려필유근우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이내 우환이 따른다
無鑑於水鑑於人 무감어수감어인
자신의 모습은 거울이 아닌 다른 이로부터 비추어 보아야 한다
云禍不可倖 福不可再求 운화불가행 복불가재구
화는 요행으로 면할 수가 없고 복은 두 번 다시 구할 수가 없다
萬事從官 其福自厚 만사종관 기복자후
모든 일을 너그럽게 대하면 그 복은 저절로 두터워진다
若聽一面說 便見相離別 약청일면설 변견상이별
만약 한쪽 말만 듣게 되면 친한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忍一時之忿 免白日之憂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 동안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梅日生寒不買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진정한 세계와 인간의 모습,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
쉬지않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속에서
타인과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태도와 여유,
새로운 시대의 시각속에서 세계를 다르게 인식하고 비춰보는 거울로서
무감어수감어인 無鑑於水鑑於人….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지 말고,
사람 마음에 비친 제 모습을 보라....
물에 자신을 비추면
자신의 겉모습이 보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 보면
자신의 사람 됨됨이 보인다는 뜻으로
참 좋은 가르침입니다.
물이나 거울 속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에는
자신의 외면만 보이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비췬 자신의 모습에서는
외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람 됨됨이가 보이는 것이기에
매사에 겉치레에 얽메이지 말고 사람 됨됨이, 즉 인격의 성숙에 매진하라는 뜻인거죠.
늘어지게 한가로운 요즘
"어떤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거지?"
라는 의문과 함께 나 자신에게
"너 잘 살고 있는거 맞지?"
라고 자문을 해봅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대충 연습하면 나중에 아쉬워할테니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하자"
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그런 나는 잘 살고 있는건지 ,,,
50중반에 서서 되돌아보면서,
요즘은 잘사는 것만큼 단정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세월과 함께 숙성되는게 있고 부패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도 그렇치 않을까요?
세월과 함께 성숙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람의 계절에 준열한 자기 비판과 반성,
그리고 수없는 자기검열을 통한 실천적 노력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고, 인식하고 감지하는 모든것에 대하여
우리는 상당한 자기주관의 확신을 갖고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자신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신이 원하고, 보고 싶어하고, 뜻하고자 했던
하나의 인식상태를 이미지화 하여
투영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인식하는 주체가, 확신하고 있는 실체가 진실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의식수준에서 해석한 일부분일 뿐인 것이죠.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며,
의지하고 인지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편향이 반영된 의식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인간의 세상을 보는 눈은
의식화된 상태에서의 모습으로 보여지며
그러한 모습의 상은
느끼고 인지하는 사람의 의식수준 상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보이는 것이 허상, 잔상, 인간이 스스로 만든 망상일수도 있음으로,
그것이 진실이란 확신을 무모하게 대입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망가트리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보이고 보여지는 것에 인식을 한정하고,
그리고 그러한 굴절된 편향에 맞추고 맞추어지는데 연연하다 보면
그것이 의식의 한계, 인식의 제한성에 갖히기 쉬운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더 깊고, 더 넓고, 더 높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을 울타리에 가두고 멈춰버리게 되면
인식은 허상의 늪에 갖히게 되어
더 이상 인식을 넓히거나 인식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찰이성에 눈뜬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문화를 만날 때
서로 장점을 주고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합니다.
성찰이성에 눈뜨지 못한 인간은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남과 비교하여 스스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애씁니다.
자기성숙의 긴장이 없는 사람에게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게 해주는 것은
그의 몽상의 소유물이며,
그가 속한 집단과 자기에게만 향한 감정의 투영과 환상일 뿐인 것이죠.
사람은
생각이 자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나 자신에 대한 욕심과 관심보다 커질 때
비로소 성숙되기 시작합니다.
"그릴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와도 계속 꿋꿋이 그리면 그 목소리는 이내 사라진다."
빈센트 반고흐의 말처럼
삶과 인식과 행동은 스스로의 마음과 열정이 가르키는 나침반에 의존하며 묵묵히 갈 뿐입니다.
힘들고, 회의감이 들고,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반고흐의 신념과 열정을 가진 영혼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의 궤적은
어떠한 순간에도 '힘차게 일어서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난과 사람들의 무관심과 비난 속에서도
끈기 있게 자신의 그림을 그리며 멋진 작품을 남겼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은 누구나 홀로 있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얼마나 홀로 잘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
살면서 관계속에 함몰되지 않은 단독자로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할수록 삶은 더욱 더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운 투쟁속에서 심장 깊숙이 자리잡은 열정은 커지는데 그것이 인간적 성숙입니다.
제대로 된 세계인식과 인간에 대한 자기성찰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실천의 출발입니다.
어항속에 갖혀 있는 자신만의 우주를 깨고,
새로운 우주를 만나면서 더 나은 우주로 거듭나는 모습이 되고 싶습니다.
수레의 두바퀴처럼
나의 인식속에서 끊임없이 이상화되고 현실화되는
‘현실과 그 존재형식으로서 이상’의 아름다운 조화를 찾고 싶습니다.
개별적으로 파편화되어 복잡하고 특수화된 사실들을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여 보편성에 다가갈 수 있는 추상력,
개별적인 작은 것, 사소한 것에도 감수성을 갖고 살펴보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엄청난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는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인성과 능력을 갖추어 시간의 흐름속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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