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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by Ajan Master_Choi 2020. 6. 21.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저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p.120)

나름 유명했던 전직 골키퍼 요제프 블로흐의 살인 동기는 단순했다.

한때 외국 원정을 다니며 잘 나가던 축구선수였지만 지금은 공사장에서 이름 없는 인부로 일하는 블로흐는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았다.

사실은 오전 새참을 먹던 현장감독이 힐끗 쳐다보았을 뿐인데 블로흐는 그 눈빛을 자기에 대한 해고 통지로 짐작하고 바로 작업장을 떠난 것이다.


그렇게 작업장을 떠나 돗대 없는 배처럼 정처 없이 극장과 시장, 뒷골목을 떠돌던 블로흐는 의도치 않게 극장 매표소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다음 날 아침 아가씨의 단순한 한마디
"오늘 일하러 안가세요?"
에 마치 자신의 무너진 정체성과 불안의 감정을 들킨 듯 순간 격분하여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고 국경 마을로 도망을 간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오고, 그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어떤 상징이나 신호일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책 초반의 대략 줄거리임^^

해피엔딩도 아니고,
권선징악도 아니고,
정의구현도 아니고,
열린 결말이라 하기도 그렇고,

제목에 꽂혀 주인공 블로흐의 이해 못할 말과 난데없는 행동을 보다 보면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 슬슬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뭔가 놀랄만한 결말이 있지 않을까 의심과 불안감으로 잔뜩 기대하다가 살짝 허탈해지는 마무리를 통해 바짝 쫄았던 근육들이 스르르 이완되면서 잠이 오게 되는 별 시답잖은 경험을 하게 되는 책을 오랜만에 짧게 읽었습니다.

결론은 교훈과 감동은 없고 재미는 그저 그러하고 의미만 좀 생각할만 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들 삶 순간 순간이 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처럼 불안한 순간들의 연속이겠습니다만,

입장 바꿔서 '페널티킥 앞에 선 키커'의 심정 또한
골키퍼 못지 않을 것입니다.

넣으면 영웅, 못넣으면 대략 아니 많이 난감.ㅠㅠ

현실적으로 골을 못막은 골키퍼보다 못넣은 키커가
욕을 먹어도 더 먹지 않겠습니까.


살다보면
키커가 되기도 하고
골키퍼가 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삶은
키커가 되면 잘 차고,
골키퍼가 되면 잘 막아야 되겠습니다.

늘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잘해야 된다는
이런 어이없는 결론처럼
책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