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71년 전 6.25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면서 딘 장군, Gen Dean에 대해서는 항상 생소함을 느낀다.
맥아더 사령관은 1950년 6월 29일 한강 방어선을 둘러본 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8군 산하, 24보병사단의 한국전선 투입을 명한다.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은 540명의 특임대를 편성, 수송기 편으로 급파하여 스미스 중령의 지휘 하에 북한군을 저지토록 조치한 후 7월3일 대전에 24사단 지휘본부를 설치하여 연합군의 선봉장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워커 미 8군 사령관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는 지연작전(Fight a delaying action) 즉 Speed Bump(과속방지턱)의 역할이었다.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오는 북한군의 진군 속도를 늦추어 7월 10일 부산에 상륙 예정인 미 제25사단과 20일 포항에 상륙할 미 제1 기갑사단이 전선에 배치될 때까지 북한군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6·25전쟁 초기 피아를 막론하고 상상을 초월한 사실은 북한군의 용의주도한 전쟁 준비와 막강한 파괴력, 미 행정부 및 군부의 신속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북한과 달리 급조, 급파된 미군과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군은 7월 5일 스미스 특임대의 오산 죽미령 초전을 비롯해 낙동강 방어선이 설치되기 전 모든 전투에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고 유럽 전선을 누비던 유능한 지휘관들의 희생은 물론 사단장이 실종되어 후일 포로가 되는 수난의 7월을 보내게 된다.
딘은 1899년 8월 1일 미 일리노이 주 칼라일에서 태어나 미 육사를 지망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하며 ROTC를 이수한 후 1923년 10월 8일 보병 소위로 임관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단계인 1944년 12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미 제44사단 사단장으로 참전하였고 1945년 9월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자 군정청에 파견되어 3대 군정장관과 미 제7사단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48년 귀환 후 미8군 참모장을 거쳐 1949년 10월 미 제24보병 사단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선봉장으로 투입되었다.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뛰어난 직무 수행 능력과 군정기 일정 기간에 한국의 정세를 경험한 지한파 장군이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미8군의 4개 사단장 중 나이가 가장 젊은(51세) 나이로 초전의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그의 지휘 철학은 “Can Do” 쳤다.
그리고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라는 그 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의 부대는 포로가 적기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정작 한국전쟁에서는 본인이 실종,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라!
7월14일부터 20일까지 대전을 중심으로 한 대전 지역 전투는 미 제24사단의 영욕이었다.
선발부대와 선봉장의 역할은 빛나는 승리와 군의 사기진작으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선봉의 미 24보병사단에는 선봉 부대로서의 상처가 너무 컸다.
오산 죽미령 초전의 패배 이후 천안을 비롯한 경부라인의 전투와 금강, 공주 방면의 전투는 연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대전까지 적에게 포위, 사단장이 적의 탱크를 공격해야 하는 시가전에 돌입했어야 했다.
8군 사령관 워커는 또한 후속 부대의 상륙을 생각해 7월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할 것을 명령했고 딘 사단장 역시 사단사령부가 있는 대전을 끝까지 지키려 했으나 7월 5일 오산 죽미령 전투 이후 17일간의 전투에서 7,000명의 병력손실과 60%의 주요 장비를 잃었고 대전전투에서만 3,933명의 병력 중 1,150명(전사, 실종, 부상, 포로 등)의 병력손실로 거의 1개 사단이 와해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대전전투가 절정이던 20일 대전 시가지는 총성과 화염, 비명으로 7월의 뜨거운 태양을 가렸는데 대전시 중구 대사동 보문산 음악공원에는 딘 소장이 3.5인치 로켓포로 적 전차를 겨누는 그 날의 모습을 담은 ‘대전지구 전적비’가 건립되어 대전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딘 소장의 실종
7월 20일 오후 3시 20분 딘은 잔류 34연대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고 50대의 차량에 분승해 마지막 철수부대에 합류한다.
북한군의 추격은 거셌고 민간인 피난민으로 위장한 매복조들이 요소요소에서 사격을 가해 후퇴가 순조롭지 못했다.
이 와중에 사단장의 호위 차량이 과속으로 달리다가 그만 옥천-영동으로 가는 길목을 지나쳐버리고 적의 공격에 직면하게 되자 차를 버리고 직장 산으로 도피하게 되었는데 이미 오후 7시 가지나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부상자들이 갈증을 호소했고 딘은 물을 찾아 나섰다.
물소리를 따라 어둠 속 계곡을 내려가다가 낭떠러지에서 추락, 정신을 잃은 채 몇 시간을 보냈다.
다시 의식을 찾았을 때는 어깨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졌으며 옴 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꼼짝없이 누워 있는 사이 부대원들은 딘을 찾아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그는 외톨이가 된다.
딘은 실종기간 동안 치료는커녕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낮에는 숨어서 자고 밤에는 별을 보고 우군이 있는 동남쪽으로 걸었으나 어떤 때는 같은 지점을 맴돌기만 했다.
그가 헤맨 산속의 거리는 대전에서 무주까지 어림잡아 60km에 이른다.
특히 이 지역은 북한군이 큰 저항 없이 장악한 서남부 지역이라 딘에게는 적지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딘은 산속의 민가 박종구의 집에서 오랜만에 식사다운 음식과 날계란을 얻어먹었다.
계란을 더 달라는 몸짓이 닭백숙으로 둔갑이 되어 포식은 하였지만, 그때 만난 설사가 후일까지 계속되었고 생감자, 날곡식 등 생식으로 이질이 생겨 키 185cm, 체중 95kg의 거구가 59kg의 왜소하고 키만 큰 늙은이가 되었다.
