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일제는 조선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망치고, 훼손했지만 특히 경복궁을 능욕하고 망쳤습니다.

경복궁이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법궁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실이 곧 조선이라고 여겼던 것은 대원군이나 일본이나 같았습니다.

그토록 무리를 해서 경복궁을 중건한 대원군과 그 궁궐을 철저하게 유린한 일본.

경복궁에 들어갈 때 우리는 너무나 많은 빈 공간에 놀라고, 대부분 잔디가 심어져 있음을 봅니다.

 

조선의 조경법엔 잔디가 없는데,

궁궐이래서 잔디밭을 가꾸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설마 아니겠죠?

그토록 넓은 공간은 많은 전각들을 헐어 내어 부숴 버린 흔적이며 잔디는 그것을 감추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부도며, 불상이며, 탑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일제의 조선 궁궐의 능욕의 상징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이념으로 세운 나라이며 그 첫 궁궐인 경복궁은 전각이며, 문이며, 모든 것에 그 뜻을 새긴 이름들이 있습니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의 이념을 받드는 것을 근본으로 한 조선의 궁궐에,

부도며 불상과 탑등을 가져다 놓은 그 철저한 멸시와 모욕.

한없이 밀려오는 슬픔과 비애를 느끼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요.

 

경복궁에 들어가면 우리는 제일 먼저 근정전을 보게 됩니다.

왕은 쉼 없이 근면하게, 백성을 위해 정사를 돌보아야 한다는 뜻의 근정전입니다.

백악과 인왕의 품에 꼭 맞춘듯이 안겨 있는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입니다.

정면이 5간, 측면이 5간, 합해서 25간의 이층 건물이니 그 위용이 보암직 합니다.

임금이 조회를 비롯하여 각종 행사와 국가적 중대 행사를 치루던 곳이지요.

조정이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조정이 무슨 뜻인가요?

사극에서 보는대로 임금과 신하가 둘러 서고 앉아 정사를 보던 곳을 조정으로 많이들 알고 있더군요.

그러나 조정은 근정전의 앞 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양반의 어원이 시작된 곳이랍니다.

박석이라고 불리는 평평한 돌이 무심한 듯, 조화로운듯 깔린 그곳에 삼도가 있습니다.

조정을 세 구역으로 나뉜 길이 삼도이고,가운데 조금 높게 된 길을 어도라고 부릅니다.

임금이 다니는 길, 어도를 중심해서 동쪽으로 된 길에 서는 조신들을 동반이라 부르며 서쪽 길에 서는 사람들은 당연히 서반이라 부르겠지요.

이 동반과 서반이 합쳐서 양반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조정에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양반이라고 불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 호칭이 됨에 따라 멍첨지도 양반이라 부릅니다.

삼도의 양쪽으로 품계석이 열 두개씩 줄 지어 있습니다.

정일품, 종일품, 정이품, 종이품...각자의 품계에 따라 서서 조회며 의식을 정중하게 치루었습니다.

임금과 외부에서 들어온 관료들이 만나고 논하는 곳, 외전이라고도 부릅니다.

근정전에서 뒤로 들어가면 사정문이 있고, 그 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정전을 만나게 됩니다.

임금의 일상 집무가 이루어지는 공간, 즉 내전이지요.
그러나 사정전의 뜻은 심오합니다.
왕이 온갖 것을 결정할 때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처결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편전이라고 부르는 곳이 사정전에 있었습니다.
그 좌우에 있는 전각이 만추전과 천추전입니다.

사정전을 뒤로 해서 곧바로 가면 향오문이 보입니다.

그 문을 들어서면 정면 11간, 측면이 5간. 모두 55간이나 되는 상당한 규모의 전각이 나타납니다.

강녕전입니다.

경복궁의 정침이지요.

동편과 서편에 각기 작은 전각이 있는데 동소침과 서소침으로 부릅니다.

다른 말로 동온돌, 서온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편전이 공식 집무실이라면, 강녕전은 임금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방입니다.

평복으로 쉬고 자고 먹고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

강녕전은 태조 4년에 경복궁과 함께 가장 먼저 지어진 전각입니다.

강녕전의 이름은 우리가 오늘날에도 한번쯤은 새겨야 할 깊은 뜻이 있는 이름입니다.
강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의 오복 가운데 세 번째로 전체를 대표하지요.
임금은 오복 가운데의 강녕처럼 마음과 몸을 바르게하여 만 백성을 오복에 들게 한다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임금의 먹고 자는 곳에서까지 백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뜻이 있는 이름을 붙인 정도전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전부 받아들여 실행하고자 했던 태조 이성계도 건국 군주로 손색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삼봉이 죽지않고 살아서 천수를 누렸다면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 왕후의 처소,교태전이 있습니다.

강녕전을 뒤로 돌아서 걸어가면 양의문이 나오는데 교태전이 자리한 곳입니다.

교태전에는 다른 전각에는 있는 것이 없는데 바로 용마루입니다.

용마루가 없는 전각이 몇 개 있는데, 강녕전과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통명전이지요.

기와 지붕의 전면과 후면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높게 담장처럼 쌓은 것을 용마루라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마감이지요.

 

그런데 왜 용마루가 없을까요?

 

바로 임금과 왕비가 동침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왕을 용으로 표현하지요.

그런 용이 들어와서 다음 대의 용을 생산하는 곳이므로, 위에서 다른 용이 누르면 안되기에 용마루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왕비가 임금에게 교태를 부리는 곳이기에 교태전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
교태의 뜻은 매우 심오한 주역의 뜻이 담겨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남녀합일의, 완전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음양의 바른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아들을 얻기를 바라는 염원이 서리어 있는 이름입니다.

교태전을 감싸고 있는 양의문의 이름 또한 음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왕비가 대통을 이을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기원이 이름이 된 것입니다.

교태전은 처음에는 없었고 세종 22년 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왕비를 중전이라고 하는데 전각 가운데 가장 중심인 건물이 교태전이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경복궁의 마지막으로 경회루가 있습니다.

만 원권의 지폐에 세종대왕의 뒷면의 배경이 바로 경회루입니다.
지금의 경회루는 크고 화려한 느낌이지 만 태조때의 경회루는 그저 작은 누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태종 12년에 누각이 기울자 수리하면서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둘레에 연못을 만들었지요.

완공되었을 때 태종은 기뻐하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만나 기쁜 경사가 생기기를 바라는 이름입니다.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 서편에 만세산을 쌓고 오색으로 장식한 배를 띄워 놀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경회루는 고종 4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것입니 다.

경복궁의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서 기둥만 남아 있었지요.

경회루는 임금과 왕비의 연회 장소였고 강녕전과 교태전에서 들어갈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임금 내외분의 사적 정원이며 누각이라고 할수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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