전북 완주군 상전면 운산리 부근에서 본 대와 합류하기 위해 대구로 가는 길을 찾는 딘에게 한두규란 청년이 접근한다.
그와는 영어가 좀 통했고 백만 원에 대구까지 안내해 주는 조건에 합의한 후 개울에서 군화를 벗고 잠시 쉬는 사이 10여 명이 총을 들고 나타나 딘을 포박한다.
한이 밀고한 것이다.
이렇게 포로가 된 8월 25일은 실종 된 지 36알만이었고 딘 사령관의 24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꼿꼿한 무인의 길을 가다
딘의 몸값은 5달러(당시 3천원)였다.
5달러의 유혹에 딘을 밀고한 한두규는 전쟁 후 불법체포죄로 경찰에 체포되어 5년 형을 받게 되었다.
딘의 은폐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용소에로 옮기면서 군정 시절 그의 부하에게 확인되어 사단장임이 밝혀졌고 북한은 그 사실을 계속 숨겨 우방에서는 실종상태로 남게 되었다.
북한은 그 후 평양 부근 순안까지 은밀하고 소중하게(?) 끌고 다니다가 정전 협의가 진행 중인 1951년 12월 18일 벨기에 신문인 Le Soir 특파원, Wilfred Burchett와 인터뷰를 주선 해 그의 생존을 서방에 알린다.
딘에게는 다른 포로와 차별된 예우를 하면서, 또 협박하면서 미국의 극동 군사정책, 미군의 한국 작전계획, 앞으로 사용할 신무기, 일본을 위시한 동남아의 방위계획 등을 집요하게 심문했고 나아가 미 제국주의와 미 투루먼 대통령의 침략주의를 공개적으로 비방한다거나 공산주의와 북한 인민공화국의 발전상을 찬양하는 성명을 스스로 발표하도록 강압했다.
이규현에 의하면 딘은 북한의 온갖 회유, 협박, 학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과 군인의 본분은 끝까지 지켰고 ‘나는 정보고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해도 미국의 반역은 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청년 사병들의 목숨을 위해 누설하지 않겠다.’라고 당당히 맞섰다고 한다.
딘은 심한 고문으로 부지불식간에 인천상륙작전의 기밀을 누설할까 염려되어 한 때 감시병들의 총을 빼앗아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 워커 장군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의 희생을 최대한 막아 달라는 편지도 보냈다.
딘의 포로생활 실상은 구금 초기 통역을 맡았었다가 53년 월남, 귀순한 이규현(그는 후 일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문공부 장관이 된다)의 진술로 생생히 알려지게 되었다.
딘은 1953년 9월 4일 북한군 총좌 이학구와 포로 교환조건으로 판문점을 통해 석방되었다.
영웅과 패장, 영욕의 명예훈장
실종기간인 1951년 1월 9일 미국 의회는 딘에게 미군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가족을 통해 수여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석방되는 날(1953.09.04.)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34년의 미 육군 복무 기간 동안 용맹한 군인, 탁월한 업무능력, 특별한 전적을 표창하는 수훈십자상, Legion of Merit ,동성훈장 등을 받았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전쟁에서 패하고 적의 포로가 된 패장에게 이런 영광을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처사로 여겨질 수 있다. 미 군사 당국은 이렇게 그를 평가한다.
“딘은 국가의 부름과 의무로 전쟁의 위험 속에 뛰어난 용감함과 지휘관의 결의를 보여 주었다. 그는 수류탄으로만 무장 한 상태에서 혼자서 적 전차를 공격했다. 또한 적의 소총 사격을 받는 동안 엄폐도 없이 노출된 위치에서 탱크의 사격을 지시하여 불가항력적인 적의 탱크를 5대나 파괴했다. 대전 전선이 무너졌을 때는 먼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보다 후퇴하는 군을 재조직하고 뒤처진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러한 행동으로 부하들에 대한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헌신과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1954년 자서전인 ‘General Dean’s Stroy’ 출간을 통해 포로가 된 자신과 미 육군의 불명예를 죄송하게 생각했다.
몸소 바주카포로 적의 탱크를 저지한 공적은 일 개 사병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자신은 나무훈장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끝까지 겸손해 했다.
전쟁에서는 상황에 따라 전략적, 전술적 작전이 혼돈 될 수 있다.
이론상 맞는 것이 꼭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전술적으로는 적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부실한 전쟁 준비로 초기패배 를 가져왔지만, 전략적으로는 적의 질풍노도와 같은 공격을 일시 차단하고 전투 태세를 갖추어 남침을 저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초기 24사단과 딘 장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잔인한 7월이 없었다면 김일성은 그의 염원대로 1950년 8월15일 대한민국을 적화시켰을 것이다.
딘은 귀환 후 2년간의 미 육군 제 6야전군 부사령관 직무를 수행한 후 1955년 11월1일 그의 군대일기를 마감한다.
김치를 직접 담그면서 김치만큼 대한민국을 사랑한 딘 장군, 퇴임 후 고향 버클리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낸 그는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도 국립묘지에 아내와 함께 영면하였다.
Gen. William Dean Dies at 82 : Hero – Prisoner in Korea war./ New York Times
한미동맹 강화의 민간 주축인 본 한미우호협회 의 창립 30주년을 맞아 윌리엄 딘 24사단장의 숨은 업적을 다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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